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大中+現代」가 비자금을 不法 조성, 국정원을 통해서 金正日에게 건넨 반역적 사건
판도라 상자를 열었더니 惡靈이 기어나왔다
2월14일 오전 10시.
現代와 金大中 정부의 對北 비밀 송금사건을 파헤쳐 온 조선일보 정치부와 경제부, 산업부의 기자들은 각자의 출입처에서 텔레비전의 생중계를 지켜봤다.
金大中 대통령은 청와대 춘추관에서 「국민 여러분께 드리는 말씀」이라는 발표문을 10분가량 읽어 내려갔다.
기자들의 마음은 참담했다.
그건 기자회견이 아니었다. 그곳에서는 왕을 모시고 하는 御前會議(어전회의) 풍경이 벌어지고 있었다. 거기에는 이 나라의 주권자인 국민이 들어설 자리가 없었다.
나이 육십을 넘긴 신하는 온 국민이 지켜보고 있는데도 『보좌를 제대로 못 해 죄송하다』면서 울먹였다. 지난해 9월 이후 對北 비밀 송금을 「막가파式 조작극」이라고 비난하고, 국민의 귀와 눈을 속여 온 행위에 대해, 그는 국민들에게 사죄하지 않았다.
사전에 질문자로 선정된 한 방송사 기자는 『심려가 얼마나 크십니까』라며 공손하게 질문을 시작했다.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치열하게 권력자를 추궁하는 매서움은 보이지 않았다.
언론은 거짓 변명과 궤변이 춤추는 가면무도회에 초청된 어색한 손님이었을 뿐이다. 이날 저녁 회사에 돌아온 동료 기자들은 하나같이 기자로서의 자괴감을 털어놓았다.
한 기자는 『나는 우리가 아직도 王朝(왕조)시대에 살고 있고, 대통령은 왕이라는 사실을 오늘 깨달았다』며 『민주화 지도자라는 金泳三, 金大中 두 사람의 治世 10년에 권력의 권위주의화는 더욱 강화됐다』고 했다.
얼마 전 한 방송사의 연속극인 「장희빈」에 肅宗(숙종)이 서포 金萬重(김만중)을 형틀에 묶고 친국하는 장면이 방영됐다.
金萬重은 「임금이 장희빈과 장희빈 어머니의 입김을 받아 조정 인사를 했다」고 비판하는 상소를 올렸고, 숙종은 『항간의 소문을 근거로 君主(군주)를 능멸했다』며 그를 윽박지르고 있었다.
형틀에 앉아 있는 김만중을 향해 숙종은 분노에 가득찬 항변을 토해 냈다.
『그래 내가 조정인사를 하면서 金(금)을 받았다는 말이오, 銀(은)을 받았다는 말이오』
金萬重은 고개를 들면서 입을 열었다.
『여인의 세 치 혀에 휘둘리심은 금과 은을 받은 것보다 더 큰 잘못입니다』
임금의 어머니를 「깊숙한 궁중의 한 과부」, 명종을 「어리시어 다만 돌아가신 왕의 외로운 고아」라고 직언한 曺植(조식)의 상소에서 보듯이, 왕의 절대권력을 견제하는 조선의 선비정신은 칼날 같았다. 지난 2월14일 우리는 대한민국의 품격이 어디까지 떨어져 있는지를 확인했고, 그래서 참담했다.
對北 송금과 관련해서 金大中 대통령은 수십 개의 퍼즐 토막 가운데 단 하나만을 내보였다. 「現代가 5억 달러를 사업代價로 북한에 보냈으며, 그 과정에서 자신은 몰랐다」는 게 이날 기자회견의 요지였다.
지난해 9월 이후 이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상당부분 규명한 일선 취재기자들로서는 어안이 벙벙해질 수밖에 없는, 한 마디로 어처구니없는 변명이었다.
그의 주장대로라면, 對北 비밀 지원은 개인기업 現代가 저지른 불법행위를 처벌하면 해결될 사건이다.
그런 정도의 일을 놓고 金大中 대통령이 왜 「퇴임을 앞두고 원만하게 임기를 마치고 물러가는 것이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고 생각했으며, 『참으로 죄송하기 그지없다』, 『개인으로서도 참담하고 가슴 아픈 심정일 뿐』이라고 말해야 하는지 궁금하다.
「책임을 지겠다」는데 무엇을 책임지겠다는지도 불투명하다.
金大中 대통령과 林東源 특보의 설명은 지금까지 언론의 추적으로 드러난 사실관계에도 턱없이 못 미칠 뿐 아니라, 결정적인 대목에서는 사실을 호도하고 있다. 林특보는 돈이 송금된 날이 2000년 6월9일이라고 주장하면서, 이로 인해 6월10일 결정된 남북 頂上회담 연기와 對北 송금에 아무런 연계가 없음을 강하게 시사했다.
지금까지의 취재결과를 종합하면, 現代와 청와대는 이 정권 출범 이후 지금까지 남북 頂上회담 성사를 위해 손발을 맞춰 온 파트너였다. 林東源 특보는 송금날짜를 들고 나왔지만, 對北 송금이 頂上회담을 위한 것이라는 사실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이날 기자회견의 성과를 들라면 現代가 북한에 비밀리에 보낸 돈의 총액이 5억 달러라는 사실, 송금 루트가 최종 확인된 것 정도였다.
林東源 특보는 『국정원은 당시 現代 측에 외환은행을 통해 환전 편의 절차를 제공했으며, 이 사실을 상부에 보고하지는 않았다』, 『이 돈은 現代 측이 북한으로부터 확보한 7개 경협사업에 대한 권리금이며 남북 頂上회담의 代價는 아니다』고 주장했다.
2월14일의 기자회견은 對北 송금의 실체적 진실을 캐내는 시발점이라는 데 의미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풀어야 할 의문은 끝이 없다.
現代는 남북 頂上회담의 主管 기업
現代그룹은 金大中 정부로부터 아무런 代價도 바라지 않고, 남북 頂上회담의 다리 역할을 했는가?
現代가 對北 비밀 송금을 함으로써 現 정부로부터 약속받은 특혜는 무엇인가?
왜 現代그룹은 그룹의 主채권은행인 외환은행을 제치고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에서 4000억원의 거액을 대출받았을까?
산업은행에 불법 대출을 지시한 金大中 정부의 실력자는 누구인가?
국정원은 단순히 2억 달러의 환전 편의만 제공했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5억 달러의 정확한 송금 경로는 무엇인가?
비밀 송금된 돈은 정말 5억 달러가 전부인가?
現代와 金大中 정부의 수뇌들이 수천억원이 넘는 비밀자금을 주무르면서, 정치자금으로 새나간 돈은 없는가?
북한으로 넘어간 5억 달러는 金正日의 개인 비자금으로 쓰였나, 아니면 북한 국고에 입고되어 전체 인민들을 위해 쓰였나?
이 모든 것이 아직 베일에 가려 있다.
2000년 6월의 남북 頂上회담 성사 과정에 現代그룹이 적극 개입했다는 사실은 2월14일의 기자회견에서 최종 확인됐다. 林東源 특보는 『現代는 북한측과 대규모 경제 협력사업을 협의하고 독점권을 확보하는 과정에서 남북관계의 획기적인 개선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며 『現代는 북측에 頂上회담 가능성을 타진했고, 북한도 긍정적 반응을 보였다고 전해 들었다』고 밝혔다.
現代 資金責 李益治가 남북 비밀회담에 참석한 까닭
林특보는 2000년 3월 초 朴智元 당시 문화관광부 장관과 북한 송호경 아태부위원장 간 싱가포르 비밀 접촉에 現代가 개입했다는 사실도 시인했다. 林특보는 『당시 現代의 鄭夢憲 회장과 李益治 회장은 양측의 만남을 주선하기 위해 현장에서 양측을 소개한 바 있다』며 『그러나 (現代그룹 인사들이) 頂上회담을 위한 협상과정에는 참가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쉽게 말해 現代가 양측을 서로 소개하는 「다리」 역할을 했을 뿐, 협상 테이블에는 앉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林특보의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
鄭夢憲 당시 現代그룹 회장(現 現代아산 이사회 회장)은 2000년 3~4월 세 차례에 걸쳐 남북한 정부 특사가 중국 上海(상해)와 北京(북경)에서 頂上회담 개최를 논의할 때 줄 곧 동석했다는 게 재계 관계자들의 얘기다.
