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문 0907 / 인간에 대한 예의
할아버지는 1925년생, 소띠이시다. 한창 젊은 20대에 해방을 맞이하여, 굴곡의 현대사를 온몸으로 부대끼면서 넘어오셨다는 이야기이다. 책장너머 혹은 상상으로나 더듬고 있는 아빠로서는 애당초 넘볼 수 없는 ‘진짜 보수’인 ‘진보’이신 셈이다. 인간으로 살아남기 위한 생존이라는 수렁 속을 헤쳐 나오셨기에, 자유로운 인간으로서의 생활을 부르짖는 어린놈들의 소리는 여전히 철딱서니 없는 매화타령일 뿐이다. 당연히 박정희왕국의 충직하고도 행복한 백성이셨던 터라, 일찍이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어 버려, 아아 님은 갔지마는 아직도 님을 보내지 아니하신’ 할아버지께서는 이후 세상사에는 오불관언이신 셈이지. 일부러 그렇게까지 하셨겠냐마는, 박통의 세 자녀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나란히 삼형제를 52년에다 54년과 58년에 세상으로 내놓으셨더구나. (62년생인 범띠 네 고모의 “그럼, 난 덤으로 태어난 인생이라 말이냐!” 라는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들려오는구나.)
장남인 큰 아빠는 1952년생, 한국전쟁 6.25의 포연 속에서 출생하였다고 한다. 막강하고도 완강한 박정희 대통령의 10월 유신 소용돌이 속에서 20대의 피 끓는 반항아로 보내는 것을 등 너머로 지켜보고는 했었다. 맥도 모르고 마냥 앵무새 마냥 ‘국민교육헌장’ 따위나 따라 외우던 아빠의 눈으로 훔쳐보던 그 반역의 세계는 온통 황홀하였단다. 읽다가 굴러다니던 책 속에서 주워들었던 리영희와 김수영, 김지하의 주절거림들 혹은 너덜거리는 레코드로 들려오던 김민기의 선 굵은 흥얼거림 소리 따위를 흉내 내보는 것만으로도, 곧장 철부지의 치졸한 우쭐거림의 원천이었다. 당시 광고탄압을 받던 동아일보에서 받았다는 감사의 하얀색 메달을 직접 만져보았을 때, 학생운동의 주모자로 수배를 받고서 피신해 있던 큰 아빠를 찾아서 무거운 걸음으로 상경을 하시던 할아버지의 뒷모습을 지켜보았을 때, 아직 중학생이었던 아빠의 떨리던 가슴은 아직도 은근하게나마 느껴지는구나. ‘슬프고 분노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이제는 돌아와 세월의 거울 앞에 선 여느 어르신네와 같은 딱딱한 꽃으로’ 점차 굳어버리신 큰 아빠지만 말이다.
그래, 아빠는 그 유명짜한 58년 개띠이다. 전쟁 후 베이비 붐 세대의 물결이 가장 드높던 소용돌이 속에서 허우적거리면서, 뚜렷하게 내세울 상징적인 깃발도 없고, 앞 세대에 주눅 들고 뒤 세대에 치이는, 끼인 세대로서 버텨온 세월인지도 모르겠구나.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부속중학교’라는 긴 이름만큼이나 장황한 문구였던, “우리는 위대한 박정희 대통령께서 다니시던 학교이다. 그 자랑 길이길이 빛내자.” 라는 따위의 구호를 아침조회 때마다 복창하면서 자랐던, 스스로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박정희교의 유아세례를 받고 태어난 충성스러운 신민이었던 게지. 애초부터 ‘박정희’와 ‘대통령’이 소리는 다르나 뜻은 똑같은 이름이었던 시절 속에서 난데없이 들이닥친 10.26 사태는 할아버지께서 맞이한 8.15 해방만큼이나, 준비되지 않은 충격이었다. 난생 처음 격문이라는 것을 돌리고 데모라는 낯설기만 한 종주먹도 들이대는 시늉을 해보았지만, 20년 동안 얌전하게 굳어진 무릎까지는 채 펴지지 않는 앉은뱅이 용쓰는 꼴이더구나. 그 후로도, 지금까지도 그 신세에서 그리 멀리 벗어난 것 같지가 않다만 말이다.
