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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들레르와 '깊은 세월들'의 몽상
윤 영 애
상명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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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1. 추억 속에 살고 있는 시인
2.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는 존재의 의식
3. 내적인 시간의 깊이
4. 기억의 층등
5. 기다림의 장소, 'les limbes'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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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 리 말
이 논문은 보들레르가 '깊은 세월les annees profondes'이라고 부른 추억의 문제를 검토하려한다.
추억은 문학에서 서정주의의 테마로, 흔히 시의 형태로 나타나는데, 추억이 모든 애정의 삶과 깊이 연결되어 우리의 무의식에 지울 수 없는 자국을 남겨놓기 때문이다. 추억은 또한 우리의 의식의 가장 깊은 곳에서 '나moi'와 은밀하게 만나게 해주며, '나'의 성찰을 위한 계기를 제공해준다. 추억의 과정에서 기억과 상상력의 관계는 특별히 긴밀하며, 시간 속에 잠긴 인간의 의식과 이로 인한 갈등 역시 추억의 문제에 관심을 갖게 한다. 실로 추억의 예술을 말하는 것은 시의 근본적인 문제에 접근하는 것이다. 어느 의미에서 추억에 호소하지 않는 시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보들레르는 예술창조에 있어서 기억술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보들레르적 성격이 잘 드러난 시에서 과거의 소생의 테마는 끊임없이 나타나며, 특히 그가 그토록 찬미했던 들라크로와에 관해 언급할 때도 "이 그림이 특히 추억에서 나올 뿐 아니라, 특히 추억에게 말한다"1)고 추억에 역점을 둔다. 들로크로와는 윤곽보다 색채에 중점을 두고 기억에 의해 재빨리 채색하며, 그의 그림은 감상자를 몽상 속으로 몰고 가는 감동적인 깊이가 있다고 칭송한다. 그는 그림이나 예술작품이 감상자의 기억과 상상력을 최대한 움직일 수 있도록 추억에 호소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Salon de 1846」에서는 '추억이 예술의 가장 큰 판단 기준'이며, '예술은 미(美)의 기억술'이라고 쓴다(œc. p.913). 요컨대 그에게는 모든 형태의 예술이 '삶의 가장 아름다운 시간들'(œc. p. 735)을 재현시키는 수단으로 보인다. 그리하여 그의 펜 아래 '환기적 마법sorcellerie evocatoire', '마술적 환기evocation magique', '마술작업operation magique' 등의 표현들이 자주 나온다. 그가 「발코니Le Balcon」에서 노래한 '행복한 시간을 환기시키는 기술l'art d'evoquer les minutes heureuses'도 그에 대한 좋은 본보기이다.
Je sais l'art d'evoquer les minutes heureuses
Et revis mon passe… (œc. p. 35)
그의 작품 속에서 추억의 문제는 불행한 현재 속에서 행복했던 어린 시절의 녹색 낙원('le vert paradis des amours enfantines')(œc, p.61)이나, 또는 아담과 이브가 그 곳에서 행복했던 '잃어버린 낙원paradis perdu'에의 향수처럼 노래되기도 한다. 그러나 추억은 언제나 '기억memoire'과 상상력을 통한 지난 시간에의 환기 과정에서 그의 시가 그에 의거하는 '행복한 순간les minutes heureuses'의 시적 몽상이라는 근본적인 문제와 만난다.
우리는 『악의 꽃』 전반에 걸쳐 면면히 흐르는 깊은 상실감과, 동시에 집요하게 나타나는 추억의 환기의 테마를 주목하며, 『악의 꽃』의 심리적 풍토를 주의해보려 한다.
1. 추억 속에 살고 있는 시인
『악의 꽃Les Fleurs du mal』 「이상과 우울Spleen et Ideal」편에서 보들레르는 자신이 "천년을 산 것보다 더 많은 추억을 가지고 있다"라고 전생에 대한 기억을 포함하여 깊은 시간의 추억 속에 살고 있는 자신의 고뇌를 노래한다.
J'ai plus de souvenirs que si j'avais mille ans.
(「우울Spleen」LⅩXⅥ œc. p.69 )
이처럼 추억 속에 살고 있는 시인의 '두뇌'는 계산서, 영수증, 소송서류, 연애편지, 시구, 사랑의 노래…등 한 개인의 삶의 역사를 담고있는 온갖 것들이 뒤죽박죽 쌓여있는 장롱 서랍이 되고,
Un gros meuble a tiroir encombre de bilans,
De vers, de billets doux, de proces, de romans,
Avec de lourds cheveux roules dans les quittances
Cache moins de secrets que mon triste cerveau. (œc. p. 69)
때로는 수많은 시체들이 쌓여있는 '거대한 지하 매장소',
C'est une pyramide, un immense caveau
Qui contient plus de morts que la fosse commune. (œc. p. 69)
또는 지난 사랑의 흔적이 남아있는 오래된 '규방'에 비유된다.
