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서울에 가기 위해서 다른 날보다 훨씬 일찍 직장을 빠져 나오고 있을 때 눈에 보이지 않았던 초록의 행렬을 만났다. 잔디밭에서 잠시 꿈틀거리는 봄을 발견하고 얼굴에 미소를 머금고 나의 길을 재촉했는데 머리 속에는 봄으로 가득 차 있었다.
나는 두 가지의 목적을 가지고 시외버스 터미널로 갔지만 함께 만나기로 한 문우들은 오직 한 가지의 목적만을 가지고 있었다. 약속시간보다 조금 일찍 버스터미널에 닿았을 때 나를 맞아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것을 발견하고 터미널 안으로 들어갔다. 서울행 버스 시간을 확인하고 한 쪽에 도열해 있는 나무 의자에 엉덩이를 걸쳤다. 참으로 이상한 것은 내가 약속시간보다 일찍 나왔는데 누군가가 그 자리에 있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를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것이 이기적인 면을 다분히 품고 있었지만 나는 약속장소에 나가면 늘 그런 생각을 한다. 그러다가 그 기대가 충족되면 좋고 그렇지 않아도 다른 사람들에겐 어떤 문제가 없기에 혼자서 피식 웃고 만다. 어제는 그런 기대가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현실로 이뤄지는 일이 일어났다. 얼마 전 우리 모임에 가입을 한 여 회원의 모습을 보았고, 반가움에 뛰어가 인사를 나누었다. 그 여 회원은 한 도립병원에 다녀오는 중이라고 말했고 내가 걱정해하자 '검사를 했는데 문제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말을 했다. 나는 다행이라고 생각을 했고 그 회원과 인사를 나누고 다시 의자에 앉았다. 잠시 후 그 회원이 다가와 따스함을 간직하고 있는 쌍하탕을 내밀었다. 미안함과 함께 고마움을 느꼈다. 그것이 정이라고 생각을 하면서 혹시 밖에 와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을 하면 실내를 벗어나려는 순간 대합실 한 모퉁이에 걸친 이상한 곳을 보았다.
'흡연실'이라는 명찰이 붙어있었는데 그 곳에는 서 너 명이 서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 안에 머물고 있는 사람들이 유리 상자 안에 갇힌 원숭이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옆을 지나가는 사람들이 그들을 바라보는 눈길이 나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을 하였으나 다분히 자의적인 해석임에 틀림이 없다고 생각했다. 유리창을 통해서 비추는 한 평이 조금 넘을 까 말까한 그 공간은 황무지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담배꽁초가 몇 개 떨어져 있고 구겨진 담배 갑이 흡연자들은 어디에서도 환영을 받지 못하는 현실을 품고 있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 그 안에는 담배를 피울 때 발생할 수 있다는 피해를 도표화한 그림과 만화를 통해서 담배를 피우지 마라는 경고가 섬뜩하게까지 했다.
대합실 밖으로 나오니 S선생님이 신문을 읽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반가움에 달려가 인사를 나누고 있는데 멀리서 우리들을 향해 오는 회장님의 모습이 보였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안으로 들어갔다. 남서울 터미널로 가는 버스가 11시 55분에 있고 그 다음 차는 1시 넘어서 있기에 우리들은 점심 식사를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버스를 이용하기로 했다.
버스가 터미널을 벗어나자 차창으로 봄이 다가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멀리 비닐하우스의 행렬을 보면서 그 안에 자라고 있을 채소를 생각했다.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은 비닐 하우스를 이용해서 농사를 많이 짓고 있다. 열무, 파, 수박, 토마토, 방울토마토 등을 많이 심는데 일년에 한 번 정도만 수지가 맞으면 괜찮다는 얘기를 들었던 것을 생각해내었다.
온양을 지날 때 어디에선가 음악소리가 들려왔다. 서로 자신의 핸드폰을 확인하고 있었고 나도 무의식적으로 폴더를 펼쳤는데 I회원이 서울 예식장에 들렸다가 우리와 합류하고 싶다는 전화를 했다. 갑자기 가슴이 따스해지는 것을 느꼈다. 서울에 도착 할 때까지 두어 번 더 나는 폴더를 펼쳐야 했다.
