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질문 : 묘관음사에 가니 향곡선사께서 뭐라 하셨습니까?
진제스님 : 대뜸 “일러도 삼십방(三十棒)이요, 이르지 못해도 삼십방이니 어떻게 하겠느냐?” 하셨어요. 내가 말을 못하고 우물쭈물 하자 향곡선사가 다시 물으셨어요.
“남전(南泉)선사의 고양이(斬猫)법문에 조주선사께서 신발을 머리에 이고 나가신 것에 대해서 한 마디 일러 보아라”
나는 그 물음에도 제대로 답하지 못했죠.
향곡선사께서 “아니다, 공부를 다시 해라 !” 하셨어요.
스스로 알았다고 자신만만했는데, 그만 여지없이 방망이를 맞았던 것이죠. 그런데 당시 나는 아직 선지식에 대한 믿음(信)이 정립되어 있지 못한 때라, 향곡선사로부터 “아니다”란 말을 듣고서 의심이 나면서도 ‘알았다’는 그 알음알이를 쉽게 놓지 못했어요. 조그마한 소견이 생기니까 그걸 가지고 자꾸 집착하는 습성을 버리지 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한 2년여를 제방을 다니면서 당시 선지식으로 이름이 난 큰스님들을 거의 참방해 보았습니다.
이게 또 문제였어요. 향곡선사는 아니라고 하셨지만, 어느 선지식은 긍정하는 듯이 대했어요. 또 어느 선지식은 아니다 하고…. 그때 모두 한결같이 “아니다” 했으면 ‘알았다’는 망념을 놓아버리고 다시 참학인(參學人)의 자세로 돌아갔을 것인데 그렇지 못하니 ‘너도 장부요, 나도 장부다’ 하는 잘못된 망념이 떨어지지 않아 그 귀한 시간을 어정쩡하게 허비해버렸습니다.
질문 : 그래서 어떻게 하셨습니까?
진제스님 : 그래가지고 한 2년 세월을 보내다가 스물여섯 살 때에 오대산 상원사에서 겨울안거를 지내게 되었습니다.
그 때, 얼마 전 종정을 지내시다 열반하신 혜암스님, 현재 원로의원이고 대종사이신 활안스님, 또 일타스님 속가 친형되는 월현스님 등 여러 수좌들하고 같이 겨울을 지내는데, 얼마나 생활이 궁핍했는지 좌복 하나를 가지고 정진할 때는 좌복으로 쓰고 잘 때는 배를 덮고 잤지요.
먹는 것도, 두부가 먹고 싶다 해서 겨울철에 딱 한 번 운력을 해서 만들어 먹었을 뿐 석 달을 배추김치 하나 가지고 살았지요. 과일도 얼마나 귀했는지 원주가 하루는 어디를 다녀오면서 사과를 구해 왔는데 석 달 동안 각각 한개 반씩만 나눠먹을 정도로 아주 어렵게 공부를 했습니다. 추위는 또 얼마나 추운지, 숭늉을 방에 떠 놓으면 숭늉이 얼 정도였고 눈이 오면 처마 밑까지 눈이 쌓이고 그랬어요. 지금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아주 힘들게 공부할 때였습니다.
그렇게 어려워도 다들 열심히 공부했지요.
그런데 어느 날 유달리 날씨가 포근하여 방을 나와 마루에 앉아 따뜻한 햇볕을 쬐며 곰곰이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정말 내가 공부가 제대로 되었는가? 제대로 되었다면 어떤 법문도 막히지 않고 누가 묻더라도 전광석화와 같이 곧바로 척척 답을 내놓아야 되는데 그렇게 답하지 못하니 과연 혜안(慧眼)이 열렸다고 할 수 있는가? 내가 이것을 견성으로 삼는다면 허물이 이만 저만이 아니다. 이것은 결국 나를 속이고 허송세월을 보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어느 날 문득 그런 자문을 하다가 반성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동안의 모든 소견을 놓아버리고 백지로 돌아가 다시 공부를 시작해야겠다는 결심을 했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선지식을 찾아 가야 될 것인가? 다시 이전과 같은 오류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반드시 눈 밝은 선지식을 의지하여 공부해야 하겠다는 인식을 분명히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향곡선사가 생각이 났어요.
