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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도탁스 (DOTAX) 원문보기 글쓴이: 얼굴천재아이린
펌,스압)바둑 역사상 올타임 레전드 1편 - 오청원 전설의 10번기.jpgtxt
https://cafe.daum.net/dotax/Elgq/3789856?svc=cafeapi
펌,스압)바둑 역사상 올타임 레전드2편 - 조훈현. 최초의 응씨배 우승자.jpgtxt
https://cafe.daum.net/dotax/Elgq/3789952
20대 조치훈의 사진.과 최근모습
* 누가 제일 강한지 아라보자!! *
개인적으로 젊었을 때 모습은 강호동과 비슷한거같다.
오늘은 조치훈 이라는 사람을 소개 해 드리겠습니다.
1956년에 태어난 조치훈은
우리나라 대국수 조남철9단의 조카입니다.(전편에서 조훈현9단을 일본으로 유학보낸)
조훈현과 마찬가지로 어렸을 때 일본으로 유학을 떠납니다.
-유학을 떠나는 조치훈과 조남철9단.
어린 조치훈의 사진.
역시 바둑은 재능의 영역인지 6살 나이에 임해봉6단과 5점을 깔고 바둑을 둘만큼 바둑에 재능이 엄청났습니다.
(6살이면 태어나자마자 바둑을 배워도 6년...)
일본에 유학을 떠나는데 1편과 2편에서도 등장했던 기타니 기억하시나요?
기타니 미노루
이 기타니 미노루의 문하생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전 편에 말씀드렸다 시피 당시 승단시합에서는 같은 문하생들 끼리 대국을 두지 못하는 룰이 있었죠
그래서 조훈현9단이 13세에 입단을 했음에도 기타니 밑에 있었으면 더 빨리 입단 했을텐데 라는 말이 있었을 정도 였는데
조치훈은 무려 11세 나이에 입단을 합니다.
(이것이 기타니빨?)
11세에 입단을 한것은 일본프로기사 역사상 최연소 기록으로 아직까지 깨지지 않고 있습니다 ㄷㄷ
(훗날 라이벌이 되는 고바야시 고이치 라는 사람이 원래 조치훈 본인보다 한참 하수였는데
먼저 입단을 하는것을 보고 충격 받아 바둑 공부를 더 열심히 했다는 일화가 있음.)
참고로 고바야시는 4살 형이다.
기타니의 가르침으로 재능을 만개하던 조치훈은
조훈현이 신인왕을 딴 다음 해에 신인왕을 수상합니다.
조치훈의 대회 수상얘기를 하기 전에
일본에서는 7대 타이틀 이라고 7개의 타이틀 전이 있는데
그 타이틀 전 중에서도 가장 권위가 높은 3개가
기성전,명인전,혼인보전 입니다.
조훈현이 24세에 한국에서 국수(國手)칭호를 받고 한창 국내 바둑 정상에 군림하고 있을 때
조치훈은 일본에서 24세 나이에 명인전 타이틀을 따내며 명인 칭호를 얻습니다.
(둘이 3살차이로 조훈현이 형이다.)
1980년 명인전 결정국 계가 직후의 상황. 명인이 된 조치훈은 스터덤에 올랐다.
명인전 승리로 한국에서 은관문화훈장을 수여 받아 공식적으로 병역 면제가 됐습니다.
(어차피 국민학교 입학도 못해서 면제긴 했음)
이후 파죽지세로 1983년.
혼인보 타이틀도 획득.
1983년 기성전 하나만 남겨두고 일본 바둑계 최초의 대삼관(大三冠) 을 달성 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렸는데
당시 기성전 타이틀을 갖고 있던 사람은
후지사와 슈코 라는 사람인데 이 양반이 얼마나 골때리는 사람이냐면 ㅋㅋㅋㅋㅋㅋㅋㅋ
(본명은 후지사와 히데유키.
혼인보 가문의 후계자만 슈 라는 이름을 쓸 수 있었는데 그런데도 제자들이 경의를 표하는 뜻에서 슈코 선생님이라고 불렸다.)
조훈현과 후지사와 슈코다. 조훈현이 어렸을 때 일본 기원에 가서 슈코에게 많이 배웠다고 한다.
(정신적인 스승은 세고에, 바둑판 위 스승은 슈코라고 직접 말함.)
딱 봐도 장난기 많아 보이는 영감님이다.
잠깐 이 영감님의 썰좀 풀자면
호쾌하고 술과 여자를 좋아하는 성격으로 '나는 1년에 4판만 이기면 돼' 라는 말을 자주 했었다고 한다.
(빚이 많아서 가장 상금이 큰 기성전 7전4선승제 를 우승하지 못하면 빚을 못갚음 ㅋㅋㅋㅋㅋㅋㅋ)
기성전 전까진 마작,도박,경마,술,여자 등 때문에 파산직전이었지만 기성전 우승 덕분에 1년을 버티는...