Je suis un vieux boudoir plein de roses fanees
Ou git tout un fouillis de modes surannees, (œc. p. 69)
파리의 시인 보들레르는 '꿈이 가득한'(œc. p. 83) 파리 도처에서 자신의 생각과 자신의 모습을 보는 나르시스가 되어 밤낮으로 그 곳을 헤매며 자신의 고통과 우울과 향수를 끌고 다닌다. 덧없는 삶과 '빛 바랜' 사랑을 생각나게 하는 '고도 파리vieux Paris'의 거리에서 '바위보다 무거운 소중한 추억'(「백조Le Cygne」참조 œc. p.82)을 끌고 다니던 「파리풍경 Tableaux Parisiens」의 시인은 도시의 산책에서 지치고, 이제 상처 난 마음을 '시간의 씁쓸한 내음'이 배인 '오래된 향수병'같은 밀폐된 은밀한 세계에서 달래려한다.
Ou dans une maison deserte quelque armoire
Pleine de l'acre odeur des temps, poudreuse et noire,
Parfois on trouve un vieux flacon qui se souvient,
D'ou jaillit toute vive une ame qui revient.
(「향수병Le Flacon」œc. p. 45 )
그에게 특별한 의미를 가진 '사라진 시간들defuntes annees'이 발코니에 기대어 지나간 먼 세월들에 몸을 굽히고있는 나이든 여인에 비유되어 그려지고, 어슴푸레한 저녁 시간이 시의 풍경을 지배하며 시인의 생각은 서서히 어둠의 세계로 가라앉는다. 이 고독 속에서 시인은 그의 '고통douleur'에 생명을 불어넣고, 동시에 밤, 여인, 죽음… 등에 부합하는 기이한 환영을 만들어낸다.
Sois sage, o ma Douleur2), et tiens-toi plus tranquille.
Tu reclamais le Soir; il descend; le voici
(…)
Ma Douleur, donne-moi la main; viens par ici,
(…)
Entends, ma chere, entends la douce Nuit qui marche.
(「명상 Le Recueillement」œc. p. 173∼174 )
마치 "깊은 고독 속에서 회한에 차/ 비밀처럼 감미로운 향기"를 발산하는 꽃처럼(「불운아Le Guignon」œc. p. 16), 또는 '무거운 어둠 속에 조용히 떨고 있는' 서글픈 번데기처럼(「향수병Le Flacon」œc. p. 46), 추억으로 가득 찬 시인은 '깊이를 알 수 없는 슬픔의 무덤' 속에 자신을 묻는다.
Dans les caveaux d'insondable tristesse
Ou le Destin m'a deja relegue;
Ou jamais n'entre un rayon rose et gai;
Ou, seul avec la Nuit3), maussade hotesse,
( 「환영Un Fantome」중 Ⅰ「어둠Les Tenebres」œc. p. 36 )
'밤', '고통', '죽음', '어둠', '깊이', '비밀', '향기', '영혼'…등의 명사들과 함께 이 시들이 들려주는 것은 보들레르가 '깊은 세월들les annees profondes'4)이라고 부른 먼 시간의 추억으로 가득한 세계이다.5)
그리고 이 추억의 세계는 끝없는 회한과 동시에 환희 속에 전개되는 애정의 세계이다. 서글픔, 뉘우침, 또는 '미소짓는 회한Regret souriant'등이 시인과 추억과의 만남의 관계이다.
(…) se pencher les defuntes Annees,
Sur les balcons du ciel, en robes surannes;
Surgir du fond des eaux le Regret souriant; (œc. p. 174)
2.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는 존재의 인식
보들레르의 작품 속의 존재는 현재 속에만 살고 있지 않다. 그에게 존재의 인식은 계속 이어지는 시간의 선(線) 속에서 이루어진다. 이 선은 연장되면서 이미 지나온 길, 심지어는 출생이전의, 소위 '전생vie anterieure'(「전생La Vie Anterieure」참조 œc. p.17)으로 까지 이어진다.
그리하여 시인은 끊임없이 시간의 변형을 의식하며, 현재에 모든 가치를 주기를 거부한다. 누구보다 그는 과거 속에 떨어진 모든 것이 지워지지 않고 영원히 고정되어 자신의 삶의 연결 고리가 되기를 원한다. 그에게 절대적인 가치는 차라리 과거에 있다. 찬란함은 본질적으로 인간의 추락 이전의 과거에 있으며, 그가 '무덤 뒤에 놓인 찬란함'('les splendeurs situees derriere le tombeau' œc. p. 686)이라고 일컬었던 것 속에 있다.
'현대성modernite'의 창시자인 보들레르는 기꺼이 현재의 관조자로서 현실의 직접적인 도전자를 자처했지만, 그 때도 과거의 빛에 현재를 비추는 위치를 취한다. 샬르 뒤 보Charles du Bos가 주목했던 것처럼 그에게는 '과거 속에만 심오함'이 있으며, '모든 것과 교류하며 제 3차원을 새기는 것은 과거'이다.6) 과거가 그에게는 자신의 염원에 부응하는 세계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싸르트르는 샬르 뒤 보의 글을 인용하며 '그에게는(보들레르) 과거와 영원 사이에 절대적인 혼동'이 있다7)고 지적한다.
