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원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몇몇은 주먹으로 책상을 내리치며 흥분했다. "지금 그것도 답변이랍시고, 여기 나와서 말하고 있는 거요?!" 위원장 역시 참지 못하겠다는 듯 버럭 고함을 치며 가세했다. "아니, 여보, 김 총장! 사립대 총장들 눈에는 대학생정원(定員)령 같은 국가법령이 휴지조각처럼 보인다는 게요? 지 멋대로 정원 초과해 놓고 뭣이 어째, 잘했다는 거요!"
1969년, 건국이래 처음 열린 '사학특감'
건국이래 처음 댄 메스 사학특감
1969. 1. 27 [경향신문] 5면
1969년 1월20일 낮. '사립대 운영실태 파악을 위한 국회 문교행정 특별감사'장, 이른바 '사학(私學)특감'에서 일어난 일이다. 특감은 이날 사립대학 총장회의 간사인 한양대 김연준 총장을 증인으로 불렀다. 사립대학이 무슨 근거로 청강생 등 정원 외 학생을 뽑는지, 그 숫자는 얼마인지, 또 그들이 낸 등록금은 어떤 용도로 쓰는지에 대한 질문이 끝도 없이 이어졌다.
그런데 김 총장 답변이 문제였다. 처음엔 고분고분 대답하더니 갑자기 무슨 결심을 했는지 "왜 이제 와서 그런 걸 문제 삼느냐"는 식으로 답변태도를 바꿨다. 그는 "사립대학들이 학생 정원의 20%정도 청강생을 뽑는 것은 지금까지 다 관례로 묵인돼왔다. 말이야 바로 말이지만 연 고대, 이화여대를 제외한 다른 사학은 정원제를 지키면 학교운영을 할 수가 없다."
사실 김 총장 말은 틀린 게 아니었다. 학생 등록금으로 학교재단이 배를 불리는 것도 사실이었다. 문교부도 이를 알면서 눈감아주는 정황이 뚜렷했다. 그러나 사실이 그렇다고 이렇게 '배 째라'는 식으로 나올 일은 아니었다. 그러잖아도 며칠 전 문교부감사에서 권오병 장관조차 "정원 외 학생모집은 사학들에겐 하나의 전통이며 '유령학생'의 등록금은 재단 사업에 들어가는 것이 정 코스"라고 사학비리를 용인하는 듯 답변해 호된 질타를 받았다.
특감장에서 쏟아져 나온 '우골탑' 대학 성토 발언
이성수 의원이 작심한 듯 마이크를 잡았다. 그리고 그 유명한 '우골탑' '축지법' 발언을 쏟아냈다. "대부분 사립대학은 설립당시와 비교해 몇 백배, 몇 천배 팽창했다. 그리고 이 재산팽창은 주로 농촌사람들의 소 판 돈으로 충당돼왔다. 그렇다면 저 삐죽삐죽한 대학 정문이나 건물은 농우(農牛)의 뿔로 세워진 우골탑(牛骨塔)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이냐?" 농민들이 소를 팔고 잡아서 낸 등록금으로 학교는 성채 같은 건물이나 짓고 있다는 얘기였다.
웬만하면 웃음이 나올 법도 했지만 감사장 안은 숙연했다. 이의원의 질타는 계속됐다. "그뿐이냐, 하고 많은 농촌출신 대학생들이 졸업 후에도 거의 취직이 안 돼요. 그래 결과적으로 학비 대느라 부모님 농토만 팔아먹게 만들었으니 현대판 축지법(縮地法), 땅을 줄이는 명수가 된 것 아닙니까." 논밭 팔고 소 팔아서 학비를 댔지만 취직을 못하니 들인 돈을 한 푼도 못 뽑는다는 얘기. 어쩌면 요즘 세태와 이리 똑 닮았을까.
'기부금 받고 보결생을 뽑았다'는 충격 증언
수술대에 올려진 운영난맥 행정변덕
1969. 1. 30 [동아일보] 3면
특감은 이튿날에는 경희대 조영식 총장을 불러 증언을 들었다. 그런데 여기서는 더 깜짝 놀랄 발언이 나왔다. 조 총장은 "경희대는 68년 입시 때 성적을 고려하지 않고 30만 원부터 최고 100만원까지 기부금을 받고 80~90명 보결생을 뽑았다."고 실토한 것이다. 그는 특히 "과거에는 문교부가 정원 외 입학을 묵인해줘 청강생을 많이 모집한 것도 사실"이라며 기부금이 1천만 원에 이른 경우도 있었던 양 증언을 했다. 당시 사립대의 년 평균 공납금은 7만1천2백 원이었다.