(그럴만 한게 당시 기성전 우승 상금이 3200만엔 우리돈 3억4천 정도 였다. 그 당시 화폐가치로는 정말 어마어마 했을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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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회 기성전에서 1승3패로 몰리자 5국을 앞두고 졌을 때 목을 매달기 위한 용도로 좋은 나무를 찾은 다음
대국장으로 향했다.
(이 대국에서 슈코 영감은 한 수를 무려 2시간57분을 고민한 끝에 상대의 대마를 잡으며 이겨
역전 우승의 발판을 마련한다.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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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훈현이 어렸을 때 자기 기원에 자주 바둑 배우러 왔는데
자신의 제자와 내기바둑을 하려고 하는것을 보고
말리긴 커녕 오히려 부추겨서 시킨 후 조훈현이 이기는것을 보고 칭찬했다고함 ㅋㅋㅋㅋㅋ
(심지어 이걸 조훈현 스승인 세고에 에게 자랑하다가 개빡친 세고에가 조훈현을 '파문'시킴
결국 조훈현과 같이 손이 발이되도록 빌고 다시 제자로 받아줬다는 일화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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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조훈현이가 보고싶다!' 라며 위스키 한 병 들고 한국에 온 적이 있다.
밤새 술 마시다가 무작정 첫 비행기를 잡아타고 김포공항에 내려서! 연락을 했다 ㅋㅋㅋㅋㅋ
(호텔에서 조훈현과 바둑얘기좀 하다가 3일 내내 술 못하는 조훈현 데리고 혼자 술을 달달하게 드셨고
"니 바둑이 썩었나 보러왔는데 안 썩어서 다행이다. 나 돌아간다~' 라고 하고 일본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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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취하면 성드립을 치는 술버릇(?) 이 있었는데 ㅋㅋ
중국의 덩샤오핑을 만났을 때 'ㅂㅈ를 중국어로 뭐라고 하느냐?'고 끈질기게 물어봐서 덩샤오핑이 당황했다고 한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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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성전을 제외 한 나머지 대회에 관심이 1도 없었다.
그냥 두다가 졸리면 기권하기도 하고 그랬는데
기성전 시작하기 2달전만 되면 필사적으로 술을 끊고 바둑에 몰입했다고 한다 ㄷㄷ(역시 천재는 다른가봐)
아무튼 사생활 과는 별계로
기성전 만큼은 진심인 영감 이였는데(당시 기성전을 무려 6연속 우승으로 단 3명밖에 없는 명예기성 칭호 획득ㄷㄷ)
이 영감이 버티고 있는 기성전을 조치훈이 도전자 자격을 획득하며 도전하게 된다.
여기서 트레쉬 토크라면 밀리지 않는 조치훈과 괴짜 할배 슈코의 일본 바둑 역사상 길이 남을
트레쉬 토크가 시작된다.
조치훈이 20대 젊은 나이에 일본 기사들은 박살내고 다니자
조치훈이라는 젊은이가 그렇게 쎄?? 내가 한번 찾아가 봐야 겠구만
(조치훈이 가지고 있는 명인,혼인보 타이틀 내가 뺐어 볼까?)
어휴 선배님 늙으셔서 힘드실텐데 오시게요? 제가 찾아 가야죠 ㅎㅎ
(슈코 할배 타이틀 간수 잘 하쇼 제가 곧 찾으러 갑니다~)
실제로 기성전 도전자 토너먼트 우승으로 도전자 자격 획득.
[진짜로 왔네;;]
쩝.. 내가 딱 4판만 가르쳐 줄게
(기성전 4대0승리 선언 ㄷㄷ)
저는 딱 세판만 배우겠습니다 ㅎㅎ
(3판 져주고 4대3 선언)
그리고 대망의 기성전.
.
.
.
조치훈은 자신이 한 말을 증명하기라도 하듯이 0:3에서 4:3으로 기적의 역리버스스윕을 보여준다 ㄷㄷㄷ
(훗날 조치훈이 회고한 바에 따르면,
'명인 타이틀 보유자라는 명예가 있는데 4:0으로 지면 꼴사나우니 나중에 지더라도 1승 이상은 따보자.'
는 생각으로 제4국에 초집중하여 임했는데 이게 잘 먹혔다고...)
그리고 인터뷰에서 마지막으로 슈코에게 한마디를 날린다.
'선배님의 기성전 타이틀이 올해가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아픕니다.'라는 드립을 쳤고
(앞으로 타이틀은 제가 갖고 있겠습니다.)
실제로 슈코 할배는 죽을 때까지 기성 타이틀을 따지 못했고 도전자 신분으로도 올라오지 못했다..