이 자리에는 당시 現代그룹의 資金責(자금책)이던 李益治 당시 現代증권 회장이 함께 있었고, 당시 남북의 대표는 박지원 당시 문화관광부 장관(現 청와대 비서실장)과 북한 송호경 조선아태평화위원회 부위원장이었다.
남북 頂上회담에 대한 최종 합의가 이뤄진 4월8일 鄭夢憲 회장과 李益治 회장의 행보를 보면 이런 정황이 잘 드러난다. 鄭회장은 4월5일 鄭周永(정주영) 現代 명예회장, 李益治 회장, 김윤규 現代건설 사장 일행과 일본 도쿄를 방문했다.
對北사업에 관해 일본 측과 협의하기 위한 출장이었다. 하지만 4월7일 鄭명예회장 일행은 귀국했지만 鄭夢憲 회장은 일행과 헤어진 뒤 자취를 감추었다. 鄭회장은 열흘 늦은 4월17일 일본을 통해 귀국했다.
李益治 회장은 7일 鄭명예회장과 서울로 들어왔다가 곧바로 北京으로 출국, 특사회담 다음날인 9일 오후 서울로 돌아온 것으로 출입국 기록에서 확인됐다.
現代 관계자는 『두 사람이 중국 北京에서 朴智元 실장과 합류해 송호경 부위원장과 최종 담판을 벌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첫 접촉 때인 2000년 3월17일에도 李益治 회장이 上海에 있었고, LA에 머물던 現代그룹 鄭夢憲 회장도 上海에 갔던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李 前 회장은 上海의 한 호텔에 방 6개를 예약했다. 특히 鄭회장과 李 前 회장은 頂上회담 2차 접촉(2000년 3월22일)이 남북 간 입장 차로 진전이 되지 않자 3월29일 북측 송호경 부위원장을 접촉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한나라당 鄭亨根(정형근) 의원은 2002년 10월 국회에서 『鄭夢憲 회장과 朴智元 실장이 4월8일 北京에서 송호경을 만났으며, (頂上회담의 대가로) 돈을 주기로 최종 합의했다』고 주장했다. 당시 한나라당은 『정부 對 정부로 頂上회담을 위해서 비밀협상을 하는데 왜 鄭夢憲 회장 등이 함께 갔느냐』며 『남북 頂上회담의 대가를 現代 계열사를 통해 송금하는 문제를 협의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남북 통치권자들이 파견한 특사들의 비밀회동에 現代 측이 시종 깊숙이 개입한 이유는 무엇일까. 鄭夢憲 당시 現代그룹 회장이 對北사업을 진행하면서 북한의 송호경 아태평화위원회 부위원장과 친분이 있었기 때문에 비밀회담 초기에 「다리」를 놓아 주었다는 설이 이 사건이 불거진 초기에 일반적인 관측이었다.
그러나 갈수록 現代의 관여 수위가 단순한 「중매장이」 역할이 아니라, 頂上회담의 主管(주관) 기업이었음이 드러나고 있다. 鄭회장이 남북 정부의 비밀회담마다 동석했다면 頂上회담과 現代의 對北사업은 「패키지」로 추진됐음을 의미한다. 즉 북한은 두 가지를 한 묶음으로 간주했고, 現代의 對北송금을 조건으로 頂上회담 개최에 합의했다는 분석이 그래서 힘을 얻는다.
現代그룹의 한 고위 관계자는 『북한이 頂上회담과 對北사업을 연계해 협상하기를 요구했고 정부와 現代도 이에 합의한 것으로 안다』며 『對北송금의 성격을 頂上회담과 떼어내서 생각하기는 곤란하다』고 말했다.
또 남북한 특사의 비밀회담 자리에 現代 관계자가 여러 차례 함께 만난 것은 「금액」을 조정하기 위한 것이란 해석이 유력하다. 내일신문은 「북한이 최초 요구한 금액은 10억 달러였으나 밤새(2000년 3월17일) 조율한 끝에 5억 달러로 합의했다」고 보도했다. 現代는 이 돈을 北에 보내는 代價로 북한에서는 금강산 개발 등 7대 경협사업의 「독점권」을 챙겼고, 정부는 남북 頂上회담 성사라는 代價를 얻었다는 가설이 성립된다.
現代는 5억 달러를 어떻게 마련했나.
林東源 특보는 2월14일 『現代가 북한에 보내기로 약속한 돈은 5억 달러』라고 밝혔다. 하지만 林특보는 現代가 약속한 돈을 전부 보냈는지 혹은 일부만 보냈는지, 아니면 5억 달러 이상을 보냈는지는 밝히지 않았다.
2000년 3월 왕자의 난(鄭씨 형제들 간의 경영권 다툼) 이후 금융권의 급격한 자금 회수로 자금난을 겪던 現代그룹이 어떻게 5억 달러라는 거액을 조달했는지도 설명하지 않았다.
재계에서는 당시 現代그룹이 5억 달러를 만들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했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당시 유동성(현금흐름) 사정이 좋지 않아 現代그룹이 자금을 다 긁어 모아도 1억5000만 달러밖에 확보되지 않았다』고 現代 측 관계자들은 밝히고 있다.
그래서 우선 2000년 5월 現代건설이 싱가포르 등을 통해 1억5000만 달러를 북한에 송금했고, 그 후 2000년 6월7일 現代상선이 산업은행으로부터 4000억원을 일시 당좌대월로 긴급 대출받았고, 이 중 2235억원(2억 달러)이 對北 송금에 사용됐다.
現代상선이 유일하게 인정한 2235억원의 對北 지원금은 국정원의 도움을 받아 외환은행을 통해 환전된 뒤 몇 차례에 걸쳐 2000년 6월12일까지 전액 북한에 송금됐다.
現代전자(現 하이닉스반도체)도 2000년 5~7월경 1억 달러(1260억원)를 북한에 보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現代전자는 2000년 5월 스코틀랜드 반도체 공장을 1억6200만 달러에 매각한 뒤 이 중 1억 달러를 아랍에미리트에 있는 現代건설의 페이퍼 컴퍼니 「알카파지(HAKC)」에 대여했다.
하지만 現代전자는 돈을 빌려 준 뒤 7개월 만에 이를 「회수 불가능」한 부실 대여금으로 판정 내리고 손실로 처리하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보인다.
당시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으나 對北송금이 공론화되면서 하이닉스 측은 『現代건설에 1억 달러 상환을 요구하겠다』고 뒤늦게 뒷북을 치고 나왔다. 그러자 現代건설은 『우리는 그런 돈을 송금받은 적은 있지만, 우리가 쓴 돈은 아니다』고 맞서고 있다.
現代건설, 現代상선, 現代전자가 세 갈래로 북한에 보낸 돈을 모두 합치면 4억5000만 달러가 된다. 林특보가 밝힌 5억 달러에서 5000만 달러가 부족하다. 5000만 달러는 또 어떻게 조달해서 어떤 경로로 보냈을까?
現代가 북한에 준 현금만 1조7000억원
現代가 對北 사업을 진행하면서 공식․非공식적으로 북한에 준 돈은 얼마나 될까? 지금까지 확인된 對北 송금액만 해도 1조원을 훌쩍 넘는다.
1989년부터 對北사업을 추진했던 鄭周永씨는 1998년 10월29일 金正日 국방위원장과 만나 「금강산 관광사업에 관한 합의서 및 부속합의서」를 체결하면서 2005년2월까지 모두 9억4200만 달러(약 1조1304억원)를 지급키로 약속했다.
이는 원산부터 해금강에 이르는 금강산 지역에 대한 30년간 독점적 관광사업권에 대한 代價였다.
이 가운데 2002년 말까지 現代가 북한에 지급한 금액은 모두 3억8870만 달러(4664억4000만원)이다. 이는 남북교류협력법에 따라 통일부에 신고절차를 거쳐 북한에 지급한 돈이다.
여기에 林東源 특보가 14일 확인한 5억 달러(6000억원)를 합칠 경우 現代의 對北 송금액은 모두 8억8870만 달러(약 1조664억4000만원)로 불어난다.
이와는 별도로 과거 鄭周永 명예회장이나 鄭夢憲 회장이 북한을 방문할 때에는 「면담료」 성격의 돈을 갖다 준 것으로 알려져 있다. 現代 관계자는 『鄭周永 명예회장이나 鄭夢憲 회장이 북한에 갈 때에 수억원을 담은 가방을 자동차 트렁크에 싣거나 손에 들고 갔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라고 말했다.
