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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절 식생활(食生活)
○ 1. 개요
○ 2. 식품의 선택
○ 3. 조리법
○ 4. 식사행동
▣ 1. 개요
과천시는 1986년에 시로 숭격된 신흥 도시에 속하므로 도시 대부분이 현대식 주거 공간인 아파트로 이루어져 있다. 시민들의 생업 경제는 주로 제3차 산업에 종사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전체 시민 중 약 1%정도의 인구가 농업에 종사하고 있다.【주】1) 따라서 대단위 도시에서 요구되는 백화점이나 슈퍼마켓 등이 시민들이 식품재료를 구입하는 곳이다. 그러나 일부 아파트 단지 곁에 시에서 허가한 임시 노점이 있어 재래 시장의 모습으로 시민들의 식품 구매 창구 노릇을 하기도 한다.
인구 구성에서도 토박이보다는 전국 각 지역에서 이주한 사람들로 대부분 구성되어 있다. 개발 이전의 생업을 계속 이어가면서 토박이들이 살고 있는 지역은 갈현동·과천동·문원동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이 중 갈현동의 가일마을이나 범말 등지는 오래된 토박이들이 여전히 농업을 생업으로 이어 가고 있어 과천의 옛 식생활 모습을 찾아 볼 수 있는 지역으로 여겨진다.
본 조사는 과천이 가진 이러한 역사적 배경 때문에 과천 시민 전체가 공유하는 식생활을 살피는 데 한계를 가진다. 아울러 과천 시민 대부분의 공통된 식생활 현상을 뚜렷히 정리하는 데도 한계가 있다. 왜냐하면 과천시는 다른 지방의 도시들과 달리 서울의 위성도시로서의 구실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곧 인구 구성에서 전국적이며, 식생활 현상에서도 당연히 전국적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식생활은 한 지역의 기후와 풍토, 산물, 사회문화적 배경에 의해 다른 지방과 구별되는 특성을 나타낸다.【주】2) 근대에 들어서서 도시로 변모한 지역들은 오랜 역사 속에서 그 지역의 이러한 문화적 배경을 충분히 간직한 채 발전해 왔기 때문에 향토 음식이라고 불리는 특징적인 식생활 모습들을 간직하고 있다. 그러나 과천시는 이러한 면에서 본다면, 의도적인 개발 정책으로 탄생한 지역이 가지는 문화적 한계를 내포하고 있다. 그러므로 본 조사는 다음의 전제를 가지고 이루어졌다.
토박이를 주요한 조사 대상자로 설정하였다. 그리고 이들이 개발 이전의 시기에 영위한 식생활을 중심으로 조사가 이루어졌다. 따라서 현재 60세 이상인 여자들을 조사 대상자로 선정하였다. 변동 시기는 이들이 시집와서 살기 시작한 1935년 이후에서 현재까지로 잡았다. 이들의 경제 형편은 과천 시내 아파트 단지에서 살고 있는 이들보다는 낮은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조사 방법은 대부분 면접조사를 실시하였으며, 부족한 자료들을 보충하기 위하여 문헌을 통해 확인하면서 이루어졌다.
과천의 연평균【주】3) 기온은 11.3℃이며, 1월 평균 기온은 -6.6℃, 8월 평균기온은 26.4℃로 연교차가 30℃ 이상이 되어 대륙성 기후의 특색을 나타내며 연강수량은 1,491mm이다. 한편 지형적 위치는 서북부에 관악산에 필두로 남쪽으로는 청계산·옥녀봉·응봉에 둘러싸인 분지 지대이다. 논농사는 주로 양재천(良才川)이 흐르는 북동부 상류지역에서 이루어진다.
