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담동 김용목대장님 자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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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드배지에 관하여
(보기 전에 주의해야 할 사항 : 이곳에 사용된 사진자료들은 외국의 스카우트 사이트에서
몇 년간에 걸쳐서 수집한 것입니다. 내용 중 일부는 자료를 찾을 수 없어서
추측으로 작성한 것도 있습니다. 틀리거나 첨가해야할 것 있으면 알려주시면 좋겠습니다.
정확한 자료와 함께요. 그리고 재미없는 내용이기에 그림을 많이 넣었습니다.
입맛에 맞으시나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개인의 창작품이기에 무단복사금지입니다.
첫 번째로 상급훈련과 우드배지의 상징들의 유래에 대하여 알려드리겠습니다.
스카우트 활동과 성인 지도자 훈련의 상징
상급훈련을 영어로 하면 'ADVANCE COURSE' 또는 'WOOD BADGE COURSE'라고
합니다.
(참고로 제가 말하는 ‘우드배지’라 함은 가죽 끈과 작은 나무 조각으로 만든 목걸이를
말하며, ‘우드배지코스’ 또는 ‘우드배지훈련’은 ‘상급훈련’을 의미합니다)
‘우드배지’는 외형상으로는 그냥 보통의 가죽 끈과 가죽 끈 끝에 특별히 필요성을 못 느끼는
하찮은 작은 나무 조각입니다. 하지만 스카우터들에게 ‘우드배지’는 스카우트활동과
성인 지도자훈련 중 상급훈련의 이수자를 의미합니다.
이런 ‘우드배지’는 중급훈련 수료 지도자들이 우드배지훈련(상급훈련)으로의 진행을 촉진
하는 커다란 작용을 하며, 우드배지훈련을 이수한 지도자들은 강한 긍지를 가지고 착용을
하고 있습니다.
상급훈련을 흔히 ‘우드배지훈련’이라고 하는데, 최초의 스카우트 지도자 훈련과정인
우드배지훈련은 길웰에서 1919년 9월에 개설되었다. 길웰에서 실시된 대 지도자훈련의
명칭이 처음부터 우드배지 코스는 아니었습니다. 초기에는 ‘길웰의 지도자훈련’이라고
불렀습니다.
‘우드배지훈련’ 명칭의 유래
B-P경이 길웰에서 시행된 지도자 훈련과정을 마친 사람들에게 기념으로 선사할 만한
것을 찾고 있을 때, 그는 군인시절 전리품으로 받은 기념품 중 디누줄루의 목걸이를
문득 생각해냈습니다. 그리고 마페킹에서 나이 지긋한 흑인이 주었던 가죽 끈을 기억해
냈습니다. B-P경은 작은 비즈 두 개를 꺼내어 가운데에 구멍을 뚫은 후 끈에 꿰어 훈련
수료의 기념품을 제작을 하였습니다.
최초의 스카우트 지도자 훈련과정이 끝난 며칠 후, B-P경은 훈련받은 사람들을 버킹검
공원로에 있는 스카우트 식당으로 저녁 식사초대를 하여 목걸이에서 나온 비즈 두 개씩
을 기념품으로 각자에게 선사하였으며, 이것이 우드배지의 탄생이었습니다.
(여기서 잠깐 드릴말씀이 있는데, 제가 가지고 있는 자료에 의하면 B.P로부터 선물 받은
비즈의 착용방식에 대하여 두 가지의 다른 이야기가 나오는데, 첫 번째로는 B.P가 처음
비즈를 줄 때부터 현재의 ‘우드배지비즈’처럼 구두끈을 사서 비즈를 매단 후 목에 걸도록
했다는 것과, 두 번째로는 B.P가 비즈를 선물할 때 단추주머니나 모자의 턱받이부분에
장식품의 용도로 달라고 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전체적 흐름으로 봐서 제 생각에는
두 번째 이야기가 정확하다는 생각이 들어 그 이야기로 글을 쓰도록 하겠습니다.
잘못됐다면 알려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그 이후 이것은 훈련의 하나의 중요한 전통이 되어, 길웰 훈련소에서 대지도자 훈련
과정을 이수한 지도자들에게 ‘우드배지비즈’를 준다고 해서, 이 훈련을 우드배지 코스라고
불리게 된 것입니다.