한나라당 이성헌 의원은 최근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소떼를 북한에 보낼 때도 現代가 거액의 지참금을 들고 간 의혹이 있다』고 밝혔다.
現代가 북한에 송금한 돈은 2000년 6월 평양에서 열린 남북 頂上회담뿐만 아니라, 2000년 8월15일로 예정된 金正日의 답방에 대한 代價까지 포함됐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現代의 한 관계자는 『現代상선이 당시에 북한에 준 돈은 평양에서의 頂上회담에 대한 代價는 물론 金正日 국방위원장의 답방에 대한 代價의 성격을 동시에 갖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하지만 북쪽이 金正日의 서울 답방 약속을 지킬 수 없게 되자 대신 8월22일 現代 측에 對北경협 7대 사업에 대한 계약서를 써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現代의 對北 송금은 경협자금이었다』는 청와대와 現代아산의 주장을 완전히 뒤엎는 증언이다. 現代가 북한에 돈을 보낸 시점은, 林東源씨의 주장대로라면 2000년 6월9일인데, 現代가 북한과 경협과 관련된 7대사업에 대한 계약을 맺은 것은 같은 해 8월22일이었다. 그 돈이 頂上회담을 위해 갔다는 것을 보여 주는 좋은 증거다.
鄭周永 회장과 金正日이 이미 합의한 금강산 개발 및 개성공단 건설 외에 「對北 7대사업」으로 불리는 것은 남북 철도연결, 통신사업, 전력사업, 통천 비행장 건설, 금강산 저수지의 물 이용, 관광 명승지 종합개발, 임진강 댐 건설 등이다.
現代 측은 『5월에 경협 대상과 원칙에 합의하고 먼저 돈을 보냈다』고 밝혔으나, 5억 달러라는 거금을 확실한 사업보장이 없는 상태에서 보내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한 정보 관계자는 『국정원은 당초 「남북 頂上 상호방문」 프로젝트를 추진했으나, 결국 金正日의 답방이 성사되지 않아 국정원 내부에서는 이를 「실패한 공작」으로 평가한다』고 말했다.
頂上회담 후 봇물 터진 現代 지원
자금난에 몰리던 現代그룹이 빚을 내가면서까지 對北 자금을 지원한 이유는 무엇일까?
現代가 남북 頂上회담의 물꼬를 트는 代價로 金大中 정부로부터 얻은 특혜는 어떤 것들이었을까?
남북 頂上회담과 現代그룹의 對北(對北)사업이 한 묶음의 「패키지 딜」로 진행됐다는 점이 밝혀지면서, 2000년 6월 이후 정부가 現代 살리기를 위해 제공한 각종 지원이 결국 對北송금과 연계된 특혜였음이 확인되고 있다.
금융권에 따르면, 남북 頂上회담 직전인 2000년 5월 이후 국책기관과 금융권이 現代 계열사에 지원했거나 곧 지원한 것을 단순 합산하면 40조원을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이 중에는 지원 금액이 중복 계산된 사례도 있지만. 천문학적인 돈이 現代 살리기에 투입되었다는 사실은 어느 누구도 부인하기 힘들다.
現代그룹의 유동성 위기는 당시 벌어진「왕자의 난」 외에도 對北송금을 위해 계열사 여유자금을 긁어 모으는 바람에 발생했다는 설명이 유력하다.
鄭夢憲 회장은 2000년 5월 청와대에 직접 구조신호를 보냈고, 이후 외환․한빛․조흥 등 채권단이 연대해 現代건설에 2500억원을 긴급 지원한 것을 시작으로 산업은행, 채권단, 토지공사,주택은행, 신용보증기금 등이 돌아가며 특혜성 자금지원과 부채 탕감에 동원됐다.
경제장관회의가 現代 살리기 결정
現代그룹에 대한 특혜는 2000년 10월부터 세 달간 피크를 이뤘다.
現代건설, 전자, 유화, 상선이 잇달아 유동성 위기에 몰렸다. 총체적 위기에 처한 現代그룹을 살리기 위해 나온 것이 2000년 12월 「회사채 신속 인수 제도」였다. 滿期(만기)가 돌아온 회사채의 80%를 산업은행이 대신 사주는 이 제도는 전체 부실기업을 대상으로 한 것이었지만, 실제 現代계열사 지원이 전체 80%(2조3000억원)를 차지했다.
금융기관이 現代에 대한 편법 지원에 반발하자, 재경부는 『보증이 잘못되면 정부가 책임지겠다』면서 보증 관계자에 대한 免責(면책)을 보장하는 공문까지 보내 주었다. 2001년 3월9일의 금융감독위원회 의사록도 정부의 現代 살리기가 조직적으로 이뤄졌음을 나타내고 있다.
이날 李瑾榮(이근영) 금융감독위원장 주재로 열린 금감위 회의에서는 동일 借主(차주)에 대한 신용 공여 한도(은행 자기자본의 25%)를 초과한 現代건설에 대한 신규 대출 여부가 논의됐다. 하지만 이 안건은 일부 금감위 민간위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정부 측 금감위원들의 강력한 주장으로 통과됐다.
이날 금감위는 스스로 정한 법을 어기고, 산업은행과 외환은행이 現代그룹에 대해 각각 3750억원, 2250억원의 신규 대출을 할 수 있도록 길을 터주었다.
이날 한 금감위원은 『現代건설이 일시적 유동성 부족이라기보다는 지불 능력에 문제가 있다는 게 시장의 시각』이라며 『「경제장관 간담회에서 (일방적으로) 결정했으니 승인해 줘야 한다」는 논리는 위원회를 만든 취지에 어긋난다』고 반발했다.
또 한 금감위원은 『鄭夢憲씨의 337억원 출자 외에 실제 이뤄진 것도 없는데, 신규 대출을 승인하는 것은 재벌을 쓰러뜨릴 수는 없다는 과거 정권 논리와 다를 바가 없다』고 비판했다.
이날 회의에는 이 위원장을 비롯해 정건용 부위원장(現 산업은행 총재), 이상용 당시 예금보험공사 사장, 연원영 상임위원(現 자산관리공사 사장) 등과 비상임위원으로 국찬표 서강大 경영대학원장, 박상용 연세大 교수(한국증권연구원장), 박진원 변호사(법무법인 세종) 등이 참석했다.
이와 관련, 금융감독당국의 한 고위 관계자는 『당시 금감위는 이미 그전에 경제장관회의에서 결정된 사항을 추후에 의결하는 것에 불과했다』며 『現代건설을 법정관리에 집어 넣지 않고, 출자전환과 신규 대출을 통해 살린다는 것은 경제장관 회의에서 모두 결정된 것』이라고 말했다.
『現代는 더 망할래야 망할 것도 없다』
對北 비밀 송금 파문이 계속 되자, 최근 청와대 고위 당국자는 『전부 다 밝히면 現代가 망한다』고 말했다. 對北 송금의 전말을 밝히면, 現代그룹에 다시 자금난에 몰리고 부도 위기에 몰릴 수도 있다는 경고였다.
이런 주장에 대해 現代에서 분가된 한 재벌 그룹의 오너는 『現代는 더 망할래야 망할 것도 없다』고 정면으로 비판했다. 『이미 鄭씨 가문의 지분은 거의 없어졌고 現代건설․하이닉스 반도체 등은 모두 채권 은행단이 경영권을 행사하고 있기 때문에 망할래야 망할 기업도 없다』는 얘기였다.
鄭周永씨가 창업한 現代그룹은 2000년 몽구․몽헌․몽준 등 세 아들의 경영권 다툼을 계기로 크게 3개 그룹으로 나뉘어 계열 분리됐다. 이때 鄭夢憲 회장이 물려받은 계열사(現代그룹)는 現代건설, 現代전자(하이닉스반도체 전신), 現代증권, 現代종합상사, 現代택배, 現代아산 등이었다.
現代․기아자동차는 형인 정몽구 회장이, 現代중공업․現代미포조선은 동생인 정몽준 의원이 물려받아 現代그룹에서 분리됐다.
鄭夢憲 회장이 이끌었던 계열사들은 재무구조가 악화되기 시작했다. 계열사 중 가장 규모가 컸던 現代건설은 IMF 경제 한파로 건설경기가 침체되면서 부채를 견디지 못해 2001년 5월 경영권이 채권은행으로 넘어갔다. 또 LG반도체와 합병했던 現代전자도 세계 반도체 경기 불황으로 경영이 악화돼 2002년 은행권 관리에 들어갔다.