▣ 2. 식품(食品)의 선택(選擇)
1) 농업생업층
60세 이상의 노인들이 생존해 있는 가정에서는 대부분의 식품 재료를 자급자족한다. 쌀·보리·수수·콩 등의 곡물은 논이나 밭에서 생산하여 주식의 원료로 이용하며, 나머지는 판매한다. 반찬에 쓰이는 채소류 역시 밭에서 수확하거나 산과 들에서 캐어서 부식의 원료로 쓴다. 반찬의 재료 중 고기류는 시장에서 구입하고 있는데, 개발되기 이전에는 주로 안양 등의 장터를 이용하였고, 개발 이후에는 동네를 순회하는 판매인에게서, 아니면 직접 슈퍼마켓에서 구입하고 있다.
60세 이상의 노인들이 생존해 있지 않은 가정에서는 식품의 선택이 대부분 슈퍼마켓에서 이루어 진다. 기본적인 주식과 부식 재료는 생산물에서 이용하지만, 농사 작물이 다양하지 않기 때문에 식품 재료의 자급자족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특히 전통 음식의 기본 양념인 장류는 이들 가정에서도 직접 담그기보다는 공장 제품을 선호한다. 그 이유는 만드는 법을 모르기도 하고, 먹는 양이 적기 때문이기도 한다.
【사진】별양동 옹기 판매점
2) 비농업생업층
식품의 선택은 대부분 판매장을 통해 이루어진다. 과천시는 주거도시로 개발되었기 때문에 이러한 판매 시설이 다른 중소 도시에 비해 발달되어 있다. 식품의 선호 역시 각자의 지방성과 연관되어 있어 일반화하여 설명하기 어렵다.
특히 대단위 아파트 단지의 식품 매장에는 공장에서 생산된 완전 조리식품이 판매되고 있어 가정에서 이루어지는 조리 형태가 서구형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전국적인 현상이기는 하지만 전통 식품 중 장류나 김치류는 아직까지 전래의 식생활을 유지하고 있다. 이는 대단위 아파트 단지 내에도 전래의 옹기류를 판매하는 곳이 몇 군데 있으며, 집집마다 이러한 옹기류를 4∼5개는 비치하고 있는 것이 그를 반영하고 있다.
▣ 3. 조리법(調理法)
○ 1) 기본음식
○ 2) 일상음식
▣ 1) 기본음식
전통 음식에서 모든 음식의 기본 양념이 되는 음식을 기본 음식이라 정의하는데,【주】4) 간장·된장·고추장·유지류 등이 그것이다.
(1) 간장
간장을 담그는 시기는 음력 2월에서 3월 경이다. 메주를 쑤는 시기는 그 전 해의 음력 시월 그믐쯤으로 김장을 하고 난 이후에 한다. 1970년대 이전에는 5말 이상의 메주를 쑤웠으나, 현재는 2말에서 3말 정도만 쑨다. 그 이유는 간장을 이용한 음식이 줄어 들었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정월의 떡국에서부터 나물류, 국류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조리에 간장을 이용했다.
메주를 성형하는 데는 특별한 메주틀을 이용하지는 않는다. 손으로 네모 모양을 만들어 새끼로 묶은 후 처마에 매달아 볕에 말린다. 겉이 까맣게 되면, 이를 안방 아랫목에 두고서 띄운다. 보통 음력 섣달 그믐 쯤이면 방안에 둔다.
간장을 담는 날짜는 이월 중 십이간지(十二干支)로 된 날의 말날[馬日]을 달력에서 찾아 정한다. 말날에 간장을 담아야 손이 없다고 알고 있으나, 그 내력을 정확히 알 수는 없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은 경기도 중서부 지역에서 공통된 것으로 장을 담그는 데 좋은 날을 선택하는 것은 오래된 관습으로 전해 내려온다.【주】5) 1810년 경에 쓰여진 빙허각 이씨(憑虛閣李氏)의 『규합총서(閨閤叢書)』에는 장 담그는 좋은 날로 병인(丙寅), 정묘(丁卯), 제길신일(諸吉神日), 정월 우수일(雨水日), 입동일(入冬日), 황도일(黃道日)을 꼽고 있기도 하다.
