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부와 나무꾼의 대화 (漁樵問答)
이 세상에서 가장 절실한 근심은 문文이 질質을 이길지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주나라에서 문이 성대한 뒤로부터 역대의 정치술은 다시
충성스러운 질이 차차 사라지고 사치로들어갔으며,
백성들과 조가는 모두 헛된 것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한나라가 진나라의 화기를 계승한 나머지 문이 없이 황도가 현으로 되어,
드디어 문종과 경종의 부유함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무제武帝 이후로부터 문이 날로 성대해지고 풍속은 날로 쇠퇴해졌으며,
진晉나라가 한나라를 승계하고 당唐나라가 진나라와 수나라를 승계하였으며,
송나라가당나라를 승계하고 명나라가 송나라를 계승하여
대가 이어질수록 더욱 가난해졌습니다.
우리 동방으로 말한다면 고려가 신라를 계승하고
고려의 문이 점차 갖추어졌으므로,
풍속의 순후함은 이미 신라까지 미치지 않았습니다.
우리 왕조는 고려를 대신하여 예악문물이 찬란하게 갖추어져서
서주西周 시대의 성대한 세상에 비견할 만하였습니다.
그런데태평이 오래되어서 백성의 습속이 점점 화려하고 사치해져서,
오히려 100여 년 이전에 숭상되었던 소박하고 야한 풍조가
지금은 줄어들었습니다.
40~50년 전과 비교해 보면 눈과 귀로 보고 듣는 문이
사치스러운 풍조를 갖추어 다른 세상처럼 되었습니다.
이런 까닭에 이전 역사에 없을 정도로 근년에 자주 풍년이 들었지만,
위와 아래, 공으로나 사적으로나 1년 동안의 축적이 전혀 없었습니다.
유한한 재화로써 무한한 비용을 만들어,
비록 내일 얼어 죽거나 굶어죽을지언정 오늘 팔만한 물건이 있고
빚을 낼 방법이 있다면 그 구차함이나 앞으로 올 근심을 돌아보지 않고
기꺼이 재산을 탕진하고 잘못을 저지르기에 힘쓰니,
이것은 무궁한 폐단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도타웠던 백성들의 윤리가 날로 각박해지고 협애해져서,
윤리가 거의 없어질 지경이 되었습니다.
재화와 재물을 아끼는 것은 인정상 같은 것이므로,
아끼는 마음을 친척과 친구에게로 옮겨서,
궁한 것을 돕고 근심을 불쌍히 여겨야 할 텐데,
오히려 그의 죽음을 보고도 터럭 하나 뽑는 것을 아까워하고,
잔치와 즐기는 곳, 낭비가 심한 곳에는
1,000냥을 베풀어도 아깝지 않다고 생각하니,
세도가 무너졌던 것은 오직 이러한 이유때문입니다.
하물며 염치가 날로 무너지고 기강이 날로 해이해지니,
수령은 사송詞訟·정무政務의 사이에서 자기를 살찌울 술책을
염치 불구하고 저지르고는 마음으로 돌아보지않고,
이익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나라를 좀먹고 백성들을 병들게 하는
온갖 단서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큰 집에 한 아름의 동량棟樑이 곳곳에 좀이 생겨서
날마다 벗겨진다면 결국 꺾이고 말 것인데,
하물며 허다한 관청들이 하루 종일 사무를 보며
백성과 나라를 몰래 갉아서 녹이면필시 병을 얻을 것이니,
이것이 어찌 단지 동량의 좀이 슬고 갉아먹는 것에
비할 수 있는일이겠습니까?
재물은 농사에서 생기고 농사는 백성들에게서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사치풍조는 점차 성대해지고,
점차 서로 모방하여 경외를 막론하고 다투어 사치를 숭상하니,
농사짓는 것을 부끄러워하고 놀러 다니는 것을 즐긴다면 일상생활에
필요로 하는 재물과곡식은 어디에서 마련할 수 있겠습니까?
사치스러운 마음이 이미 고질적인 습속이 되었기에,
비록 오늘 불법을 저지르더라도 내일 중대한 형에서 빠져나오고,
조금이라도 이익을 얻을 방법이 있으면 중형을 받는 것도
가볍게 여기고 불법을 기꺼이 저지르니,
근래 경향에서 변괴가 계속 생기고 백성들의 의지가 바르지 못한 것이
어찌 다른 이유가 있어서이겠습니까?
재산과 곡식이 이미 탕진되어 대소가 모두 곤란하고
늘 위태로운 곳에 있으면서도,
아무도 보호해주지 못할까 두려워하는 꼴입니다.
만일 뜻밖의 수재와 가뭄, 대흉이라도 연이어 만나게 되면,
굶어서 얼어 죽을 지경에 직면하게 될 것입니다.
염치를 무릅쓰고 법을 우습게 아는, 이런 기강이 해이해지는 때를 만나,
말하기 어려운 깊은 염려가지극하여 그 원인을 세세히 찾아보니,
모두 문文이 질質보다 나았던 폐단에서 나온 것입니다.
