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이야기와 노래
한 치 영 가수, 작곡가
2000년 봄 ‘광개토대왕’을 타이틀로 한 음반이 조용히 세상으로 나왔습니다. 필자가 노래를 부른 이 음반은 또한 소문없이 널리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고구려’ 역사를 주제로 한 가사가, 사람들을 고구려 역사에 대해 다시 돌아보게 했기 때문이라 여깁니다. 거기에는 노래를 부른 필자의 열정도 어느 정도 몫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동이학교의 우리 역사 바로찾기 정신은 시대적으로 큰 의미가 있으며, 거기에 뜻을 함께 하는 필자가 이번 동이학교 강좌에 노래와 이야기를 통해 고구려역사를 전할 수 있게 된 것은 큰 기쁨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음반 ‘광개토대왕’에 수록된 가사의 작사자인 윤명철 교수는 현재 동국대에서 강의를 하고 있는 민족정신이 투철한 역사학자입니다.
그는 한국탐험협회 회장으로 여러 곳의 역사현장을 찾아 나서고 있으며, 그동안 대한해협뗏목횡단, 황해뗏목횡단을 했으며, 고구려의 주 활동무대를 말을 타고 체험하기도 하는 등 고구려의 기상과 의지를 오늘에 되살리는 일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저서로 ‘뗏목탐험 3만리’, ‘말타고 고구려가다’, ‘바닷길은 문화의 고속도로였다’ 등이 있습니다.
1. 듣고싶어
고구려의 주 활동무대는 서쪽으로는 몽골지방까지였고, 만주와 몽골의 경계선에 대 흥안령(大 興安嶺) 산맥이 있다. 이 흥안령 산맥은 동쪽지형이 완만하여 굉장히 너른 평야지대로 연결되는데 끝없이 펼쳐진 평야의 동북쪽으로 ‘눈강’ 이라는 넓은 강이 흐르고 있다. 고구려의 기마 부대들은 이 흥안령 산맥을 주무대로 하여 놀라운 속도로 중국과 몽골, 그리고 요동방면 등의 필요한 곳으로 이동할 수 있었다. 이 흥안령 산맥은 지금 세계 지도를 보면 ‘다이싱안링’ 산맥으로 표시되는데 대 흥안령 산맥의 중국식 발음이다. 이곳은 부여의 튼튼한 말들이 전투마로 훈련되었던 곳이고, 천하무적 고구려의 기마 부대의 고향이었다. 고구려의 복장은 고분벽화를 통해서 짐작해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중에는 노래와 연주하는 모습도 있다. 그런데 지금은 그 당시 음악이 전해지고 있지 않다. 그러나 놀라운 색채와 선으로 미루어 음악도 수준 높은 경지에 올랐음을 알 수 있다. 천하를 호령하던 고구려의 음악은 호탕하고 기상이 뛰어난 음악이었으리라...... 그리고 그 당시에 음악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 하늘과 땅과 조상에 대한 제사와 백성의 축제에 이용되었던 만큼 엄숙하면서도 흥겹고 진실 된 내용이 음악에 담겼으리라 여겨진다. 그리고 또한 전투 시에도 병사들의 사기를 높이고자 노래를 불렀는데 힘과 용기를 북돋는 음악이었다. 그런 노래 중 하나가 ‘어아가’ 인데 노랫말 만 남아 있다..