과거는 시인의 추억의 긴 행렬이며 지나온 길의 총체로써, 단순히 삶의 한 조각으로 남아있지 않고, 그를 끊임없이 동반하며 사물들과 '자아moi'의 관조의 기준이 된다. 보들레르적 과거는 정신 속에 살아있는 적극적인 성격을 가지며, 매우 가까이에 있는 뜨거운 현실의 이미지로 남아있다. 그러나 동시에 이 과거는 이미 손에 닿지 않는 곳에 있다. 과거는 저녁 지평선 뒤로 엄숙하게 사라져 가는 태양과 같다. 시인을 사로잡는 풍경은 해가 뉘엿뉘엿 사라져 가는 시각의 풍경이다. 그는 이 풍경에 자신의 회한의 감정을 투사한다.
그는 자신에게 특별한 의미를 띈 이 석양의 드라마를 일찍이 「천직들Vocations」(『파리의 우울Le Spleen de Paris』)에서, 다양한 성격의 자신의 자화상으로 제시한 네 명의 소년들 중 두 번째 아이를 통해 내비친다.
"Ah! il est deja bien loin;(…) Tenez, il va passer derriere cette rangee d'arbres qui est presque a l'horizon… et maintenant il descend derriere le clocher… Ah! on ne le voit plus!"
Et l'enfant resta longtemps tourne du meme cote, fixant sur la ligne qui separe la terre du ciel des yeux ou brillait une inexprimable expression d'extase et de regret. (œc. p. 282)
시인은 석양을 '생각과 몽상을 담고 사라져 가는, 삶이 실린 영혼의 가장 훌륭한 알레고리'라고 정의한다.8)
지나간 시간을 통해 자신을 되돌아보는 몽상이 주제가 되는 시들에는 아련한 향수와 명상적 서글픔이 채색된 아픔이 있다. 이 그리운 시간들은 영영 사라졌고, 다시 누릴 수 없다는 자각 때문이다.
Comme vous etes loin, paradis parfume
(…)
L'innocent paradis, plein de plaisirs furtifs,
Est-il deja plus loin que l'Inde et que la Chine?
(「슬프고 방황하며Moesta et Errabunda」œc. p. 61 )
이처럼 숨죽인 흐느낌과 채워지지 않은 목마름으로 시인은 '잃어버린 시간'들을 되찾기를 갈망한다. 그러나 겨우 상기된 낙원은 이미 멀리, 머나먼 동양보다 멀리 사라져버렸다. 그것은 존재 너머에 있으며, 그래서 손에 닿지 않는 현실처럼 살아있다. 그를 과거와 떼어놓고 있는 이 시간의 거리는 그의 눈에 결코 뛰어넘을 수 없는 거리로 보인다. 사라진 시간의 깊이는 '사라진 신(神)'이 남겨놓은 허공처럼 매울 수 없는 심연을 만들어 놓았다.
Courons vers l'horizon, il est tard, courons vite,
Pour attraper au moins un oblique rayon!
Mais je poursuis en vain le Dieu qui se retire,
(「낭만적인 석양 Le Coucher du Soleil Romantique」œc. p. 133 )
그리하여 보들레르는 눈을 항상 뒤로하고 있는 인간이며, 그가 자신의 작품 속에 그린, 매일 저녁마다 이미 지나 온 길을 되돌아 보는 '나그네'와 같다. 그의 유일한 중편 소설 『라 팡팔로La Fanfarlo』의 주인공이며, 보들레르의 자화상같은 사뮤엘Samuel의 입을 빌어, 시인은 자신의 모습을 그린다.
Nous ressemblons tous plus ou moins a un voyageur qui aurait parcouru un tres grand pays, et regarderait chaque soir le soleil, qui jadis dorait superbement les agrements de la route, se coucher dans un horizon plat.
(『라 팡팔로La Fanfarlo』œc. p. 493 )
지난날들을 되돌아 응시하며 그가 절망하는 것은 이미 지나간 잃어버린 시간들을 다시는 누릴 수 없다는 사실 때문이다. 잊을 수 없는 강렬한 매력을 지닌 특별한 경험으로 인해 현재와 과거 사이에 뛰어넘을 수 없는 깊이가 팬다. 그것이 「저주받은 여인들Femmes Damnees」에 그려진 이뽈리트의 절망이며, 동시에 시인의 절망이다. 추억과 회한에 마음 흔들린 그녀처럼 시인은 찾고 있다, '이미 멀어진 순수 하늘을', '아침에 지나친 저 푸른 지평선 쪽을 / 되돌아 보는 나그네처럼'.(œc. p. 136)
그리하여 넘어설 수 없는 공간의 깊이가 흔히 시의 배경으로 그려지고, '지평선 뒤로 사라지는 삶이 실린' 영혼처럼, 또는 '언덕 뒤에서 울리는 비올롱 소리'처럼 사라진 시간들과 함께 멀어진 행복이 지평선 저 쪽에서 그에게 끝없는 향수를 자극한다.
Comme vous etes loin, paradis parfume,
(…)
Les violons vibrant derriere les collines
(「슬프고 방황하며Moesta et Errabunda」œc. p. 61 )
3. 내적인 시간의 깊이
2장에서 보았던 것처럼 사라진 '깊은 세월들'은 애정 어린 시간으로 '오늘'을 살아야하는 불행을 더욱 아프게 한다. 그러나 그것은 부정적인 의미만을 갖지 않는다. 그것은 그의 시에서 흔히 '이곳으로부터 멀리bien loin d'ici'(œc. p. 89)라는 표현으로 그린 정신적인 움직임의 모티브가 된다. 그것은 '병적인 독기로부터 아주 멀리bien loin de ces miasmes morbides' 떠나려는 정신의 도약이며 (「비상L'Elevation」œc. p. 10),
'이곳으로부터 아주 먼 곳에서', '지나가는 여인une passante'(「지나가는 여인에게A une passante」)과 다시 만나려는 희망이며, 자신의 '고통', 바꾸어 말해 자신의 추억을 '그들로부터 먼 곳'으로 데려가려는 의지이다.