‘우드배지’는 아주 독특한 디자인입니다. ‘우드배지’는 B-P경이 직접 디자인하였으며,
지금은 우드배지코스를 이수한 지도자를 표시하는 장구로 사용이 되었지만, 위의 글처럼
초기에는 길웰에서 시행한 훈련 과정을 마친 기념으로 스카우트 지도자들에게 전달이
되었습니다. 이 기장은 스카우트 운동의 통일성을 눈으로 보여주는 상징으로서, 스카우트를
더욱 발전시키기 위한 훈련을 받은 특별히 선택된 집단의 특권의 상징으로 간주되고
있습니다. 물론 한배에서 나온 자식들의 성격이 다른 것처럼, 모두 같은 훈련을 이수하였다
고 수준이 같은 것 아닙니다. 이해의 수준에 따라 질적인 측면의 차이가 천차만별입니다.
우드배지훈련과 관련된 물품 즉, 우드배지, 길웰 항건, 와글이 훈련 이수 물품으로 사용된 것은 스카우트의 모든 것이 의래 그렇듯이 사연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드배지훈련과 관련된 몇 가지 것들이 더 있는데 함께 이야기 들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1) ‘우드배지’에 대하여
우리가 일반적으로 부르는 ‘비즈’는, 작은 조각인 진짜‘비즈’와 가죽 끈으로 구성이 되었는데, 이것 역시 각기 사연이 있습니다.
비즈의 기원
최초의 우드배지에 사용된 작은 조각(비즈)은 B-P경이 아샨티에서 알게 된 디누줄루라는
줄루족의 추장이 소유하였던 목걸이에서 나온 구슬로 만든 것입니다.
(디누줄루 추장의 사진입니다. 온몸에 두르고 있는 것이 비즈목걸인 것 같음)
이 목걸이는 1888년 7월 B-P가 지휘하고 있는 영국군에 항복한 줄루족의 추장 디누줄루
(Dinuzulu)로부터 전리품으로 받은 것인데, 줄루족의 추장 디누줄루가 공식적인 자리에서
착용하는 추장의 상징으로, 남아프리카산 황색 아카시아나무로 만든 것입니다.
이 목걸이는, 1,000여개의 (이 나무방울의 숫자는 자료마다 틀립니다. 하지만 이곳에 적은
개수는 가장 최근자료라고 할 수 있는 1998년의 스카우팅지에 나와 있는 숫자를 기준
으로 삼았습니다. ) 나무방울이 꿰어진 12피트 길이(약 3m 65cm입니다.)의 어마어마한
목걸이입니다.
이 나무는 중심이 부드러운 속으로 되어있어 생가죽 끈의 끝을 통해 1,000개의 구슬을
쉽게 꿸 수 있게 만들어져 있습니다. 작은 조각이라고 하지만 크기는 현재의 ‘우드배지
비즈’사이즈의 나무 조각 크기에서부터 길이가 4인치에 달하는 것까지 다양합니다.
이 목걸이는 신성한 것으로 간주되어서 산위의 동굴에 모셔 놓고 낮 과 밤으로 보호되었으며,
원주민들에게는 목걸이를 가지게 되면 모든 저항이 없어질 것이라는 믿음을 주던 물건입니다.
가죽 끈의 기원
군인으로 마페킹 전투에 참가한 B.P는, 마페킹 포위전의 종말을 몇 주 앞둔 어느 이른 아침,
전선을 순찰하고 돌아왔습니다. 마페킹 포위전은 217일간 이라는 세계 역사에도 드문
장기간의 치열한 봉성전(1899, 10, 12 ~1900, 5, 17)의 탓도 있었지만 이날따라 B.P는
매우 피로했고 맥이 없었습니다. 그때에 그의 늙은 시종 토인이 그에게 “여느 때와 같이
왜 휘파람을 불지 않습니까?”고 물었습니다. 이에 B.P는 “걱정거리가 좀 있습니다.”고 대답을 하였습니다. 늙은 토인은 곧 자기 목에 있던 가죽 끈으로 된 목걸이를 빼내어 그에게
넘겨주면서 “이것을 거십시오. 저의 어머니가 주신 부적입니다.
이제 마음의 평온을 찾을 것이며 좋은 일이 꼭 있을 것입니다.”고 말했습니다.
가죽 끈은 악을 물리치기 위해 노인이 태어날 때부터 목에 끈을 걸고 있었고,
그것은 걸면 행운을 안겨준다는 목걸이였습니다.
