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성 기녀인 앵무(鸚鵡) 역시 시재로 이름이 높았으며, 기녀 특유의 순발력과 재치를 발휘하여 뛰어난 작품을 남기고 있다. 이천보(李天普, 1698~1761)가 경상감사로 있을 때 그의 재주를 사랑해서 가까이 했다. 이천보가 벼슬이 바뀌어 돌아갈 때 앵무가 시 한 수를 지어 바쳤는데 감사가 그 시를 보고 관수미(官需米) 백 석을 하사했다고 한다.
鸚鵡籠(앵무롱) 鸚鵡雕籠歲月飜(앵무조롱세월번) 앵무새 새장 속에 살면서 세월이 흘러 長時飮啄主人恩(장시음탁주인은) 오랫동안 주인의 은혜 먹고 살았네 主人一去秋無粒(주인일거추무립) 주인이 한 번 간 뒤엔 가을에도 곡식이 없어 道是能言不敢言(도시능언불감언) 이를 말해야 하는데 감히 말하지 못하네
또한 유진사라는 사람이 경상감영에서 놀 때, 앵무를 가까이 한 뒤 금춘(錦春)을 또 가까이 하려 하였다. 그런데 유진사가 금춘의 집에서 자기로 한 날, 경상감사가 금춘을 불러 유진사 혼자 쓸쓸히 돌아갔다. 이 말을 듣고 앵무가 다음과 같은 시를 읊었다고 한다.
倚空墻(의공장) 達城三月春如錦(달성삼월춘여금) 달성의 삼월은 봄이 비단 같은데 白馬靑衫兪冶郞(백마청삼유야랑) 백마 타고 청삼 입은 저 유야랑은 醉裏不知花在手(취리부지화재수) 취중에 손에 꽃이 있는 줄고 모르고 生心又折倚空墻(생심우절의공장) 의공장을 또 꺽으려 하네
*‘의공장(倚空墻)’은 “나비 스스로 왔다가 저절로 돌아가 버려, 도화가 아무 말 없이 빈담에 의지했네 *-胡蝶自來還自去 桃花無語倚空墻-”란 시에 나오는 것으로, 여자로서 남자의 사랑을 입은 사람과 남자로서 실연한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 시에서 ‘봄이 비단 같다’는 것은 기생 금춘을 가리킨 것이며 손에 꽃이 있는데 또 꺾으려 했다는 것은 이미 앵무를 사랑해 놓고 또 금춘을 가까이 하려는 것을 빗대어 말한 것이다. 진사가 이 말을 듣고 이튿날 행장을 꾸려 도성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한편 경상감사 청지기인 석(石) 아무개가 감사에게 앵무를 헐뜯는 말을 하자 앵무가 석가에게 원한을 품었다. 석가가 동료들과 함께 술자리를 베풀 때 거문고 잘 타는 자를 불렀는데, 앵무가 거문고 잘 타는 녹주(綠珠)와 옥소(玉簫) 두 사람을 절로 유인하여 석가의 술자리에 가지 못하게 했다. 두 기생이 오지 않자 석가는 화를 내면서 잔치를 파했는데 앵무가 아래 시 한 수를 지어 시단에 퍼뜨렸다. 이때부터 석가는 창피하게 생각해서 직책을 그만 두고 서쪽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綠珠不喜瑤步床(녹주불희요보상) 녹주는 상 위에서 걷기를 싫어하는데 石氏珊瑚幾許長(석씨산호기허장) 석씨의 산호는 얼마나 긴가. 又是秦樓明月夜(우시진루명월야) 또 달 밝은 밤 진나라 누각에서 玉簫聲斷倚空墻(옥소성단의공장) 옥소 소리 끊어져 빈 담장에 의지했네.
옛날 석숭(石崇)이 미인을 가려 침향(沈香)가루를 편 상 위를 걷게 하여 발자취가 없는 사람을 뽑았다는데, 그 때 뽑힌 사람이 바로 녹주이다. .................................................................. 자기를 비방한 남성에 대한 뒤틀린 심사로 그의 연회(宴會)에 훼방(毁謗)을 놓았고, 그를 조롱(嘲弄)하는 구겨진 자존심이 담긴 기녀의 당찬 모습을 볼 수 있는 작품이다. 돈도 사랑도 명예도 좋지만 인간적 무시와 배신을 묵과하지 못한 앵무의 통 큰 자존심은 255년이 흐른 지금도 살아 숨 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