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문자를 통하여 의사소통을 하며 과거의 정신과 문화유산을
계승·유지·발전시켜 나가기도 한다.
따라서 문자는 인류 미래의 새로운 역사와 문화를 창출하는 원동력이
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며, 인간의 사고와 지식이 날로 발전하면서
이제 문자는 단순한 기록을 위한 매체로서가 아닌 조형 예술의
독립된 학문으로까지 발전하게 되었으니, 인류 문화 예술 창달에
가장 위대한 영향력을 가진 것으로 인식의 전환을 이루게 된 것이다.
이제 문자는 서예가나 디자이너들만의 연구대상으로서가 아닌
회화, 조각, 공예 등 거의 모든 미술 장르에 걸쳐 중요한 작품소재로
다루어지고 있는데, 이는 무엇보다도 문자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소재적 가치와 신비성에 동양과 서양 모두가 공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원전 18세기 경부터 이미 서각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우리의
생활 속에 깊숙이 자리하고 있었고, 한국인의 문화적 독창성과 창의성,
더 나아가 한국문화의 특성까지도 그 속에 깊숙이 스미어 있기에
우리의 서각은 문화사적 의미로 보나 서예사적 의미로 보나
그 의의는 매우 크다고 할 만하다.
이처럼 찬란했던 우리의 전통 서각이 불행하게도 기능작업에 대한
한국적 천민의식과 우리 문화에 대한 일제의 말살정책 등으로 점차
힘을 잃게 되었다. 그러나 1980년대 초 서각을 연구하는 일련의
작가군이 형성되면서 '한국서각협회'가 창립되었으며, 이에 따라
잊혀져 가던 우리의 전통 서각은 다시 활력을 찾게 되었다.
이후 '한국서각협회'는 대규모 전시를 갖게 됨은 물론 전국적인
조직과 서각의 대중화에 앞장섰던 것이다.
그런가 하면 1990년대에 들어오면서 서각계에 또 한번의 역사적인
충격이 일어났다. 그것은 새로운 예술적 이념을 가진 또 다른 작가군의
등장이며 이어 '한국현대서각협회'의 창립이다.
이들의 새로운 작품이 발표되면서 한국 화단과 서단에 미친 충격은
실로 큰 것이었다.
예컨대, 지금까지 보아오던 서각의 개념과는 전혀 다른 시각으로
서각을 현대 조형예술의 차원으로 발전시켜 놓았다는 점에서
국내외적으로도 크게 인정받게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그동안
여러 차례의 국제 행사를 통하여 한국서각의 미래지향적 작품성향에
대해 높이 평가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제 우리의 서각인들은 서예와 전각은 물론 회화나 조각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고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 사실에 자긍심을
가지고 있으며 더욱이 자생적으로 출발한 우리의 서각이 드디어
현대조형예술로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크게 고무되어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의 서각은 서예라고 하는 오랜 역사적 배경과 그
예술정신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면서도 그 예술적 양식과 형식에
있어서는 현대회화와 조각을 동시에 수용하고 접목시키는데
성공함으로써 한자 문화권의 미술만이 아닌 21세기 새로운
세계 속의 조형예술로 발전하리라 믿는 바이다.
이러한 시대적 역사적 흐름과 과제를 담보해 내기 위해 우리는 지난
1999년 5월, 아무 조건 없이, 한동안 양립되어 오던 한국서각의 2개
단체인 '한국서각협회'와 '한국현대서각협회'의 대통합을
선언하였던 것이다.
이로써 한국서각의 위상은 더욱 고양되었고 이후 3차에 걸친 국제전과
국내전을 치루면서 한국서각인의 저력을 과시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제 한국의 서각은 한자문화권만의 예술이 아니라 세계인이
공감하는 진정한 세계미술로 확산·발전하게 되었으며, 대통합을 이룬
협회의 지속적 발전과 막중한 역할 수행을 통해 더욱 비약적 발전을
도모할 것으로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