간장을 담고 나면 항아리에 숯이나 고추, 대추를 올려서 벌레가 끼지 않게 한다. 특히 간장 맛이 고소해지라고 참깨를 조금 뿌린다. 이러한 풍습은 우리나라 전반에 걸쳐 있는 것인데, 다만 장독 배에 버선 모양의 한지를 바르는 풍습을 이 지방에서는 행해지지 않는다. 특이한 점은 간장 맛을 고소하게 하기 위해서 참깨를 뿌리는 것이다.
【사진】문원동 연립주택 메주 말리기
<조리법>
① 메주를 씻어서 말린다.
② 소금 다섯 되(소두) 정도를 준비하여 큰 체에 붓고 체를 항아리 입구에 얹는다. 여기에 물을 한 동이 정도 붓는다(한 동이는 2말에 해당).
③ 소금물로 찬 항아리에 메주를 세 덩어리 넣는다. 메주가 소금물에 떠서 항아리 입구를 메운다.
④ 여기에 숯, 마른 붉은고추, 대추와 참깨 약간을 얹는다.
⑤ 항아리 주둥이에 왼 새끼를 꼬아 고추, 숯, 솔가지를 꽂아 둔다.
⑥ 햇볕이 들 때는 항아리 뚜껑을 열어 두고, 비가 오거나 서리가 내리면 뚜경을 덮어 두면서 항아리 주위를 깨끗하게 한다.
⑦ 약 80일이 지난 후 메주가 깔아 앉아 노랗게 되면 용수를 박아 간장을 떠낸다.
⑧ 떠낸 간장을 가마솥에 붓고 달인다. 3∼4시간 팔팔 끊게 달여서 식힌 후 깨끗한 간장 항아리에 붓는다.
【사진】담그어 놓은 간장
(2) 된장
된장을 담그는 방법으로는 일반적으로 된장 단용법과 간장 병용법의 두 가지가 있다.【주】6) 이 지방에서 주로 쓰이는 방법은 간장 병용법이다. 음력 2∼3월에 담그는 간장을 80일 후 떠내고 나서 남는 메주 찌꺼기로 된장을 담근다.
<조리법>
① 간장을 떠내고 남은 메주 덩어리를 항아리에서 꺼내어 자배기에 담는다.
② 덩어리를 손으로 으깨면서 치댄다.
③ 치댈 때 소금을 뿌려서 간을 한다.
④ 항아리에 담는다.
(3) 고추장
고추장은 우리나라 음식에서 찌개용, 조미용으로 쓰이는 기본 음식이다. 고추장을 만드는 일반적인 조리법【주】7)은 찹쌀가루로 떡을 만든 후 여기에 엿기름을 붓고서 끓인다. 이를 식힌 후 자배기에 쏟아서 여기에 고춧가루와 고추장 메줏가루를 섞어서 버무린다.
이 지방에서는 전분질로 보리를 사용한다. 보리를 맷돌에 갈아 불려서 시루에 찌고 안방 아랫목에서 나흘 정도 띄운다. 여기에 메줏가루와 고춧가루, 소금을 섞어서 버무린다. 담그는 시기는 간장을 담근 후 곧장 고추장을 담는다.
(4) 유지류
주로 사용했던 유지류는 들기름이다. 참기름은 참깨가 귀해서 덜 사용했다. 밭에서 수확한 들깨를 집집마다 준비해 두었다가 기름틀에 들깨를 넣고서 짠다. 지금은 없어졌는데 20년 전만 해도 마을 공동의 기름틀이 있었다고 한다.
기름틀로 기름을 짜는 데는 많은 돌들을 기름틀 위에 올려야 하기 때문에 온 마을이 공동으로 이 일을 하였다. 특히 기름을 짜고 남은 깻묵을 버리지 않고 찌개를 끓여서 먹었다. 솥에 된장을 풀고 김치를 썰어 넣은 후 여기에 깻묵을 넣어서 끓인 깻묵 찌개를 기름을 짠 후에는 자주 해 먹었다.
