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이드북에 등장하는 스카르두의 폴로경기장은 그야말로 인상적이다.
특히 폴로경기장 뒤로 보이는 바위산과 멀리 보이는 설산의 조화는 스카르두의 장엄함과 아름다움을 그대로 대변하는 듯하다.
< 스카르두의 폴로경기장 from Pakistan Insight Guide >
스카르두는 발티스탄(Baltistan)의 행정 중심지이자 교통의 요지이다. 길기트에서 동쪽 240Km 떨어진 이 오지 아닌 오지는 해발 2290m에 위치하여 있으며, 발토르빙하가 녹아 흐르는 쉬가(Shigar)강과 쉬옥(Shyok)강이 순차적으로 인더스강과 합류하는 곳이다.
스카르두 계곡은 길이 40Km, 폭 8Km 정도의 규모이며, 인더스강과 시가강의 합류지점 인근에 스카르두 시내가 위치해있다. 강 건너에는 3000미터 이상의 뾰족한 봉우리들이 우뚝 솟아있다. 발티스탄의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살구나무와 폴로경기가 유명하다.
스카르두가 속해있는 발티스탄은 어떤 지역인가?
발티스탄은 카라코람 지역의 광대한 빙하와 7000미터 이상의 고봉과 산재된 마을을 포함하는 지역이다. 이 지역은 동쪽으로 인도의 잠무카시미르지역에 해당하는 라다크와 서쪽으로 길기트지역과 접해있으며, 북쪽(훈자지역)은 중국과 접경이다.
1세기에서 5세기 사이에 발티스탄은 쿠샨왕조와 굽타왕조의 영향을 받아 불교를 받아들였다. 8세기경에는 많은 티베트인들이 이 지역으로 들어와서 라다크와 같이 작은 티베트를 형성했다. 그래서 발티스탄 지역에는 지금도 많은 불교유적이 발견되고 있다. 12세기 이후에는 이슬람의 영향을 받았다. 따라서 발티스탄지역은 티베트 문화와 이슬람 문화가 혼재되어 있다.
과거 발티스탄에는 크게 3개의 왕조가 들어서 있었다고 한다. 쉬가(Shigar), 카플루(Khaplu), 스카르두(Skardu)왕조이다. 쉬가의 아마차(Amacha)왕조는 훈자의 왕이 세웠다고 하며, 카플루의 약부(Yagbu)왕조는 투르크 계열이며, 스카르두의 막폰왕조(Maqpon)는 세력이 강해서 16세기 무렵에는 무굴왕조와 화친할 정도로 강성했다고 한다. 발티스탄은 독립국 형태를 유지하다 19세기 중엽 영국군이 개입한 이후 우여곡절 끝에 1948년 발티스탄은 파키스탄의 영토로 편입되었다.
인더스모텔에 여장을 푼 우리는 바로 트레킹에 필요한 장비들을 대여하러 스카르두시내로 나갔다.
스카르두 시내는 마치 네팔과 비슷한 분위기이다. 시내라고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곳보다 상점들이 밀집되어 쭉 늘어서 있는 곳이다. 다만 사람들의 복장과 생김새가 다를 뿐이다. 이들은 거의 대부분 이슬람교를 신봉하므로 복장이 이슬람 특유의 긴옷으로 통일되어 있다.
사방을 둘러보면 그야말로 시내의 가로수만 푸른 색일뿐 이 도시는 회색과 흙빛으로만 이루어져 무미건조함을 느끼게 한다.
10여년전 라마단 기간에 스카르두를 찾은 공산(空山)님은 그의 책 "히말라야 이야기"에서 스카르두에 대한 첫인상을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회갈색의 바짝 마른 거리는 지글거리는 태양 아래 숨죽이는 듯 정적만 감돌았다. 나무는 고사하고 풀 한 포기도 발견할 수 없는 땅바닥에서는 먼지만 풀풀 날렸다. 흙벽돌로 지은 초라한 상가들은 모두 문을 닫아걸었다. 영락없는 서부영화의 한 장면이었다... 코란이 암송되고 있는 듯 특유의 단조로운 음률이 가느다랗게 거리에 잦아들고 있었다. 작은 돌개바람 하나가 먼지를 말아 올리며 메마른 거리를 지나갔다. 텅 빈 거리, 군인, 철시한 상가, 팽팽한 긴장감은 이곳에서 일어날 일이 예사롭지 않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었다. 그것은 이방인에게는 두려운 공간과 시간이었다. 이상이 스카르두 입성 첫 느낌이었다.