(노래) 《듣고 싶어》 (ㆍ작사 : 윤명철, 작곡ㆍ노래 : 한치영)
듣고 싶어/ 큰바람 소리/ 아! 흥안령 넘어/ 달려오는 바람 소리 듣고 싶어/ 그 노랫소리/ 아! 잊혀져버린/ 고구려의 노랫소리/ 듣고 싶어 해를 따라 달리는/ 말 발굽소리/ 넓고도 긴 눈강 물결소리/ 아아아아/ 우리겨레 태묻은 땅/ 죽어서도 지키자던 함성 듣고 싶어/ 고구려 소리/ 자유의 소리/ 잃어버린 우리 소리/ 듣고 싶어
2. 백암성
흥안령 산맥의 아래쪽으로 천리장성이 있다. 중국의 漢族은 만리장성 이남을 터전으로 생활했고 우리민족은 옛부터 이 천리장성의 동쪽을 삶의 무대로 삼았다. 천리장성을 넘은 중국의 군사는 살아 돌아 올 수가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漢族은 이 선을 넘기를 꺼려했고 실제로 많은 사례가 입증하듯 천리장성을 넘어온 자들은 궤멸되어 나라의 운명이 바뀌는 경우를 초래했다. 남으로 안시성과 북으로 흥안령을 연결하는 천리장성 중에 백암성이 있다. 白岩城은 말 그대로 ‘흰 바위의 성’이다. 자연석인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백암성은 멀리서 보면 푸른 풀밭과 조화를 이뤄 그야말로 아름다움 그 자체인 듯 하다. 백암성은 삼면이 천애절벽(天涯絶壁)으로 이루어져 있고, 한쪽은 끝없이 넓은 들이 펼쳐져 있는 아름다운 작은 성이다. 절벽을 휘감고 태자하(太子河)라는 큰 강이 흐르고 성안에는 샘도 있어 작게는 몇백명 크게는 이천 명 정도가 생활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당(唐)태종이 국운을 걸고 고구려를 치고자 수십만 대군을 이끌고 이 작은성을 지나 무풍지대를 달릴 계산으로 백암성를 포위했다. 항복하고 앞잡이가 되어 길을 열라며 당태종이 갖은 회유와 온갖 협박을 다했으나 백암성은 자유가 아니면 죽음이라는 고구려의 정신을 지켜 끝내 대항했다. 치열한 공방전 끝에 백암성의 고구려인들은 한 사람도 남지 않고 산화했다. 너무나 압도적인 병력의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비록 패전했으나 작은성 하나에 지지부진을 면치 못하고 시간을 뺏긴 당은 큰 차질을 빚게 되었고 그 사이 고구려 전역으로 퍼진 이 소식은 고구려인 들의 용기를 폭발적으로 불러일으키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유명한 안시성 전투와 같은 상상할 수 없는 대 승리의 바탕에는 백암성의 정신이 살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금 옛 성을 연구하는 많은 분들이 참으로 아름답게 자연과 조화를 이룬 백암성에서 그토록 처절하고 눈물겨운 전투가 있었다는 사실이 믿겨지지 않는다 할 정도로 놀라워한다. 그러나 이 작은 성은 고구려인의 숭고한 자유정신이 살아 숨쉬는 우리민족의 소중한 정신적 고향이 되고 있는 것이다.
(노래) 《백암성》 (ㆍ작사 : 윤명철, 작곡ㆍ노래 : 한치영)
가고 싶다/ 후~웅 칼바람 소리/ 아파트 단지를 휩쓸고/ 우두둑 빗결들/ 옷깃으로 흘러들 때/ 내 가슴이 벌떡거리며 그곳이 생각났다 너른 들판이 산처럼 밀려/ 태자하의 물결위로/ 곤두박질 치고 있는 곳/ 그 활 같은 능선/ 하얀 돌덩이/ 너른 초록 풀밭만이/ 옛날 역사를 통채로 안겨 주는 곳/ 그 곳 백암성이 생각난다 모다 다 죽어버리고/ 화살촉마저도 남지 않고/ 가루로 바스라져/ 그토록 갈구하던/ 자유로움만이 바람소리로 날리고 있는 곳/ 그 곳 고구려의 성이 생각난다.
