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하일기 上, 下
.지은이 :박지원
.그린비 출판사
KBS주말 드라마 <거상 김만덕>이 지금 방영중이다. 그녀가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를 손에 들고 설레는 모습을 보았다. 그 모습이 나에게 그대로 전이되었다. 나도 얼마 전에 이 책을 처음 들었을 때 그 설렘과 떨림이 아직도 마음창고에 저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김만덕은 어린 시절에 이 책을 접했고, 그녀의 빈 마음창고에 꿈을 가득 들여놓았다. 그대로 그 꿈이 자라 이 나라의 훌륭한 거상으로 거듭나 가난하고 주린 백성들을 위하여 꿈너머의 꿈을 실현하였다. 허나 나는 그 마음창고에 꿈 대신에 이미 나이가 들어차 있다. 다행이 빈공간이 얼마간은 남아 있어서 여간 다행한일이 아니다. 그래서인지 그 빈공간이 아직도 나를 설렘으로 이끌고 있는 것이다. 하여튼 ‘꿈’을 꾸는 것은 내가 살아있다는 강력한 에너지가 아닌가 한다.
솔직히 내가 이 책을 다 읽었다고 해서 청의 풍속, 풍물, 청의 선진제도 등 그 당시의 시대상황을 얼마나 짐작이나 하겠는가. 그럼에도 굳이 내가 흔적을 남기는 것은 세 가지 이유이다. 그 하나는 책을 덮어버림과 동시에 나의 해마는 직무유기를 해버린다. 그리고 두 번째 이유는 다음에 다시 책을 읽었을 때 그 느낌과 흡인력이 분명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보지 못했던 부분을 느끼면서 아! 하고 무릎을 치게 될 테니까. 그리고 마지막 이유는 읽고 나서 이렇게나마 쓰게 된다면 혹여 나의 것이 하나라도 되지 않을까 해서다. 또 좋은 습관이라 생각해서다. 청의 사정, 역사, 우리나라의 역사로까지 소설처럼 쉽고 재미있게 쓴 연암선생님께 죄송스런 마음까지 든다.
이 책은 上, 下편으로 도강록/ 성경잡지/ 일신수필/ 관내정사/ 막북행정록/ 태학 유관록/ 환연 도중록으로 구성되어있다. 일지는 6월 24일에서 8월 20일까지 여정을 기록해 놓았다. 그러나 실재로는 5월에 길을 떠나 10월에 돌아오는 장장 6개월에 걸친 대장정이었다고 한다. 우리가 흔히 잘 알고 있는 '호질전'은 관내정사편에 기록되어있고' 허생전'은 환연도중록에 기록되어 있다. 또한 ‘한국사전’에서도 방영되었던 역관 홍순언에 관한 이야기도 여기 옥관야화에 잘 기록되어있다. 태학 유관록에는 요술과 마술의 세계를 참 재미나게 묘사한 ‘환희기’도 기록되어있다. 그때 사신단에게는 공포의 도시로 생각했다던 심양. 그 곳에서 병자호란 후에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이 볼모로 8년이나 억류되어있었던 세자관이 있다고 한다. 지금 방영중인 ‘추노’에서도 볼 수 있듯이 그 후 조선에 돌아온 소현세자는 의문의 죽음을 당한다. 연암은 이곳 세자관에서 뼈아픈 역사를 느낀다. 유목민이 기르는 낙타의 묘사도 재미있다. 중국의 명소이자 만리장성의 시발점인 산해관, 고북구를 지나 열(熱)하(河)까지의 여정에서 그려낸 이야기는 흥미진진하고 풀어내는 이야기도 대단하다. 열하에서의 6일간은 그야말로 충격 그자체다.