이에 따라 1999년 말 기준 재계 1위였던 現代그룹은 2001년 말 현재 재계서열 13위로 밀려났다. 2001년 現代그룹은 1조250억원의 적자를 냈다. 現代 관계자들은 『鄭夢憲 회장 계열사들이 차례로 은행관리에 들어가고, 現代그룹 재무구조가 크게 악화된 데에는 對北사업에 대한 과도한 투자가 한 몫했다』고 말했다.
한나라당의 李性憲 의원은 『對北문제로 現代그룹에 코가 꿰인 정부는 非상식적인 지원책만 남발하다 現代도 못 살리고, 정부의 구조조정 정책에도 큰 상처를 남겼다』고 비판했다.
現代그룹 관계자들은 2002년 9월 한나라당 엄호성 의원이 4억 달러 對北 비밀지원설을 터뜨린 직후부터 줄곧 『사실무근』혹은 『모른다』고 둘러댔다. 2003년 1월 감사원 조사결과 現代상선이 2000년 6월 북한에 2억 달러(2235억원)를 보낸 사실이 공식 확인된 뒤부터는 現代 관계자들은 입을 굳게 닫아버렸다.
現代의 송금 관련자들 전부 해외로 발령
사건의 핵심 주역인 鄭夢憲 회장은 嚴 의원 폭로 이후 곧장 미국으로 출국, 4개월간 해외에 체류했다. 鄭회장이 2003년 1월 귀국하자 「정부 측과 사건 해결에 대한 조율을 끝낸 게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됐다.
그가 귀국한 직후 4000억원 대출 관련 자료제출을 미뤄 오던 現代상선이 감사원에 자료를 전격 제출했다. 現代상선은 4000억원 대출 과정에 직접 관여한 당시 핵심 고위 간부들을 모조리 회사를 떠나게 했거나, 해외지사로 발령을 내 「도피성 인사」라는 의심을 사고 있다.
공식 최종 결재권자였던 金忠植(김충식) 前 사장은 2000년 6월7일 4000억원 대출에 반대, 대출약정서에 서명을 거부했다. 이 때문에 鄭夢憲 現代아산 회장과 심각한 갈등을 빚었고, 결국 이듬해 회사를 그만둔 뒤 현재 미국에 머물고 있다.
金사장 대신 송금 업무를 총괄한 사람은 박재영 당시 회계담당 전무다. 그는 특히 鄭회장의 신임이 두터워 김충식 사장․김종헌 재무담당 상무 등을 제치고 鄭회장과 「직거래」했다고 現代그룹 관계자들은 증언하고 있다.
朴전무도 지난해 12월 초 美洲(미주) 본부장으로 발령이 났다. 그는 입사 후 해외 근무 경험이 없어 「빼돌리기 인사」라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은행대출 실무를 총괄했던 金鍾憲(김종헌) 당시 재정담당 상무도 2002년 9월부터 영국 런던에 있는 歐洲(구주)본부 관리담당 중역으로 근무 중이다. 2003년 1월 10일에는 朴湳星(박남성) 재정담당 전무를 싱가포르에 있는 동․서남아 총괄본부 본부장으로 발령냈다.
現代상선 측은 『해외 영업을 강화하기 위한 인사일 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2001년 말까지 現代상선 회계 실무 책임자로 일했던 朴모 회계담당 부장도 고급 정보를 갖고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는 1년 전 별다른 이유없이 퇴사, 연락이 닿지 않고 있다.
결국 現代를 위한 변명을 할 수 있는 사람은 鄭夢憲 회장 자신밖에 없다. 그는 여전히 입을 닫고 있다. 鄭회장은 요즈음 집과 종로구 계동의 現代아산 사무실을 오가는 일 외에는 거의 외부 사람을 만나지 않고 있다.
매일 아침 7시30분쯤 계동 現代사옥 12층 사무실로 출근해서 점심식사를 빼고는 거의 사무실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측근인 金潤圭(김윤규) 사장이 가끔 對北 사업과 관련해 보고하는 것 외엔 외부 손님도 거의 없고, 저녁에도 약속을 별로 하지 않는 것으로 전해진다.
現代상선의 對北 지원설이 사실로 드러난 1월30일.
기자는 새벽 일찍 鄭회장의 성북동 자택을 찾아갔다. 대문 앞에서 두 시간을 기다리자 오전 7시30분쯤 검은색 에쿠스 승용차가 대문 밖으로 나왔다. 鄭회장은 차 뒷좌석에 타자마자 조간 신문을 펼쳐 들고 現代상선 관련 기사를 꼼꼼히 읽고 있었다. 『對北송금이 어떻게 된거냐』는 질문에 그는 굳은 표정으로 입을 꾹 다문 채 종로구 계동 現代아산 사무실로 직행했다.
그 이후 鄭회장은 북한 금강산을 오갈 때 간간이 모습을 내비쳤다.
검찰은 당초 鄭회장을 출국금지시켰으나 청와대에서 「對北사업은 통치행위의 일환」 운운하자, 곧바로 출국금지 조치를 일시 해제시켜 줬다.
지난 2월5일 鄭회장을 비롯한 現代아산 임직원 60여 명은 금강산 육로관광 사전답사를 떠나기에 앞서 경기 하남의 故 鄭周永 명예회장 묘소를 참배했다. 鄭회장은 對北사업을 처음 시작한 부친 鄭명예회장의 묘소 앞에서 감정이 북받치는 듯 한동안 눈물을 흘렸다.
회한의 눈물이었을까. 아니면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던 現代 신화를 제대로 지켜 내지 못한 자책의 눈물이었을까. 現代 관계자는 『부친의 뜻을 이어받아 역점사업으로 추진해 온 對北사업이 오히려 자신을 옭아매는 사슬이 됐다는 점에서 심경이 착잡했을 것』이라고 전했다.
외환은행의 역할
林東源 특보는 2월14일 『국정원은 환전 편의를 제공했고, 국정원 계좌를 통해 돈이 송금된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現代는 2000년 3개월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어떻게 5억 달러라는 거액을 북한에 송금할 수 있었을까
2003년 2월은 現代의 주거래은행인 외환은행에게 잔인한 달이었다.
1월 말 감사원의 산업은행 감사 결과, 現代상선 2235억원 對北송금이 외환은행을 통해 이뤄졌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확인 요청이 잇달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나라당과 각종 언론 보도는 송금 주체로 現代상선이 아닌 국가정보원을 지목하고 있었다.
외환은행 임원들이나 실무 담당자들은 기자들을 피하기 급급했고, 혹 얼굴이 마주치더라도 『저는 모릅니다』고 미리 손사래를 치기 일쑤였다.
사실 외환은행이 對北 송금의 창구가 됐으리라는 것은 상식이었다.
외환은행 본점 영업부에는 매월 해외 공관으로 각종 비용과 월급을 보내는 외교부, 국정원 등의 계좌가 다수 개설돼 있다. 또 現代상선 역시 외환은행을 주거래은행으로 하고 있었다.
하지만 외환은행 관계자들의 입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현행 금융실명거래에 관한 법률은 은행원들이 어떤 형태로든 금융계좌의 비밀을 누설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심지어 이 법은 다른 정보와 결합해 비밀을 누설할 개연성이 있는 조각 정보의 유출마저 처벌하도록 하고 있기 때문이다.
『거래가 있었던 것이 사실인가』
『은행원은 말이 없다』
취재기자와 은행 고위관계자들 사이에는 이런 선문답만 되풀이됐다. 외환은행 이강원 행장 등 관계자들은 2월12일 한나라당 對北뒷거래조사특위 소속 의원 10명이 방문한 자리에서도 같은 태도를 유지해, 한나라당 의원들과 고성이 오가는 설전을 벌였다.
그럼에도 감시 직후부터 송금을 둘러싼 얘기들은 조금씩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 단서는 감사원의 감사 결과 발표 당시 나온 외환은행의 금융실명거래법 위반 혐의에 관한 부분이었다. 감사원은 26장의 자기앞수표로 된 2235억원을 입금할 당시, 수표 뒷면에 배서를 한 6명의 신원이 국민연금관리공단이나 공무원 연금 전산망에 나오지 않는 「신원 미상의 인물」이라고 발표했다.
