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정토(淨土)의 인행(因行)
次第二明淨土因者
정토의 인에 두 길이 있으니 첫째는 성변인(成辨因)이요, 둘째는 왕생인(往生因)이다.
淨土之因 有其二途 一成辨因 二往生因
성변인에 대해서는 여러 학설이 있으니 어떤 이는 말하기를, “본래 무루의 법(法)의 종자를 3 아승지겁 동안 닦아 그것을 증장(增長)시키는데 이것을 정토가 변해 나타나는 생인(生因)이라고 한다” 하나니,
마치 저 “유가론”에서 “나락가(那洛迦 : 지옥)에 나서 세 가지 무루근(無漏根)의 종자를 성취한다”고 한 것과 같은데, 이로써 무루 정토 종자의 있음을 알 수 있다.
成辨因者 說者不同 或有說者 本來無漏法爾種子 三無數劫修令增廣 爲此淨土變現生因
如瑜伽論說 生那落迦 三無漏根種子成就 以此准知 亦有無漏淨土種子
또 어떤 이는 말하기를 “두 지혜로 닦아서 새로 난 종자가 정토의 생인을 만든다” 하나니,
이것은 저 “섭론”에서 “출세간의 선법과 공능(功能)에서 나와 정토를 일으킨다. 무엇을 출세간법에서 나온 것이라고 하는가? 분별 없는 지혜[無分別智]와 분별 없는 후득지(後得智)에서 생기는 선근을 출세간 선법에서 나온 것이라고 하나니, 이것은 본래 있는 것이지 뒤에 생긴 것이 아니며 만일 생긴 것이라면 그것은 새로 이루어진 것이다”라고 한 것과 같다.
或有說者 二智所熏新生種子 爲彼淨土而作生因
如攝論說 從出出世善法功能 生起淨土 何者爲出出世善法 無分別智 無分別後得 所生善根 爲出出世善法 是本有卽非所生 旣是所生 當知新成
(문) 그 두 주장에서 어느 것이 진실인가?
問 如是二說 何者爲實
(답) 다 성전(聖典)에 의한 것이니 어느 것인들 진실이 아니겠는가. 그 자세한 것은 “능가경요간(楞迦經料簡)”에서 말한 것과 같다.
答 皆依聖典 有何不實 於中委悉 如楞伽經料簡中說
다음에 왕생의 인이란 무엇인가.
무릇 모든 왕생의 인은 바로 정보의 장엄만을 감득(感得)하는 것이 아니요, 의보의 정토도 갖추어 감득하는 것이다.
다만 여래 본원의 힘을 받들기 때문에 느낌을 따라 수용하는 것이며 스스로의 업인(業因)의 힘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니, 그러므로 왕생의 인이 없다는 것이다.
次明往生因者
凡諸所說往生之因 非直能感正報莊嚴 亦得感具依報淨土
但承如來本願力故 隨感受用 非自業因力之所成辨 是故說無往生因
이 인의 모양에 대해서는 경론의 말이 같지 않다.
“관경(觀經)”에 의하면 십륙관(十六觀)을 말하고 “왕생론”에는 5문(門)의 행을 말한다.
이제 이 경에 의하여 3배(輩)의 인(因)을 말하면, 상배(上輩)의 인에는 다섯 귀절로 말하였다.
此因之相 經論不同
若依觀經說十六觀 往生論中說五門行
今依此經 說三輩因 上輩之因 說有五句
첫째는 집을 버리고 욕심을 버리고는 사문이 되는 것이니 이것은 정인(正因)을 일으키는 방편을 나타낸 것이요,
둘째는 보리심을 내는 것이니 이것은 정인을 밝힌 것이며,
셋째는 저 부처님을 오로지 생각하는 것이니 이것은 수관(修觀)을 밝힌 것이요,
넷째는 온갖 공덕을 짓는 것이니 이것은 기행(起行)을 밝힌 것으로서 이 관과 행은 만업(滿業)을 돕는 것이며,
다섯째는 그 국토에 나기를 원하는 것이다.
이 하나는 원이며 앞의 네 가지는 행이니, 행과 원이 화합해야 비로소 거기에 날 수 있기 때문이다.
一者 捨家棄欲而作沙門 此顯發起正因方便
二者 發菩提心 是明正因
三者 專念彼佛 是明修觀
四者 作諸功德 是明起行 此觀及行爲助滿業
五者 願生彼國
此一是願 前四是行 行願和合 乃得生故
중배(中輩)의 인에 대해서도 네 귀절로 말한다.
첫째는 비록 사문이 되지는 못했지만 장차 위없는 보리심을 내는 것이니 이것은 정인을 밝힌 것이요,
둘째는 저 부처님을 오로지 생각하는 것이며,
셋째는 얼마간의 선을 닦는 것이니 이 관과 행은 만업을 돕는 것이요,
넷째는 그 국토에 나기를 원하는 것이니 앞의 행과 이 원이 화합해서 인이 되는 것이다.
中輩之中 說有四句
一者 雖不能作沙門 當發無上菩提之心 是明正因
二者 專念彼佛
三者 多少修善 此觀及行爲助滿業
四者 願生彼國 前行此願 和合爲因也
하배(下輩)에는 두 종류의 사람을 말하는데 그들에게 각각 세 귀절이 있다.
下輩之內 說二種人 二人之中 各有三句
첫째 사람의 세 귀절은 첫째는 설사 온갖 공덕을 짓지 못하였더라도 장차 위 없는 보리심을 내는 것이니 이것은 정인을 밝힌 것이요,
둘째는 십념(十念) 내지 그 부처님을 오로지 생각하는 것이니 이것은 만업(滿業)을 돕는 것이며,
셋째는 저 국토에 나기를 원하는 것으로서, 앞의 행과 이 원이 화합해서 인이 되는 것이니,
이것은 부정성(不定性)의 사람을 밝힌 것이다.
* 滿業 - 두 가지 업(業)의 하나. 차별이 있는 모양의 과보를 이끌어 오는 업을 말함. 즉 사람이라고 하는 보편적인 상태에 나게 하는 같은 업에 대하여 빈부, 귀천, 남녀 등의 구별을 나타내는 업을 말함.
初人三者 一者 假使不能作諸功德 當發無上菩提之心 是明正因
二者 乃至十念 專念彼佛 是助滿業
三者願生彼國 此願前行和合爲因
是明不定性人也
둘째 사람에도 각각 세 귀절이 있다.
첫째는 매우 깊은 법을 듣고는 기뻐하면서 믿고 좋아하는 것이니, 이것은 발심과 정인을 아울러 나타내는 것으로서 다만 앞의 사람과 다른 것은 그 깊은 믿음을 말했을 뿐이요,
둘째는 마지막 일념이나마 그 부처님을 생각하는 것으로서 이것은 만업을 돕는 것이니, 앞 사람의 깊은 믿음이 없음을 나타내기 위해서이다. 반드시 십념이 있어야 하지만 이 사람은 깊은 믿음이 있기 때문에 꼭 십념을 갖출 필요가 없는 것이다.
셋째는 지극한 마음으로 저 국토에 나기를 원하는 것이니 이 원과 앞의 행이 화합해서 인이 되는 것이다.
이것은 보살 종성의 사람에 대해 한 말이다.
第二人中有三句者
一者 聞甚深法 歡喜信樂 此句兼顯發心正因 但爲異前人擧其深信耳
二者 乃至一念念於彼佛 是助滿業 爲顯前人無深信故 必須十念 此人有深信故 未必具足十念
三者 以至誠心 願生彼國 此願前行和合爲因
此就菩薩種性人也
이상은 경의 말이다.
經說如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