Ailleurs, bien loin d'ici! trop tard! jamais peut-etre!
Car j'ignore ou tu fuis, tu ne sais ou je vais,
O toi que j'eusse aimee, o toi qui le savais! (œc. p. 89)
회한과 슬픔의 형태로 빈번히 나타나는 이 깊은 시간들은 그러므로 영원히 닫혀진 세계가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잃어버린 상태를 되찾을 수 있는 능력을, 스웨덴보리Swedenborg를 인용해 말하면, 추억의 수호천사인 '내적인 기억력memoire interieure'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보들레르가 '몽상의 기능faculte de reverie'이라고 이름 붙인 성찰적인 기억력이다. 그리고 '상징의 숲foret de symboles'인 이곳 물질계가 그 활동의 영역이다. 바로 이곳에서 이미 멀리 사라진 모든 세계를 불러낼 수 있기 때문이다.
Tout un monde lointain, absent, presque defunt,
Vit dans tes profondeurs, foret aromatique!
(「머리타래 La Chevelure」œc. p. 25 )
시인의 정신이 은둔하고 있는 이 곳 '상징의 숲'은 시인의 끝없는 초혼의 소리가 메아리처럼 울려 퍼지는 곳이다. 여기에 지나간 시간들의 양면성이 있다. 이 넘어설 수 없는 시간의 깊이는 동시에 길이 될 수 도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추억 속에 살고 있는 영혼에게는 모든 물질이 작은 기공으로 새어나가는 '강한 냄새'처럼 움직이는 정신성을 띄고 있다. 시인은 이 냄새가 유리조차 뚫고 들어갈 수 있다고 노래한다.
Il est de forts parfums pour qui toute matiere
Est poreuse. On dirait qu'ils penetrent le verre.
(「향수병Le Flacon」œc. p. 45 )
그리하여 추억 속에 살고 있는 시인에게 시간의 깊이는 '기억술mnemotechnie'의 깊이이다. 시인의 예리한 정신은 물체의 두께를 뚫고 시간과 공간의 깊이를 넘어서 어둠에 묻힌 '깊은 세월' 위로 몸을 굽힌다. 가장 의미 있는 시간의 깊이는 상상력을 움직이게 하고 영혼을 자극하며 정신을 깨우는 것이다. 시간의 깊이는 그러니까 절망과 동시에 희망을 잉태한 건강한 씨앗이며 효모이다. 그것은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으려는 절망적인 탐색이다.
추억에 잠긴 시인은 어둠이라는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는 화가가 되어 때때로 깊은 어둠으로부터 '은총'과 '찬란함'으로 이루어진 유령, 영원한 아름다움으로 치장한 방문객('une belle visiteuse' œc. p.36)이 나타나기를 기다린다. 이 유령의 방문은 추억이 망각으로부터 깨어남을, 의식이 슬픔의 지하실에서 벗어남을 시사해준다.
Dans les caveaux d'insondable tristesse
Ou le Destin m'a deja relegue;
Ou jamais n'entre un rayon rose et gai;
Ou, seul avec la Nuit, maussade hotesse,
Je suis comme un peintre qu'un Dieu moqueur
Condamne a peindre, helas! sur les tenebres;
(…)
Par instants brille, et s'allonge, et s'etale
Un spectre fait de grace et de splendeur.
(「Un Fantome」중 I. 「어둠Les Tenebres」œc. p. 36 )
다음의 시(「향수병」)에서는 감각에 의해 깨어난 추억이 잠에서 깨어난 성 라사로처럼 혼란한 분위기 속에서 파닥거린다.
D'ou jaillit toute vive une ame qui revient,
Mille pensers dormaient, chrysalides funebres,
Fremissant doucement dans les lourdes tenebres,
(「향수병Le Flacon」œc. p. 45∼46 )
시인은 이처럼 잠들어있는 생각들('mille pensers')에 생명을 불어넣어 번데기로 만든다. 그리하여 '음산한 번데기들'은 두터운 어둠 속에서 조용히 떨면서 접힌 날개를 펴주고 그들의 비상을 도와줄 누구인가의 신비한 손을 한없이 기다리고 있다. 때로 지나간 사랑을 닮은 '시체', 추억이 잠깨어 꿈틀거린다.