『對北 비밀송금의 주체는 국정원, 외환은행에서 돈을 부친 사람은 국정원 직원』
이 말은 듣기에 따라 외환은행이 송금을 위해 수표를 받으면서 배서자의 신원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다는 것을 시사하는 듯했다. 즉 실명 확인 절차를 지키지 않아 금융실명거래법을 위반했다는 것이다.
외환은행 관계자들은 즉각 반론을 제기했다.
『고객이 누구든 금융실명거래법을 지키지 않으면 처벌받는 것은 은행원입니다. 지금 시대에 어느 은행원이 국정원이 시킨다고 실명 절차도 안 지키고 일을 처리합니까?』
임원급의 고위관계자는 물론 일선 대리급까지 일치하는 의견이었다.
금융권의 한 소식통도 김경림 당시 외환은행장이 송금 협조를 요청해 온 국정원 관계자에게 『금융실명제법에 위배되지 않는 선에서 협력하겠다』는 뜻을 밝혔다고 전했다.
외환은행은 감사원의 감사 결과를 반박하는 과정에서 이외에도 거래를 둘러싼 여러 정황들이 확인됐다.
한 관계자는『現代상선의 주거래 지점이 서울 계동사옥內 계동지점인데 왜 본점 영업부로 왔을지 생각해 보라』며 『송금 주체가 現代상선이 아니라 국정원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그는 『외환은행 본점 영업부에는 ○○물산, ○○기업 등으로 된 국정원의 위장 법인 계좌가 있다』고 밝혔다.
외환은행 본점 영업부에는 3개의 팀이 있다.
1팀은 공공기관을 상대로 하고, 2팀은 대기업, 3팀은 중소기업을 담당한다. 당시 실무자들에 따르면, 이 거래는 공공기관을 맡은 1팀이 아니라 대기업 담당인 2팀에서 이뤄졌다고 한다.
또 다른 정황도 제시됐다. 2000년 6월9일 2235억원의 수표를 들고 온 사람이 『평소 거래를 위해 자주 방문하던 사람이었고, 그날도 평상시와 마찬가지로 실명 거래를 했다』는 주장이다.
이 「평소 자주 거래를 하던 사람」은 두말할 것 없이 국정원 직원이었다. 가공 기업의 직원으로 위장한 국정원 직원이 평소대로 2팀에 와서 現代상선이 北으로 보내는 2235억원을 송금했다는 것이다.
국정원의 송금 사실이 외환은행에서 확인된 뒤 남는 의문은 어떻게 송금이 이뤄졌을까 하는 문제이다.
송금 경위에 대해서는 외국환거래법에 그 단서가 숨어 있었다. 외국환거래법의 외국환 관리규정을 보면 가장 빠른 시간 내에 간단하고 안전하게 송금할 수 있는 방법 하나가 숨어 있다. 국가나 지방자치단체는 달랑 한 장의 공문이나 구두 요청 만으로도 사유를 밝히지 않고 송금할 수 있도록 돼있는 것이다.
『정부가 잠수함을 구입한다고 합시다. 잠수함 구입 대금이라고 송금 사유를 쓸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사유를 명시하지 않고 협조공문을 보내 오면 그 공문을 근거로 송금을 하는 거죠. 실제 창구에 물어보니까 급할 때는 구두로 요청해도 송금할 수 있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사실 기업이 對北 송금을 하기 위해서는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 한다. 우선 對北 거래를 할 수 있는 자격을 통일부 장관으로부터 얻어야 하고, 돈을 보낼 때도 계약서 사본 등 송금 사유를 증빙하는 서류를 갖춰야 한다.
現代상선이 이런 서류를 못 만들 것은 아니지만 서류를 만들려면 복잡하고 어려운 절차가 필요해 시간이 적잖이 소요된다. 더욱이 통일부 등 공식 정부 라인에서 이 사실을 눈치챌 수밖에 없어 보안 유출의 위험마저 있는 것이다.
이런 정황을 보면 現代상선이 국정원에 2억 달러에 대한 송금 협조 요청을 한 이유는 자연스럽게 밝혀진다. 다른 정부 부처도 모를 만큼 기밀이 필요했거나 절차를 갖춰 송금하기에는 시한이 촉박했다는 것이 된다. 아니면 둘 다 해당될 수도 있을 것이다. 통일부 장관도 국회답변에서 『(이 거래는) 남북교류협력법의 밖에서 이뤄져 내용을 몰랐다』고 한 점도 이같은 사실을 뒷받침하고 있다.
産銀에 거액 대출을 지시한 권력 실세는?
산업은행이 2000년 5월18일과, 6월7일 現代상선에 각각 1000억원과 4000억원을 일시 당좌대월로 빌려 준 과정은 여전히 의혹 투성이다. 일시 당좌대월이란 기업용 마이너스 통장으로 통상 15일~한 달 동안의 급전을 빌려주는 것이다.
林東源 특보는 지난 2월14일 이렇게 설명했다.
『제가 국정원장 재직시인 2000년 6월5일경, 「現代 측에서 급히 환전 편의 제공을 요청해 왔다」는 보고를 받고, 관련 부서에 환전편의의 제공이 가능한지 검토해 보라는 지시를 한 바 있습니다. 국정원은 외환은행에서 환전에 필요한 절차상의 편의를 제공했고, 6월9일 2억 달러가 송금되었습니다. 이와 관련해서는 상부에 보고된 바 없음을 말씀 드립니다』
하지만 여기에 결정적인 의문이 생긴다.
林東源 대통령 특보가 국정원장 시절 現代 측의 換錢 편의 제공 요청을 받은 시점(2000년 6월5일경)은 산업은행의 4000억원 대출이 승인(6월7일)되기 이틀 전이다. 이는 당시 現代상선이 권력 실세의 사인을 미리 받고나서 산업은행으로부터의 대출을 100% 확신했다는 얘기다.
금융권 관계자들은 『청와대와 現代 측의 사전 묵계 없이 4000억원이란 거액 대출을 확신할 수 있었다는 것은 이해하기 힘든 일』이라고 말했다.
現代상선이 산업은행에 4000억원의 대출을 위한 차입신청서를 제출한 시점은 6월5일이다. 이후 속전속결의 절차를 밟아 산업은행이 現代상선에 대출을 승인해 준 시점은 6월7일이다.
쉽게 말해 現代상선이 국정원에 환전 편의 제공을 요청한 6월5일은 産銀 내부에서 4000억원의 본격적인 대출 논의조차 시작되기 전이라는 점이다.
産銀은 작년 국감에서 『現代상선은 6월5일 신청서를 제출했고, 6월7일 승인이 나자마자 돈을 찾아갔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청와대와 現代그룹이 사전에 북송자금의 일부를 「産銀 대출금」으로 마련하기로 하고, 청와대가 産銀에 대출 압력을 넣은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이와 관련, 정건용 산업은행 총재는 2월14일 국회 답변에서 『4000억원 대출은 명백한 법 위반이고, 편법으로 당좌대월을 연장해 준 것도 産銀 내부 세칙 위반』이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産銀은 4000억원이 불법 대출이라는 지적이 있을 때마다 『단순히 실무자의 실수에 불과하다』고 거짓말을 해왔다.
『한광옥 대통령 비서실장이 4000억원 대출 지시』(엄낙용 前 産銀 총재)
現代그룹의 북송 자금을 공급해 주는 「금고」로 산업은행이 선택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국책은행이라는 산업은행의 기본 특성에서 찾을 수 있다. 국민의 세금으로 자본금을 조달하는 산업은행은 「정책금융」이라는 이름으로 국가의 필요에 따른 금융 사업을 한다. 이런 이유로 現代 살리기라는 비판을 집중적으로 받았던 「회사채 신속인수제」를 집행한 것도 산업은행이었고, 시중 은행들이 다 떠맡기 싫어하는 대우자동차 매각 문제를 마무리 지은 것도 산업은행이었다.
시중은행의 한 임원은 『당시 現代그룹의 유동성 위기가 심해 모든 은행들이 대출을 기피했던 시점』이라며 『결국 정부의 지시에 약한 국책은행(산업은행)을 통해 現代 측에 북송 자금을 마련해 주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정부 말을 들을 수밖에 없는 산업은행에 대출 압력을 집어 넣은 사람은 누구일까. 이에 대한 해답은 이미 나와 있다. 이번 사건을 처음 촉발시킨 嚴洛鎔(엄낙용) 前 産銀 총재는 2002년 9월 국정감사에서 『그때 대출이 이상해서 나중에 당시 産銀 총재였던 이근영 금감위원장을 찾아가 물었더니 「나도 어쩔 수 없었다. 청와대 한광옥 비서실장의 지시가 있었다」고 말했다』고 증언했다.