3. 광개토대왕
고구려는 왕에게 다른 국가가 쓰는 호칭의 왕보다 높은 열제(列帝)라는 칭호를 썼다. 말 그대로 주변의 황제들을 거느린다는 칭호이다. 비석에는 광개토호태왕(廣開土好太王)이라고 표시되어 있다. 칭호문제가 있지만 널리 알려진 대로 광개토대왕이라고 했다. 광개토대왕은 그야말로 ‘치우천황`의 귀신같은 전략과 전술을 재현해낸 민족의 영웅이다. 당시 백제가 황해를 중심으로 지금의 요동과 서중국 일본을 모두 영토로 하는 세계해양대국으로서, 멀리는 중동지역과도 교역하는 등 세계문물이 집결하는 놀라운 번영의 시기였다고 한다면, 고구려는 백제의 영토 때문에 세계진출이 막혀 있던 상황이었다. 그러한 시대적 배경으로 백제의 문화는 세계성을 띠게되고 고구려는 전통이 고스란히 살아남는 문화양식을 갖추게 된 원인이었던 것으로 학자들은 얘기하고 있다. 서로 하늘에 제사지내는 천손 민족의 정통성을 나름대로 주장하는 백제와 고구려는 그 당시 대단한 앙숙이었던 것이 역사는 말해주고 있다. 백제의 영웅 근초고왕의 첩자들에 의해 고구려의 고국원왕이 암살 당하는 사태가 터지는 등 두 나라는 서로가 양립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이가 되 버린 것이다. 할아버지의 죽음을 목격한 담덕은 백제를 철천지원수로 여기게 되고 어린시절부터 할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치밀하고 철저한 준비를 하게되었고 드디어 젊은 나이로 왕위에 올라서는 즉시 백제를 치기 위한 작업에 착수했다. 해군력과 정보력이 열세라고 판단한 광개토대왕은 우선 그 보완작업을 하게되고 드디어 친히 4만의 결사대를 이끌고 바다를 통해 백제의 수도인 곰나루(웅진성)로 기습공격을 감행하게되고 그 결과 역사는 전혀 뜻밖의 길로 접어들게 되었다. 상상할 수도 없는 기습공격에 놀라고 당황한 백제의 응신 천황은 구사일생 탈출하여 당시의 영토이던 일본(나라백제)으로 피신하게 되었고 그로부터 백제의 대대적인 일본이주가 시작이 되었던 것이다. 물론 그후로도 백제는 회복되어 세계를 호령하는 대국의 위치를 누렸으나 양쪽으로 분리된 것이 원인이 되어 결정적인 순간 불화와 갈등을 빚게되고 결국 훗날 믿을 수 없는 멸망으로 이어진 것이다. 광개토대왕은 그후 사방으로 눈부신 업적을 이루며 고구려의 영토를 크게 넓히고 그의 아들 장수왕에 의해 광개토호태왕비가 세워지게 되는데 그 비석은 3층 높이의 거대한 자연석으로 우리민족사를 연구하는 중요한 자료이다. 몰지각한 외국의 학자들이 고의로 파손 변형한 글자들이 있기는 하나 일월지자(日月之子)등의 뿌리를 밝히는 글이 있어 우리민족이 대대로 천손민족 , 빛의자손 임을 말해주고 있다
(노래) 《광개토대왕》 (ㆍ작사 : 윤명철, 작곡ㆍ노래 : 한치영)
만주에는 광개토대왕비가 서 있어/ 스무 자 훨씬 넘는 돌비석이 서 있어/ 아시아 제일 큰 금석문/ 천 칠백 칠십 오자 새긴 비/ 영웅 광개토대왕비가 서 있어 오 천년을 말하고 있어/ 우리는 하늘의 자손 밝히고 있어/ 하늘의 뜻 펴기 위해 고구려를 세웠노라/ 광개토대왕이 말하고 있어 역사를 전하노라/ 돌아오라 고구려/ 용기를 전하노라/ 일어나라 겨레여/ 예전처럼 손잡고 서라/ 굳게 뭉쳐 하나되어라/ 큰 세상 꿈꿔라 1. 광개토대왕이 말하고 있어 2. 겨레여.
