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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수'아비 르포르타주
김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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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추잠자리가 활공을 시작하면 깊어가는 가을 벌판은 황금빛에 출렁이지.
내가 나설 때지.
이삭에 달린 나락 한 톨 한 톨을 지킬 의무가 내 양팔에 달린 거야.
그런데 잘 봐.
공정하게 의무를 지키려고 해도 뜻대로 팔을 휘두를 수 없어, 바람이 정하는 방향으로만
흔들어대지.
꽂혀 있는 자리도 불안해, 주인에게 잘못 보이면 당장 뽑혀 팽개쳐 지지.
마음대로 팔을 쓸 수 없는 내게 이름 하나는 잘 지어놓은 것 같아.
'허수'아비라고.
두렁 너머 다른 아비들도 마찬가지인데 깡통까지 매달아 놓아 소리내고 싶지 않아도 강제로 떠들어야 해.
때 없이 부는 바람은 마구 채근하지, 무조건 큰 소리 지르라고.
그런데 언젠가부터 벌판의 작은 참새들이 나를 무서워하지 않는다는 거야.
자기들에게 부여된 조권을 외치며 내 머리에
앉아 놀지.
나를 무시하고 재잘거리는 통에 내 위상이
찢기고 있어.
사실 내가 뭘 한 게 있어야지, 이번 가을은 최악의 가을이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어.
이 벌판, 이 땅 누가 뭐라 하든 민주주의가 펼쳐지는 곳이니 뭐라 대꾸할 수 없잖아.
비렁뱅이 옷 걸치고 있어도 사람인 줄 알고 덤비지 않았는데 속 빈 허수아비라는 것을 눈치챈 거야.
배지 하나가 뜯게 자락을 금빛으로 물들이니
마냥 취해 시간 보내는 멍청이라는 것을,
토종 참새떼가 알아 버린 거야.
그러니 이판사판 공사판이라고 신사임당 초상화로 권력을 얻어 쥐고 세 치 혀 내밀고 세상을 기만하며 위선을 즐길 거야.
최정점에 거들먹거리며 오장육부 떼어내고 뻔뻔하게 살 거야.
학습에 학습을 거치고 이력이 난 거짓으로 죄 될 만한 것은 은폐하고 살 거야.
오늘 바람이 오른쪽에서 부네,
내일은 아마 왼쪽에서 불어올걸.
바람이란 변덕스러우니 부는 대로 팔을 흔들면 만사는 오케이야.
각설하고, 셀프 디스라도 해야겠어.
누가 죽든, 누가 살든지 개의치 않는 나는
이 땅에 당당한 허수아비다. 때마다 옷깃에 저절로 금빛이 아롱지므로 걱정할 일 없다. 그런데 가끔 몸과 마음이 마비되는 느낌이 든다. 집구석에선 온몸을 다 쓰며 마누라의 엉덩이 붙들고 낄낄대다가도 벌판에 나와 서기만 하면 감각의 반쪽이 사라진다.
평소엔 멀쩡한데...
성은 '노'씨요 이름은 '숙자',
샛강다리에서 진짜 '허아비'와 인터뷰 하다.
recording_
'세 치 혓바닥은 있소?'
'없소'
'반 척짜리 거시기는 달렸소?'
'다리가 하나라 달 곳 없어 떼어냈소'
'한 근 염통은 있소?'
'지을 죄가 없는지라 용궁에 빼 놓았소'
'무슨 재미로 살았소?'
'말을 못 하니 탐이 없고 주색을 모르니
두근거리는 진도 없고 허투루 벌떡거리며 솟는 치마저 버린지라
헌 뜯게 자락 하나 걸치고 하늬바람을 맞지만 헐렁한 등뒤로
유유히 흐르는 강물에 짐을 다 내려 놓고 무념, 무상에 마음 가붓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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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재미로 살고 있소.'
(옮긴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