쉽게 말해 대통령의 분신인 비서실장이 産銀 총재에게 「4000억원을 現代에게 대출해줄 것」을 지시했고, 당시 이근영 産銀 총재는 최대한 합법적인 테두리에서 거액을 빌려 주기 위해 일시 당좌대월이라는 편법을 통해 대출을 해주었다는 가설이 성립된다.
당시 産銀의 규칙에 따르면 일시 당좌대월은 정식 여신협의회(신용위원회)를 거치지 않고, 본부장(이사) 전결로 집행될 수 있었다.
4000억 대출 집행한 朴相培 부총재, 『나는 거물이 아니다』
당시 대출을 집행했던 산업은행 朴相培 부총재의 말에서도 이런 징후를 엿볼 수 있다. 産銀 내부 직원들로부터 「큰형님」이라 불릴 정도로 신뢰를 받고 있는 朴부총재는 당시 5대 그룹을 담당하는 영업1본부장이었다.
최근 기자와 만난 朴부총재는 이렇게 말했다.
『그때 대출을 담당했던 내 부하 직원들에게 감사원 감사관에게 모든 것은 내가 시켜서 했다고 말하라고 했다. 언론과 청와대는 필요 이상으로 나를 거물로 보고 있다. 사건 초기에 내가 모든 것을 떠 안고 가려는 자세를 보였더니 나를 거물로 보는 것 같다. 하지만 이것은 틀린 얘기다』
이 사건과 관련해 『나는 거물이 아니다』고 절규했던 朴相培 부총재는 지난 2월13일 4000억원 대출에 대해 책임을 지고 해임이 제청되었다. 이 사건에 책임이 있는 거물은 아무도 말이 없는 가운데, 처벌을 받은 첫 번째 케이스였다.
이 사건이 불거진 이후 특검제 등을 통한 진상규명을 요구했던 한나라당은 金大中 대통령의 해명 기자회견 이후 더욱 고삐를 바짝 조이고 있다.
朴熺太(박희태) 한나라당 대표권한대행은 『金대통령은 또다시 터무니없는 거짓말과 궤변으로 사건의 본질을 왜곡하고 책임을 회피하는 데 급급했다』며 『국민을 두 번 속이려 하고 있다』고 말했다.
朴대행은 기자회견에서 「對국민 담화의 12가지 문제점」을 적시하고 ▲對北 송금액 5억 달러 중 밝히지 않은 3억 달러의 행방 ▲5억 달러 이외의 對北 송금액 존재 의혹 ▲10여 가지의 실정법 위반에 대한 대통령의 책임 ▲『북한에 단 1달러도 주지않았다』고 한 朴智元 청와대 비서실장의 국회 僞證(위증)에 대한 법적 책임 ▲對北 뒷거래와 頂上회담의 관계에 대해 집중적인 의문을 제기했다.
朴대행은 특히 『문제의 실체는 이 사건이 전형적인 범죄적 수법을 동원한 「범죄적 사건」이라는 점』이라며 『국회는 범죄적 사건을 해결할 권한도 능력도 없다』고, 정치적 타협에 의한 해결을 거부한다는 입장을 명백히했다.
朴대행은 『다른 기업들은 모두 남북교류협력법 등 법을 지키면서 對北사업을 했는 데 유독 이 경우만 무엇 때문에 국정원이 불법적으로 돈을 환전해 주고 비밀 송금루트를 통해 돈을 전달했는지, 무엇 때문에 국회의 승인을 받지 못했는지, 무슨 말 못할 배경이 있는지를 밝히는 것이 핵심』이라고 했다.
그는 또 『집권세력이 「국익」이니 「민족」이니 미사여구를 동원해 합리화하고 있으나, 現 정권에서 두 번의 해상무력 충돌이 있었고, 북한 핵위기로 안보상황과 긴장은 어느 때보다 심각한 상황』이라고 비판했다.
朴대행은 『금융감독원과 감사원의 감사 기피, 검찰의 수사 회피에 청와대의 압력이 있었는지도 조사해야 할 사안 중 하나』라고 지적했다.
감사원이 엉거주춤 오락가락한 이유
감사원이 現代상선의 對北 지원 의혹 사건에 등장한 것은 2002년 9월26일 李種南(이종남) 감사원장이 취임 3주년 기자간담회에서 산업은행에 대한 감사 의사를 밝히면서부터다.
당시 李원장은 『현재로서는 더 지켜봐야 하겠지만, 올 하반기로 예정된 산업은행에 대한 정기 감사에서 現代상선에 대한 긴급 대출이 정당한 절차를 거쳤는지 감사하겠다』고 밝혔다. 李원장은 『現代상선은 민간 기업이기 때문에 대출금 사용처에 대한 감사를 벌이기는 불가능하다』고 덧붙였다.
같은 달 9월25일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한나라당 嚴虎聲(엄호성) 의원이 現代상선의 對北지원 의혹을 터뜨린 후 단 하루가 지난 시점이었다. 9월29일 한나라당 「對北 뒷거래 진상조사단」 소속의 李在五(이재오), 金文洙(김문수) 의원이 現代상선이 자금을 인출한 산업은행 3개 지점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며, 국회 국정조사와 함께 감사원 특감을 요구하자 감사원은 對北 송금 여부의 진상을 밝혀 줄 해결사로 주목받게 된다.
특히 現代상선의 자금 흐름을 파악할 수 있는 기관으로 손꼽혔던 금융감독원이 이미 조사 불가 방침을 내린 상태였기에 감사원에 대한 관심은 더욱 집중됐다. 당시 李瑾榮 금융감독원장은 『금감원은 민간 기업(現代상선)에 대한 조사권이 없다』는 사리에 맞지 않는 말을 되풀이하고 있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언론 보도는 「과연 對北 송금이 있었느냐」는 초보적 수준에 머무르고 있었다.
민주당은 물론 現代상선까지도 對北 송금 사실을 전면 부인하며, 한나라당의 주장을 정치 공세로 몰아붙였다. 민주당은 9월28일 의원총회에서 한나라당의 對北 비밀지원설을 「막가파式 조작극」으로 규정하고 『(李會昌) 후보는 전쟁을 원하는지, 평화를 원하는지 분명히 밝히라』는 내용의 결의문을 채택했다.
現代상선 측은 『대출받은 돈은 전부 기업어음(CP) 상환과 선박용 船料(선료) 등 원래 신청한 용도대로 사용했고, 北에는 보내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2002년 10월14일 감사원의 산업은행에 대한 감사가 3주간 예정으로 본격 시작됐다.
그러나 감사원은 4000억원에 대한 자금 추적보다는 대출 당시의 대출 결정 및 대출 절차의 적정성을 주로 따지겠다며, 용처 사용은 조사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
감사원의 이런 선긋기와는 달리 사회적 관심은 ▲現代상선에 대한 대출과정에서 산업은행에 외압이 있었는지 ▲4000억원이 정말 北에 송금이 됐는지에 쏠리고 있었다.
감사원 감사가 시작되기 직전인 2002년 10월9일 산업은행 李公載(이공재) 감사는 『4000억원의 대출이 통상적인 대출과는 다르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사실이며, 일반적으로 생각하기에 그 대출은 조금 이상한 것』이라고 말해 대출의 문제점을 시인했다.
李감사는 『4000억원 대출 약정서에 대표이사의 서명이 빠지는 등 일부 문제점이 드러났다』며 『설사 해외출장 등의 이유로 대표이사의 서명이 빠질 경우 사후에 대표이사의 서명을 보충하는 것이 관례』라고 설명했다.
이렇게 전모가 조금씩 드러나는 것과 달리 감사원은 『4000억원 행방에 대해 계좌추적을 하지 않겠다』고 고집했다. 산업은행 감사반장인 鄭昇鐸(정승택) 감사원 2국1과장은 감사를 시작한 지 이틀째되는 날 기자들과 만나 『現代상선은 일반 기업이기 때문에 계좌추적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는 『現代상선 대출금의 사용처가 시설자금이 아닌 운영자금이라서 실제 사용처를 확인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비판 여론이 들끓었지만 감사원은 막무가내였다.
