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지역의 대표 명소 12곳이 지난 2002년 12월 10일 "울산 12경"으로 지정됐다. 그 이전 "울산 8경"에서 확대 지정된 "울산 12경"은 산업도시 울산을 아름다운 도시라는 느낌으로 와닿게 할 뿐만 아니라 관광자원화 및 울산사랑의 구심체 역할도 기대된다. 북구청 소식지 "희망북구"의 이기철 편집장이 "울산 12경"을 찾아 다니며 그 속에 스며있는 사연과 살아 숨쉬는 이야기들을 월별로 한 곳씩 소개한다. 편집자 주
다시 보는 울산 12경(1)- 무룡산에서 본 울산공단 야경
< 7마리 용이 춤을 추던 산인 무룡산(452.3m)은 울산의 진산이다. 북한산이 서울의 진산이고 금정산은 부산의 진산이며 남산은 경주의 진산이다.
진산은 그 지역의 정신적인 지주가 되는 산을 일컫는다. 무룡산은 백두대간에서 뻗어 내린 낙동정맥이 남으로 내닫다 마지막으로 용틀음치며 우뚝 선 산이다. 산세가 험하지 않고 오히려 푸근하고 넉넉하여 시민들이 즐겨찾는 산이다. 산꼭대기 헬기장에 오르면 사방이 훤히 트여 울산의 모습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발 아래로는 세계적인 기업인 현대자동차가 한 눈에 잡히고 연어가 돌아온다는 태화강이 푸른 동해바다로 물빛 반짝이며 흘러간다.
좀더 눈을 들면 석유화학공단의 분주한 노동 현장이 굴뚝에서 피어오르는 증기에서 확인된다. ‘공해 도시’라는 오명을 쓰고 있는 울산의 이미지는 수정되어져야 함을 이 곳에서 몸으로 체득하게 된다.
사실 굴뚝산업이 가지는 심리적 상실감이 이런 오명을 뒤집어쓰게 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울산은 아황산가스의 밀도는 다소 높은 편이나 미세먼지와 오존은 중간 정도에 지나지 않으며 이산화질소는 최저치다. 시 차원에서도 환경 관리를 강화하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고 바꿔 말하면 억울한 도시 이미지 제고에 노력하고 있다는 점을 인정해주어야 할 듯하다. 하지만 자동차, 조선, 석유화학 등이 집중된 산업구조는 어느 한 산업이 쇠퇴될 때 엄청난 경제 타격이 예상되기 때문에 이 지역 산업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무룡산은 언제 어느 때에 찾아도 그 모습이 아름답다. 아쉬운 것은 지난해 2월 무룡산은 화마에 휩싸여 30ha에 달하는 산림이 소실되는 아픔을 겪었다. 시민들의 자발적인 헌수운동으로 무룡산 살리기에 온 힘을 쏟았지만 이제 자연은 그 아름답던 모습을 우리에게 다시 보여주기까지 40~50년의 시간이라는 기다림을 형벌로 주었다. 그래서 요즘 무룡산 오르는 발걸음은 오히려 속죄 의식이다. 나의 사랑을 지켜주지 못함에 대한"... 필자는 주로 화봉 정수장에서 매봉재로 오르는 등산로를 이용해 무룡산 정상을 찾는 코스를 즐기는 편이지만 등산로 정비가 꽤 잘된 여러 코스가 있으므로 어느 곳을 선택하더라도 산은 등산객을 반가이 맞이하니 굳이 길 탓을 할 필요는 없다.
또 등산로마다 산불 이후 이팝나무를 비롯 단풍나무, 산딸나무를 등산로별로 심어놓아 이제 해마다 이들이 우리에게 보여줄 푸른 손짓을 생각하면 우울한 마음이 어느 정도 가신다. 매봉재에 오르면 파고라가 설치되어 있는데 여기서 잠시 땀을 식히면 된다. 요즘의 야간산행은 특별한 즐거움을 하나 더 제공한다. 밤바다를 환히 밝힌 오징어잡이 배들의 불빛은 묘한 그리움으로 우리를 빨려 들어가게 하기에 충분하다.
매봉재에서 무룡산 정상으로 가는 낮 산행은 정자 방면으로 구불구불 이어지는 도로의 정겨움과 더불어 가을이면 키보다 높은 억새밭은 은빛 물결로 넘쳐 난다. 산을 오르면 항상 느끼는 바이지만 오름과 내림의 그 정확한 분할이 가져다주는 의미는 대단하다. 우리네 살림살이에 비견될 만 한 것이다. 어려운 시절과 행복한 시절의 간단없는 의식의 편가름". 그래서 산을 오르내리는 일은 삶의 반성이자 각오다.
무룡산 정상에는 유적지가 있다. 이른바 한국통신의 ‘스캐터 통신시설 유적지’. 마치 외계인과의 끊임없는 접촉을 시도하려는 듯 거재한 이 시설은 사실 1991년 3월 1일 그 활동을 그치고 역사 속으로 밀려갔다.
지난 1970년대 김일 선수와 이노키 선수의 프로레슬링 시합 장면이 이 장비를 통해 방송돼 온 국민을 열광시켰던 점을 상기하면 감회가 새롭다. 하지만 스캐터 통신시설을 둘러싸고 있는 철조망은 웬지 무룡산의 자연 풍광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있어 안타까운 마음이다. 좀더 합리적인 방법을 찾아야 할 듯하다.
요즘같은 겨울철, 해가 지는 시각은 좀 이르다. 5시30분쯤이면 해가 떨어진다. 그러니깐 화봉정수장을 기점으로 무룡산 정상까지를 성인 정상 걸음으로 평균 소요시간을 내본다면 휴식시간을 포함해 넉넉잡아 1시간30분 가량".
울산 12경 중의 하나인 ‘무룡산에서 본 울산공단 야경’을 보려고 일부러 계획 잡는다면 화봉정수장에서 오후 4시 어간에 출발하면 무난할 듯하다. 2002년 12월 10일 선정된 울산 12경 중 ‘무룡산에서 본 울산공단 야경’은 보석을 뿌려놓은 듯, 반짝이는 불빛들의 아름다움이 산업 수도 울산의 상징을 잘 나타내고 있어 선정되었단다.
하지만 정상에 세워진 사진은 고개를 갸우뚱거리기에 충분했다. 아무리 살펴봐도 ‘특정 지역의 공단 굴뚝에서 찍은 야경’으로 밖에 보이질 않으니 말이다. 산업 수도 울산을 강조하다 보니 이런 실수가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사진은 분명 ‘무룡산에서 본"’이 아니었다.
이 곳 뿐 아니라 울산 시내 전체, 또 외부로 소개되는 가이드 북에도 온통 이 사진 일색이니 이는 반드시 정확한 설명이 있어야 할 것이다. 또 ‘무룡산에서 본 울산공단 야경’이란 제목은 오히려 편협한 시각이 아닌가 싶다. 아름다운 울산 시가지가 황홀하게 펼쳐져 있어 그보다 더한 이름으로 수정되어야 할 것으로 본다.
정상에서 하산하는 길은 그대로 ‘백’(back) 하느니 보다 정자 방면의 고갯길을 타고 내려가 시내버스를 이용, 또 하나의 울산 얼굴인 청정 해역으로 이름난 강동 바다와 주전 바다의 몽돌자갈밭이 펼쳐진 해안에서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면 금상첨화일듯 하다.
경상일보 1월 5일자 7면 글 이기철·사진 이희섭(사진작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