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새의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파괴해야만 한다.
-데미안 中
「일어나라, 제발 일어나라구. 엄마 아빠가 이혼했다고 해서 니가 주말의 피곤한 가장 역할을 도맡아 하겠다는건 별로 달갑지 않아. 넌 고 3일 뿐이니까. 네가 어른이라도 되는듯이 행동하지 말라구.」
「아이 씨‥ 너야말로 뭐야. 니가 엄마냐?」
「뭐? 이 망할 자식이 어디서 누님보고 반말이야? 너 오늘‥」
쿠콰콰쾅 우지끈 우두둑 콰앙
쾅
역시나 우리 남매의 하루는 요란한 싸움으로 시작한다.
그건 이혼하기 전에도 이혼한 사이나 다름없었던 부모님의 영향이 크다. 사실 피도 섞이지 않은 누나이니 만큼, 나에게 누나라는 건 없다고 봐도 좋을 정도다. 2살이나 나보다 위이지만 내 19평생 이 여자한테 존대를 해 본 적은 한 번도 없다. 그건 내 유일무이한 자랑거리다. 아버지는 누나가 누나 엄마의 뱃속에서 나오기도 전에 집안의 강요로 인해 사랑하지도 않는 우리 엄마와 결혼했다.
사실 나는 태어나서 몇 년 동안 나의 엄마와 누나의 엄마와 함께 살았던 아버지 덕에 모든 사람은 부인을 두 명 씩 가지는 건줄로만 알았다.
나에겐 어머니가 두 명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사실은 나는 내 친엄마보다는 누나의 엄마 쪽이 마음에 들었다는 것이다. 조용조용한 말씨, 하얀 손발, 눈 내리는 듯한 웃음, 말 하지 못하는 벙어리였어도 내가 그녀 무릎팍에서 잠들때면 언제까지고 나를 안고 머리를 쓰다듬으며 입모양으로 자장가를 불러주던 그 상냥함. 그래서였는지 내가 아줌마의 아들이 아니라는 걸 처음 알았을 때, 나는 충격을 받기보다는 아버지에게 이렇게 물었다.
「그럼 나 아줌마랑 결혼해도 되지? 엄마 아니니까‥」
그래. 나는 아마도 내 아버지의 부인에게 첫사랑의 감정을 느끼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건 근친상간으로 보아야 하나? 그녀는 나의 어머니였던가, 내 가슴이 첫번째로 맞아들인 연인이었던가? 이 질문은 내 사춘기가 끝나갈 무렵까지 끝나지 않았다. 왜냐하면 어느 한 쪽을 선택했을 때 나는 지독하게 천국스러운 천국을 맛보거나 최후의 지옥을 맛봐야 할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어느 한 쪽 길을 선택하기로 마음을 먹은 것은 3년 전 바로 그 날이었다.
그때 우리집은 아주 조용했다. 어머니는 택시를 불러놓고 짐을 챙기고 있었고 아버지는 방에서 대학 후배와 전화하며 술자리를 약속하고 있었다. 우리 둘은 엠넷을 보며 거실에 아무렇게나 널부러져 있었다.
그날은 별로 큰 실랑이 없이 나의 친어머니와 아버지가 이혼하던 날이었고,
나는 그때 지난 몇 년동안 궁금했던 것을 누나에게 물었다.
「야.」
「이 새끼 또 반말이지‥」
「닥치고 들어봐. 너네 엄마‥ 아줌마는 아버지 호적에 안 올려져 있었지?」
「‥몰라.」
「너네 엄만 그냥 정부같은 거였지?」
탕
탁자에 리모콘을 소리나게 내려놓으며 누나가 날 노려봤다.
몽환적인 stereophonics의 Lolita가 TV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너 이 새끼 조용히 안해?」
「다 알고 있었어. 그런데 궁금한 게 하나 있어. 가르쳐줄래?
아줌마, 니 열두살 생일때 어디로 사라진거야?」
누나가 노랗게 탈색시킨 머리를 귀 뒤로 쓸어넘기며 복잡한 표정을 짓는다.
Ah- Lolita-
「몰라. 죽었을거야, 그 여자.」
「너 그런식으로 나가면 니 애인한테 니가 밤마다 어디가는지 다 불어버릴거야.」
봐, 나한텐 어쩔수 없지? 어서 말해.
You make my wheel, set me free
「‥자살했어. 넌 그때 꼬마여서 일찍 잤으니까 못 봤겠지만. 그 날 내 생일이랍시고 아버지랑 어머니랑 그 여자랑 밤에 케잌이랑 와인같은 잡다한거 늘어놓고 파티했는데, 그때 과도로 지 가슴을 갑자기 찔러버렸어. 경찰에 바로 연락했고, 그 여잔 조금 정신질환이 있었기 때문에 별 조사도 안 받았지.」
그런‥거였어?
won't you come home with me
「‥그래?」
「그래. 아- 정말 바보같은 여자였어‥ Ah- Lolita- 음음.」
나는 다시 TV 스크린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제 Lolita는 끝나고 메탈리카의 turn the page‥ 66인치 LCD 화면이었지만 나에겐 더이상 화면에 엠넷 음악 프로그램은 아무것도 비치지 않았다. 대신 꿈속에선지, 만화책에선지, 하드고어 영화에선지 여하튼 어디에선가 본 살점들과 피가 엉긴 나이프, 내장, 체액이 난무하는 잔혹한 영상이 떠올랐다.
