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隨筆분과 방 작가와 작품(61) -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
이동민 추천 0 조회 268 22.04.12 06:42 댓글 5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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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작성자 22.04.12 06:44

    첫댓글 에밀리 브론테(Emily Brontë, 1918-1848)는 30세에 폐병으로 죽을 때까지 짧지만 강렬한 삶을 살았다. 그녀가 쓴 단 한 권의 책 ‘폭풍의 언덕’(Wuthering Heights, 1847)은 시공을 초월하여 불후의 명작이 되었다. 그녀가 29세에 엘리스 벨(Ellis Bell)이란 익명으로 이 소설을 출간했던 이유는, 여성이 쓴 작품이란 사회적 편견에서 벗어나 작품성으로 평가받기를 원했기 때문이었다. 가난한 성직자의 딸이었던 그녀는 생계를 꾸리기 위해 한때 가정교사로 일했던 때를 제외하고는 영국 요크주 하워스 지역의 한적한 목사관 사택에 살면서 글을 쓰다 죽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아일랜드 빈민 출신으로 케임브리지 대학을 졸업한 후 영국 국교회 목사가 되었다. 그녀는 시에 대한 열정을 아버지에게서 얻었다. 여동생 앤과 언니인 샬롯과 함께 세 자매가 글을 썼고, 오빠인 브랜웰은 알코올과 아편 중독으로 폐인이 되었다.

  • 작성자 22.04.12 12:48

    1924년 언니와 함께 코웬 브리지 스쿨에 잠시 다녔으며, 1842년에는 외국어 실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브뤼셀에 있는 학교를 다닌 적이 있다. 집 주변의 낮은 구릉지대(Moor)에서 뛰놀며 유년시절을 보냈던 그녀는 자연과 우주와 밀착된 삶을 살았다. 고립과 단절 속에서 자연과 우주를 벗 삼아 문학적 상상력과 영감을 얻었다. 이런 까닭에 그녀는 빅토리아조 기독교적 가치관과 사회적 인습을 거부하고 자유를 갈망하는 당찬 영혼의 소유자가 되었다. 이런 낭만적 반항정신은 절벽 위에 핀 야생초를 의미하는 히스클리프라는 인간유형을 창조로 자연스레 이어졌다. 히스클리프는 원초적 생명력과 반항아적 기질 및 순수한 열정을 구현하고 있는 인물이다. 에밀리 브론테는 히스클리프에 대한 차별의 부당성을 통해 여성에 대한 사회적 편견의 부당성을 돌려서 말하고 했던 것 같다.
    동생 앤 브론테(1820-1849) ‘와일드펠 홀의 소작인’을 남겼다.

  • 작성자 22.04.12 16:50

    현대문학은 ‘고독’이라는 주제에 대하여 거의 강박관념에 가까운 집착을 보인다.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은 이 문제를 잘 다루었다. 극단적인 금욕과 고립이 가장 난폭하게 표출된 작품이다. 이것은 완전히 정신이상적인 사랑이야기이다. 주인공이 캐서린과 히스클리프 사이에는 현대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다.
    작가는 선과 악이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고 하였다. 이 소설은 사랑과 미움, 선과 악, 삶과 죽음을 뛰어 넘는 차원의 빅극을 보여준다.
    에밀리 브론테는 성공회 목사인 아일랜드 인을 아버지로 요크셔 주의 성공회 공관에서 유년을 보냈다. 황량한 황야에서 브론테 자매는 서로가 쓴 소설을 서로 돌려보면서 시간을 보냈다고 gksekl. 이런 환경에서 진정한 사랑을 경험하기란 불가능하다. 비평가들은 어떻게 순수한 사랑의 아름다움과 분노로 타오르는 열정을 표현할 수 있었을까? 라고 말한다.

    세익스피어의 리어왕, 멜빌의 백경, 그리고 이 소설을 영미문학에서 3대 비극 소설이라고 말한다. 서머셋 모옴(달과 육펜스 작가)은 세계 10대 소설에 들어가는 작품이라고 하였다.

  • 작성자 22.04.12 20:21

    우리가 빅토리아 시대에 여성이라면 적어도 중산층의 가정을 가진 사람으로 보인다, 여성의 권리는 극도로 제한되어 임금, 토지 재산을 제외한 모든 물적 재산 및 결혼 후에 모은 모든 현금은 가질 수 없었다. 결혼하면 여성의 권리는 법적으로 배우자에게 넘겨졌다. 결혼은 남편과의 성관계를 동의하고, 남자가 여자 몸을 "소유하는 권한"을 주었다.
    남성은 가정과 여성에 대해 더 많은 재정과 권력을 할당 받았다. 빅토리아 시대 여성들은 남편의 통제와 심지어는 성폭력, 언어 적 학대, 경제적 박탈을 포함한 잔인한 행동을 탈출구 없이 견뎌냈다. 남편이 다른 여성과 바람을 피워도 아내는 이러한 이유로 이혼 할 권리가 없었다. 이혼은 사회적 금기로 간주되었다.

  • 작성자 22.04.14 08:59

    빅토리아 조의 중간 계층의 여성은 음악을 배우기는 했으나 무대에는 서지 않았다. 배우나 가수의 딸이 무대에 섰다. 홀로 사는 여인은 하는 일이란 가정교사나 귀부인의 말 벗이나 되어주는 일이다. 그러나 인맥, 배경, 가문의 영향으로 예술비평(지적 작업)을 하는 사람도 있다.
    글을 쓰는 일은 특별한 훈련이 필요치 않아서(이때의 여자들은 소설을 많이 읽었다.) 글을 썼다. 어려운 시가 아니고 소설을 주로 썼다.
    빅토리아 조 모 계관시인이 에밀리 브론테를 저급한 글이라고 혹독하게 비판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 계관시인의 시를 읽는 사람은 없고 브론테의 소설 ‘폭풍의 언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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