이때의 감동과 인상을 그는 잊지 않고 오래오래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그 감동과 인상을 가죽 끈에 부여하게 되었습니다.
비즈착용방식의 변화
B-P경은 처음부터 ‘우드배지’를 목에 착용시키도록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처음에 B-P경은
단복 주머니에 달고 다니거나, 아니면 제 1차 세계대전 중에 미국 원정군 장교들이 강한 바람 때문에 머리에서 모자가 날아가지 않게 하기 위해서, 모자 턱받이 개념의 가죽 끈의 양끝에
도토리를 부착한 차양 넓은 B.P. Stetson 모자 (B.P초상화 보면 동그란 창을 가진 예전의 군인 모자를 말하는데, 여기서 B.P.는 B-P경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Boss of the Plains'라는 상표의 첫 글자를 의미합니다.)를 쓰고 있는 모습을 보고 도토리 대신 ’비즈‘를 달아서 착용을 시켰습니다.
(B.P. Stetson 모자를 쓴 B.P경의 모습)
그렇지만 스카우트 지도자들이 모자를 야외에서만 착용하기 때문에 모자착용방식은 폐지되고, 단추에 다는 방식도 이론코스에서 하나를 지급받아서 달고 다니는 것으로 되었다가, 어떤 알지 못하는 이유로 폐지되었습니다.
(모자 끝에 달았다는 비즈의 모습입니다.)
그 후 가죽 끈에 두개의 비즈를 끝에 달고, 그 위에 하나의 매듭을 지어서 목에 걸고 다는 방식으로 착용방식이 변화되어 현재에 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
(현재 사용되고 있는 '2비즈'의 모습입니다.)
비즈의 재질
맨 처음의 비즈 세트는 모두 원래의 목걸이에서 적당한 크기를 추려서 몇 백 개가 초기의
우즈배지훈련을 마친 지도자에게 기념품으로 증정되었습니다. 그러나 1920년쯤 되어 원래의
비즈가 급속히 고갈되어, 복제 비즈를 길웰에서 제작을 했습니다. 초기에는 비즈의 원래 재료인 아카시아나무로도 조각을 했고, 소나무나 너도밤나무도 조각을 했습니다.
이 조각들은 길웰훈련 스텝들이 여가시간을 이용해서 손수 만들었습니다.
그 후 최종적으로는 너도밤나무로 만드는 것이 표준이 되었습니다.
여러 가지 개수의 비즈들
비즈는 일반적으로 상급훈련을 이수하고 제3부 사후과정까지 상급훈련을 수료하게 되면
‘2비즈(투비즈라고 읽음)’을 수여받게 됩니다. 그런데 ‘2비즈’말고도 다른 개수의 비즈를
단 여러 가지 비즈가 있어서 이야기를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1비즈
‘One Bead(원비즈)’는 길웰훈련 초기에 지급된 비즈형태입니다.
(‘One Bead(원비즈)’의 모습입니다. 단추에 달수 있도록 도안이 되어있습니다.)
참가자들이 길웰에서 실습과정에 참가하면서 비즈하나를 받았고(자료는 없지만, 제가
판단하기로는 이때 받은 비즈하나를 주머니에 달았던 것 같습니다.),
이론과정(질의응답)과 상당 기간의 연수교육을 받은 후 두 번째 비즈를 받았습니다.
여기에서 첫 번째 받은 비즈가 ‘One Bead(원비즈)’입니다.
3비즈와 4비즈
부교수를 훈련을 이수한 지도자에게는 ‘3비즈’를, 교수훈련을 이수한 지도자에는 ‘4비즈’를
착용하게 하였습니다.
(3비즈와 4비즈의 그림 : 훈련부교수님들과 훈련교수님들이 착용하시는 비즈입니다.)
5비즈
B-P경이 완성한 전통에 의하면, 각국에서 길웰 야영장을 대표하는 부야영장은 5비즈를
착용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이 전통은 다른 나라에서 길웰의 것을 본받아 우드배지 훈련
을 개설했던 1920년대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자료에는 없지만 제 생각에는 이분들은
아마도 길웰훈련 스타일을 자국에 전파하는 분들이나, 각국의 우드배지훈련의 총책임자
라고 하면 알맞을 것 같습니다.
대부분의 5비즈 우드배지는 1920년대나 1930년대에 등장하였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어떤 사람들이 5비즈를 수여 받았고 결과가 어떠하였는지에 대한 기록은 없습니다.
