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가 있는 맛집] 막국수
서민 음식에서 귀한 식품 대접받아
'막국수=서민, 냉면=반가' 위상 역전
밀가루ㆍ전분 싸지고 메밀 가격 급등
'100% 메밀 막국수' 등장 인기몰이
'춘천산골막국수' '양양막국수' 명성
입력시간 : 2015/04/30 07:01:51 / 수정시간 : 2015.05.16 10:07:14
양양메밀막국수
샘밭막국수
춘천산골막국수
고성막국수
막국수는 서민의 음식이다. 냉면은 반가의 음식이다. 냉면이나 막국수나 모두 메밀을 주재료로 삼는다. 같은 재료를 사용하니 비슷한 음식이 나온다. 그러나 두 음식은 출발부터 다르다. 막국수의 메밀 함량은 냉면보다 더 높다. 예전에도 그러했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메밀이 억울하다"는 생각을 하기 십상이다. '100% 메밀로 만든 막국수'는 이제 흔해졌다. "채널A_착한식당"에서 강원도 횡성군의 '삼군리메밀촌'을 찾아냈다. 그 후 불과 몇 년 사이 숱한 '100% 막국수 식당'들이 나타났다.
음식전문가들도 "100% 막국수라고 해서 반드시 맛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한다. 막국수 음식점을 운영하는 이들도 "메밀함량 70% 정도의 막국수가 맛있다"고 말한다. 문제는 그 '맛', 막국수의 '맛'이 무엇이냐는 점이다.
"입안에서 씹는 맛이 좋고 메밀 고유의 향을 느낄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메밀 고유의 향이야 아무래도 메밀 100%가 낫다.
메밀은 가장 극적으로 변한 식재료다. 조선시대 가뭄, 홍수 등으로 흉년이 들고 굶주린 백성들이 늘어나면 궁중에서는 바로 '구황경차관(救荒敬差官)'을 파견했다. 우선 현지의 상황을 면밀히 살피고 필요한 조치를 취한다. 때로는 지역 관아의 창고를 열고 곡식을 내놓기도 한다. 제일 중요한 업무는 '현장 파악'이다. 현장의 이야기를 그대로 중앙으로 보낸다. 중앙에서는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의논하고 시행한다. 구황경차관의 보고서에 메밀은 단골로 등장한다. "메밀이 익고 있어서 추석 무렵에는 먹을 수 있다. 도토리도 아직 흔하고 가을에는 식용으로 사용할 만한다"는 식이다.
'맥(麥)'은 3종류다. 대맥(大麥), 소맥(小麥), 그리고 교맥(蕎麥)이다. 교맥이 우리가 말하는 메밀이다. 목맥(木麥)이라고도 한다. 대맥은 보리고 소맥은 밀이다. '맥'은 모두 주요한 식량자원인데 그중 교맥, 메밀의 용도가 좀 떨어진다. 식량으로 삼기도 어중간하다. 그러나 주요한 구황식물이다. 한해 여러 차례 수확이 가능하고 거친 밭에서도 자라고 웬만한 가뭄은 이겨낸다. 이정도로 기특한 식물도 없다. 문제는 귀한 티가 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검은 껍질이 있고 그 껍질을 까내도 먹을 만한 분량의 가루가 나오진 않는다. 죽지 못해 먹긴 하되, 늘 먹고 싶은 음식은 아니라는 뜻이다.
냉면과 메밀을 갈랐던 것은 엉뚱하게도 국수를 만들 때 넣었던 밀가루 혹은 전분 때문이다. 냉면이 반가의 음식인 이유도 바로 전분이나 밀가루 때문이다. 밀가루는 귀했다. 서민들은 사용하기 힘든 식재료다. 전분은 더 귀한 식재료다. 곡물을 곱게 갈아서 물을 섞어서 오랫동안 둔다. 전분 성분이 아래로 가라앉으면 곱게 물을 따라내고 아래에 가라앉은 고운 가루를 모은다. 전분(澱粉)이다. 녹말분이라고도 한다.
메밀의 위상은 완전히 바뀌었다. 귀했던 밀가루나 전분은 비교적 가격이 싸졌다. 메밀은 거꾸로다. 메밀가루의 가격이 밀가루에 비해서 두 배, 세 배, 다섯 배를 부르기도 한다. 국산 메밀을 기준으로 밀가루 가격의 8배를 넘긴 적도 있다. 메밀가루가 아니라 금가루인 셈이다. 밀가루의 가격은 낮아지고 메밀가루의 가격은 높아졌다. 메밀 100%로 만든 메밀막국수가 구황식품이고, 죽지 못해서 먹었던 음식이었는데 어느 순간 다이어트에 좋고 소화도 잘 되는 귀한 식품의 자리를 차지한 것이다.
냉면은 그동안 귀한 대접을 받았다. 귀한 밀가루와 전분을 사용한 반가의 음식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메밀 100%가 아닌 메밀음식'이 되어 버렸다.
육수도 마찬가지다. 고기가 귀한 시절, 고기국물은 최고의 대우를 받았다. 순조임금 시절에 이미 돼지고기를 냉면과 같이 먹었다는 기록이 나오고 정조 시절 유득공의 <서경잡절>에 돼지고기와 냉면이 같이 등장한다. 길거리의 매식상품으로 냉면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반가의 음식이고 시장에 내다파는 음식이니 귀한 냉면에는 돼지고기를 사용했다.
가난한 산골의 막국수는 고기국물이 불가능하다. 결국 가까이서 쉽게 구하여 먹을 수 있는 동치미 국물, 백김치 국물을 얹었다.
다산 정약용의 시에도 '백김치 국물과 더불어 냉면'을 먹었던 기억은 있지만 역시 돼지고기 국물이라도 얹어서 먹는 것이 제격이다. 돼지고기는 꿩고기로, 쇠고기로 바뀐다. 오늘날 많은 냉면집들이 쇠고기+돼지고기로 국물을 내고 그 수육을 얹는 이유다.
동치미국물, 백김치국물이 귀해졌으니 오히려 막국수 전문점들은 속을 썩인다. 아이러니하다.
서울의 메밀전문점을 몇 곳 소개한다. 을지로4가 전철역 부근의 '춘천산골막국수'는 막국수를 전국적으로 퍼뜨린 공로가 있다. 재개발 대상지역이라서 내부는 어수선하다. 나이든 단골들이 손님의 주류다. 동치미국물을 내놓는데 대중적인 맛이다. 달착지근한 맛을 좋아하면 권한다. 막국수의 메밀함량은 여름철 기준 대략 50% 선이다.
방배본동의 '양양메밀막국수'는 100% 메밀 면을 내놓는 집이다. 면 하나만 보자면 최고 수준급의 대단한 집이다. 곁들여서 내놓는 음식들도 괜찮다. 수수하지만 단아한 음식이다. 저녁에 가볍게 술 한 잔 해도 좋을 집.
서초동의 '샘밭막국수'는 메밀 70∼80%의 막국수를 꾸준하게 내놓는다. 수육 몇 점과 빈대떡 등을 세트로 내놓는다. 막국수를 먹으면서 기품을 느낄 수 있는 괜찮은 곳이다.
방화동 '고성막국수'도 권할 만한 집이다. 면은 아주 좋은데 육수가 대중적으로 달다. 시내에서는 거리가 제법 멀다는 것도 단점.
황광해 음식칼럼니스트
출처 : 인터넷한국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