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목 궁농항으로
십일월 넷째 수요일이다. 수능 일주일 후 고1과 고2는 전국연합 시험을 시행함이 관례다. 내가 수업에 들어가는 고2 교실에서는 수능과 유사한 모의고사를 보느라 진지하고 긴장감이 흐르는 시간을 보냈다. 이번엔 경기교육청 주관이었다. 고3은 예비대학생이 되고, 준사회인으로 신분 이동이 되어가는 즈음 재학생들도 한 학년씩 계급 상승을 앞둔 예비 고2, 예비 고3이 된 셈이다.
전국연합을 치르는 날은 평소 일과보다 늦게 마치는데 내가 할 일이 없어 무료했다. 우두커니 영양가 없는 시간보다 갯가 산책을 나서려고 점심 식후 조퇴를 했다. 아침에 입었던 출근 차림 그대로 연사삼거리로 나가 고현에서 구영으로 가는 31번 버스를 탔다. 구영은 장목면 북단으로 진해가 건너다보이는 작은 포구다. 한 시간에 한 차례 다니는 버스엔 몇몇 노인들이 타고 있었다.
내가 타고 가는 버스 유리창엔 오후 햇살이 비쳐 들었다. 승객으로 함께 가는 노인들은 고현의 병원 진료를 나갔거나 생필품을 마련해 가는 분들인 듯했다. 버스는 연초삼거리에서 덕치를 넘어 하청으로 갔다. 하청부터는 진동만 내해가 드러나고 건너편은 칠천도였다. 칠천도 다리목에서 장목으로 향했다. 연초와 하청과 장목을 줄여 ‘연하장’이라고 하는데 거제 북부권 세 개 면이다.
거제도에서 달팽이 더듬이처럼 진해만으로 뻗쳐 나간 데가 장목면이다. 면소재지는 진해만과 접했고 두모실고개와 관포고개를 넘으면 대한해협이다. 31번 버스는 관포고개를 넘어 궁농항으로 갔다. 궁농항은 간곡선착장과 임호로 이어진 몽돌 해변이었다. 저만치 한화 리조트가 보이는 간곡선착장에서 내렸다. 활처럼 휘어져 원호를 그린 해변에는 몽돌 자갈이 길게 깔려 펼쳐져 있었다.
조업을 마친 어선이 닻을 내리는 선착장으로 나아갔다. 간곡은 몽돌 자갈이 깔린 해변이라 방파제와 부두가 없음이 특이했다. 바닷가에 골짜기 ‘곡(谷)’이 든 지명이 궁금해 마을 안내 표지판을 살펴봤다. 아까 넘어온 관포고개 너머 면소재지와 가까운 데가 송진포였다. 내해인 진해만 송진포에서 뒷산을 넘은 골짜기라고 간곡이라 불렀다. 예전엔 사람이 많이 살지 않던 외해 갯가였다.
견고한 시멘트로 만든 선착장 가장자리에서 폰 카메라로 사진을 몇 장 남겼다. 해변 왼쪽은 리조트가 보였고 오른쪽은 망봉산이었다. 작년까지 두 차례 올라간 망봉산은 높지 않은 봉우리에 산책로를 잘 꾸며 놓았다. 산봉우리는 대한제국 말기 러시아와 일본이 극동에서 대치한 흔적을 볼 수 있었다. 러일전쟁 당시 러시아가 대한해협에서 일본 함대 동향을 정찰하기 위한 관측소였다.
간곡 선착장에서 해안을 따라 궁농항으로 가봤다. 포구에는 덩그런 유람선 두 척이 닻을 내려 있었다. 저도로 가는 유람선이었는데 코로나로 승객이 없어 운항을 멈춘 지 이 년째 되었다. 대통령 하계 별장으로 청해대로 불리는 저도는 진해만 바깥이었다. 오랜 세월 군사시설로 묶여 개방이 되지 않던 저도는 장목항과 칠천도 장곶에서도 유람선을 띄웠으나 승객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유람선이 묶인 포구 곁에는 해상에 낚시공원이 조성되어 있었다. 이와 같은 시설은 능포항에서도 봤다. 바다에 교각을 세워 생태보도교와 같은 구조물이었다. 물때가 맞지 않은 날인지 낚시꾼은 고작 두 명뿐이었다. 가까이 가 보니 나이가 지긋한 노인으로 부부인 듯했다. 할머니에게 어디 사는지 여쭈니 부산에서 왔다고 했다. 고기가 잘 낚이지 않은지 미끼로 쓰는 새우만 보였다.
낚시공원에서 궁농항으로 되돌아와 아까 버스에서 내렸던 간곡선착장으로 향했다. 해변에 업종이 다른 가게들은 ‘몽돌’이라는 상호가 흔했다. 간곡선착장은 여름이면 해수욕장으로 개장하는 곳이었다. 거제에서 몽돌해수욕장으로는 학동이 유명하다. 해금강에서 더 남쪽인 여차에도 몽돌밭이 있었다. 밀려온 파도에 둥글게 마모된 자갈밭을 거닐다가 구영을 출발해 오는 버스를 탔다. 21.1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