다른 선지식들은 애매하게 말씀하셨지만, 언하(言下)에 ‘옳다! 그르다!’ 칼질하는 선지식은 향곡선사 밖에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향곡선사를 의지하여 공부를 다시 하자. 이렇게 결심을 하고 동안거를 해제하자마자 향곡선사께서 주석하고 계시는 월내 묘관음사로 찾아 갔지요.
묘관음사로 가서 방부를 들이고 선사께 인사를 드리며
“화두를 내려주십시오. 화두를 주시면 깨칠 때까지 걸망을 지지 않겠습니다.” 그렇게 말씀드렸어요.
이 말은 화두를 타파할 때까지 선지식 곁을 떠나지 않겠다는 선지식과 또 나 자신과의 약속이었습니다. 이건 아마 아무나 할 수 있는 약조가 아니죠. 하여간 그때 그런 발심이 났어요.
그랬더니 “이 어려운 관문을 네가 어찌 해결할 수 있겠느냐? 못한다!” 향곡선사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그래서 제가 “생명을 걸고 한 번 해보겠습니다. 화두를 하나 내려주십시오.” 이렇게 비장하게 말씀드렸죠.
그랬더니 화두를 하나 내려주셨어요. 그걸 가지고 한 2년여 결제 해제를 상관치 않고 바깥출입도 하지 않고 오로지 정진만 했지요.
질문 : 향곡선사께 어떤 화두를 받으셨는지요?
진제스님 : ‘향엄상수화(香嚴上樹話 - 중국 당나라 때 위산도인의 제자인 향엄선사의 법문)’입니다.
“어떤 스님이 아주 높은 나무에 올라가서 손으로 나뭇가지를 잡거나 발로 밟지도 않고 오직 입으로만 물고 매달려 있을 때, 나무 밑에서 지나가던 스님이 ‘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뜻이 무엇입니까?’ 라고 물었어요. 대답하지 않으면 묻는 이의 뜻에 어긋나고, 만약 대답한다면 수십 길 땅바닥에 떨어져 죽게 될 것이니 이러한 때를 당하여 어찌해야 되겠는가?”
이 화두를 2년이 넘게 그 어떤 일도 상관 않고 오로지 화두 참구만 일념으로 정진하여 스물여덟이 되던 가을에 마침내 ‘향엄상수화(香嚴上樹話)’ 화두 관문을 뚫어냈습니다. 그리하여 종전에 막혔던 법문이 열리어 비로소 진리의 세계에 문답이 자유롭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게송을 하나 지어 향곡선사께 바쳤습니다.
이 주장자 이 진리를 몇 사람이나 알꼬 這箇拄杖幾人會
삼세의 모든 부처님도 다 알지 못함이로다. 三世諸佛總不識
한 막대기 주장자가 문득 금룡으로 화해서 一條拄杖化金龍
한량없는 조화를 자유자재 하는구나. 應化無邊任自在
그걸 보시고 향곡선사께서 물음을 던지셨습니다.
“용이 홀연히 금시조(金翅鳥)를 만난다면, 너는 어떻게 하겠느냐?” 이에 내가
“몸을 움츠리고 당황해서 세 걸음 물러가겠습니다.”라고 말씀드리니
“옳고, 옳다” 하시며 크게 기뻐하셨습니다.
질문 : ‘향엄상수화(香嚴上樹話)’ 화두 타파를 하시고 인가를 받으신 건가요?
진제스님 : 그런데 ‘향엄상수화’를 깨달은 후에 향곡선사와 문답하던 중에 막힌 대문(大文)이 하나 있었어요.