▣ 2) 일상음식
모든 음식은 조리된 후 상 위에 올라서 먹을 때만이 의미가 있다. 일상생활에서 2∼3회 이어지는 식사는 인간의 활동을 유지하는 바탕이 된다. 그러나 식품재료가 부족했던 시절에 일상적으로 먹는 식생활이란 다양성보다는 단순성이 강한 식단을 보인다.
반찬의 양이나 종류가 많든 적든 간에 상차림의 기본 구성은 주식과 부식으로 나누어 진다. 우리나라의 일상음식은 밥을 주식으로 하여 김치를 주요 반찬으로 한 상차림을 가지고 있다.【주】8) 따라서 이는 가장 기본적인 식생활 모습을 살피는 지름길이 된다.
(1) 주식
주식은 밥이다. 곡물을 물에 불려서 찐 형태의 것을 밥이라 한다. 주식에 쓰이는 곡물은 주로 쌀·보리·수수 등이 있다. 1960년 이전에는 주로 보리와 수수를 주식의 재료로 이용하였다. 가장 좋은 밥인 쌀밥을 일년 내내 먹기 시작한 때는 1960년대 이후이다. 이전의 논 농사는 땅도 척박하고 가뭄이 잦아 잘 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 때 쌀을 수확한 즈음에는 보리와 섞어서 밥을 해 먹었다. 음력 4월부터는 쌀도 떨어져서 밭에서 좁쌀이나 수수를 수확하여 밥으로 만들어 먹었다.
(2) 김치
김치는 가장 많이 먹는 반찬으로 알려져 있다. 김장은 이 김치를 대량으로 담그는 행사이다. 반찬을 많이 확보하기 위해서 김장의 양은 옛날에 비해 지금은 적은 편이다. 1992년 겨울에도 이러한 관습으로 인해 5식구의 집에서 배추 100포기 정도를 담았다고 한다(갈현동 이경분씨)
김장을 하는 시기는 음력 10월 그믐 쯤이다. 20여 년 전에는 지금보다 기온이 낮아 음력 9월 중순에 김장을 하였다고 한다. 김장으로 담그는 김치 종류로는 김치(배추 김치를 이 지방에서는 ‘김치’라고 부른다), 깍뚜기, 싱건지(동치미를 심심하게 담근 것을 이 지방에서는 ‘싱건지’라 부른다), 짠지(무짠지를 이 지방에서는 ‘짠지’라 부른다. 충청도 지방에서는 모든 김치를 짠지라 부른다)의 4가지 정도이다.
배추김치를 담글 때 젓갈은 최근에 와서 멸치액젓을 구입하여 사용한다. 그러나 30년 전만 해도 젓갈은 비싸서 사용하지 못했고, 그냥 배추를 소금에만 절여서 마늘·파·고춧가루·생강 등을 양념으로 하여 김치를 담갔다. 갓을 배추김치에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10년이 조금 넘었다고 기억하고 있다. 서해안에 접한 중부지역에서 주로 사용하는 김치의 젓갈은 새우젓·조기젓·황석어젓 등으로 알려져 있다.【주】9) 그런데 젓갈의 사용은 어느 정도 경제적 여유가 있는 집에서 가능했으며, 내륙 지역에서나 가난한 집에서는 김치를 담글 때 젓갈을 사용하지 못한 것으로 필자의 조사에 의해 밝혀졌다.【주】10) 특히 최근 10여 년 사이에 중부 지역에서도 남주 지역의 대표적인 젓갈인 멸치젓이나 멸치액젓을 김치젓갈로 사용하는 예 역시 필자의 조사 【주】11)에서 드러난 사실인데 조사 지역 역시 그러한 현상을 보이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30∼40년 전에는 소금을 1년에 2번 샀다. 소금은 안양장에 가서 사왔다고 한다. 일제강점기에는 소금배급소가 지금의 안양 입구쯤인 인덕원에 있어서 배급을 받았다. 1년에 두 번 사는 것은 한 번은 간장 담글 때, 나머지는 김장 때 맞추기 위해서였다.