그리고 도착하는 날 우연히도 광란의 모하람 축제를 보게된다.
이 조그만 도시 어디서 그 많은 사람들이 숨어있었는지 사방팔방에서 웃통을 벗은 사내들이 광장으로 쉴새 없이 몰려들고 있었다. 조용하지만 물결처럼 몰려드는 인파를 보며 검은 그들의 턱수염에 강렬한 인상을 보았다. 그것은, 여자는 없고 꼬마부터 허리 굽은 노인까지 온통 사내뿐이라는 것이었다.... 군중 뒤편에서 한 무슬림이 낭창낭창한 반월도를 가지고 엇갈린 동작으로 등판을 철썩거리며 나타났다. 반월도 낭창한 옆면을 등 뒤로 휘둘러 손바닥으로 가슴 치듯 번갈아 치는 모습이었다. 사람들은 그가 군중가운데로 갈 수 있도록 길을 터주었다... 연신 가슴을 치며 목 쉬어라 노래부르는 군중 가운데로 이번에는 칼을 여섯 개나 든 사람이 나타났다...(중략)
공산님은 그 때를 회상하며 이 조그만 도시가 그다지 바뀌지 않은 것 같다고 덧붙인다.
우리는 여행사에서 운영하는 조그만 창고에 들러 트레킹에 필요한 장비를 일괄 렌트하였다.
텐트, 버너 및 각종 그릇이 대부분인데 우리 3명이 쓸 장비외에도 우리들이 고용할 포터들의 것들도 모두 렌트하는 것이다. 우리 정도의 인원이 고용할 포터의 수는 가지고 갈 짐에 따라 다르지만 대략 10~15명이라고 한다.
장비 렌트를 마친 우리는 시장으로 가서 마른 살구와 감자등을 사기로 하였다. 세계 어디를 가든 시장은 새로움을 자극하는 재미있는 곳이다. 또한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우리를 쳐다보는 현지인들과의 만남도 흥미로운 일이다.
호텔로 돌아가는 길에 마침 우리를 K2 BC까지 안내할 가이드인 익바르를 만났다. 그는 다른 팀의 가이드를 마치고 지금 막 돌아오는 길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무척 지쳐보인다.
< 가운데 사나이가 가이드 익바르 >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가이드의 권한과 그 역량이 생각한 것 보다 무척 크다는 점이다. 그의 손에 트레킹의 전체 일정과 고용될 포터의 숫자등이 달려있기 때문이다.
호텔로 돌아온 후 우리는 내일 아침 출발하기로 결정하였다. 한국에서 사간 식량들을 날짜별로 포장하고 그 내용물을 밖에서 알아 보도록 태그를 붙였다. 필요없는 것들은 호텔에 맡겨두기로 하였지만 가져가야할 짐들이 의외로 많다.
한편 K2 베이스캠프 이후에 넘기로 했던 곤도고로 패스는 이번 시즌 눈사태가 나서 막혀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발토로빙하의 긴긴 길을 왕복하는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곤도고로 패스를 넘을 때 사용하기 로 한 개인 안전장비(안전벨트, 카라비너, 슬링 등등)들을 모두 놓고 가기로 하였다. 심지어 아이젠까지도 남겨두기로 하였다.
곤도고로 패스를 못 넘는다는 사실에 한편으로는 안도가 되면서도 한편으로는 섭섭한 감정은 무얼까.
미지의 어드벤쳐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이 없어진다는 것은 도전의 짜릿함도 없어지게 되는 것이다. 대부분의 인생사가 이처럼 동전의 양면과도 같기에 재밌는 것이다.
그러나 삶의 계획들은 항상 예측한대로 되는 것만은 아니어서, 지금 여기서의 어떤 결정이 이후에도 항상 원칙처럼 쫓아다니는 것은 아니다. 특히 대자연의 일이란 인간사로서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오묘함이 있기에 더욱 그렇다.
정말 길었던 1박2일의 고단한 여정에도 불구하고, 몸과 마음은 팽팽히 긴장한 상태가 되어 새로운 세계로 들어갈 준비를 하게 된다. 이런 벅참으로 잠 못이룰 때는 술보다 좋은 묘약은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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