(비즈 끝에 매듭도 여러 가지 짓는 방법이 있습니다. 세 가지의 예입니다.)
6비즈
B-P경은 몇 개의 비즈를 착용했는지 궁금하시죠. 바로 ‘6비즈’를 착용 하였습니다.
그러나 계속 착용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6비즈’를 퍼시 에버렛경(Sir Percy Everett)
에게 주었습니다. (여기에서 다시 잠깐, 이글은 번역을 한 것인데, 달리번역하면 자신도
‘6비즈’를 착용하면서, 에버렛경에게도 ‘6비즈’를 주었다고 번역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제 생각에는 처음에 쓴 글이 맞을 것 같습니다. 아니라면 알려주세요)
에버렛경은 1907년 브라운시 섬에서 최초의 스카우트 야영 이후, B.P와 친구가 되어
훈련훈육위원과 결국에는 영국의 부총재가 된 사람입니다.
B.P는 에버렛경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던 같습니다. 그래서 커다란 감사의 표시로써 ‘6비즈’
주었습니다.
그리고 에버렛경은 1949년에 ‘6비즈’를, 길웰의 지도자훈련을 책임지는 야영장의 표시로
길웰로 돌려주었습니다. 그 ‘6비즈’는 존 트루먼(John Thurman)에게 전달되어,
1969년 퇴임할 때까지 착용하였고, 그 후 지도자훈련의 기획을 담당하는 브라이언 도그슨(Bryan Dodgson)에 전달되었습니다. 1983년 그가 퇴직하고 직위와 책무를 재정비하게 된 후부터,
현재는 훈육위원장(기획과 훈육을 담당)이 6비즈 목걸이를 착용합니다.
(우드배지훈련의 상징으로 사용되는 나무토막과 도끼의 모습입니다. 특징은 왼쪽으로 박혀
있는 도끼와 나무토막의 왼쪽위에는 옹이가 하나 있는 것입니다.)
울프즈 팽(Wolf's Fang) 그리고 아켈라뱃지(Akela Badge)
1922년부터 1925년까지 유년대 지도자에게는 ‘우드배지’대신 ‘울프즈팽(Wolf's fang
[fang은 어금니나, 송곳니를 말합니다.])’이나 ‘아켈라 뱃지(Akela badge[아켈라는
정글북에 주인공이 모글리였나요. 그 모글리의 늑대아버지이름입니다. 여기서 잠깐 이야기를
하나드리면, B.P.가 유년대 교본을 만들 때 키플링의 ’정글북‘을 참고하였습니다.
그래서 대원을 모글리처럼 생각하였고, 지도자는 모글리의 아버지라고 해서 별칭으로 아켈라
라고 불렸다고 합니다.)’라는 것이 지급이 되었습니다.
(울프즈팽인지 아켈라뱃지인지의 모습입니다.)
자료를 보면 우드배지대신 지급이 되었는지, 우드배지이외에 추가가로 지급이 되었는지
확인이 되지 않습니다만, 형태는 실제 동물의 송곳니(어금니라고도 하는데, 형태가 송곳니
에 가깝습니다.)나, 송곳니형태로 나무를 깎아서 만든 모양입니다.
그러나 1925년 11월 13일에 연맹 위원회가 ‘오직 한 가지 타입의 비즈가 훈련을 위해서
존재해야한다’라고 결정되어 자취가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완전히 없어진 것은 아직까지
도 극소수지만 조금은 남아있다고 합니다.
컬러비즈
1925년 11월 13일 연맹위원회에서 한가지타입의 비즈를 통일하면서, 각 연령층의 지도자
로 표시는 주판알모양의 컬러비즈를 도입하였습니다. (1923년에 도입되었다고도 하는데,
제 생각에는 1925년 맞는 것 같습니다. 한가지타입의 비즈로 통일하자면서 왜 새로운 비즈를
만들어 냈는지, 약간 이해가 되지 않네요.)
가죽 끈 매듭 바로 위에 유년대는 노란색, 소년대는 초록색, 연장대는 빨간색으로 각 연령층
을 상징하는 색상으로 주판알모양의 비즈를 도입합니다.
(현재 소년대는 빨간색, 연장대는 초록색으로 상징하는 색상을 지정이 되었는데,
왜 그때는 색상이 바뀌었는지 궁금하네요. 자료가 잘못되었나?)