깍뚜기는 무를 사각 모양으로 썰어서 소금에 절인 후 고춧가루·파·마늘·생강으로 양념하여 담근다. 지금은 깍뚜기를 김장에 담그지 않는다. 싱건지는 무를 소금에 절여서 물을 넉넉히 붓고 위에다 무청을 덮은 후 다시 소금을 끼얹어 항아리 뚜껑을 덮어 둔다. 짜지 않아서 겨울 밤에 배가 고플 때 항아리에서 꺼내어 자주 먹었다고 한다.
짠지는 무에 소금을 많이 뿌려서 항아리에 담아 둔다. 봄에서 여름 사이에 먹을 만큼 꺼내서 나박하게 썰어 보시기에 담아 물을 붓고 위에 파를 썰어서 상에 올린다. 김장 김치가 다 떨어지고 나면 이 짠지를 비상 반찬으로 먹었다.
김장을 한 김치는 땅에 묻어 둔 항아리에 담는다. 그러나 이러한 풍속도 피조사자의 말에 의하면 최근의 일로 확인이 된다. 원래 이 지방에서는 날씨가 추워 김치가 얼어버리는 데도 불구하고 김장 김치를 보온이 잘 되지 않는 광에 두었다고 한다. 그러나 최근 10여 년 전부터 땅을 파서 김치독을 묻었다고 한다. 대부분의 충청도 이북 지방에서는 김칫독을 땅에 묻으므로 이 사실은 과천지방 전체의 현상은 아닌 것으로 여겨진다.
김장을 할 때는 품앗이를 한다. 장아찌로는 채장아찌가 있다. 김장 때 남은 무채를 파·마늘·생강·고춧가루로 양념하여 항아리에 담아 두었다 겨울에 먹는다. 엄밀하게 말해서 장류에 마른 채소를 박아서 만드는 장아찌로 보기는 어렵고, 김장 김치를 담은 후 익을 때까지 먹는 무채김치로 여겨진다.【주】12)
여름이 되면 오이와 호박으로 김치를 해 먹는다. 오이는 주로 소박이를 한다. 오이를 소금에 절였다가 십자[+] 모양으로 가른 후 양념을 넣고 부추로 감아서 담근다. 오이소박이는 지방마다 담그는 방법이 약간씩 다른데 이 지방의 방법은 전형적인 서울·경기 지방의 조리법이다.
【사진】갈현동 이경부씨 집 김치광
(3) 나물류
20여 년 전의 가난했던 시절에는 반찬으로 초식이 대부분이었고, 그 중 나물은 김치와 함께 대표적인 반찬에 속한다. 나물을 주로 먹는 계절은 봄에서 여름이다. 봄에는 냉이나 쑥을 산에서 캐어 된장을 풀어 국을 해 먹었고, 간장에 무쳐서 나물을 해 먹기도 했다. 일제강점기에는 봄에 나물을 캐어 걸어서 서울 노량진까지 가서 팔기도 하였다 한다. 논두렁 옆에서 나는 씀바귀는 더덕 모양으로 생겼는데 이를 삶아서 물에 불려 두었다가 독기가 다 빠지면 고추장과 식초로 양념을 하여 먹었다.
▣ 4. 식사행동(食事行動)
인간은 함께 밥을 먹는 동물이다.【주】13) 인간의 모든 활동에는 식사행동이 따른다. 노동이나 의례, 그리고 세시풍속에도 음식이 하나의 매개물 구실을 한다. 민족마다 지역마다 고유한 풍속에 따라 음식이나 식사 행동이 달라진다. 따라서 이를 통해 한 집단의 문화적 배경을 살필 수 있다.