슈코 할배. ㅠㅠㅠㅠ
이후 조훈현이 우승한 1회 응씨배에 참가하여
4강까지 가는 노익장을 보여준다..(당시 63세 나이로, 모든 세계대회 4강 이상 진출자 중 최고령 진출자 타이틀을 가져간다.)
아무튼
슈코 할배를 넘어서서 기성전 타이틀 까지 획득한 조치훈은 일본 역사상 최초로 기성,명인,혼인보 타이틀을
한 해에 동시석권하는 일본 바둑 최초의 대삼관(大三冠)을 달성한다 !
1985년 까지 쭉 기성전에서 도전자들을 물리치고 타이틀 방어에 성공 한 조치훈은
86년 기성전에서 역사에 길이 남을 승부를 하게 되는데
상대 도전자는 어린 시절부터 라이벌 이였던 고바야시 고이치9단 이라는 사람이였다.
(위에 언급한 프로 입단 자극했던 그 친구)
여기서 조치훈에게 큰 사고가 벌어진다.
제1국이 열리기 며칠 전 .
저녁까지 바둑 공부를 하고 배가 고파서 야식을 사먹으러 나갔다가
자신이 몰던 자동차와 어느 오토바이의 가벼운 접촉사고가 났다.
그런데 조치훈이 차에서 내려 오토바이 운전자를 일으켜 세우는 와중에 갑자기 다른 차가 나타나서 그대로 두 사람을 치어버렸다. 진짜로 머리(뇌)와 오른손을 제외하고 전신이 너덜너덜해지는, 말 그대로 목숨만 겨우 건진 수준의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
당시 의사가 밝힌 부상 부위는 다음과 같았다.
1) 오른쪽 정강이의 두 뼈가 모두 부러지고 뼈가 살밖으로 삐져나옴.
2) 오른쪽 무릎 관절에서 퇴골(허벅지뼈)의 연골이 떨어져 나감.
3) 왼쪽 무릎 관절에서 전십자인대 파열, 후십자인대 손상, 대퇴골의 연골 골절.
4) 왼손 관절부에서 요골과 척골 골절
5) 머리의 외상.
진짜로 머리(안쪽)과 오른손을 제외하고 전신이 너덜너덜해진 것.
다른 기사들도 뇌를 다치지 않은 게 천운이었다고 할 정도로 큰 사고였다.
그러나
여기서 포기하면 올타임 레전드가 아니겠죠
전설의 휠체어 바둑 시전. 왼쪽이 고바야시9단 오른쪽이 조치훈9단.
여러 사람들과 의사가 만류했지만 조치훈이 말하길
" 나에겐 바둑에 필요한 머리가 있고, 돌을 둘 손이 멀쩡하다.
하늘이 나에게 바둑을 두라는 뜻."
이 말을 들은 사람들은 그를 말릴 수 없었고 결국 휠체어를 타고 사진처럼 대국을 둔다.ㄷㄷ
*여담으로 훗날 조치훈이 회고록을 내는데 그 책 이름이"목숨을 걸고 둔다" 입니다..*
[휠체어 바둑] 다른 시점.
-이것을 오마주 한 웹툰[미생]의 일부분.-
(일본 기원 규정 상 천재지변이 아니면 대국이 연기되는 일이 없었고 사고로 부상을 입더라도 기권패로 처리 할 가능성이 매우 컷다.
조치훈의 이 휠체어 대국을 감행한 투혼 그 자체로 사람들에게 존경과 박수를 받았다.)
결국 2승4패로 타이틀은 고바야시에게 내줘야 했지만
모든 사람들이 타이틀 획득한 고바야시보다 저 몸상태로 2승이나 한 조치훈에게 갈채를 보냈다
(고바야시도 삭발을 한것처럼 보이지만 저건 기성전때매 삭발한게 아니라
중일 슈퍼대항전에서 일본대표팀이 중국의 녜웨이핑 한명한테 개박살났다. 그래서 삭발한것.
후에 이 녜웨이핑을 응씨배 결승에서 조훈현 9단이 이기고 우승한다.-전편 참조.)
고바야시는 이 타이틀전 이전 거의 매번 다른 7대 타이틀전에서
조치훈과 붙을 정도로 라이벌 관계에다 실제로 사이도 안좋았지만
이 휠체어 대국을 통해 서로가 바둑을 대하는 진심을 알게되어 크게 사이가 호전되었다고 한다.
(여담으로 이후 도전기들 에서 고바야시는 조치훈에게 처절하게 개박살 났다....)ㅋㅋ
이 교통사고 이후 타이틀 방어에도 실패 하면서 정상에서 내려 오는 듯 보였던 조치훈은
곧 기량을 회복(ㄷㄷ)
다시 기성전 타이틀을 획득하고..