그러나 이것도 별로 오래가지 못하고 1927년 10월 14일 연맹 위원회에 의해서 단계적
으로 폐지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것 역시 완전히 없어진 것은 아니고 아직도 극소수가
남아있다고 합니다.
길웰 항건
(일반적으로 우드배지항건이라는 부르는 길웰항건입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부르는 ‘우드배지항건’인 ‘길웰항건’은 우드배지 훈련 계획 아래 훈련
을 마친 스카우트 지도자들에게 주어집니다.
이 ‘길웰항건’은 사연을 가지고 있는데, 여기에서 맥클라렌이라는 사람이 등장합니다.
윌리엄 드 보이스 맥클라렌 (William de Bois Maclaren)은 스코트랜드의 사업가로, Dunbartinshire지방의 Rossneath지역의 지구연합회 훈육위원 이었습니다. 맥클라렌은
스카우터를 위한 훈련센타로, 그리고 스카우트의 야영장으로 이용하기 위해서 런던의
에핑숲(Epping Forest)의 가장자리에 55에이커(약 67,630평)의 길웰파크(Gilwell Park)를
7,000파운드(14,525,000원)에 구입을 합니다. 또한 3,000파운드(6,225,000원)을 투입
하여 길웰파크내에 있는 14년 동안 버려져 있던 하얀 집을 재보수합니다.
(길웰파크의 전경입니다. 좋죠. 가고 싶은 곳입니다.)
1919년 7월 26일 B.P.와 함께 맥클라렌은 재보수한 햐얀 집 출입구에 가로질러 장식되었던
스카우트를 상징하는 녹색과 빨간색의 리본을 자르며, 야영장의 공식적인 개장을 알리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B.P.는 스카우트운동의 큰 빚을 진 맥클라렌에게 ‘Silver Wolf'을 증정했습니다.
맥클라렌이 사업가라는 것 이외에는 알려진 것이 없습니다. 1921년에 사망했는데,
길웰 스텝들의 그의 명예를 기리는 마음에서 맥클라렌 격자무늬([Maclaren tartan]아마도
가문의 문장무늬인걸로 생각이 듭니다.)로 만든 항건을 착용했습니다.
이것이 최초의 ‘길웰항건’의 시초로 생각이 듭니다. 그러다가 제작비용이 많이 들어, 항건천끝에
작은 사이즈로 맥클라렌 격자무늬를 붙여서 착용을 했습니다. 이것이 현재 모습의 ‘길웰항건’이 된 것입니다.
(길웰항건 끝이 붙이는 맥클라렌 격자무늬 문장입니다.)
초기의 공식적인 항건의 색은 바깥쪽은 비둘기 회색(DOVE GREY-겸손의 색)이고
안쪽(또는 장식선)은 빨간색(마음의 온기를 상징) 이었습니다. 오늘날의 항건은 이것과는
다른 색인데 그 이유와 변천 시기는 알려진 것이 없습니다.
1922년에 ‘길웰항건’은 ‘우드배지훈련’을 이수한 지도자만이 착용을 할 수 있게 되어
제한이 되어, 현재까지 그 전통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길웰 조임
(길웰조임입니다. 우드배지홀더들이 착용하는 가죽 끈으로 만든 조임입니다.)
우드배지 기본과정을 성공적으로 이수한 스카우트 지도자들만이 길웰 조임을 착용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모든 우드배지장구는 ‘우드배지훈련’을 이수한 지도자만이 착용할 수
있습니다. 길웰 조임은 조임이기는 하지만 엄밀히 보면, 두 가닥으로 된 가죽 장식 매듭입니다.
조임(미국 스카우트에서는 슬라이드라 부름)은 스카우트 항건을 고정시키는 고리의 형태
입니다. 조임은 처음부터 스카우트 장구였던 건 아닙니다. 초창기에는 항건 앞쪽에 매듭을
져서 매고 다녔습니다. 하지만 조임이 등장하고, 조임은 그 편리함으로 인해 대성공이었습니다.
길웰조임을 와글(Woggle)이라 정한 사람은 프란시스 기드니라는 사람이었습니다.
장식매듭을 이용해서 만든 와글은 가죽 끈으로 만든것인데, 이 가죽 끈이 처음부터 와글을
만들기 위해 이용이 된 것이 아닙니다. 지도자 훈련의 초기 시절엔 마찰로 점화하는
것이 매우 신기한 것이었고, 수년 동안 우드배지 과정에 실행되었습니다.
