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방사 꼬마 / 윤중목
경상남도 남해군 망운산 화방사에는
일곱 살 난 꼬마둥이가 살았더랬지.
송씨 성 가진 사내애였어.
세 살 때 아빠가 데리고서 절에 며칠 묵었는데
읍내에 볼일 보고 온다며 가서는 돌아오질 않았대.
하는 수 없이 스님들이 맡아 키웠다는군.
종무소 보살 말씀이 그래.
그 아이 어린이집 수첩에도
부모란에 ‘스님’이라 적혀있었고.
저녁 공양 후, 사흘째 본 내 얼굴이 익었나
수수께낀지 스무고갠지 옆에 착 붙어 종알대더니만
아저씨 등 가렵다고 등 긁어달라네?
녀석 반죽이 좋은 건가 사람 손길이 그리운 건가,
옷 속으로 손을 넣어 스슥슥 삭삭 긁어줬지 뭐.
아 시원해!, 하며 이번에는 글쎄 배도 쓸어달래요.
반질반질 아이 피부가 감촉이 썩 괜찮더라만
공연한 인연 만들어질까 슬쩍 염려가 되고.
그때 코앞으로 빨따닥 일어나 앉으면서
녀석이 헉, 내일도 또 쓸어달라는 거야.
음 으 그래… 아저씨 안 바쁘면… 끝을 흐리며
내일 아침 서울로 떠난다는 말 차마 하지 못했어.
-『화방사 꼬마』, 천년의시작, 2024.
감상 – 남해의 사찰이라면 금산 보리암이 우선 떠오르지만 망운산 화방사(望雲山 花芳寺)가 있다는 사실을 새로 알았다. 원효 창건설이 있는 연원이 오래된 절이지만 잦은 화재로 주요 건물과 부재는 근래 복원된 것이 많아 보인다. 화방사 일주문 글씨는 여초 김응현의 것이고, 절 뒤편은 종이 생산의 원료가 되는 산닥나무 자생지로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화방사 꼬마 이야기가 실제 시인의 경험에 따른 것일 수도 있고, 소설적 상상이나 들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꾸민 것일 수도 있지만 구체적 지명과 이름이 들어간 만큼 개인 경험의 요소가 상당 부분 작용한 것으로 비치게끔 만든다. 여기에 매력적인 내러티브가 되기 위한 내용 첨삭이나 시적 장치나 표현법을 고민하는 건 글 쓰는 작가라면 당연하게 행하는 일일 것이다.
『밥격』의 표제시 「밥격」에서 사 먹는 밥의 가격으로 사람을 재는 세태를 꼬집으며 “밥격과 인격은 절대 친인척”이 아니라고 항변했던 윤중목 시인은 『화방사 꼬마』의 표제시 「화방사 꼬마」를 통해 따스하기도 하고 또 불편하기도 한 세상인심을 다시 보여준다.
삼 일 머물며 절밥을 먹는 화자와 부모 모르고 절집에 사는 꼬마가 정을 내서 가까워지려는 걸 경계하는 건 화자 쪽이다. “공연한 인연 만들어질까 슬쩍 염려”가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얼핏 화자가 냉정하고 이성적인 사람 같지만 ‘공연한 인연’까지 걱정하는 자체가 이미 감성적인 화자 혹은 화자 뒤에 있는 시인의 인간성을 보여주는 것이란 생각도 든다.
하지만 시인과 화자의 일치 정도나 그 거리를 종잡기 어려운 상황에서 꼬마는 약속을 어긴 어른을 다시 만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독자에게 불편한 마음을 주며 두 사람의 만남 그 시작과 끝이 주는 여운이 길게 이어지게 만든다.
말하자면, 「화방사 꼬마」는 꼬마가 절집에 온 사연과 그 이후까지 한 편의 이야기 어쩌면 인생 서사가 담긴 긴 장편이 될 수 있는 이야기를 품고 있다. 영화 일에도 관여하는 윤중목 시인인 만큼 절집에 맡겨진 아이의 성장 스토리를 다룬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김기덕 감독, 2003)처럼 화방사 꼬마를 영화로 만나는 기대도 해봄 직하다.(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