Ou, Lazare odorant dechirant son suaire,
Se meut dans son reveil le cadavre spectral
D'un vieil amour ranci, charmant et sepulcral (œc. p. 46)
조용히 떨면서 기다리는 번데기나 망각 속에 잠들어 있는 존재들이 깨어날 때면 그것들은 꿈과 시적 몽상에 의해 '장미 빛으로 채색되고, 금박이 장식으로 화려하고, 창공의 빛으로 물들어' 한껏 돋보이는 화려함을 과시할 것이다
Qui degagent leur aile et prennent leur essor,
Teintes d'azur, glaces de rose, lames d'or. (œc. p. 46)
4. 기억의 층들
추억은 우리의 무의식의 영역에 머물러 있으면서 정화되어 훌륭하게 시적 동기가 된다. 『악의 꽃』의 시인은 그의 미학에서 제일의 중요도로 꼽히는 추억의 역할에 관한 확신을 우리에게 전해준다. 추억은 무의식의 영역 속에 묻히고 잊혀진, 자신에게 조차 의식되지 않던 깊은 '나le moi'에 이르려는 희망이며 가능성이다
우리의 깊은 곳에는 살아있는 어둠이, 우리의 억압된 감정의 어둠이, 우리의 추억의 어둠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우리가 망각이라고 부르는 묻혀진 '기억의 양피지palimpseste'에 차곡차곡 쌓인 기억의 층들이다. 보들레르는 드 퀀시의 작품을 번안한 「아편 흡연자Mangeur d'Opium」에서 그의 시학의 특징적인 성격을 제시했다. 이 곳에서 그는 드 퀀시를 인용하여 인간의 머리는 일종의 'palimpseste'와 같다고 쓴다. '쓴 글자를 지우고 다시 그 위에 쓰는 양피지', 그 위에 포개어지듯, '빛처럼 가볍게 하나씩 우리 뇌에 떨어진 이 수 많은 생각과 이미지와 감정의 층들', 새로 만들어진 '하나 하나의 층들은 앞의 것을 묻어버린 것 같지만', 그러나 '그 어느 하나도 소멸되지 않았다.'(œc. p. 451) 따라서 '무의식의 기억memoire inconsciente'은 우리가 단념한 수많은 잊혀진 '나'를 담고 있다.
보들레르는 추억을 우리가 단념한 이 '나'에 이를 수 있는 유일한 길로 규정하고 있다. 향수와 회한을 간직한 추억은 과거를 향한 끊임없는 뒷걸음질을 요구한다. 그러나 시간을 거슬러 다시 사는 것은 두 번 사는 것, 추억은 신비한 행위이다. 그리고 추억이 포착하는 본질은 보들레르가 추구하는 '미'의 추구와 만난다. 그것은 실망만 주는 비속한 현실을 가로질러 지상에 흩어진 분실된 '미'의 조각들을 되찾는 것이다. 추억에 사로잡힌 인간에게는 '미'에 대한 사랑으로 불타고 있는 사람처럼 이곳의 삶은 무덤이며, '병이 가득한 독기'이며, 유배지이다.
오랫동안 보들레르 주석자들은 보들레르의 소위 '기독교주의christianisme'에 대해 의문을 던져왔다. 보들레르의 작품 속에서 이 점에 대해 아무 것도 확인할 수 없으며, 더욱이 그에게서 기독교주의의 정통성을 주장할 아무런 근거가 없는 것으로 그들은 결론짓는다. 그러나 그들 모두가 한결같이 인정하는 점은 『악의 꽃』을 지배하는 캐토릭 교리의 원죄설과 이에 대한 시인의 집착이다. 원죄설에 의하면 시간의 개념이 없는 영원한 현재 속에서 악을 모르는 채 살던 우리 인간이 신에 대한 불복종으로 인해 낙원으로부터 추방당했고, 그리하여 우리는 이제 시간에 예속되어 불완전한 악의 세계에서 살 수 밖에 없다. 행복했던 낙원에의 어렴풋한 기억과 잃어버린 낙원에의 향수 같은 것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에 이 곳에서 인간은 불행할 수밖에 없다. 그에게는 자신이 이 곳 지상에 유배 왔다는 지워지지 않는 생각이 있고, 그리하여 그는 이곳에서 자신의 진정한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고통을 견디고 있다. 포우가 『유레카Eureka』에서 썼던 다음의 구절은 보들레르에게 그대로 적용된다.9)
Nous marchons a travers des destinees de notre existence mondaine, environnes de souvenirs, obscurcis mais toujours presents, d'une Destinee plus vaste, -qui remonte loin, bien loin dans le passe, et qui est infiniment imposante. La jeunesse que nous vivons est particulierement hantee par de tels reves. Nous les reconnaissons comme les souvenirs.
5. 기다림의 장소, 지옥의 변경
보들레르의 작품 속에서 이 추억의 여운은 우리를 '깊은 세월들' 너머로 수수께끼 같은 신비한 세계로 몰고 간다. 잃어버린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은 목마름과 그 때를 기다리는 이 기다림의 상태는 '지옥의 변경les limbes'의 이미지를 생각하게 한다. 더욱이 시인은 『악의 꽃』을 처음 'les limbes'라고 이름붙였다.
아담A. Adam10)은 'les limbes가 두 가지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해석한다. 하나는 '혁명 중에 있는 사회의 혼란'에의 암시이며, 다른 하나는 '하늘에서 영원히 쫓겨난 넋들이 그리워하는' 잃어버린 낙원에의 향수를 암시한다고.
이처럼 『악의 꽃』에는 이곳에 유배되어온 영혼들의 향수 어린 아픔과 이곳을 벗어나 고향으로 돌아가기를 바라는 갈망이 큰 자리를 차지한다. 아무 곳에도 안주하지 못하고 끝없이 방랑의 길을 떠나는 '보헤미안들',
Promener sur le ciel les yeux appesantis
Par le morne regret des chimeres absentes.