『금감원 등 당국이 감사원 감사가 시작되면 의혹이 규명될 것처럼 말해 놓고 이제 와서 계좌추적을 하지 않겠다고 하는 것은 정부가 의혹을 규명할 의지가 없음을 확실히 드러낸 것이다』(중앙대 법대 諸成鎬 교수)
現代상선 시간 끌며 직원들 해외로 내보내
비판여론이 거세지자 黃炳基(황병기) 감사원 사무총장은 『현재까지 계좌추적 여부를 결정한 바 없으나 감사가 진행되는 중 필요하다면 어느 정도 할지 검토할 사안』이라며 부분적인 계좌추적으로 입장을 바꾸었다.
이와 함께 李種南 감사원장은 『현재 진행되고 있는 産銀 정기감사에서 대출금의 사용처가 밝혀지지 않을 경우, 現代상선 측에 관련 자료 제출을 직접 요구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감사원법은 감사원이 감사 대상이 아닌 기관에 대해서도 자료 제출이나 출석 답변을 요구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후 감사원의 자료 제출 요구에 대해 現代상선은 3번 연속 거부하며 시간 끌기에 들어갔다.
그러나 現代상선의 자료 제출 거부에도 불구하고, 감사원은 조금씩 문제의 핵심에 접근해갔다. 2002년 10월 말쯤 감사원은 산업은행의 4000억원 대출이 「산업은행법」을 위반했다는 혐의를 포착했다.
감사원 감사 결과, 2000년 6월 산업은행이 이미 現代그룹에 대한 대출한도를 초과한 상태여서 대출금을 회수해야 하는데도 거꾸로 現代상선과 現代건설에 거액을 대출해 준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2000년 3월 정부는 산업은행법 시행령을 개정, 「産銀은 동일 재벌에 대해 자기자본의 25%를 초과하는 대출을 할 수 없다」고 규정했고, 이 시행령이 발효되던 시점에 이미 산업은행은 現代그룹에 대해 법에 명시된 한도를 넘는 2조6000억원(자기자본의 31%)을 대출해 준 상태였다.
그러나 산업은행은 現代그룹에 대한 대출을 줄이기는커녕, 오히려 2000년 6월7일 現代상선에 4000억원을 빌려 주었고, 6월26일에는 또다시 現代건설에 1500억원의 긴급자금을 대출해 주었다는 것이다.
대출이 실시된 2000년 6월 당시 산업은행이 금융감독원에 제출한 월간 업무 보고서에 4000억원 대출을 은폐한 사실도 감사원에 의해 적발됐다. 감사원에서는 대출 당시 現代상선에 대한 거액 대출 사실을 조직적으로 은폐한 産銀 책임자들이 무더기 징계를 받을 것이라는 얘기가 흘러나왔다.
산업은행은 2000년 6월7일 실시된 現代상선에 대한 4000억원 대출 사실뿐 아니라 그해 6월26일 現代건설에 1500억원을 빌려준 사실도 6월 말 업무 보고서에 누락시킨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이때까지도 사건의 核인 對北 송금 여부는 밝혀지지 않고 있었다. 現代상선 측이 자료 제출을 계속 거부했기 때문이다.
大選 정국을 피해 가려던 現代의 지연책
現代상선은 감사원의 자료 요구에 대해 『자동차 운반선이 매각되고 경영이 정상화될 때까지 기다려 달라』며 자료를 제출하지 않았다. 또 감사원이 요구한 現代상선 임원 세 명의 출석요구도 사실상 거부했다. 이 때가 작년 12월 초로 이 무렵부터 감사원 감사는 사실상 중단된다.
특히 검찰도 감사원 감사를 이유로 「現代상선 의혹 고발 사건」 수사를 중단해 이 사건은 답보 상태에 빠진다. 이와 함께 이 시기가 大選을 앞둔 민감한 시기였기 때문에, 정부가 고의적으로 조사를 지연시키고 있다는 비판도 나오기 시작했다.
이런 비판에 곤혹스러워하던 감사원은 『現代상선이 자동차 운반선 사업부문 매각대금(15억 달러)이 입금되는 12월 말 이후 4000억원의 사용처를 입증하는 서류를 제출하겠다는 뜻을 전해 왔다』고 밝혔다.
그러나 여론이 대통령 선거에 쏠리면서 現代상선 對北 송금 의혹 사건에 대한 정부 당국의 조사는 뚜렷한 진상 규명 없이 장기화되고 政局 현안에서 밀려났다.
大選이 끝나고도 盧武鉉 당선자 진영에서도 이 문제에 대해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았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도 명시적으로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인수委 鄭順均(정순균) 대변인은 2003년 1월 초 『인수委는 과거의 의혹사건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새 정부가 맡아야 할 긴급 현안과 주요 국정 정책을 다룬다』고 말해 4000억원 사건의 우선 순위가 뒤로 처져 있음을 분명히 했다.
2002년 10월 대통령 후보시절 盧武鉉 당선자는 전주방송과의 회견에서 『검찰 수사에서 자금 추적을 망설이고 있다고 하는데 해야 한다고 본다』며 『설사 (4000억원을 북한에) 안 갖다 줬더라도 그렇게 큰 돈이 대출됐다면 政經(정경)유착의 의혹이 있다』고 입장을 밝힌 것과는 달라진 모습이었다.
盧武鉉 후보 시절 검찰수사 촉구
감사원 당국자조차 지난 1월6일 『작년 12월에 독촉장을 보내자 現代상선이 자동차 운반선이 매각된 이후에 자료를 제출하겠다고 했다가, 올해 들어서는 ABS(자산유동화증권)까지 발행된 이후에 협조하겠다고 입장을 번복했다』며 『더 기다려 본 뒤 감사위원회를 열어 검찰 고발 여부 등을 결정할 예정』이라고 소극적인 입장을 밝혔다.
이런 가운데 지난 1월20일 「現代상선이 대출한 4000억원 중 최소한 2300억원 이상의 금액이 국내 사용 근거가 없음을 감사원이 확인했다」는 조선일보 보도가 나오면서 이 사건에 다시 세인의 관심이 집중된다.
당시 조선일보는 「産銀이 現代상선에 대출한 4000억원에 대해 제한적인 계좌추적을 실시한 결과, 이 중 1700억원은 수표 등을 통해 국내 금융기관에 회수됐으나, 나머지 2300억원은 행방이 묘연하다. 이 2300억원은 해외에서 돈 세탁 과정을 거쳐 다른 용도로 쓰였고, 對北 지원 등에 사용됐을 개연성도 있어 검찰의 수사가 필요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對北 송금의 실체가 조금씩 벗겨지기 시작한 신호탄이었다.
現代상선의 자료제출 거부를 마냥 기다리고만 있던 감사원은 「감사를 재개하라」는 여론의 압박을 느끼기 시작했다. 결국 감사원은 1월20일 갑작스럽게 산업은행에 대한 감사 결과를 중간 발표하면서 『당시 4000억원의 대출금 중 2240억원의 구체적인 사용처를 확인할 수 없다』며 『4000억원에 대한 증빙 자료 제출을 거부한 現代상선이 24일까지도 자료를 제출하지 않을 경우 감사원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와 함께 이 사건 고발사건을 맡고 있는 서울지검 형사9부도 『감사원이 고발해올 경우 감사원 조사를 토대로 관련 계좌추적 여부를 검토하겠다』고 화답했다.
이에 따라 2002년 9월 嚴洛鎔 前 산업은행 총재의 국감 증언 이후 지루한 공방을 거쳤던 4000억원 對北 지원설은 검찰의 본격 수사를 통해 진실이 가려질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4000억 관련 자료제출 마감 하루 전인 23일 오후 現代상선은 돌연 『1월28일까지 관련 자료를 제출하겠다』며 조금만 기달려달라는 의사를 감사원에 전달했다. 갑작스런 제출 이유에 대해 現代상선 측은 『자료 제출을 어렵게 했던 ABS(자산담보부증권) 발행이 완료됐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금융계 관계자들은 1월23일 내려진 現代아산 鄭夢憲 회장에 대한 검찰의 출국금지 조치에 鄭회장과 現代 관계자들이 위협을 느낀 결과로 해석했다. 사건이 검찰로 넘어갈 경우 現代상선 주요 관계자들의 구속 수사 및 전면적인 계좌추적으로 번질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現代상선은 이후 예정대로 1월28일 4000억원 사용처에 대한 관련자료를 감사원에 제출하고, 중단됐던 감사가 재개됐다. 감사원은 자료에 대한 면밀한 검토를 한 뒤, 설 연휴가 끝난 2월 초쯤 공식으로 감사결과를 발표할 예정이었다.
