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에는 네 개의 가시를 가진 도도한 꽃이 등장한다. 꽃들은 자기들이 할 수 있는 만큼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가시를 갖고 있다고 말한다.
꽃들은 가시가 있으므로 자기들이 스스로 무서운 존재라고 생각한다. 작가는 가시를 가진 식물의 생태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던 것.
두릅나무과에 속하는 음나무는 보통 엄나무로 많이 알고 있다.
잡귀를 쫓는다는 믿음 때문에 마당 안에 심기도 하고, 가지를 잘라 처마 끝에 매달아 놓기도 한다. 요즘은 닭백숙에 많이 넣는다.
음나무의 새순은 두릅순보다 향기가 강한데, 봄철에는 더 귀하게 친다. 연한 잎을 데쳐서 초고추장에 찍어 먹거나 잎을 말려 묵나물로 만들어 먹기도 한다. 음나무 가시는 잎을 따먹는 동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생겨났다.
이른바 방어기제가 작동한 것. 나무가 어릴 때는 위험으로부터 취약하기 때문에 가시가 매우 날카롭고 가시의 개수도 많다.
그런데 음나무 줄기가 굵어지고 잎사귀를 허공 높은 곳으로 매달기 시작하면 가시가 무뎌진다.
생의 정착 단계에서 가시가 퇴화하는 것이다. 키가 크고 수십 년 된 음나무의 수피는 이게 언제 음나무였을까 싶을 정도로 검은 회색으로 변해 있다. 세로로 난 수피의 무늬도 뚜렷해진다. 가시는 뾰족하지 않고 거의 눈에 띄지 않을 정도다.
외부의 공격으로부터 안전하지 못하다고 판단하면 사람도 가시를 세우는 것일까? 나이를 먹어도 가시를 거둬들일 줄 모르는 사람은 그럼 뭐지?
나는 백숙을 할 때, 음나무 대신에 당귀를 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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