(「길떠난 보헤미안들Bohemiens en voyage」œc. p. 17)
「여행Le Voyage」에 그려진 '떠나기 위해 떠나는' 영원한 여행자들, 파리의 거리에서 시선을 하늘로 향한 채 하염없이 무엇인가를 찾고 있는 듯한 장님들, 이들의 이미지를 통해 시인이 그리고 있는 것은 유형 자들의 동일한 회한이며, 추억에의 동일한 향수적 외침이다.
보들레르는 낭만주의의 물결 속에 태어나 그 속에서 자라난 시인이면서 그들의 절제 없는 감정의 노출을 경멸했고, 낭만주의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친 시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낭만주의의 테마인 잃어버린 행복에의 향수가 그의 작품에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낙원으로부터 쫓겨나 이곳에서 귀양살이하고 있는 존재에게 이곳은 '병적인 독기'이며, '안개 자욱한 삶을 무겁게 짓누르는 권태와 끝없는 비애'(「상승Elevation」참조 oec. p.10)이다. 결코 잊을 수 없는 행복에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 이들에게 이곳은 '진흙'과 '눈물'의 바다이다. 이곳 '병적인 독기'로부터 아주 멀리 떠나려는 시인의 끊임없는 비상의 욕구는 이곳의 아무 것에도 가치를 인정하지 못하는 '이방인'의 비밀이며(「이방인L'Etranger」참조 œc. p. 231 ),
먼지만 푸석한 파리의 거리에 유배되어 자신의 먼 고향 호수를 그리워하며 미치광이 같은 몸짓을 하고있는 '백조'의 목마름이며,
Je pense a mon grand cygne, aves ses gestes fous
Comme les exiles, ridicule et sublime
(「백조Le Cygne」œc. p. 82)
조국과 사랑하는 남편을 잃고 적군에 사로잡혀 '고통을 젖빨듯하며' 눈물로 강물을 만들고 있는 엑토르 장군의 미망인 앙드로마크의 회한이다.
Andromaque je pense a vous! Ce petit fleuve,
Pauvre et triste miroir ou jadis resplendit
L'immense majeste de vos douleurs de veuve,
Ce Simois menteur qui par vos pleurs grandit
(「백조Le Cygne」 œc. p. 81)
그것은 또한 '지상에 유배되어' 천박한 뱃사람들 사이에서 온갖 수난을 겪고 있는 '창공의 왕자', 이 '날개 달린 나그네' 알바트로스의 어색하고 우스꽝스런 몸짓이다. 이 유배된 존재들은 모두 시인 자신의 알레고리이다.
Le Poete est semblable au prince des nuees
Qui hante la tempete et se rit de l'archer;
Exile sur le sol au milieu des huees,
Ses ailes de geant l'empechent de marcher.
(「알바트로스L'Albatros」 œc. p. 10)
아담A. Adam11)은 『악의 꽃』 출판에 부친 해설에서 'les limbes'는 '이 잔인한 현실 너머로 안정과 희망의 길을 열어줄 것'이라고 쓰고 있다. 실제로 『악의 꽃』의 맥락으로 보아 'les limbes'의 이미지는 살아있는 추억들이 어떤 신비한 손길로 인한 소생을 기다리는 구원의 장소로 보인다.
보들레르의 감각의 세계에 끊임없이 나오는 이 신비한 소생의 테마는 지나간 '깊은 세월' 속에 묻힌 추억들을 깨우려는 열망과 만난다. 그것은 끝없이 정신의 '비상'을 요구하며, 그러나 동시에 깊이를 알 수 없는 어둠 속으로 끝없이 뒷걸음질친다. '우리의 탐사가 금지된 심연gouffre interdit de nos sondes'(œc. p.35)으로부터 시인이 마침내 잃어버린 행복을 되찾는 데까지 이를 수 있는 것은 보들레르적 상상력과 시적 몽상의 훈련에 의해서이다.
보들레르는 고띠에Th. Gautier에 관한 글에서 '언어를 능숙하게 다루는 것은 일종의 넋을 불러내는 주문sorcellerie evocatoire 과 같다'고 쓴다(œc. p. 690). 그의 글 중에서도 가장 많이 인용된 이 구절은 추억을 주제로 한 글에서만큼 그 의미가 진가를 발휘한 적이 없을 것이다. 기억memoire을 통한 추억의 소생의 가능성을 노래한 이들 시에서 시인은 시적 주문에 의해 어둠을 가로질러 추억의 비밀에 이를 수 있는 가능성과 희망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 오래된 '향수 병'에서 발산되는 추억의 깨어남에는 감각의 도취와 동시에 언어적 현기증이 엿보인다. 현재로부터 발산되는 '추억의 술'(œc. p.26), 그것은 이미 단순히 '현재 속에 복원된 과거'
Charme profond, magique, dont nous grise
Dans le present le passe restaure!
(「Un Fantome」중 Ⅱ, 「향수Le Parfum」 œc. p. 37)
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회오리 같은 유혹이다.
