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리야트족 Buriat
♠ 위치 및 분포 지역
부리야트족의 대부분은 남시베리아 바이칼 호수 주변에 위치한 러시아 부리야트 자치공화국 내에 주로 거주하고 있으며 서쪽의 우스티오르다 부리야트
자치구와 동쪽의 아긴스키 부리야트 자치구에도 상당수가 살고 있다. 뿐만 아니라 중국과 몽골 내에도 소수 민족으로 분포되어 있다. 인구는 약
422,000명이다.
부리야트 자치공화국의 면적은 약 351,300km2이고 인구는 1,053,000명인데 부리야트족은 24%이고 70%가 러시아인이다.
남쪽으로는 몽골과 접해있고 산지지형으로 세계에서 가장 깊은 호수 바이칼호도 해발 455m를 나타낸다.
부라야트 자치공화국의 수도는 울란우데이다.
♠ 기후 및 자연 환경
비교적 짧고 무더운 여름과 길고 혹독한 겨울을 가진 전형적인 대륙성 기후이며, 바이칼호 서쪽으로는 깎아 내린 듯한 절벽이 동쪽으로는 모래
해변이 형성되어 있다. 지형은 히말라야 삼목, 소나무, 자작나무의 소규모 산림을 이룬 산지로 이루어져 있다.
♠ 언 어
알타이어 그룹의 몽골-오이라트어계 부리야트어를 사용하며 바이칼 호 서쪽은 러시아어의 차용화가 많다. 12개 이상의 방언을 가지고 있다.
♠ 역사
이 지역에는 이미 13세기부터 몽골계의 여러 부족이 살고 있었는데, 이들이 부리야트인으로서 하나의 집단을 형성한 것은 17세기 말경으로
추측된다. 17세기 초부터 카작인을 첨병으로 하여 러시아인 진출이 시작되었으나, 부리야트인의 저항이 격렬해서 17세기 말경에 이르러서야 이 지역
전체가 러시아령이 되었다. 러시아제국의 지배아래 편입된 부리야트인은 '이족(異族)'으로서 차별대우를 받았으며 강제적 기독교화 정책의 대상이
되었다. 19세기 말에는 러시아 제국이 이민용 토지를 확보하기 위해 정책적으로 부리야트인의 토지를 빼앗아, 부리야트인은 동부에서 토지의 36%,
서부에서 53%를 잃게 되었다. 이에 대한 부리야트인의 강한 저항으로 1904년에는 서부지역에 계엄령이 선포될 정도였다. 10월 혁명과 내전기에
일부 부리야트인들은 몽골과의 통일을 꾀하여 일본이 후원하고 있던 반혁명파 세묘노프군 쪽에 서서 '대몽골국'을 세우려고 시도했으나 성공하지
못하였다. 그 후 이 지역은 간섭전쟁의 무대가 되어, 1918년 여름에는 세묘노프군의 지배 아래 들어갔으며 뒤이어 일본군, 미국군의 지배를
받았다. 1920년 적군(亦軍)이 탈환하여, 1921년에는 극동공화국내에, 1922년에는 러시아공화국에, 각각 부리야트-몽골자치주가 세워졌다.
극동공화국이 폐지됨에 따라 1923년 5월에 양자가 합쳐져서 부리야트-몽골자치공화국이 설립되었다. 그후에도 몽골과의 통일을 바라는 조류는 공화국
내에 뿌리깊게 남아 있었지만, 실제로는 1937년, 공화국의 서부와 동부 여섯 지구가 합쳐져 러시아공화국 안으로 이관되어 실카강의 지류인 아가강
유역에 아가부리야트민족관구(현재는 자치구. 면적 1만 9천Km2, 인구 7만 7천명, 1989. 수도 아긴스코예), 앙가라강 상류에 우스티오르다
부리야트민족관구(현재는 자치구. 면적 2만 2,400Km2, 인구 13만 6천명, 1989. 수도 우스티 오르딘스키)가 별도로 설치되었다.