두 시간을 달려 남서울 터미널에 도착을 해서 그 회원을 찾아보았으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우리들은 그 곳에서 기다릴 수밖에 없었으나 우리들의 뱃속에서 '꼬르륵'소리가 나는 것을 알 수 있었고 음식점을 찾아보았으나 눈에 들어오는 것은 패스트푸드를 파는 음식점뿐이었다. 우리들은 대합실 안에 있는 곳에서 식사를 하기로 하고 찾아보았으나 적당한 곳을 찾지 못했다. 그러다가 한 분식 집이 눈에 들어왔고 우리들은 떡 만두 국으로 점심을 해결하기로 했다. 셀프서비스에 길들여지지 않았기에 어색해하면서 식탁에 놓인 떡 만두 국과 반찬으로는 김치 하나를 전부로 식사를 했다.
사를 하고 나면 우리들에게 찾아오는 것은 몸 안에 밀려들어온 만큼 무엇인가 밖으로 버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화장실에 갔고 회장님이 먼저 나왔는데 행방이 묘연했다. 한참 동안 찾다가 미아가 된 칠순이 가까운 노인의 모습을 상상했다. 그러나 너무 쉽게 회장님을 찾을 수 있었는데 바로 문명의 이기인 핸드폰 덕분이었다. 우리들은 잠시동안의 이산을 웃음으로 넘기고 우리들이 가야 할 곳으로 어떤 교통수단을 이용할 지에 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H병원으로 가야 되는데 한 회원이 택시를 타자는 제의에 한참을 기다려 택시에 오를 수 있었다. 택시는 신호대기와 약간의 혼잡함으로 제 속도를 내지 못했지만 서울이라는 특수성이 우리들에게 참을성을 가질 것을 요구하고 있었다. 요금미터기에 9900이라는 숫자가 보일 때 우리는 우리들의 목적지에 닿았다. 현관에서 병실을 확인하고 15층으로 향해 엘리베이터를 탔다. 두리번거리다가 우리들이 닿은 곳은 336이라는 이름을 가진 병실이었고 그 안에는 침대 6개가 자리하고 있었다. 사모님의 이름을 확인했기에 쉽게 찾을 수 있었는데 간병인 없이 혼자 누워 있다가 처음 만나는 우리들을 보며 반가워했다. 위암 초기였고 좋은 의사 선생님을 만나 병을 쉽게 찾아내었고 또한 수술이 잘 되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사모님의 얼굴 모습이 밝은 것을 보면서 나는 아픔을 가진 사람들이 머물고 있는 병실에서도 봄을 찾았다.
환자를 무리하지 말게 하자는 제의에 우리들은 병실을 나왔다. 희망이 숨쉬는 모습을 만나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을 했다. 서울에 왔을 때 제일 주눅들게 하는 것은 바로 길을 찾는 것이었다. 우리들은 이번에도 택시를 이용해서 버스 터미널로 가기로 했으나 내가 다른 모임이 있다는 말을 하고 함께 가자는 말을 했으나 바쁜 사람들이기에 그 이상은 함께할 수 없었다. 택시를 타고 성수역에 나를 내려주기로 했는데 택시 운전사가 우리들에게 모두 지하철을 이용하는 나을 것이라는 충고를 해 주었고 우리들은 성수역에서 내렸다. 그 곳에서 우리들은 반대편으로 향했다. 나는 종로 3가가 목적지가 되었고 그들은 교대역이 목적지가 되었다. 각자의 계단을 올라갔는데 영화나 드라마에서 볼 수 있었던 광경이 연출되었다. 건너편에 서 있는 상대를 발견했고 거의 동시에 지하철이 들어와 손을 흔들고 각자의 전철 안으로 들어갔다.