다음에서 추억의 송장이 잠깨어 꿈틀거리는 시구에는 의미와 동시에 소리의 현기증이 있다.
voila le souvenir enivrant qui voltige
Dans l'air trouble; les yeux ferment; le Vertige
saisit l'ame vaincue et la pousse a deux mains
Vers un gouffre obscurci de miasmes humains
(…)
Ou, Lazare odorant dechirant son suaire,
Se meut dans son reveil le cadavre spectral.
(「향수병」œc. p. 46 )
이 시구에서 다음 행에 걸치기enjambement과 함께 반복되는 'v'자(voila-voltige-Vertige-vers)와, v, r, i(souvenir, enivrant, vertige)가 교차하는 메아리의 연속, 당당한 능동적인 의미를 가진 현재분사('enivrant')와 아래쪽 세 시행에서 평행의 위치를 차지하며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세 개의 과거분사('trouble'-'vaincue'-'obscurci')의 의미와 소리의 대조, 이것으로도 이미 언어적 마법('sorcellerie evocatoire')이다. 또한 시절의 후렴의 순환적인 형태와 pantoum12)이 가져오는 회오리 같은 매력도 반복되는 주문처럼 추억을 불러내는evoquer 효과를 가져온다.
시행의 반복은 시어에 기억의 환기력을 불어주고, 어투에 추억의 메아리같은 효과를 준다. 그리하여 「발코니Le Balcon」에서 '추억의 어머니'는 그들이 함께 은닉하고 있었던 은밀한 곳으로부터 고개를 들어 이 곳 현재로 되살아나고,
Mere des souvenirs, maitresse des maitresses,
O toi, tous mes plaisirs! o toi, tous mes devoirs!
la douceur du foyer et le charme des soirs,
Mere des souvenirs, maitre des maitresses! (œc. p. 34)
'행복한 순간'의 연속적인 나열과 여백은 보들레르가 바그너 음악에 대해 얘기한 '청취자의 상상력에 의해 완성되어야 할 여백'의 역할을 한다(œc. p.1210-1211). 낱말들 사이의 여백은 말해지지 않은 행복을 불러일으키는 공간으로서의 여백이다.
Les cours, les chansons, les baisers, les bouquets
Les violons vibrants derrieres les collines,
Avec les brocs de vin, le soir, das les bosquets
(「Moesta et Errabunda」œc. p. 61)
―O serment! o parfum! o baisers infinis!
(「발코니Le Balcon」œc. p. 35)
「발코니Le Balcon」에서는 분위기의 동질성이 형태와 밝고 연한 채색glacis13)에 의해 '행복한 순간les minutes heureuses'의 연속성을 확보해주고,
Les soirs illumines par l'ardeur du charbon,
Et les soirs au balcon, voiles de vapeurs roses.
(…)
Que les soleils sont beaux dans les chaudes soirees! (œc. p. 35)
확산과 억제를 유동적인 변화와 교차적 반복법에 결합시킨다.
Que les soleils sont beaux dans les chaudes soirees!
Que l'espace est profond! Que le cœur est puissant!
(…)
Que les soleils sont beaux dans les chaudes soirees! (œc. p. 35)
또한 각 행의 끝에서 다정한 신체적 환기('tes pieds', 'ses mains', 'mes yeux', 'tes prunelles') 로 균형을 주고,
Et tes pieds s'endormet dans ses mains fraternelles
Et mes yeux dans le noir devinaient tes prunelles (œc. p. 35)
2행과 4행에서 시행을 2분하는 행복한 이중성으로 흔들며,
O toi, tous mes plaisirs!/ o toi, tous mes devoirs
(…)
Que l'espace est profond!/Que le coeur est puissant!(œc. p. 34)
모든 지속성의 시작법이 작용하여 사라진 시간 전부가 현재 속에 되살아나고, 감각과 추억이 일치하면서 '추억의 어머니 mere des souvenirs'라는 주요 모티브를 서서히 시 속에 쏟아 넣는다.
따라서 '깊은 세월'의 깊이는 절망적인 어둠이 아니다. 그것은 차라리 모든 정신활동의 집합소인 내적인 시간의 어둠이다. 이 어둠은 모든 형태의 생각들, 감각, 추억, 감정들이 그곳에 파고들어 새롭게 다시 태어나는 내적인 깊이이다. 우리의 '자아'가 '깊은 세월'의 두께 속에, 나의 존재의 잊혀진 근원에까지 내려가 마침내 과거가 다시, 떠오르는 태양처럼, 새롭고 풍요하게 환기될 때 추억의 가장 큰 감동이 제시될 것이다.
Ces serments, ces parfums, ces baisers infinis,
Renaitront-ils d'un gouffre interdit a nos sondes,
Comme montent au ciel les soleils rajeunis
Apres s'etre laves au fond des mers profondes?
- O serments! o parfums! o baisers infinis! (œc. p. 35)
맺음말
'깊은 세월'의 기억이 줄곧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 시인 보들레르는 향수의 대상인 잃어버린 과거와 불행한 현재 사이에서 찢기며, '영원한 열기'(œc. p.25)가 지배하는 꿈의 세계로 비상하기 위해 희망에 불을 붙이려 애쓴다. 그가 과거와 현재 사이에서 갈등하며 이 열기와 연속성의 흐름을 되살리기 위해 무한한 몽상의 지대에 몰입할 수 있을 때, 요컨대 깊이를 알 수 없는 시간의 심연으로부터 사물들의 어둠을 내면의 빛에 연결시켜 더욱 선명한 색채와 더욱 풍부한 감동으로 되살아난 잃어버린 시간에의 환희를 실현시킬 수 있을 때, '깊은 세월'의 무한한 풍요로움이 제시될 것이다.