4. 고구려 아이들
좁은 땅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대륙을 잃어버리고 중국과 일본의 사이에서 시달린지 오백년이 넘었다. 그사이 문무(文武)를 동시에 숭상하던 기상은 사라지고 나약하고 기회주의적인 사고가 발달해 있는 형편이다. 고구려인들은 남녀가 평등했다. 똑같이 말을 타고 활을 쏘며 살았다. 고려시대까지 만해도 여자가 상속을 받고 호주노릇 하는 일이 기록으로 남아있다. 조선조에 들어오면서 무예를 천대하게 되는데 그것은 쿠데타로 집권한 이성계의 정책이 그런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었던 선택이었다. 하지만 그때부터 우리민족은 웅혼한 기상을 잃어버리고 늘 침략과 수탈에 시달리는 신세로 전락했다. 만주는 넓다. 해가 뜨고 해가 지는 지평선을 가진 만주는 끝없는 풀밭과 끝없는 산들로 이루어진 광활한 우리의 고향이었다. 거칠 것 하나 없는 풀밭을 말을 타고 달린다. 말과 사람이 하나가 되어 뜨거운 가쁜 숨을 토하며 달리고 달려도 끝이 보이지 않는 초원! 그 넒은 곳에서 너그러운 마음을 지니고 살던 우리가 지금은 좁은 땅에서 신음하고 있다. 우리는 힘을 길러야한다. 무엇이 힘인가? 건강한 정신과 건강한 몸이 필요하다. 서로 아끼고 위하는 마음이야말로 건강한 정신이며 역경을 두려워하지 않고 이겨낼 수 있는 강인한 체력과 굳은 의지가 건강한 몸이다. 압록강 넘어 연변에는 조선족 자치구(自治區)가 있다. 우리 형제들이 그 곳에 살고 있는 것이다. 우선 남과 북이 하나가 되고 한반도와 만주가 하나가 되고 또 일본과 하나가 되는 것이 우리가 흩어져 갈라진 역사를 되살리는 길이다. 우리 모두는 형제이며 서로가 위해야 하는 존재들인 것이다. 넓은 가슴이 필요한 시대다. 세계는 하나가 되어갈 것이고 우리도 하나가 되어야 한다. 고구려의 마음과 기상과 정신을 되살리는 일이 우리민족을 살리는 길이다.
(노래) 《고구려 아이들》 (ㆍ작사 : 윤명철, 작곡ㆍ노래 : 한치영)
1) 넌 몰고 싶니?/ 번쩍거리는 은색 오토바이/ 난 올라타고 싶어/ 늠름한 천리마 말잔등/ 넌 질주해 보고 싶니?/ 난 달려가고 싶어/ 끝없는 풀 바다 고구려 우리 함께 달려가자/ 백두대간을 타고/ 압록강을 건너가자/ 북으로북으로 달려/ 고구려 옛 땅/ 만주벌을 달리자/ 저 한 없는 산의 바다/ 말다리가 후들거리고/ 심장이 쾅쾅뛰도록/ 한껏 달려보자/ 옛날 할아비들 햇덩이 찾아/ 달려온 길/ 달려보자/ 나나나나 나나나
2) 넌 가고 싶니?/ 불빛 어리는 강변 까페촌/ 난 마주하고 싶어/ 진달래 피어 있는 장군총/ 넌 질주해 보고 싶니?/ 불꽃튀기는 사이버 하이웨이/ 난 달려가고 싶어/ 전사들 숨져 있는 고구려
5. 하늘의 아들
우리를 천손민족(天孫民族)이라 한다. 세계에서 우리는 하늘로부터 왔다 라는 믿음과 신화를 가진 유일한 민족이다. 하느님이라는 칭호도 우리민족만이 사용했던 유일한 것이다. 하늘의 뜻을 세상에 널리 알리는 사명을 우리민족은 지닌 것이다. 그것이 홍익인간(弘益人間)이라는 참으로 경탄스러운 사상으로 이어져 내려오게 된 배경이다. 아득한 옛날 하늘의 아들들은 홍익인간의 사명을 띠고 세상으로 퍼져갔다. 서쪽으로는 멀리 핀란드민족, 중동지역 최고(最古)의 수메르 문명을 일으킨 수메르민족, 아메리카의 인디언들, 인도의 석가모니를 배출시킨 샤카족 등은 모두 고대 우리민족들인 것이다. 그중 우리는 동이족(東夷族)으로서 흥안령산맥을 넘어 만주와 한반도, 중국의 서남해안에 자리잡았다. 