주나라에서 농사에 힘쓰던 풍속이 후세가 되면서
문의 폐단이 날로 심해지는 지경에 이르러,
번쩍거리는 옷과 하늘거리는 옷은 모두 시인의 풍자 대상이 되었습니다.
또한유세하며 이익을 좇는 습속은 무엇보다 주나라 사람들의
세도가 점차 떨어진 데서 비롯된 것이니,
오늘날의 투박해진 인심과 나태해지고 사치스러운 풍습을 제거하고
검소를존숭하는 정치로 바꾸는 일을 어찌 조금이라도 늦출 수 있겠습니까?
사치는 저절로 없어지지 않고 반드시 검소함이 숭상된 뒤에야 제거되고,
검소도 절로 숭상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가르침을 기다린 다음에야 숭상될 것입니다.
가르침의 방도도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아침에 명령을 내려 저녁에 실행하도록 해야 하는 것이니,
법령을 반포하여 호오를 보여주어, 사치를 제거하고 검소함을 존숭하며,
형벌과 포상을 겸하고 거듭 밝히는 정사가 펼쳐진다면,
누가 감히 풍속을 바꾸고 교화에 따르지 않겠습니까?
가장 이상적인 왕정의 급선무는 백성을 기르는 데에 있고,
백성을 기르는 근본은 농업을권유하는 데 있으며,
농업을 권유하는 것은 근면에 힘써서 검소함으로
허황한 사치를 제거하는 데 있는 것이고,
그것을 실행하는 방법은 인재를 얻는 데 있는 것입니다.
사람으로임금을 섬기는 것은 대신大臣의 직무이니,
조가는 성심으로 인재를 찾고 추천하는 책무를 대신에게 맡기고,
대신은 정성을 다하여 좋은 재목을 샅샅이 조사해서
공직에 나아가게 해야 합니다.
덕행과 재주를 분류하여 추천하고,
크게는 방백과 장수감부터 작게는 낭료와 수령에 이르기까지
공적을 고찰해야 할 것입니다.
내치거나 승진할 때 한 번이라도공정치 않고,
백성들에게 임하여 송사를 할 때 한 번이라도 사를 따르는 경우가 있을 때,
조가에서 그 악을 분명히 드러내어 징계한다면 교화가 절로 시행되고
좋은 풍속이 절로이루어질 것입니다.”
주인과 객이 서로 묻고 답할 때에, 곁에서 묵묵히 웃는 자가 있었다.
그가 말하기를, “그대들의 말이 어쩜 그렇게 현실과 동떨어져 있습니까?
그대들은 물에서 고기 잡고 산에서 나무하는 야인처럼 보이니,
나라와 백성을 다스리는 일과 무슨 상관이란 말입니까?
그 자리에 있지 않으면 그 정사에 대해 말하지 말라고 한 것이
바로 성인의 가르침입니다.”
이에 답하기를, “고기 잡고 나무하는 것이 본래 우리의 일인데,
어찌 관직에 앉아 정치를도모할 수 있겠습니까?
그물을 가지고 물에 들어가서 그물을 펼치니,
그물이 펼쳐진 뒤에야 물고기를 잡을 수 있으므로
망을 잠시도 늦출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도끼를잡고 산에 들어가서 도끼자루를 베되,
자기가 쥐고 있는 도끼자루를 비추어 본 뒤에야
도끼자루를 만들 수 있었으므로,
법이 반드시 마땅히 옛것을 준수하여야 한다는 것을 압니다.
물에 다가가서 물고기를 보면, 물고기는 필시 깊은 못에 모이므로
백성들이 깊은 인과두터운 은택에서 절로 부유해짐을 알고,
산에서 내려와 땔나무를 판매하니 이익이 장사꾼보다
배가 되므로 재물이 공적임을 알며,
그 공적임은 청렴하며 근검한 다스림에서
자족한다는 것을 또한 알고 있습니다.
하루 종일 무성한 수풀에서 즐겁게 노는 자는
빈손으로 문에 들어오고,
반나절 동산과 거리에서 힘써 일하는
자는 등에 가득 지고 집으로 돌아옵니다,
비옥한 토지에서 게으르게 일한 농사꾼이 척박한 땅에서
열심히 일한 농사꾼보다 못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조수를 타는 집의 아이는 모두 낚시질 하고,
포구 가까이에 사는 시골 여자는 홍합을 채취하므로,
교화된 백성들은 이끄는 대로 따라 온다는 것을 또한 알고 있습니다.
이것이 모두 우리들이 여기서 고기잡이하고
나무하면서 절로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깨달은 것이어서,
마침 묻고 답할 때에 걱정하고 사랑하는 참됨은
또한 떳떳한 성품을 함께 얻은 것에 있느냐에 달려있는 것이니,
귀천과 궁달이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우하영의 천일록 - 어초문답에서...
첫댓글 바쁜시간속에도 작품 활동은 여전하네요 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