식사 행동은 일상의 식사 회수, 함께 먹는 사람과 사회 조직, 의례나 세시와 관련된 음식이나 식사 방법 등으로 나눌 수 있다.
1) 노동과 식생활
과천시의 대부분의 시민은 통계에 따르면 제3차 산업에 종사한다고 되어 있다. 현대 산업 사회에서 생활하는 도시인들의 식사 유형은 주로 아침을 집에서나 식품점에서 먹고, 점심은 직장 동료와 함께 외식을 하는 경우가 많으며, 저녁은 집에서 먹지만 식사 시간은 불규칙하다. 일부는 외식을 통해 사회 집단과 계속되는 관계 유지를 한다.
농사가 주업인 사람들의 식사는 농사철과 비농사철로 구분되어 식사 행동이 달라진다. 10여 년 전의 농사철 과천의 식사 회수는 다음과 같다. 농사철에는 일꾼을 사고 집집마다 품앗이를 하면서 일을 한다. 일꾼들은 아침을 일할 집에서 먹는다. 보통 아침 7시 경에 밥과 김치, 깍뚜기, 무국이나 시래기국 그리고 막걸리가 상에 오른다. 새참은 오전 9시에서 10시 사이에 먹는다. 이 때는 주인집에서 국수나 수제비를 만들어 들에 나와서 먹는다. 이 때도 술로는 막걸리를 먹는다. 점심은 오후 1시 경에 먹는데, 아침밥과 유사한 식단으로 구성된다. 오후 새참은 오후 4시 경에 먹는데 밥이나 국수를 말아서 들에서 먹는다. 저녁은 해가 지고 일이 끝나기 때문에 7시에서 8시 사이에 먹게 된다. 농사철의 식사 횟수는 새참을 포함하여 5회이다. 그만큼 노동량에 따라 식사량을 늘려야 하기 때문이다. 아침과 점심 사이에 먹는 식사를 별도로 부르는 이름없이 ‘새참’이라 한다.
비농사철에는 식사 회수가 2∼3회이다. 40여 년 전만 해도 겨울에는 2회 정도의 식사만 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대신 저녁을 일찍 먹으며 밤참으로 고구마 따위를 삶아 먹었다.
2) 세시와 식생활
피조사자는 매 절기마다 있는 세시에 절식을 해 먹는 일은 드문 편이었다. 그리고 절식으로 알고 있는 음식도 적었다. 주로 지내는 세시는 정월, 대보름, 추석 그리고 동지였다. 정월에는 보리떡국을 하는데 간장을 물에 타서 국을 끓여 보리에 찹쌀을 약간 섞은 가래떡을 넣어서 파와 마늘로 양념을 하여 먹었다.
대보름에는 취나물, 고사리 나물, 도라지 나물 등을 데쳐서 기름에 무쳐 삼색나물을 하여 아침상에 올렸다. 추석에는 여느 지방과 비슷하나 송편으로는 흰송편만을 만들었다. 동지에는 팥죽을 쑤었다.
3) 의례와 식생활
의례 음식은 주로 통과 의례와 관련된 음식을 일컫는다. 제사는 죽은 이를 추모하는 의례에 속한다. 여기에서는 피조사가의 남편 기제사 상차림을 통해 의례 음식의 단편을 살피고자 한다.
【도표】갈현동 이경분씨 집 남편 기제사 상차림
4) 조리와 식사 공간
음식을 조리하는 공간은 음식을 만드는 주체자인 여자들의 동선과 식사를 받는 남자들의 공간으로 나누어진다. 부엌과 장독대, 찬방이 주로 음식을 준비하는 공간이라면, 겨울에는 안방이나 사랑방, 여름에는 대청이 식사 공간으로 이용된다.
