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량진역> 주변
‘노량진역’은 80년대 초반 나에게는 익숙한 장소였다. 늦게 술을 마시던 인천 친구의 막차를 배웅하기 위해 나왔던 곳이기도 하며, 대학의 쌍쌍친구들이 모여서 수산시장의 회를 즐겼던 장소이기도 하였다.(또한 혼자 참석한 나에게 집중된 술잔을 소화하느라 술에 취해 거리에서 잠들었던 장소이기도 하다.) 노량진역은 이렇게 대학시설의 추억과 연결되어 있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하면서 노량진을 방문할 기회는 적어졌다. 직장과의 거리도 먼 편이었고 서울 중심으로 이동하는 교통시설도 다양하게 늘어나면서 전철 이용은 점점 줄어들었고 노량진은 자주 방문하는 장소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그런 시간적 공백 속에서 노량진은 입시학원의 중심으로 바뀌었고 노량진은 다만 그저 ‘풍문’으로 듣는 뉴스 속의 장소가 되어갔다.
미세먼지가 전국을 지배하던 날, ‘노량진역’의 기억이 이곳으로 발길을 움직이게 하였다. 몇 번의 차를 갈아타는 불편함은 있었지만 기억의 장소를 찾는 일은 언제든지 즐거움을 동반한다. 노량진역사와 수산시장은 새롭게 리모델링했지만 기본적인 구조는 바뀌지 않았다. 1호선에 새롭게 9호선이 연결되어 역사 주변은 더욱 복잡해졌고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흐름이 끊이지 않는 장소였다.
이제 노량진의 키워드는 ‘학원’이다. 공무원 학원을 중심으로 한 수많은 학원들이 이곳에 자리를 잡고 있다. 사법고시가 사라진 지금, 노량진의 학원 밀집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 노량진 학원가에 높게 서있는 ‘학원재벌’의 건물은 ‘학원업’이 결코 작은 규모가 아님을 시각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이곳의 물가는 대한민국 어느 곳보다 싸다. 수많은 식당에서 1인 메뉴을 취급하고 있으며 음식 값도 어느 곳보다도 저렴하다. 주머니가 얇은 수험생들이 밀집한 장소의 특징이다.
이 지역의 대표적인 명소는 일명 ‘컵밥거리’이다. 컵밥은 시간에 쫓기는 수험생들이 빠르면서도 영양가 높은 음식을 먹기 위해 컵에 다양한 음식을 넣어 만든 것이다. 수험생이 먹던 음식이 이제는 도로 주변에 관광지역으로 확산되었고 주말에는 수험생 이외에 사람들도 많이 찾고 있다. 나도 하나에 1,000원하는 어묵조림과 와플을 먹었다. 가격 대비 음식의 질도 맛도 좋았다.
이 지역은 한국 사회의 현실이 극명하게 투영된 곳이다. 빈번하게 특집방송의 소재가 되듯이 수많은 젊은이들이 취업불안에 시달리며 공부에 몰두하는 전쟁터이다. 엄청난 수요 때문에 번창하는 학원들과 강사들 속에서 개인들은 철저하게 자기 세계 속에만 몰입되어 있다. 시간을 아껴 성취해야 할 목적이 분명한 곳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목적의 끝 또한 지속적인 기쁨을 줄 수 없다. 다만 현재의 피곤함과 불안함을 일시적으로 은폐하는 미래일 뿐이다. 미래의 시간은 안정과 휴식을 허용하지 않는다. 끊임없는 변화와 변화에 대한 적응만을 요구한다. 노량진은 끊임없는 경쟁의 미래를 적나라하게 관찰하게 하는 지역이다.
첫댓글 '한강을 건너면 노량진!'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지. 뭔가 오래된 느낌을 주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