청황제 강희제와 건륭제는 푸른 초목이 피어날 때쯤이면 이곳 열하 행을 감행한다. 마치 정조가 수원 원행을 하듯이. 이곳 피서산장에서 휴양차 오는것은 겉으로 드러나는 것이고 실은 변방의 이민족의 침략을 경계하기위한 고도의 군사전략이 숨어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사시사철 뜨거운 물이 솟는다 해서 '熱河'라 이름 지어진 피서산장에 머물면서, 청황제는 많은 티베트불교 사원을 짓는 등 청 변방을 안정시키기 위해 이민족 융합정책을 꾀하였다. 그 건륭제의 모습에서 청을 대제국으로 이끌어온 힘을 박지원은 읽어낸다. 그곳 열하는 만주어, 몽고어, 한어, 아랍어, 티벳어등 많은 이민족언어가 통용되고 이국적인 아름다운 유적들이 있는 곳이다. 건륭제가 판첸라마를 극진히 대접할 정도로 탁월한 외교술에 박지원 일행은 충격을 받는다. 나도 꼭 이 열하를 여행하고 싶다.
책을 통해서 그 당시 중국 청나라의 세조 순치제, 성조 강희제, 세종 옹정제, 고종 건륭제때의 시대상도 슬쩍슬쩍 엿볼 수가 있고 특히 건륭제의 친필 탁본도 그 내용과 함께 잘 기록 되어있다. 책의 중간 중간에 그 당시 풍경과 잘 맞아 떨어지는 한시도 무척 많이 소개되어 있다. 고사성어는 말할 것도 없고 동양고전도 잘 소개되어 있다. 정말이지 박학다식한 연암선생의 학문세계를 들여다보면 나 자신이 얼마나 부끄러운지 모른다. 어떤 책 한권 속에는 몇 수십 권의 책을 근거로 제시하면서 책을 저술해 나간 것을 볼 때면 주눅이 든다. 알면 알수록 더욱더 모른다고 해야 하나. 그래서 옛 속담에 빈 수레가 더 요란하고,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말이 있나보다. 또 그 당시의 북경 자금성, 공자 묘, 피서산장의 라마교 사찰, 건륭제와 관련된 유적과 그림 등등 사진으로만 보아도 그 규모가 얼마나 될지 상상이 되질 않는다.
연암의 상상력, 관찰력, 사유력, 기억력은 주옥같은 유머와 역설의 명문장을 쏟아낸다. 18세기 지성사에 길이 빛나는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의 열하는 지금으로 말하면 미국의 멜팅 폿(melting pot)으로 견주할 수 있는 곳이었다. 연암은 이곳에서 온갖 특이한 인간군상, 몽고, 위구르, 티베트 등 중국 변방의 이민족을 만나고 소통하였으며 코끼리와 낙타 등 각종 기이한 동물들과 마주친다. 불꽃놀이, 각종 연회, 환희(요술)의 퍼레이드, 중국선비들과의 ‘고담준론’등도 여기서 이루어진다. 열하에서 유교적 폐쇄주의에 찌들은 우리사신단의 티베트불교와의 만남, 그것은 결국 건륭제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여 쓸쓸한 귀환으로 유머 넘치는 <열하일기>의 유목적 긴 여정은 막을 내린다. 공식 일정을 끝낸 사신단은 북경으로 돌아와 한달간을 그곳에서 머무른다. 북경은 중국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곳이었다.
북경 근처에서 통주의 대운하와 수많은 배들이 정박한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한다. 그것은 청의 놀라운 부국강병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북경에서 연암은 경이로운 천주교성당과 세계의 지식창고 유리창을 접하고 나서 청의 문물을 적극 배우기를 열망한다. 닫힌 세상에서 열린 세상으로 나아가기를 열망하는 열하일기였던 것이다. 1780년 정조 4년 건륭제의 칠순생일 축하사절단으로 가서 보고 들은 문명의 충돌은 조선의 운명을 결정짓는 계기가 된다. 청의 놀라운 모습에 박지원은 경이롭고 낯선 충격 문명의 보고서 열하일기를 쓴 것이다. 명이 멸망한지 130년이 지난 후에도 뿌리 깊은 대명사대주의에서 명분론만 앞세우는 조선의 현실과 이민족도 포용하고 화합하는 청의 건륭제의 실리주의를 본 연암 박지원. 그는 열하에서 대제국의 힘을 깨닫는 상징적 장소로 각인된다. 별천지와 같은 세상 열하에서 그는 견문을 넓히고 편견을 없애고 더 좋은 것은 배워야함을 깨우친다. 국제정세의 흐름을 읽고 조선의 현실을 직시하며 조선의 대안을 제시하는 방향키 <열하일기>... 여행중 삶과 죽음 사이에서 도달한 도의 경지를 깨달은 채.....
