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옛날 왕의 길이 명품거리로
구시가 광장에서의 여유로운 문화체험 기행을 마치고 구시가지 골목 탐방에 나섰다. 어느 골목을 들어서 걷던 상관없이 중세의 거리 풍경이 그대로 묻어나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을 것 같다. 지도도 없이 방향감각을 잃은 체 정처 없이 구시가지 이 골목 저 골목을 기웃거려 보았다. 마치 왕궁을 빠져나온 철없는 왕자가 된 기분이다. 아니 그보다 이제 막 상경하여 두리번거리는 시골뜨기의 상경기가 더욱 어울릴 것 같다.
광장 동쪽 <틴 성당>을 끼고 돌아 보석점과 액세서리 및 선물가게가 즐비한 <첼레트나 거리(Celentna ulice)>에 들어섰다. 이 거리는 프라하에서 가장 번화하고 아름다운 거리로 우리나라의 명동 골목에 비유되는 곳이다.
프라하에서 가장 오래된 <첼레트나 거리>는 보헤미아로 이어지는 오래된 교역로였다. 이 거리의 이름은 중세 때 14세기경부터 프라하의 전통적인 주름 진 롤빵 찰티(Calty)를 만들어 팔았던 제빵사들이 이곳에 많이 모여 살았다하여 붙여지게 되었다고 전한다. 뿐만 아니라 이곳에는 도살업자나 창녀 같은 기층민들이 주로 살았다고 하며, 어둡고 바람 부는 날이면 음산한 밤거리에 전설속의 유령들이 나타나기도 하였다고 한다. 유령들 중에는 무시무시한 도끼를 든 유령이나 앞가슴을 풀어헤친 창녀도 있어, 전설에 의하면 어느 날 신부에게 창녀 유령이 달려들며 유혹을 하려하자 이에 격앙되어 십자가로 창녀의 머리를 쳐 죽였다고 한다.
구시가지의 중심거리인 이 길은 <시민회관> 옆 <화약 탑>에서부터 시작하여 <첼레트나 거리>, 구시가 광장, <카를로바(Karlova) 거리>, 카렐다리, <모스테츠카(Mostecka)>, 그리고 <네루다(Neruda)거리>를 지나 프라하 성까지 이르는 통로로 <왕의 길(The Royal Mile)>이라고도 부른다. 왕궁으로 통하는 중요 통로인 이 거리에서는 보헤미아의 왕과 왕비들의 대관식이 있을 때에 황금마차 행렬이 지나가던 길이었으므로 거리에는 유명한 건축과 역사적인 명소들이 들어서 있다. 유령들이 나타나고 빵을 구워 팔던 제빵사들이 모여 살았던 이 거리에는 아름다운 로마네스크와 고딕식의 세련된 건물들이 들어서게 되었고 기층민 대신해 귀족이나 중산계층의 사람들이 들어와 바로크 풍의 아름다운 집을 꾸며 놓고 살게 되었다고 한다.
거리를 따라서 걷다보니 골목 양쪽에는 아름답게 보존된 바로크 양식의 세련된 저택들이 줄지어 있다. 그 옛날 귀족들이 살았던 저택의 외벽에는 당시에 새겨놓은 심벌마크들이 지금까지 그대로 보존되어 저택의 상징적 마크로 사용되고 있었다. 지금은 이들 건물에 명품들을 진열해놓고 세계의 관광객들을 불러 모우는 명품거리로 변해 있다.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 드는 프라하는 세계 6대 관광도시로 프라하를 찾게 되면 반드시 이 <첼레트나 거리>를 찾아온다고 한다.
프라하는 1993년 체코 공화국과 슬로바키아 공화국의 분리된 이후부터 빠른 속도로 개방이 이루어져 시내중심에는 전 세계 유명 프렌차이저 점포에 명품 숍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이제는 유럽의 어느 도시에도 뒤지지 않을 정도로 변모하였다고 한다. 프라하에서 명품 숍이 가장 많이 들어선 골목으로는 이곳 첼레트나(Celetna)거리를 비롯하여 바츨라프 광장 (Vaclavske Namesti), 유대인 마을의 파리츠카 거리 (Parirska), 나프리꼬페 (Na Prikope)거리 등을 꼽는다고 한다.
첼레트나 골목을 지나면서 눈에 많이 띄는 것이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세계 3대 크리스털 제품으로 알려진 <보헤미아 크리스털>이고, 다른 하나는 체코에서 가장 많이 생산되어 가공되다는 <가넷(Garnet)>이라는 보석이다. <가넷>은 우리나라의 자수정 같은 것으로 서양에서는‘1월 탄생석’이라 하여 액세서리용으로 사용되는 준보석으로 아주 흔하고 저렴하여 쉽게 구할 수 있다.
거리를 지나면서 아주 재미있는 해프닝을 경험하였다. 구두를 파는 슈즈살롱 앞에 「SLEVA(쓰레빠)」라고 쓴 안내문이 눈에 띠였다. 체코 발음으로 ‘쓰레빠’라고 읽는데 이는 우리나라에서 많이 사용되는‘슬리퍼’의 일본식 표현인 ‘쓰레빠’가 아닌가? 그러면 이 구두점에서도 슬리퍼를 판다는 뜻인데 점포 안에서 슬리퍼는 구경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 말의 본뜻이‘염가로 싸게 판다’는 ‘세일’이란 뜻이라고 하니 참 재미있는 해프닝이었다.
