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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꽃차산방 원문보기 글쓴이: 백자인/봉화
팔공산 파계사 한걸 마을에 자리한 ‘다우산방(茶友山房)’을 처음 찾은 사람들은 “여기가 찻집이 맞는가?”하고 두리번거리게 된다. 그도 그럴 것이 이곳은 가정집을 개조하여 찻집으로 꾸며낸 공간이기 때문이다. 들어가는 입구에 걸린 ‘전통찻집 다우산방’이라는 초롱이 찻집임을 알게 하는 단서의 전부. 요란하게 드러내 보이기보다 사람들이 먼저 이곳의 진가를 알고 스스로 찾아올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다우산방’만의 힘이자 매력이다.
“이건 주문 안 했는데요” ‘특별한 대접을 받을 수 있는 곳’이라는 입소문을 따라 찾아간 다우산방. 찻집 내부를 가득 메운 다기(茶器)며 병풍, 그림들이 맨 먼저 눈에 들어온다. 얼핏 보기에도 몇 백 년은 족히 되었을 법한 소장품들은 주인의 미적 안목을 짐작케 하는 것들. 옛것의 가치를 제대로 볼 줄 아는 그들이야 말로 정말 제대로 된 차(茶)를 취급할 것이라는 기대를 갖기에 부족함이 없는 듯 했다. 10년 전, 포도나무 밭이었던 터에 집을 짓고 일년 전부터 이곳에서 찻집을 연 이종찬(53) ? 권현숙(48) 씨 부부는 차와 옛것, 그리고 무엇보다 사람을 사랑하는 따뜻한 마음을 지녔다. 제대로 된 과정을 거치며 다도(茶道)와 사찰음식을 익힌 안주인 권현숙 씨는 섬세한 손놀림으로 손님들에게 드릴 음식을 정성스레 만든다. 손님 접대 및 차(茶) 담당은 당연히 남편 이종찬 씨의 몫. 무뚝뚝한 것 같지만 종종 우스개 소리로 손님들의 배꼽을 잡게 하는 이 씨와 빼어난 요리 실력으로 보는 이를 감탄케 하는 권 씨는 그야말로 환상의 복식 조다. 찻집을 오픈한 후로 원가계산을 한번도 해 본적이 없다는 이들 부부는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을 무척이나 좋아하는 성품을 지녔으리라.
“원래는 메뉴별로 음식 종류가 정해져 있는데, 우리 집사람은 하도 대접하는 것을 좋아하는 성격이라 손님들이 주문을 하면 그 메뉴에 음식 가지 수가 계속 늘어나게 되죠. 그럼 손님들은 ‘어, 우리 이거 주문 안했는데…’해요. 17년간 4대가 함께 사는 집에서 살림을 꾸리다보니 아무래도 손이 커졌나 봅니다.”(웃음) 자연을 담은 차와 먹거리
다기와 고미술품에 조예가 깊은 이종찬 씨는 다도가 잘 알려지지 않았던 80년대 초부터 이 분야에 빠져들었다. 설봉 권윤홍 선생님의 잔심부름을 도맡아가며 어렵게 공부한 만큼 차를 향한 그의 애정은 각별하다. 단아한 인상의 권현숙 씨가 만들어내는 음식은 정갈하고 담백한 맛이 일품. 맛 뿐 아니라 접시에 음식을 담아내는 감각이나 오물조물 다과를 만들어내는 눈썰미가 예사롭지 않은 것 같다는 말에 “경주의 유명한 ‘부창제과’집 딸로 태어나 평생 과자만 보고 살아서 자연스레 그 감각을 익히게 된 것”이라고 남편 이 씨가 거들었다. 부모님이 칠성시장에서 유과 집을 했던 그 역시 어린시절부터 다양한 과자를 맛본 터라 미식가의 혀를 갖게 됐다고. 한쪽은 만드는 데 전문이고 또 한쪽은 맛보는 데 전문인 이들이 만났으니 필시 그들의 인연은 차(茶)와 맞닿아 있음이 분명했다.
다우산방은 믿을 수 있는 재료로 차와 음식을 만든다. 향긋함이 몸과 마음을 맑게 하는 매화차와 비단차는 마당에 심은 매화나무와 뽕나무에서 직접 잎을 따 우려낸 것. 된장, 고추장, 김치 뿐 아니라 음식에 사용되는 소금도 집에서 만들고 채소와 나물은 텃밭에서 직접 재배한다고 하니, 손님들을 위해 들이는 공이 이만저만한 게 아니다. 다우산방의 차와 먹거리들은 조미료나 인공색소, 중국산 재료 등을 일절 사용하지 않는다. 또 텃밭에서 기르는 채소들은 화학비료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유기농 방식으로만 재배한다. 그래서일까. 다우산방은 웰빙을 생각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고 알려지기 시작했다. 또 하루 전에 예약을 하고 오면 특별 메뉴를 맛볼 수 있는 것도 다우산방의 자랑거리 중 하나.
괴짜스님과 기억속의 재미교포
한번은 키가 작달막한 스님이 다우산방을 찾았다. 차 한 잔을 시원하게 마신 스님은 다짜고짜 창(唱)을 부르고는 화선지에 쓱쓱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이종찬 씨는 ‘좀 이상한 사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스님의 창 솜씨와 그림의 필치를 보고 뭔가 범상치 않은 사람일 것이란 직감이 들었다고 한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괴짜스님은 창으로 유명한 범진 스님. 오랜만에 제대로 된 차를 맛 봐 기분이 너무 좋아진 나머지 그 보답으로 창과 그림을 선물한 것이었다고. 블로그에 올린 글과 찻집사진을 보고 미국 LA에서 다우산방을 찾아온 재미교포 역시 이들 부부가 생각하는 가장 기억에 남는 손님 중 한 분. 모처럼 고국을 방문했던 그는 ‘파계사 한걸마을’만 알고도 용케 다우산방을 찾아왔다. 차와 음식들을 맛본 손님은 “역시 미국에서 날아온 보람이 있다. 오랜만에 한국에 와서 정말 대접 잘 받고 간다”며 몇 번이나 인사를 거듭하고 갔다 한다. 자신들이 정성껏 대접하는 차와 음식의 가치를 알아주는 사람들이 있어 이들 부부는 한결같은 마음으로 손님 맞을 준비를 한다. ‘오늘은 어떤 분이 오실까?’를 기대하면서 말이다. 1-1=2, 다우산방의 철학 늘 공간이 사람들로 북적대는 것을 좋아하는 부부는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들’임에 틀림없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손님 한 분 한 분을 대하다 보면 아무래도 그 진심이 자연스레 전해지는 법. 오픈한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한번 다녀간 손님들은 그들의 단골이 된다고 한다. 이종찬 ? 권현숙 씨 부부와 대화를 나누다보면 마음속의 긴장이나 벽은 눈 녹듯 사라지고 진심에서 우러나는 말들을 꺼내게 된다. 그것은 흉내로는 따라할 수 없는 천성에서 우러나는 자연스러운 태도요, 습관인 것이다.
옛말에도 주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그 넉넉한 인심 때문에 절대 망하는 법이 없다고 했다. 이들 부부를 보고 있노라면 ‘줄수록 더 풍성해지는 것이 자연의 이치’라는 게 틀린 말은 아닐 듯싶다. 많은 찻집과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유독 다우산방이 기억에 남는 것은 아마도 1-1=2라는 나눔의 철학으로 살아가는 그들만의 넉넉함과 그 마음으로 끓여내는 자연의 차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