지하철을 타면서 갑자기 대구 지하철사고가 생각났다. 그럴 일이야 없겠지만 소화기가 있는 곳과 의자아래에 문을 개폐할 수 있다는 레버가 있는 곳을 찾아보면서 쓸데없는 짓이라고 생각하고 피식 웃어버렸다. 몇 정거장 지나 시청 역에서 1호선으로 갈아타고 두 정거장 지나 종로3가역에 도착했다. 모임 시간까지는 여유가 있었지만 왜 그리 조급한지 스스로에게 놀랐다. 아마 낯선 도시가 나에게 주는 무게 때문이라고 생각을 했다. 전철역을 벗어나자 토요일 오후의 거리는 젊은이들로 채워지고 있음을 실감할 수 있었고 그들의 생기발랄한 모습에서 도시의 봄을 찾을 수 있었다.
내가 서툰 것이 많이 있지만 길을 찾는 것은 대표적이라 말할 수 있다. 겨우 낙원상가를 찾았는데 잠시 눈에 보이던 호텔이 없어져 버렸다. 한 바퀴 돌고 나서야 우리들의 모임이 열리는 P호텔 I레스토랑에 닿을 수 있었다. 모임은 문학21과 스토리 문학관이 함께 하기에 더 의가 있다고 생각이 들었다. 특히 운영작가님의 간곡한 부탁이 있어 몇 번의 기회가 있었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서 한번도 참석을 하지 못한 시 낭송 모임에 함께 하기로 했던 것이다. 제일 먼저 한 일은 스토리님을 만나는 것이었는데 명찰 때문에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반갑게 맞아주는 스토리님과 잠시 이야기를 나눈 후에 사이버상에서만 만날 수 있었던 문우님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몇 번 만났던 회원들은 서로 반갑게 안부를 묻고 담소를 나누고 있었지만 나는 갑자기 이방인이 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서로의 손을 잡으면서 웃음이 얼굴에 매달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간단한 의식이 있은 후 시낭송이 시작되었다. 사이버 공간에서 만났던 시인님들의 시를 직접 낭송하는 것을 접하니 감동이 더했다. 드디어 나의 차례가 되었다. 내가 특별히 준비를 하지 않았는데 스토리님이 챙겨주어 전에 발표한 '선운사 가는 길'을 낭송할 수 있었다. 마음같이 목소리가 따라주지 못함을 아쉬워하며 낭송을 마쳤고 다른 시인들의 시로 허기진 영혼을 채우고 있었다. 시낭송이 있은 후 한 회원의 멋진 노래를 두 곡이나 들었고 그 이후는 식사시간으로 이어졌다. 나에게 아쉬움이 있었다면 내가 지방에 살기에 일정한 시간이면 자리를 떠야 한다는 것이었다. 식사를 마친 후 나는 인사를 하고 그 곳을 빠져 나올 수밖에 없었다.
나는 나의 '감'만 믿고 거리로 나서 지하철역을 찾기로 했다. 어둠이 내린 도시는 삭막함을 감추고 빛을 내어 꽃으로 피어나고 있었다. 낮에 보았던 모습과는 대조를 이루고 있었고 거리는 사람들로 꽉 차 가고 있었다. 인사동을 지나면서 거리공연을 하는 젊은이들을 보았다. 마음 같아선 그 곳에서 시간을 보내고 싶었지만 기차를 타야하기에 허둥대며 길을 찾을 수 밖에 없었다. 한참동안 헤매다가 종각역에서 일호선 기차에 올랐고 잠시 후 서울역에 도착할 수 있었다. 서울발 장항행 8시 40분 기차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고 다행으로 좌석까지 확보할 수 있었다. 5호차 64번에 나를 앉혔다.
두 시간 동안 하루를 되돌아보았다. 아쉬운 것은 문우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다른 기회가 우리들에게 펼쳐지리라 생각해 본다. 집에 도착해 샤워를 한 후 침대에 누웠을 때 우리 시인들의 시 낭송하는 모습과 내가 시 낭송을 하는 모습이 아른거리며 오버랩되어 천장에 매달려 왔다. 그 모습에서 나는 잠자는 내 영혼의 봄을 찾아가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첫댓글 국장님의 봄을 훔치며,항상 문협의 대소사에 열정을 다 하시는 아름다운 모습도 훔쳐갑니다 눈앞을 아른거리는 산수유! 결코 호화롭지 않지만 절대 소홀하지 않은 향기를 띄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