1993년부터 2002년까지 IBM 최고경영자(CEO)로 일하며 '빅 블루'를 부흥시킨 루이스 거스트너가 83세의 나이로 별세했다고 로이터 통신이 28일(현지시간) 전했다.
아르빈드 크리슈나 IBM 회장 겸 CEO는 이날 직원들에게 보낸 이메일을 통해 거스트너의 사망 소식을 발표했으나, 사망 원인은 밝히지 않았다. 크리슈나는 이메일에 "루는 회사의 미래가 정말로 불확실한 시기에 IBM에 합류해 그의 리더십으로 회사를 재편했다. 과거를 돌아보는 것이 아니라, 고객이 다음 필요로 할 것에 끊임없이 집중하는 방식이었다"고 돌아봤다.
거스트너는 1993년 4월 아메리칸 익스프레스에서 잠깐 근무한 후 RJR 나비스코의 CEO에서 IBM으로 옮겼다. 그리고 컨설팅 회사인 맥킨지와 계약을 맺어 IBM의 호출을 받아 빅 블루를 운영한 최초의 외부 기업인이었다.
그가 컴퓨터 대기업을 이끈 9년 동안, 파산 위기에 처한 회사를 반전시킨 공로로 널리 인정받았으며, 회사를 비즈니스 서비스로 전환시켰다. 그는 IBM의 문화와 초점을 근본적으로 바꾸면서 지출을 대폭 삭감하고 자산을 매각하며 주식을 재매입했다.
거스트너는 2002년 IBM의 CEO 직에서 은퇴했는데, 주가는 그가 시작했을 때보다 약 800% 상승했으며, 이후 2008년 은퇴할 때까지 칼라일 그룹의 회장 직을 맡았다.
'코끼리를 춤추게 하라'(Who says Elephants can't dance?)의 저자이자 '교육의 재발명: 미국 공립학교의 기업가 정신'의 공동 저자인 거스트너는 브리스톨 마이어스, 뉴욕 타임스,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AT&T, 캐터필러 등 여러 회사의 이사회에 참여했다.
거스트너는 미국 공교육에 열정을 갖고 학교에 회사 기술을 활용하는 IBM의 이니셔티브를 시작했다. 그는 1989년에 거스트너 가족 재단을 포함한 거스트너 필란트로피스를 설립했으며, 이 재단은 생의학 연구, 환경 및 교육 이니셔티브, 뉴욕시, 보스턴, 플로리다 팜비치 카운티를 지원하는 사회 서비스에 중점을 뒀다.
비즈니스 인사이더와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1942년 3월 1일 뉴욕 롱아일랜드 출신인 거스트너는 다트머스 대학에서 학위를, 하버드에서 경영학 석사학위(MBA)를 취득했다. IBM은 새해에 그의 유산을 기념하는 행사를 열 계획이라고 밝혔다.
부인 로빈과의 사이에 두 자녀를 뒀다는 사실만 알려져 있고, 개인적인 일들은 거의 알려진 것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