마찰 점화 시에 주로 사용되는 도구는 구식 재봉틀 발판 조종용 띠였습니다.
그 띠가 바로 와글의 가죽 끈입니다.
B-P경은 길웰 간부들에게 길웰항건과 우드배지에 어울리는 특별한 항건 조임을
시험적으로 만들기를 제안했고, 그래서 그 당시 길웰에서 봉사하던 윌리엄 샨클리가
점화용 끈을 이용하여 두 줄로 된 장식 매듭 조임을 만들었고, 그것이 공식적 조임으로
채택되었던 것입니다.
(장식매듭을 짓는 방법입니다.)
와글은 긴 줄만 있으면 만들 수 있다는 특징으로 스카우터들이 많이 제작해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장신매듭으로 만든 와글은 모든 스카우터들이 사용하여도 좋지만, 가죽 끈으로
제작된 와글은 ‘우드배지훈련’을 이수한 지도자들만이 착용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길웰 회합
길웰 회합은 모든 우드배지 소지자들의 모임입니다. 전통적으로 우드배지 훈련을 이수한
사람은 1급 길웰파크 그룹의 일원이 됩니다. 그룹의 회원들이 길웰파크에서 9월의 주말
에 즐거움과 친목을 위해 모이는 것이 지속되어 왔습니다..
영국의 많은 지역들은 주로 이때 우드배지 소지자들의 모임을 만들어 길웰을 방문하는
기회로 삼습니다. 스카우트와 지도자 훈련의 보급을 맡은 많은 스카우트 연맹들은 이와
같이 그들만의 지도자 모임을 조직하여 유익하게 발전시키고 있습니다. 현재도 우리나라
에서 지방연맹별로 우드배지재회행사가 계획되어 운영되고 있습니다.
쿠두의 뿔나팔
(쿠두의 뿔나팔을 부르는 B.P.의 모습입니다. B.P는 엔터테인먼트분야에서 탁월한 실력을
가지신 분입니다. 음악, 미술, 연극 등 대단한 재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B.P.가 1919년 길웰파크에서 제 1회 우드배지 훈련 때 기상을 알리는 신호로 그 자신을
손수 불었던 ‘쿠두의 뿔나팔’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후에 B-P는 길웰파크에 이 나팔을
기증하는데요, “쿠두의 뿔나팔”에도 추억이 있습니다.
('쿠두'라는 사슴처럼 생긴 동물의 모습입니다. 이놈의 뿔을 '뚝' 잘라서 만든 것이
쿠두의 뿔나팔이지요.)
얼룩영양(Koodoo)의 뿔로 만들었다하여 쿠두의 나팔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1896년
남아프리카의 “마타벨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었을 때의 전리품입니다.
이 나팔은 마타벨인들이 서로 신호를 주고받을 때 사용하는 뿔나팔인데, 깊은 인상을
받아 B.P.는 스카우트 행사 때 몇 차례 사용을 합니다.
1907년 브라운시 섬에서의 시험 캠프 때와 1929년 스카우트 창립 20주년 기념 제3회
세계잼버리 개회식 때 개식 신호로도 쿠두 나팔을 불어서 참가자들을 열광시킨 일은
너무나도 유명합니다.
여담
줄루족이 있는 남아프리카 스카우트에서는 12회 세계 잼버리와 스카우트 창립 60주년을
기념하여 디누줄루의 목걸이와 같은 목걸이를 만들기로 하였습니다. 줄루스카우트의
스카우트와 남아프리카에 있는 유럽 로버스카우트가 모여 많은 자료조사와 오랜 작업을
통하여 진짜와 완전히 똑같은 네 개의 목걸이를 만들어 냈습니다. 그 중 세 개를 가지고
1967년 8월 12회 세계 잼버리가 열리는 미국의 아이다호로 가지고 왔습니다.
그 목걸이들 중 한개는 주최국이었던 미국의 보이스카우트사무총장에게 보존용으로 증정
되었고, 세계보이스카우트 사무총장 서리와 런던의 길웰 국제 훈련원장에게도 각각
한 개씩 선사되었습니다. 네 번째 목걸이는 우드 배지의 발상지를 기리는 역사 유물로서
남아공에 남아있습니다.
(이 여담은 영어 원문을 번역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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