특감장이 아수라장이 되었다. 의원들은 사학도 사학이지만 관리책임을 진 문교부는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것이냐고 호통을 쳤다. 그때까지 공개로 진행되던 특감은 그 이후 비공개로 전환됐다. 계속 공개로 진행하다가는 또 어떤 엄청난 비리가 폭로되고 그로인해 해당 대학과 학생들이 어떤 식의 피해를 입게 될지 모른다는 우려가 팽배했기 때문이다.
비공개회의에서 일부의원은 "조 총장이 교육자답지 않게 불고기집을 운영해 돈을 벌고 땅 투기도 했다"고 범인 다루듯 추궁해 들어갔다. 불고기집을 운영한 건 사실이 아니나 땅은 사놓은 것이 있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의원들이 신랄한 추궁을 계속하자 조 총장은 끝내 울음을 터트렸다. 그러면서 "나는 나름대로 학교발전을 위해 성심껏 일해 왔다. 그런데 그 결과가 이 모양이라면 앞으로 자식들에게는 교육 사업에 손도 못 대게 유언을 하고 죽겠다"는 극언까지 내놓았다.
일부 관리들의 부정입학 청탁 증언에 '술렁'
[특감] 한양대 감사
1969. 1. 24 [동아일보] 3면
총장의 폭탄발언과 눈물바람은 다음날 한양대 특감에서 또 나왔다. 한양대 김 총장은 며칠 전에는 총장회의의 간사자격으로 증언했지만 이번엔 총장자격으로 학교실태에 대한 질문에 답변했다. 그도 정원 외 학생모집 사실을 시인했다. 다만 의원들이 정원 외 학생 수가 6천~1만 명에 이른다고 하자 이를 뒤집으며 "정원 초과 학생은 1724명에 불과하다"고 맞섰다.
그러자 의원들은 "62~67년 사이 한양대에선 6700명의 정원 외 졸업생을 냈고 야간학부에는 전임강사 이상 교수 급이 1명도 없는데 등록금을 다 어디에 썼느냐"고 추궁했다. 그러자 김 총장도 갑자기 울먹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생각지도 않은 발언이 술술 터져 나왔다. "과거 문교부장관이나 고등교육국장 등 관리들이 부정입학을 청탁해왔다. 학교를 경영하자면 이런 청탁은 들어주지 않을 수가 없다. 무조건 합격시켜 줬다."
또 한바탕 소동이 일었다. 야당의원들은 "문교부가 사학과 결탁해 청강생을 모집한 것은 고사하고 장관부터 줄줄이 부정입학 청탁을 해왔으니 그러고도 사학 감독이 될 수 있겠느냐"고 따졌다. 그런데 문제는 그것만이 아니었다. 한양대학은 지방에 근무하는 교사 66명이 학교엔 단 1시간도 출석하지 않았는데 졸업장을 내준 사실도 실토했다. 한마디로 부정입학에 부정졸업까지 학교 마음대로 학사행정을 했다는 얘기였다.
중앙대 특감에서도 비슷한 사실이 폭로됐다. 합격권 내에 든 학생을 떨어트리고 대신 돈을 받고 입학시킨 '정원 내 부정입학생'이 48명이나 된다는 증언이 나왔다. 의원들은 "일부 사학의 경우 유령원서를 접수시키고 합격자로 발표한 다음, 그 자리에 수십, 수백만 원을 낸 사람들을 입학시켰다"고 밝혔다. 말이 학교지, 고등 사기 수법까지 사용해 부정입학을 자행하고 학교발전기금 명목의 돈을 챙겼다는 거였다.
특감 통해 밝혀진 대학의 재산 부풀리기 현실
18일간의 족적 결산 '사학특감' 그 공과
1969. 2. 6 [동아일보] 3면
이런 가운데 전국 사립대학 재단의 재산은 712억 원이며 사학의 연간 운영비는 70억 원이란 조사결과가 나왔다. 그런데 사학의 운영비 수입원은 80%가 학생 등록금이며 보조금이 3%, 법인 전입금은 8%에 불과한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각 대학 재산은 경희대가 95억으로 가장 많았고 성신여대 중앙대 연세대 고려대가 각각 40~44억 동아대 수도여자사범대 건국대 한양대 동국대 조선대 단국대가 21~38억 원이었다. 대학 법인 중 은행주식 등 주권을 갖고 있는 곳이 20개, 기업체를 갖고 있는 법인은 14개였다.