<프라하 제1의 명품거리가 되어 버린 왕의 길>
거리 중간쯤에서 오른쪽으로 이어지는 큰 골목 코너에는 검은 마돈나 상으로 외벽을 장식한 <검은 마돈나의 집( Dum U cerne Matky Bozi)>이 있었다. 이 집은 프라하에서 드물게 볼 수 있는 아름다운 저택이라고 한다. 이 건물의 이름은 2층에 앉아 있는 성모의 검은 석조 조각상에서 따온 것으로 체코의 건축가 <요제프 고차르(Josef Gocar )>가 백화점으로 설계하여 1912년에 지어진 <큐비즘>양식을 가장 잘 표현하고 있는 세계적으로 희귀한 입체파 건축물이다. 오늘날에는 국립 미술관 소속의 체코 큐비즘 박물관(Museum of Czech Cubism)으로 사용되고 있다 한다.
<21세기 큐비즘양식으로 지은 마돈나의 집>
마돈나 백화점을 바라보면서 오른쪽 길을 따라 바쁜 걸음으로 100여 미터 쯤 들어가노라니 프라하 공연예술의 명소 <에스타트 극장(Estates theatre)>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 극장은 1783년에 백작 <노스티츠>에 의해 지어진 것으로 이곳에서는 1787년에 모차르트가 작곡한 오페라 <돈 조오바니>를 처음 공연 지휘하였던 곳이다. 그리하여 이 극장에서는 일년 내내 <돈 조오바니> 오페라가 반복 공연된다고 한다. 또한 이곳에서 영화 <아마데우스>를 촬영하여 영화 속에서 보았던 무대를 일정상 직접 볼 수 없어 아쉽기는 하지만 우아한 건물 외관을 밖에서 바라보는 것만으로 만족하여야 했다.
<모차르트의 돈 죠바니 오페라공연 전용극장 에스타트>
첼레트나 거리의 마지막 지점에 이르니 길 한복판에 높다란 <화약탑(Prahna Brana)>이 가로 막고 서 있었다. 4각형의 단독 건물로 만들어진 탑의 모습이 하나의 아름다운 조각품을 바라보는 것 같았다. 이 탑은 11세기경 구시가의 입구를 방어하기 위해 세워진 13개의 탑 중에 하나로 구시가지의 출입문인 동시에 프라하 구시가지와 신시가지를 구분하는 기점이기도 하다. 본래는 소박한 모습으로 지어졌으나 1475년 야겔로 왕조의 <블라디슬라프 2세> 때 지금의 시민회관인 궁전 건물과 잘 어울리도록 높이 65m의 고딕식 문으로 건설되었다고 한다. 카렐 교의 <말라스트라나 교탑>과 <구시가 교탑>이 궁성으로 들어가는 제3, 제2관문 이라고 하다면 이 화약 탑은 제1관문이라 할 수 있다. 지금은 프라하의 궁전이 프라하 성으로 옮겨 가면서 그 기능을 잃게 되었다고 한다, 1757년 러시아와의 전투 때에는 전투용 화약을 보관하는 창고로 사용하였던 까닭에 그 이름도‘화약 탑’이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지금은 연금술에 관한 자료를 전시하는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한다.
<구시가지 제1관문 화약탑의 아름다운 목습>
<화약 탑> 옆으로는 노란색과 청동색이 어우러진 우아한 건물 <시민회관(Obecni dum)>이 자리하고 있었다. <오베츠니 둠>이라 불리는 회관은 네오바로크 풍의 외관에다 내부에 아르누보 양식의 화려한 그림과 장식들이 잘 조화된 이 건물은 프라하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물이라고 한다. 보헤미아 왕궁이 프라하 성으로 옮겨가기 전까지 이곳은 왕궁으로 사용하였다고 한다. 1905년부터 1911년에 걸쳐 궁궐이었던 기존 건물을 헐어내고 그 자리에 <알폰스 무하>, <카렐 슈필라>, <얀 프라이슬러> 등의 유명 미술가 와 인테리어 들이 참여하여 지금의 아름다운 모습의 아르누보 양식의 호화로운 건물을 짓게 되었다고 한다.
이 시민회관은 1911년까지 보헤미아 왕국의‘왕의 법정’으로 사용되어 왔으나, 이후에는 각종 음악회나 집회 장소로 이용된다고 한다. 1층에 이 건물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스메타나 홀>은 체코의 음악축제인 '프라하의 봄’의 개막과 폐막이 이루어지는 공연장으로 유명하다. 이 건물의 규모나 시설로 볼 때 체코 민족의 영광을 암시하는 <스메타나>의 <나의 조국>이 연주되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다고 한다. 그 밖에도 500여 실의 공간은 각종 연주회장과 전시장, 레스토랑 등으로 활용되는 복합 문화시설들이 들어서 있다고 한다.
건물의 정면에는< K 슈피랄>이 만든 반원형의 모자이크 벽화가 있고, 그 벽화를 둘러싼 테두리에 황금색 글씨로 "프라하여 그대에게 영광 있으라! 시대의 악의에 저항하며 그대가 수세기에 걸쳐서 모든 폭풍우에 참아온 것 같이!" 라는 내용의 글자를 새겨놓았다. 이곳에서는 1918년 10월 28일에 체코슬로바키아 공화국의 독립선언이 이루어졌던 곳으로 건물 앞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프라하 역사의 큰 동맥에서 울려나오는 맥박소리를 느낄 수 있었다.
<체코의 국제음악제 '프라하의 봄'이 열리는 시민회관 전경>
첫댓글 저 곳 어디쯤서 '굴라쉬'를 먹었는데, 선생님도 드셔 보셨는지요? 우리나라 육계장과 비슷하여 배낭 여행자들에게 인기가 있어요. 푸짐한 빵과 함께 와인도 ... 체코의 와인은 아마 최고인 듯? ㅋㅋ 여행기 감사히 읽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