세상 살아가는 데 있어, 남들에게 손가락질 받지 않고 사람답게 살아가기 위해서라도 지킬 도리는 다해야 한다, 는 할아버지의 말씀에서 지켜가는 보수주의자의 힘겨움을 배웠다. 어떠한 명분으로도 사람답게 살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자존심마저 짓밟으려는 폭력에는 저항해야 한다, 던 큰 아빠의 빛났던 눈빛에서 깨어나는 진보주의자의 아름다움을 느꼈다. 훗날 자유로운 새는 좌우 날개로 난다는 말이 얼마나 힘겹고도 아름다운 것인지를 알게 해 준 고마운 기억들이었다. 무엇을 지켜야만 하는 지, 방향성마저 잃어버린 극우반동주의자들과 지켜야할 그 무엇마저 잃어버린, 절망감에 몸부림치는 극좌모험주의자들의 비인간적인 폭력으로부터 아빠를 지켜주는 든든한 힘이 되어 주기도 하였다. 보수주의든 진보주의든 온전한 실상은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는 같은 뿌리의 다른 이름이라는 깨달음과 함께 말이다.
이번에 바보라고 불리던 전직 대통령의 죽음 앞에서 아빠처럼 맹한 인간이 느끼는 분노 또한 바로 그런 까닭에서 비롯되었던 게지. ‘실패한 대통령’에 대한 아쉬움, 실망 혹은 배신감에 대한 생각은 그 시작과 함께 마무리까지 여러 갈래로 나눠질 수 있고, 또 충분히 존중되어야 하겠지. ‘죽음’ 자체에 대한 평가도 갖가지 동정론에서부터 비판론까지 여러 갈래로 나뉠 수도 있겠지. 다만 그 죽음에 이르기까지, ‘실수한 인간’에 대해 퍼부어진,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조차 증발해버린 비인간적인 폭력과 광란의 사육제 앞에서는 그만 아뜩해지더구나. ‘지렁이도 밟으면 굼틀거린다.’ 라는 경구의 의미를 ‘아직 제대로 자근자근 밟지 않아서 그렇다.’ 로 읽어내는 이 시대의 잔인한 가학성에 다시 한 번 몸서리가 치지더구나. 구구한 과거지사를 새삼 되풀이할 필요까지야 있겠냐마는, 부박한 나라님의 부추김에 경박스러운 검찰장의 칼춤과 천박한 신문장이들의 깨춤까지 삼박자로 어우러져서 돌아가는, 명명박박한 요지경속이라. 오죽하였으면 검찰 측이 “언론이 너무 앞질러 간다.”라고 걱정까지 할까 싶더구나. 때때로 미쳐 돌아가는 세상에서 제 한 몸, 온전한 정신으로 사람의 도리를 다하면서 살아가기란 쉽지만은 않을게다. 그렇지만 인간에 대한 예의도 염치도 내팽개친 괴물은 되지 말자꾸나.
변덕스러운 계절과 시절이다. 최소한 사람이 되려고 애쓴 흔적이라도 남기는 아들이기를, 못난 아비로서 이제야 뻔뻔스럽게나마 바래본다. 우연히 읽었던, 스스로를 못난 아비라고 자처해서, 더더욱 아빠를 부끄럽게도 부럽게도 한 어느 시인의 목소리를 버릇처럼 남기면서 이만 줄이마.
‘위험한 곳에는 아예 가지 말고 / 의심받을 짓은 안 하는 것이 좋다고 / 돌아가신 아버지는 늘 말씀하셨다 / 그분의 말씀대로 집에만 있으면 / 양지바른 툇마루의 고양이처럼 / 나는 언제나 귀여운 자식이었다 / 평온하게 살아가는 사람 /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사람 / 아무 흔적도 남기지 않는 사람 / 그분의 말씀대로 살아간다면 / 인생이 힘들 것 무엇이랴 싶었지만 / 그렇게 살기도 쉬운 일이 아니다 / 수양이 부족한 탓일까 / 태풍이 부는 날은 / 집안에 들어앉아 / 때묻은 책을 골라내고 / 옛날 일기장을 불태우고 / 아무 것도 남기지 않기 위해 / 자꾸 찢어버린다 / 이래도 무엇인가 남을까 / 어느 날 갑자기 이 짓을 못하게 되어도 / 누군가 나를 기억할까 / 어쩌면 그러기 전에 낯선 전화가 / 울려올지도 모른다 / 지진이 일어나는 날은 / 집에 있는 것도 위험하고 / 아무 짓을 안 해도 의심받는다 / 조용히 사는 죄악을 피해 / 나는 자식들에게 이렇게 말하겠다 / 평온하게 살지 마라 / 무슨 짓인가 해라 / 아무리 부끄러운 흔적이라도 / 무엇인가 남겨라’ (김광규의 『나의 자식들에게』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