다시 말하면 황해를 끼고 살던 것이고 그리하여 인류 최초의 홍산문명을 찬란하게 세우는 업적을 이룬 자랑스러운 전통을 가지고 있다. 그러던 중 치우천황 대에 이르러 철기문명을 일으켜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인류의 대변혁을 가져온 철기시대가 아직도 끝날 줄 모르고 있는 현대에 우리는 이 문명을 일으켜 세운 사람들이 우리민족이라는 사실도 모르는 채 살고 있는 것이다. 봄이 오면 진달래가 제일 먼저 피어나 온산을 붉게 물들인다. 마치 지구의 아득한 여명시절, 인류의 봄을 최초로 알린 우리민족을 상징하듯... 그래서 오래 전부터 진달래 피는 땅은 우리민족의 땅이라는 말이 있다. 홍산문명과 철기시대의 문을 열며 상상할 수도 없는 최소 6천년에서 길게는 2만년을 세계를 리드하며 이끌어온 고조선은 점차 활력을 잃게되는데 그때 부여에서 한 영웅이 나타나 무혈혁명을 성공시키며 다시 민족의 역량을 끌어 모으게 된다. 그가 바로 해모수이며 그때부터 천황(天皇)이라는 칭호를 쓰게된 것이다. 그로부터 2백년이상을 군림하다 고구려로 이어져 고구려의 천년시대가 펼쳐지게 되는 것이다.
(노래) 《하늘의 아들》 (ㆍ작사 : 윤명철, 작곡ㆍ노래 : 한치영) 만주의 대평원 말 타고 달려가자/ 고구려 아들 딸 뛰던 곳 달려가자/ 땅에서 해뜨고 지는 곳 달려가자/ 자유를 지키던 고구려 달려가자 달릴거야 날아갈 거야 화살처럼/ 달릴거야 날아갈 거야 바람처럼 몽골의 대 초원 늑대와 달려가자/ 선조가 넘었던 흥안령 달려가자/ 아비와 할아비 숨진 곳 달려가자/ 진달래 피는 땅 우리 땅 달려가자 달릴거야 날아갈거야 화살처럼/ 달릴거야 날아갈거야 바람처럼 우리가 누군지 너는 아니/ 너와 난 하늘의 아들/ 다섯 마리 용이 끄는/ 황금마차 타고 내려온/ 해모수의 피가 흐르는/ 하늘의 아들 달릴거야 날아갈거야 화살처럼/ 달릴거야 날아갈거야 바람처럼
6. 흙피리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악기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흙으로 만들고 불에 구운 흙피리 이다. 지금도 ‘훈’이라는 이름으로 국악기로 남아있는 것이 가장 오래된 악기이다. 전설로만 치부되던 우리민족이 중국에 세운 은(殷)나라에서 은허(殷墟)가 발굴되면서 흙피리의 존재가 세상에 드러나게 되었다 . 천하를 다스리던 시절의 악기는 오히려 맑고 아름다운 소리를 가진 것이다. 소리가 가장 멀리 퍼져나가는 악기로 인정받고 있는 흙피리는 오래전 산과 산 사이에서 신호를 주고받기에 적합한 악기였다. 우리민족의 고유한 악기이던 흙피리가 사라져 명맥이 끊어진 듯 하다가 2백년 전 이탈리아에서 7음계로 보강되어 ‘오카리나’ 라는 이름으로 되살아나 세계로 퍼져나가고 있다. 현대인들에게 황토기운이 활력을 되찾아 주듯 맑은 흙피리 소리는 소음의 공해에 지친 도시인에게 맑은 영혼의 소리를 들려주는 고귀한 악기이다. 한태주(필자의 아들 17세)군은 흙피리 전문연주가로 지금은 지리산에 살며 작곡과 연주에 전념하고 있다. 우리문화가 세계 속에서 찬란히 꽃 피우기 위해서는 우리정신이 깃 든 소리와 자세가 필요할 것이고 흙피리는 그러한 점에서 새로운 시대에 새롭게 등장하는 우리의 소리로 미래로 퍼져나갈 것이다.
(연주) 《연우》 《하늘의 아들》 (ㆍ작곡ㆍ연주 : 한태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