당나라 때 대선지식이셨던 마조(馬祖) 선사가 열반하기 직전에 편찮으셨는데, 원주(院主)가 아침에 문안을 드리며,
“밤새 존후(尊候)가 어떠하셨습니까?” 하니, 마조 선사께서
“일면불 월면불 (日面佛 月面佛) 일면불(日面佛) 월면불(月面佛) : 일면불은 천팔백 살까지 장수한 부처님, 월면불은 하루 수명의 단명한 부처님을 말함. 중국 설두(雪竇, 980~1052) 선사도 이 화두에 막혀 20년 동안이나 참구하여 깨쳤다함.
이니라.” 하셨어요.
그런데 왜 마조 선사가
“밤새 존후가 어떠하셨습니까?”라는 문안에
“일면불 월면불”이라며 두 부처님의 이름을 말하셨을까? 이 마조 선사의 고준한 법문에 나도 딱 막혔습니다.
기실 이 “일면불 월면불” 화두는 가장 알기가 어려운 고준한 법문이에요. 마조 선사는 그의 문하에 팔십네 명의 뛰어난 선지식이 배출되어 역대 선지식들께서도 부처님 이후 가장 위대한 도인이라 평하는 그런 분입니다.
이 “일면불 월면불” 말씀에는 마조 선사의 온 살림살이가 다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마조 선사를 바로 알려면 이 법문을 알아야만 합니다. 나도 여기에 막혀서 한 5년을 씨름했습니다.
그러다가 서른세 살 때 그 화두를 타파했습니다. 마침내 고인(古人)들께서 중중으로 베풀어놓으신 온갖 차별법문이 걸림 없이 회통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오도송(悟道頌)을 지었습니다.
한 몽둥이 휘두르니 비로정상 무너지고 一棒打倒毘盧頂
벽력 같은 일 할에 천만 갈등 흔적 없네. 一喝抹却千萬則
두 칸 토굴에 다리 펴고 누웠으니 二間茅庵伸脚臥
바다 위 맑은 바람 만년토록 새롭도다. 海上淸風萬古新
그 후 정미년(1967) 하안거 해제 법회가 묘관음사 법당에서 열릴 때 상당(上堂)하여 묵좌(黙坐)하고 계신 향곡선사께 나아가 여쭈었습니다.
“불조(佛祖)께서 아신 곳은 여쭙지 아니하거니와 불조께서 아시지 못한 곳을 스님께서 일러 주십시오.”
“구구는 팔십일이니라”
“그것은 불조께서 다 아신 곳입니다.”
“육육은 삼십육이니라.”
‘육육은 삼십육이니라’ 하는데 있어서는 가타부타 하지 않고 큰 절을 올리고 법당을 나오니, 향곡선사께서도 아무 말 없이 법상에서 내려오시어 조실방으로 가셨습니다.
다음 날, 조실방으로 찾아가 뵙고 여쭙기를,
“불안(佛眼)과 혜안(慧眼)은 여쭙지 아니하거니와 어떤 것이 납승(衲僧)의 안목입니까 ?”
“비구니 노릇은 원래 여자가 하는 것이니라.”
“오늘에야 비로소 선사님을 친견하였습니다.”
“네가 어느 곳에서 나를 보았느냐 ?”
“관(關).”
“옳고, 옳다.”
향곡선사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고는 임제 정맥의 법등을 부촉하는 전법게(傳法偈) 진제 법원 장실에 부치노라.
付眞際法遠丈室
부처님과 조사의 산 진리는 佛祖大活句
전할 수도 받을 수도 없는 것이라 無傳亦無受
지금 그대에게 활구법을 부촉하노니 今付活句時
거두거나 놓거나 그대 뜻에 맡기노라. 收放任自在
를 내리셨습니다.
화두 투과한 깨침의 세계
질문 : 스님 제가 정말 궁금해서 그런데요. 화두가 타파된, 화두가 투과된 깨침의 세계를 모르는 이를 위해 표현하신다면 어떻게 말씀하시겠습니까 ?
진제스님 : 하하하, 굳이 표현을 한다면 눈 앞의 중중무진한 모든 관문(關門), 태산 같은 관문이 싹 없어지고 진리의 세계가 현전(現前)하게 되는 것입니다.
질문 : 스님 송구스럽습니다만, 그 눈 앞에 현전하는 진리의 세계가 어떤 것인지요? 어느 분은 “꿈을 깬 것과 같다”고도 하시던데요 ?