*요동벌판을 보고 연암은 다음과 같이 묘사하였다.
“갓난아기의 본래 정이란 결코 그런 것이 아니야.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에는 캄캄하고 막혀서 갑갑하게 지내다가, 하루아침에 갑자기 탁 트이고 환한 곳으로 나와서 손도 펴 보고 발도 펴보니 마음이 참으로 시원했겠지. 어찌 참된 소리를 내어 자기 마음을 크게 한번 펼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러니 우리는 저 갓난아기의 꾸밈없는 소리를 본받아서, 비로봉 꼭대기에 올라가 동해를 바라보면서 한바탕 울어볼 만하고, 장연의 금모래 밭을 거닐면서 한바탕 울어볼 만하이. 이제 요동벌판을 앞두고 있네. 여기부터 산해관까지 1,200리는 사방에 한 점 산도 없이 하늘 끝과 땅 끝이 맞닿아서 아교풀로 붙인 듯 실로 꿰맨 듯하고, 예나 지금이나 비와 구름만이 아득할 뿐이야. 이 또한 한바탕 울어볼 만한 곳이 아니겠는가!”-열하일기에서
*이 책을 쉽게 읽을 수 있도록 번역하고 엮어주신 고미숙, 길진숙, 김풍기님께 감사드린다.
첫댓글 간결하게 정리된 '열하일기' 수진님의 간추린 독서 토론방에서 나의 빈공간에 설레임으로 채워넣고 갑니다.
참 , 반갑습니다...^^* 열하일기 번역본이 나온 것중에서는 제일 쉽게 접근 할 수 있도록 써 놓았습니다.. 아님 엄두도 못냈을터인데... 얼마나 고마운지요.. 그때당시에도 이책이 사본이 나돌정도로 선풍적인 베스트셀러였다는군요... 저도 행복합니다...
수진님이 올려주신 쉬이 접하기 힘든 좋은 내용들, 역사를 알면 미래가 보이는 것 아닐까요? 예나 지금이나 좋은 것은 본받아야한다는 진리에 수긍이 갑니다. 휘황찬란하던 북경 하늘의 야경, 그저 아름답다라고만 여겼는데 한 시대를 호령하다간 영혼들의 눈빛이 아닌가 싶네요.
네~ 저도 댓글에 공감합니다.. 어차피 역사는 인간의 삶그자체이기 때문에 과거의 역사를 알면 미래도 지혜롭게 내다볼수 있다는 생각이듭니다.. 역사는 돌고 돈다고 하잖아요..좋은 것은 본받고 선택과 집중을 한다면 불투명한 미래도 잘 헤쳐나가리라고 봅니다... 중국에 여행하게 되면 이코스를 돌아보고 싶을 정도로 매력적인 곳..... 북경은 중국의 자존심이고 심장부이자 정말 영혼들의 눈빛일겝니다.... 영화 '마지막 황제'의 자금성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수진님 덕분에 다시 열하일기를 손에 잡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지난 해에 고미숙이 지은'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을 읽었는데 그 때의 재밌었던 기억이 떠올랐어요. 당장 시작해야겠군요. 요약정리 잘 읽었습니다. 감사!
와우~~ 고미숙님의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시공간' 정말 재미 있었겠네요... 저도 읽고 싶어지네요... 반갑고 감사합니다.... 좋은 봄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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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하해요.. 세레나님.. 그 긴장서를 거의 다 읽어가고 있으니.... 인내심과 지구력 키우기는 긴 장서가 제일인것 같아요... 지금은 책들이 얼마나 잘 나오는지 몰라요.. 읽기쉽도록 잘 엮어놓고 사진도 잘 실어놓고 해서... 좋은 봄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