新여권 관계자 『돈은 북한으로 갔다』
그러나 의외의 인물로부터 놀랄 만한 언급이 나오면서 사건 진행 속도가 더욱 빨라지게 된다. 1월29일 밤 新여권의 고위 관계자가 「現代상선이 산업은행으로부터 대출받은 4000억원 중 당시 환율로 2억 달러에 해당하는 2240억원이 북한에 송금됐으며, 이 과정에서 국가정보원이 일정 역할을 했다』고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이에 감사원은 서둘러 감사를 마치고 설 연휴가 시작되기 전인 1월30일 최종 감사결과를 발표했다.
발표문에서 감사원은 『現代상선이 증빙자료를 통해 정확하게 2235억원을 개성공단 조성사업 등 7대 對北관련 사업자금 명목으로 북한에 지급했다고 알려 왔다』며 『이와 함께 대출 당시 李瑾榮 총재와 朴相培 영업1본부장의 산업은행 규정 위배 사실을 적발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감사원은 『송금 과정에서 국가정보원의 개입 여부 및 4000억원 대출 과정에서 외압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밝혀내지 못했다』고 밝혔고, 2235억원의 對北 송금과 관련 아무도 검찰에 고발하지 않았다.
발표 직전 李種南 감사원장은 청와대에 찾아가 金大中 대통령에게 보고했고, 金대통령은 『향후 남북관계의 지속적인 발전과 국가의 장래 이익을 위해 (이 사건을) 사법심사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주장했다.
감사원 관계자는 당시 『송금 경로는 전면적인 계좌추적을 해야만 알 수 있으며, 이것은 검찰이 나서야 가능한 일』이라며 『감사가 이뤄지는 동안 검찰이 수시로 진행 정도를 문의해 오는 등 검찰이 자체적으로 수사 의지를 밝혔기에 따로 고발할 필요를 못 느꼈다』고 했다.
이런 해명에도 불구하고 감사원 감사는 많은 문제점을 남기고 있다.
무엇보다 감사원이 작년 감사과정에서 2235억원의 증발 사실을 알고도 現代상선 측에 소명자료 제출을 요구하며 발표 시기를 미뤘던 점은 석연치 않다. 이로 인해 現代상선은 작년 12월 뒤늦게 자동차운송 사업부문을 유럽계 해운회사에 매각하는 방식으로 산언은행에서 빌린 2235억원을 갚는 한편, 2000년 6월 당시 회계업무를 총괄했던 朴在榮(박재영․48) 회계․총무 담당 전무를 美洲 본부장으로 내보냈다. 사건 관련자들을 해외로 발령내면서 사실상 사건 은폐에 나선 것이다.
통일부, 사업성 없다고 對北 7대사업 반대
또 감사원이 現代상선에서 밝힌 2235억원 사용 자료에 대한 구체적인 검증 없이 서둘러 발표하기에 급급했다는 비판도 일고 있다. 특히 감사원은 現代상선이 보내 온 자료를 인용, 북한에 송금한 2235억원이 「개성공단 조성, 통신사업, 금강산 관광代價 등 對北 7대 사업에 사용됐다」고 주장했으나, 이 7대 사업 중 가장 먼저 작성된 협약서조차 對北 송금 이후인 8월22일에 체결된 것으로 드러났다.
2235억 달러가 7대 對北 사업용이라는 現代상선 측 주장은 사실의 토대가 없었던 것이다.
특히 7대사업 대부분이 「사업 타당성에 대한 검증이 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정부에서 반려된 사업이었으며, 이같은 사실은 감사원이 통일부에 문의만 해도 쉽게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이었다.
이로 인해 감사원은 現代상선의 대출금 4000억원 가운데 2235억원이 북한에 송금됐다는 사실을 처음 밝혀내고도 한나라당을 비롯한 사회 일부로부터 「부실 감사」였다는 혹평을 듣고 있다.
現代그룹의 對北 비밀송금 사실이 드러나자 퇴임을 앞둔 金大中 대통령은 불면의 밤을 보냈다.
감사원이 對北송금 사실을 확인하자 1월30일 청와대는 1차 입장 표명을 시도한다.
金대통령은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現代상선의 일부 자금이 남북경제협력 사업에 사용된 것이라면 향후 남북관계의 지속적인 발전과 국가의 장래 이익을 위해 사법심사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적절치 않다』며 사법처리 불가론을 주장했다.
반면 「金대통령이 퇴임 전 털고 나가야 한다」는 盧당선자 측의 핵심 참모들은 『이 문제에 대한 모든 의혹은 정확히 밝혀져야 하며, 검찰수사도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사실 盧당선자 측의 이런 태도는 1월15일 盧武鉉 당선자의 청와대 비서실장 내정자인 文熙相 의원이 4000억원 해명 요구를 제기하면서부터 예상됐던 반응이다. 文내정자는 『現代상선의 對北 4000억원 지원설 등 DJ 정권에 대해 제기된 의혹에 대해서는 現 정부가 털고 가야 한다』며 『고백할 것이 있으면 고백하고 對국민 선언할 것이 있으면 선언하는 형태로 다음 정부에 부담을 주지 않아야 한다』고 했다.
文내정자는 『통치행위 가운데는 공개되지 않아야 하는 부분도 있다』며 『법적으로도 통치행위는 사법적 판단의 대상으로 삼지 않는다. 만약 공개할 수 없는 통치행위가 있었다면 덮고 넘어가야 국익을 위해 도움이 되지 않겠느냐』고 말해 對北 송금사건에 대한 청와대 쪽의 상당한 「브리핑」이 있었음을 암시했다.
文熙相, 『金正日의 입장 곤란해진다』
한발 더 나아가 그는 『만약 전쟁을 막기 위해 어느 나라의 국가원수가 상대방 국가에 거액의 돈을 지급했다고 할 경우, 이런 것들을 공개하는 것이 국익에 도움이 되겠느냐』, 『만약 4000억원 지원설에 대해 국민들에게 밝힐 것이 있어 공개할 경우 金正日의 입장은 곤란하게 될 것이다』는 등의 얘기를 했다. 「평화를 돈주고 샀다」는 논리는 곧바로 金大中 정부를 지지하는 사람들과 재야 시민운동단체의 논리로 자리를 잡았다.
청와대는 2월5일 2차 해명을 시도했다.
청와대 趙淳容 정무수석은 이날 『특검으로 간다는 것은 굉장히 위험한 발상이며, 現代보고 죽으라는 얘기』라면서 『(특검은) 옳지 않다고 본다』며 盧武鉉 대통령 당선자 측과 한나라당이 추구하는 특검 수사에 정면 제동을 걸었다. 다른 청와대 관계자는 『모든 것이 밝혀지면 現代가 망할 것』이라고 했다.
반면 盧武鉉 당선자 측의 柳寅泰(유인태) 정무수석 내정자는 『청와대가 성심 성의껏 한나라당과 물밑대화도 하고 이해도 구하고 애국심에도 호소하는 등 노력이 필요한데 그런 게 없다』며 청와대를 압박했다. 차기 정부의 압박이 거세지자 청와대는 2월14일 金大中 대통령의 기자회견으로 3차 해명을 시도했다.
現代의 자금책인 李益治와 鄭夢憲이 남북 특사의 만남을 처음부터 끝까지 주관하고, 金正日의 서울 답방까지를 포함한 남북 頂上회담의 代價로 5억 달러 송금을 약속하고, 국정원 직원이 국정원 계좌로 金正日의 비밀계좌에 돈을 보내고, 청와대가 나서서 금감원과 감사원, 검찰의 진상조사를 막았다는 것이 「對北 비밀 송금 사건」의 얼개다.
金大中 대통령은 『現代가 기업활동을 위해 5억 달러를 북한에 보냈고, 나는 당시 보고를 듣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韓美동맹을 허물어뜨린 對北 유화정책, 불법 對北 송금으로 대한민국의 기저를 뒤흔들어 놓은 金大中 대통령은 자신의 임기를 화려한 거짓말로 마무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