帽子와 母子
김 부 회
상갓집에서 오랜만에 친구를 만났다
춥지 않은 날씨에도 모자를 푹 눌러쓴 친구
직업군인으로 구 년, 공사장 인부로 이십여 년
모자 속에 숨어있던 그의 시간이
대머리를 만들었다
숱이 많은 나와 그의 모자가 겸상한다
지나간 말투들이 서로에게 존댓말을 한다
그의 모자帽子속엔
절반쯤 감추고 살아온 시간과
모발이 풍성했던 생의 한 지점에서 만나
더불어 끈끈하게 살아온 아내와 아들
안온하게 살아온 그들이 있다
돌아가는 길
우린 또 누군가의 상갓집에서
마지막 인사를 나눌 것을 예감한다
그땐 그도 모자를 벗겠지
존댓말도 벗어야겠지
몇 가닥 남지 않은 그의 머리 위로
비는 내리고
비는 내리고
이마에 닿는 한 방울 빗물이
강물이 될 것을 이미 알고 있기에,
이듬해,
그가 두고 간 모자母子를 만났다
영정 사진 속엔 풍성한 모발의 그가 나를 보며
환하게 웃고 있다
비는 내리고 여전히 비는 내리고,
- 월간『모던포엠』이달의 작가 / 2024. 01월호 기고 -
〈김부회 시인·평론가〉
△ 월간 모던포엠 편집위원, 계간 문예바다 편집부주간, 김포신문, 대구신문 시 전문 해설위원, 중봉문학상 대상 외 다수 수상.
시집 '시, 답지 않은 소리', '러시안 룰렛', 평론집 '시는 물이다', 공저 시집 '사람과 시 그 두 번째 앤솔로지', 디카시집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츨근길'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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