【도표】갈현동 이경분씨 집 식사공간
【사진】부엌
안쪽에 원래 가마솥이 2개 있었으나, 불편하여 개조하여 찬방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밥이나 반찬은 전기 밥솥과 가스불을 이용한다. 뒷마당에는 야외 가마솥을 고정으로 설치하여 주로 간장을 달이거나 잔치를 할 때 사용한다.
<장독대>
장독대에는 간장·된장·고추장·소금을 담는 독을 두었다. 술단지도 장독대에 놓여 있으나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다. 맷돌은 화강암으로 된 것인데 많이 사용하여 맷돌 암쇠의 무늬가 거의 지워진 상태이다. 주로 두부를 만들 때 사용하는데 지금은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사진】장독대
<김치광>
원래 땅에 묻지 않았으나, 20여 년 전부터 김치광을 별도로 만들었다. 두 곳에 김치광이 있는데 장독대 안쪽에 있는 것은 시멘트로 고정하여 만든 것이며, 뒷문 바깥 길에 있는 것은 짚으로 만든 것으로 사용 중이다.
<식사공간>
30여 년 전에 주인 남편이 돌아가셨기 때문에 식사 공간은 주로 할머니가 거처하는 안방에서 한다.
과천의 식생활 모습을 설명하기 위한 본 조사는 1993년 2월 28일부터 3월 12일 사이에 이루어졌다. 조사 대상 지역이 과천시 전체이지만 주로 개발 이전의 과천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마을들을 대상으로 삼았다. 갈현동의 이경분(여: 75세)씨 외 2명이 주요 장버 제공자였다.
인천이 고향인 이경분씨는 17세에 이곳으로 시집와서 한국전쟁 때 남편과 사별하였다. 슬하에 남매를 두었는데 딸은 서울에 살고 아들(56세)은 함께 갈현동에서 살고 있다. 현재 아들 내외와 함께 12마지기 정도의 논으로 농사를 짓는다. 과천에서 몇 남지 않은 토박이에 속하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마을이 갈현동 가일 마을이다. 이외 문원동과 과천동 일대의 농가와 별양동 일대의 연립주택들을 식생활 공간 측면에서 조사하였다. 앞에서 살핀 바와 같이 농업을 생업경제로 삼는 몇 안되는 마을에서는 전통적인 경기도 음식 문화와 틀을 가지고 있었으나, 시의 대부분 지역은 현재의 서울과 유사한 모습을 띠고 있다.
특히 외식산업과 식품 판매업이 발달하여 중앙동을 중심으로 하여 외식이 가능한 식당들과 전문 판매점이 자리잡고 있으며 소방서 뒷편으로는 심지어 먹자빌딩까지 있는 형편이다. 식당들은 갈비집·설렁탕집·매운탕집들이 주류를 이룬다. 이는 정부제2종합청사와 시청 및 은행 회사 등의 주변에서 회사원을 위한 식당으로 형성된 것이다. 또한 서울과 안양을 잇는 간선도로가 시내를 통과하기 때문에 과천동과 갈현동의 도로변에는 음식 전문점들이 형성되어 있는데 주로 회식 장소와 휴게소 구실을 겸하고 있다.
과천의 식생활 모습을 정확하게 설명하는 데는 많은 한계가 있다. 인구 구성이 전국적이라는 것이 특색있는 과천의 식생활 모습을 설명하는데 한계가 되는 기본 요인이다. 그러나 과천은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지역성을 가진 전통적인 식생활 모습이 변동하여 통합되는 과정을 살필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김치에 새우젓을 쓰던 과천의 토박이가 멸치젓을 함께 쓰기도 하고, 멸치액젓만을 사용하기도 하는 식생활 문화의 변동 과정이 과천의 특징적인 식생활 모습이다. 이러한 변동을 살피는 작업은 과제로 남긴다.
【집필자】 周永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