나는 편지봉투를 뜯는데 쓰는 장식용 단도를 집어들었다.
푸욱
조금 사이코적인 발상으로 들릴지 모르겠다만 나는 내 누나의 가슴 정 한 가운데를 찌르게 되었다. 물론 상상 속에서. 누나는 계속 깔깔거리며 엠넷을 바라보고 있었고, 나는 그녀를 찌르는 망상밖에 할 수 없었다. 손에 쥐가 났다. 저릿저릿한 느낌이 하루종일 온 몸을 떠나지 않았다.
3년. 시간은 조금 빠르게 흘렀다. 나는 고3. 이른바 입시생이 되었고, 공부는 아버질 닮질 못해서 꼴통같이 못한다. 나는 근래들어 다시 아줌마 이야기가 내 가슴 속에서 간질거리며 나를 괴롭히고 있는 것을 느낀다. 그걸 다 알지 못하면 어른이 되지 못해- 그런 뜻이었는지.
그래서 나는 오늘 바쁘게 애인을 만나러 나가는 누나 팔을 붙들어놓고 물었다.
협박할 구실은 3년 전이나 오늘이나 똑같았다. '밤마다 어디 가는지 애인한테 불어버린다-'
「아줌마, 왜 자살한거야.」
「네가 그 여자 아들이 아니여서.」
뭐?
「아, 젠장- 그래. 그 여자는 나보다 니가 더 좋았던거야.
자기가 이 부유한 아버지 가문이 들여놓은 씨받이였다는 것도 몰랐던 병신이었으니까.
그 여잔 너따위 놈이 뭐가 좋다고 그랬을까.」
아.
아아아.
나의 3년 전 하드고어 영화같던 그 잔혹한 영상, 나의 그 사춘기적 상상을 나는 현실로 불러들이고 말았다. 마루 바닥에 내가 한 번도 사랑해본 적 없는 여자가 널부러져 있었다. 아줌마를 한 알도 닮지 않은 '누나'의 몸뚱이를 내려다보며 나는 울어버렸다. 그녀에 대한 동정 혹은 우발적 살인에 대한 죄책감 때문이 아니라 다시는 되돌릴 수 없는 나의 천국 때문에.
왜. 아버지는 아줌마를 데려왔던가. 왜. 나는 아줌마의 아들이 아니어서 안도했고 아줌마는 내가 당신의 아들이 아니어서 절망했는가. 왜. 나는 아줌마를 사랑했던가. 왜. 아줌마는 나를 사랑했던가. 왜. 왜. 왜. 아줌마는 말을 할 수 없었던가. 왜. 나는 천국과 지옥의 두 갈래길에서 아직도 해메이고 있는걸까. 왜. 왜. 나는 왜, 지금 지옥으로 가는 첫발자욱을 내딛었는가.
「넌 그 여자를 사랑했으니까.」
라고 자칭 누나라는 사람의 죽은 시체가 입을 놀린다.
넌 그 여자를 사랑했으니까.
넌 그 여자를 사랑했으니까.
난 그 여자를 사랑했으니까.
너, 오랫만에 맞는 말 좀 한다.
여전히 망상적인 사이코적인 글이에요-_-
........................stereophonics의 Lolita를 듣고있던 중이어서 그냥한번 넣어봤습니다 (<-)
다음으로 들은 곡은 사실 black eyed peas의 Don't Phunk with my heart 였는데
글 분위기랑 너무 안어울려서 메탈리카의 turn the page로 했어요 (‥)
지송! :D (<-)
첫댓글 때마침 정말 원하고 있던 글이었어요^^ 언제나 월향소리님의 글은 분위기가 최고입니다^^. 잘 봤습니다. 앞으로도 건필하시길-
분위기 지존입니다 .. !!
환자님, 감상 감사해요[!!!!!] 언제나 힘이 된답니다 (하트) 내사랑현암님도 감사해요 (잇힝) 분위기가 최고라니.. 그런 과찬을 (껄껄껄 )( <-)
Lolita라는 곡을 들어보지는 않았지만 글 분위기를 보니 대충 짐작할 수 있을 듯. 하여간 되게 잘 쓰신 것 같아요, 특히 분위기가 좋다는 말에 저도 동감입니다.
아하핫; 태현님까지 그렇게 칭찬해주시니 감사할따름입니다 (‥이힛) Lolita 정말 명곡인데 들어보세요~
난 머리가 비어서 그런건지 어려서 그런건지 벙해진다<-
아핫 사유에 그렇지 않아 이건 다만 퇴폐적인 글일 뿐이라구~ 이해하려 노력하지 말거라 (<-)
다른 단편이지만 재미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