1987년에 천원전에서 고바야시 를 이기며 (휠체어 대국의 설움을 시원하게 갚아줬다!)
일본의 7대 타이틀을 모두 1번 이상 우승하는
일본 역사상 최초의 그랜드 슬램을 달성한다.
1989년 혼인보전 도전기에서
그 유명한 우주류(마스터이 아님)다케미야 마사키를
(이 분 스타일이 완전 호방한 세력바둑 기풍이라 우주에 별들 처럼 돌을 둔다 해서 우주류 라고 불림.)
무려 4:0으로 개발라 버리며 혼인보 타이틀을 획득.
그 뒤 혼인보전 10연패를 비롯 엄청난 커리어를 쌓으며
다시금 정상의 자리에 올라선다.
혼인보 10연패를 하면 특수한 일이 발동되는데
혼인보 가문의 명예 당주가 될 수 있는것이다.
(마지막 당주를 오청원이 박살내면서
혼인보 가문은 앞으로 혼인보전 타이틀10연패 할 사람을 당주로 추대하게 됨,)
25대 혼인보 치쿤.으로 불렸다
(혼인보 당주는 슈oo 라는 일본어를 써야 했는데 본인은 한국인이라고 말하며 일본 이름 쓰는걸 거부했다고 한다.)
여담으로 명인 타이틀을 따고 달성하고 한국에 올 일이 있어 왔는데
한국기원이 조훈현과 바둑을 둬보는게 어떠냐 라고 하여 조훈현과 기념대국을 했는데
당시 한국에서 모두 조훈현을 응원하는게 느껴져서
본인이 한국인이 맞는건지 처음 회의감이 들었다고 한다..
당시 조훈현vs조치훈의 기념 대국은
조치훈의 2대0승리로 끝났다.
조치훈의 바둑은 굉장히 공격적이고 화끈하면서
상대방 본진에 쳐들어가 집을 다 터뜨리고 나온다 라고 하여 폭파전문가 라는 별명이 있다.
(다케미야가 우주류로 큰 집 지어놓으면 다 폭파시켜버림 ㅋㅋ)
그리고 되게 재밌으시고 유머감각이 뛰어나서
본인 피셜 바둑기사 아니였으면 코미디언이 됐을거라고 한다.
*댓글로 유튜브 링크 남겨놓음*
https://www.youtube.com/watch?v=cipPHTKJNmw
조치훈 편도 끝났습니다!
나름 많이 썻는뎅 내용은 어떠셨는지 양은 어떠셨는지 피드백 환영입니다.!
마지막으로 조치훈9단vs조훈현9단의 한국기원 70년 기념 대국 인터뷰 질의 응답 몇개 올리겠습니다.
-참고로 이 대국은 조치훈9단의 시간패로 끝남
(조훈현이 이를 두고 "승부는 내가 이겼지만 바둑은 내가 졌다"라고 할 정도로 내용은 조치훈이 좀 더 좋았음)
- 당신에게 바둑이란.
“만약 바둑이 없었다면 내 인생은 오히려 행복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인생이 행복하기만 하면 사는 게 재미없었을 것 같다. 불행하고 힘들기 때문에 인생이 재미있는 것이다. 어렵고 힘든 바둑 때문에 내 인생은 재미있다. 그래서 나는 바둑을 둔다.”
- 조훈현 9단과 오랜 라이벌로 알려져 있다.
“라이벌이라기보다는 존경하는 선배다. 이번 대국을 앞두고 어떻게 이길 수 있을까 방법을 연구했다. 하지만 졌다. 선배에게 부러운 것이 있다면 형수와 사이가 진짜 좋다는 점이다. 내가 총각일 때 선배가 너무 형수를 챙기는 걸 보고 결혼하기 싫다고 말한 적도 있을 정도다. ”
- 앞으로 계획은.
“없다. 다만 죽기 전에 잠깐이라도 한국에서 살아보고 싶다.”
-끗-
참고로 일본 기성전 작년 우승상금은 4500만엔 이였습니다.
약 4억8천만원 규모로
세계대회인
응씨배(4억6천),신아오배(4억1천),삼성화재배(3억)보다 높은 상금이다.
다음편 주인공은 드디어 우리나라의 국보급 기사
올타임 레전드
돌부처 이창호 입니다.
출처- https://www.fmkorea.com/3964244951
11세에 입단을 한것은 일본프로기사 역사상 최연소 기록으로 아직까지 깨지지 않고 있습니다 ㄷㄷ
이 기록은 깨졌다고 함.. 스미레 9살 입단해서 ㅋㅋ
첫댓글 조훈현 조치훈 이창호 이세돌 바둑계에서 영원히 남을만한 이름들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