문교부 조사결과 조선대는 1948년부터 69년까지 17년간 재산이 1090배 늘었고 한양대는 65년부터 68년까지 3년간 300배가 늘었다. 한양대 김 총장은 특감에서 "대학재산이 1948년 18만 원이던 것이 현재 3만 배로 늘어난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니까 대학 재산은 청강생의 증가 등으로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났지만 학교운영비 전입금은 쥐꼬리만큼도 안 된다는 지적이 나올 만 했다.
계획한 조사를 끝내지 못한채 마친 특감
시간에 쫓긴 채찍 = 사학특감의 결산
1969. 2. 6 [매일경제] 3면
당초 사학특감은 한양 경희 중앙대 외에도 건국, 수도여자사범, 조선대까지 6개 대학의 실태를 조사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중앙대 감사를 마친 후 특감은 느닷없이 대학 실태조사는 마치고 문교부에 대한 마무리 감사에 들어가겠다고 밝혔다. 3개 대학 조사만으로도 사립대 비리 실상을 충분히 알았고 문교부의 감독 부실책임이 큰 만큼 거기에 힘을 쏟겠다는 설명이었다.
야당인 신민당이 기간을 연장해서라도 대학 감사를 계속하자고 했지만 특감은 2월1일 권오병 문교장관을 출석시켜 확인감사에 들어갔다. 야당 측은 권 장관에게 일제히 "지금 사학의 난맥은 역대 집권당과 문교당국이 짝짜꿍을 이뤄 만들어낸 비리"라며 총공세를 폈다. 그 말이 듣기 거북했던지 권 장관은 감사 도중 자리를 떴다. 야당의 항의가 빗발치자 다시 자리에 돌아왔지만 이번엔 사립대총장들 못지않은 폭탄발언을 쏟아냈다.
그는 "정말 자꾸 이런 식으로 문교부를 까면 나도 할 말이 있다"고 서두를 뗀 뒤 "지금까지 야당의원들이 각 대학에 부탁해서 입학시킨 학생 명단을 조사하고 앞으로도 야당의원이 문교부에 청탁하는 것을 상세히 보고하도록 관계직원에 지시했다"고 말했다. 그러니까 대학과 문교부만 부정입학 비리에 관련된 것이 아니라 야당도 관계가 있다는 '물귀신 작전'을 쓴 셈이었다. 깜짝 놀란 특감 위원장이 나무라자 권 장관은 "의원들이 사대 총장들을 죄인 다루듯 한 것처럼 문교장관의 인격을 무시하고 죄인 다루듯 하면 나 역시 답변하기 곤란하다"고 반발했다.
그뿐이 아니었다. 권 장관은 특감기간 중 언론이 자신과 문교행정을 비판한 것이 못마땅했는지 "나는 사이비언론 때문에 큰 피해를 입고 있다"는 주장도 했다. 당연히 특감은 '깽판'이 났다. 2월3일 야당이 불참한 가운데 여당 단독으로 특감종료를 선언했으나 보고서조차 채택되지 못했다. 4월 들어 야당은 문교장관 해임건의안을 냈고 국회본회의에서 가결되었다.
'등록금 폭탄'으로 이어진 사학특감 결과
결국 학부형만 골탕…사대 등록금 인상으로 부담 10억 가중
1969. 2. 12 [매일경제] 3면
헌정사상 처음 열린 사학특감은 헌정사상 두 번째의 국무위원 해임안 가결기록만 세운 채 끝이 났다. 보고서는 특감이 끝나고 10개월이 지난 12월 국회에서 채택됐다. ▲합격권에 든 학생을 탈락시키고 대신 금전을 받고 부정 입학시킨 사례 ▲고교 미 졸업자와 대입 예비고사 불합격자에게 입학을 허가한 사례 ▲상당액 돈을 받고 학점을 매매한 사례 등이 보고서에 기재됐다.
특감은 또 "대학 동창회 명부는 정규학생과 청강생을 구분해 작성한 뒤 문교부에 보관할 것"과 "공납금과 재단 수익 등 대학예산은 일정기간 공고할 것"을 대학과 문교부에 건의했다. 또 청강생 등록금에 과세 조치할 것과 대학 이사장과 총 학장은 부부간 및 3등친 이내에서는 취임할 수 없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사립대학들은 69년 등록금을 전년 대비 20~30% 인상했다. 68년 수업료 23%, 기성회비 33%를 인상한 데 이은 '납입금 폭탄'이었다. 청강생 등 정원 외 입학생을 뽑지 말도록 한데 대한 보상의 성격이라는 설명에 사람들은 쓴 웃음만 지었다. 특감으로 비리가 밝혀져 재단이 파탄지경에 이른 대학은 한 곳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