1958년에 공화국의 명칭에서 '몽골'이 없어지고 '
부리야트자치공화국'으로 되었다.
♠ 경제
주요 산업으로는 농업, 제재업, 채광업을 하고 있고, 주식으로는 육류 가공품을 먹는다.
산업은 수도인 울란우데를 중심으로 항공기, 기관차, 차량, 전기 등의 기계공업, 시멘트 등의 건축자재, 목재가공과 식육, 우유 등의 축산품가공이
발달해 있다. 농업은 양, 소, 말, 돼지 등의 목축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바이칼호에서는 어업도 하고 있다. 또 텅스텐, 몰리브덴의
생산지로도 유명하다. 보리류를 중심으로 하는 농경을 주로 하고, 서부는 동부보다 농경의 비중이 높다. 수렵과 어로도 약간의 경제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데, 어로는 대부분 바이칼호에서 행해지며, 셀렝가 강, 호수와 늪지 등지에서는 오리잡이를 한다.
♠ 사회 및 문화
부리야트족은 몽골족과 비슷한 특징과 언어를 가진 몽골계 부족이며, 수세기 동안 다른 아시아 종족들에게 영향을 끼치며, 그들 자신도 몽골족,
티벳족, 중국인의 문화를 받아들였다. 부리야트인들은 20세기 초까지 전통적인 유목민으로 살았으며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목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바이칼호 서쪽에 있는 부리야트인은 과거 수세기 동안 러시아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이유로 보다 정착된 생활을 하고 있다. 보통
부리야트인의 4/5정도가 산에서 목재 산업에 종사하는 것에 비해 그곳의 부리야트인들은 교육수준이 상대적으로 더 높고 사무직에 종사하는 비율이
많다. 전통적인 의식주는 몽골 부족과 거의 유사한데 이동용 조립식 천막인 '겔', 유제품과 고기를 주식으로 하는 식생활 등이 그것이다. 그렇지만
서부 주민은 러시아의 영향을 크게 받았으며 지금은 동부에서도 목조주택이 널리 보급되고 있다.
예술 형태로는 금속공예와 목각 조각이 유명하다. 대화하기를 좋아하고 호기심이 많으며, 손님들에게 질문하는 것을 좋아한다. 씨족 혹은 혈통을
중심으로 한 가족제도가 형성되어 있으며, 남자들의 지위, 신분, 상속은 대체로 씨족 구성원에 의해 결정된다. 축제로는 활쏘기, 씨름, 경마를
개최하는 '수르하르반'이라고 부르는 봄 축제가 가장 대표적이다.
♠ 종 교
시베리아에서 가장 큰 불교를 믿는 종족 집단이며, 샤머니즘적 요소도 강하다.
불교는 17세기에 티벳에서부터 몽골을 거쳐 전래된 라마불교로 동쪽 부리야트들에 의해 받아들여졌다. 많은 서쪽 부리야트인들도 불교에 의해 영향을
받았으나, 대부분은 그들의 원래 샤마니즘과 자연종교를 강하게 지키고 있다. 샤머니즘에는 흑 신앙과 백 신앙이 있었는데, 백은 하늘에 사는
선신(善神)인 텡그리를 섬기는 것이고, 흑신앙은 지하에 사는 악신(惡神)을 섬기는 것이다. 서부 쪽의 주민들은 형식적으로는 러시아 정교도이지만
라마교도와 마찬가지로 샤마니즘의 흔적이 두드러지게 남아 있다.
♠ 기독교 상황
몇 군데의 예배 처소와 수십 명의 그리스도인이 있으며, 외부인이 만든 교회, 러시아 교회, 선교단 몇 개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성경은 구식으로 번역된 마태, 마가복음이 있으며, 소수의 부리야트인이 기독교에 대해 다소 관심을 나타내고 있다. 현재 한국인 사역자가 사역하고
있다.
첫댓글 감사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