보들레르는 향수의 대상인 잃어버린 시간과 사라진 세계를 되살리기 위해 먼저 구체적인 사물들과 일상적인 감각의 세계에 파고든다. 요컨대 꿈의 지대를 향해 비상하는 정신의 도약이 친근한 감각으로부터 시작된다. 보들레르의 작품 속에서 모든 감각의 체험은 에스프리의 움직임을 자극한다. 감각은 뇌에 마치 전류의 흐름 같은 소용돌이를 자극하고, 그리하여 감각은 감동을 잉태시키고, 이 감각들과 감동은 또 하나의 영역인 정신의 영역으로 확산된다.
이처럼 보들레르는 그에게 기쁨을 준 감각의 삶을 한 차원 높게 승화시킨다. 따라서 조금만 이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살펴보면 그가 육체나 물질에서 끌어낸 보잘 것 없는 감각으로부터 어떻게 향수의 대상인 생각과 감동으로 가득한 세계를 다시 창조해 냈는지 알게된다. 이런 문제들에 대한 검토가 다음 우리의 연구의 과제로 남는다. 이 곳에서 보들레르가 어떻게 기억술에 의해 감각과 상상력이 이루어내는 이상의 세계를 구축하며, 감각들 사이의 교감과 감각과 정신과의 교류에 의해 어떻게 추억과 꿈과 몽상이 작용하는 시의 절정을 구가하는지도 검토하게 될 것이다.
참고문헌
Charles Baudelaire : Œuvres Completes, ed. Le Dantec, revisee, completee et presentee par Claude Pichois, Bibliotheque de la Pleiade, Gallimard, Paris, 1961
: Curiosites esthetiques, l'Art romantique et autres œuvres critiques, ed. H. Lemaitre, Garnier Freres, 1962
: Les Fleurs du Mal, ed. A. Adam, Garnier Freres, 1959
: Petits Poemes en Prose, ed. H. Lemaitre, Garnier Freres, 1962
J. P. Sartre : Baudelaire, Gallimard, Paris, 1947
P. J. Jouve : Tombeau de Baudelaire, A la Baconniere, Neuchatel, 1942
F. W. Leaky : Baudelaire and Nature, Manchester University Press Barnes & Noble, inc. 1969
P. Emmanuel : Baudelaire, Desclee de Brouwer, Paris, 1967
<Resume>
'Les annees profondes' chez Baudelaire
Yune Young-Ai
Manier savamment une langue, c'est pratiquer une espece
de sorcellerie evocatoire. ( œc. p. 690 )
Cette phrase etant une des plus citees de toute œuvre de Baudelaire, il peut paraitre insipide de la reproduire encore. Il semble neanmoins qu'on n'ait pas suffisamment tenu compte de toute sa portee. Cela est surtout remarquable dans les poemes ou l'on voit l'attente de la resurrection du souvenir. Le souvenir, epure par son sejour dans le domaine de l'inconscient, constitue la matiere poetique par excellence. Baudelaire nous laisse y voir une declaration de premiere importance, en ce qui concerne son esthetique : le role du souvenir, l'espoir d'atteindre le 'Moi' profond, enfoui, oublie dans le domaine inconscient, et le 'Moi' inconnu de lui-meme. Car il est au fond de nous des tenebres vivantes, celles de nos refoulements et de nos souvenirs ensevelis. Ce sont les couches superposees des palimpsestes enfouis dans ce que nous appelons l'oubli; 'la memoire inconsciente'(voir 『Paradis Artificiels』, 「Mangeur d'opium」)contient une multitude de 'Moi' auxquels nous avons renonce. Le souvenir est une forme mystique; la substance qu'il saisit est la beaute. C'est une faculte de "saisir les parcelles du beau egarees sur la terre, de suivre le beau a la piste partout ou il a pu se glisser a travers les trivialites de la nature dechue(œc. p. 1067)". Pour l'homme hante par le souvenir, comme celui qui est brule par l'amour du beau, la vie est une tombe, un 'miasme morbide', ou il preserve par la souffrance grandissante de l'exil, l'experience innee de sa vraie patrie.
Cette soif de rejoindre le pays natal et cet etat d'attente nous font penser a l'image des 'limbes'. 'Les limbes' dans la tradition catholique etaient le lieu de l'attente, ou les ames exilees, dans l'Ancien Testament, tout en gardant le souvenir vif du paradis, attendaient la venue du sauveur qui, par le mystere de la Redemption, leur a ouvert les portes du paradis.
Cette presence mysterieuse de la resurrection se retrouve dans le monde sensible de Baudelaire, qui n'a d'autre but que d'evoquer les souvenirs enfouis dans 'les annees profondes'; elle reclame le moment de l'essor de l'esprit, et pourtant recule infiniment dans l'insondable du gouffre. C'est par l'exercice des reveries contemplatives et de l'imagination baudelairienne que le poete parvient a retirer un bonheur vivant d''un gouffre interdit de nos sond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