진제스님 : 그것은 화두 마다 다릅니다. “조사서래의(祖師西來意)?” “불법적적대의(佛法的的大義)?” 등등 화두 마다 그 경계가 다 다릅니다.
동화사에서 전강선사와 법거량 인연
질문 : “향엄상수화(香嚴上樹話)” 화두를 투과했음에도 “일면불 월면불(日面佛 月面佛)” 화두에 막혀 다시 5년 동안이나 치열하게 정진하셨다고 하셨는데 그러시면 계속 묘관음사에 계셨습니까?
진제스님 : 동화사 선원에서도 살았어요. 스물 아홉 살 때일 겁니다. 당시 월산스님이 동화사 주지할 때인데, 조실로 전강선사를 모셨지요. 그래서 내가 한 번은 용기를 내어 동화사 선원에다 방부를 들이고 한 철 살았습니다.
당시 동화사 선원에는 현재 원로회의 의장이고 대종사이신 종산스님과 현재 원로의원이고 대종사이신 활안스님도 같이 계셨지요. 결제 때 조실 전강스님께서 오셨어요. 수좌들 인사를 받으시면서 법명을 다 물어 보셨어요. 내 차례가 되어
“진제(眞際)라고 합니다.” 그랬더니
“네 이름을 많이 들었다. 향곡스님 회상에서 공부 잘 하는 진제라고 들었지.” 하시면서
“우리가 이렇게 좋은 도량에서 공부인연을 짓게 된 것은 오로지 탁마를 위한 것이니 열심히 한 번 해보자.”고 하셨어요.
그래서 나도 “참으로 바라는 바입니다. 제가 바랑을 지고 여기에 온 목적이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그렇게 답했죠.
그 후에 반살림을 앞두고 조실 전강스님께서 법문하시러 다시 오셨어요. 그래 수좌들이 인사를 드리고, 반살림 이틀 앞둔 날 종산스님과 함께 조실채를 참방하였는데 전강 선사께서는
“요즘 수좌들은 문중이나 자기가 신(信)하는 스님만 믿고 패거리를 만들고 정말 한심한 일이다.”고 하셨어요.
그래서 내가 “스님 정말 부끄러운 일입니다.” 그렇게 말씀드리니, 다시 전강선사께서 “우리가 이렇게 만나 공부 인연을 지었으니 탁마를 한 번 멋지게 하면 어떻겠느냐?” 하셨어요.
그래서 내가 “스님 참 좋은 말씀입니다. 그런데 탁마는 좋은데, 한 가지 청이 있습니다. 탁마를 하되 대중들이 다 보는 데에서 공개적으로 하셨으면 합니다.” 그랬습니다.
왜냐면 이 법거량도 조작이 있어요. 그래서 조작 시비할 것 없이 대중들이 보는 앞에서 한 번 하자고 제의를 드렸더니, 전강 선사께서 “이 부처님 법은 여래의 비밀 법이기 때문에 단 둘이 산에 올라가서 해야 된다.”고 말씀하셨지요. 그래서 대중 앞에서 법거량을 피하시는구나 하고는 둘이서 건너왔어요.
그 뒷날 저녁공양 후 예불 종소리가 울리자 혼자서 조실채에 건너가 전강 선사를 참방하여 아주 멋진 법거량을 한 적이 있지요. 조실스님께 인사를 올리고 나니 어제 하신 말씀을 또 되풀이 하셨습니다.
“요즘 수좌들은 문중이나 자기가 신(信)하는 스님만 믿고 패거리를 만들고 정말 한심한 일이다.”
“참으로 부끄러운 일입니다.” 그러니 전강선사께서 법을 묻기 시작하셨습니다.
“남전선사 조실채에 제자인 조주스님이 들어오니 남전선사가 말하기를 ‘어젯밤에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을 각각 30봉씩 때려서 철위산 지옥에다 던졌네.’ 하니 조주스님이 받아 말하기를 ‘화상은 누구의 방망이를 맞으시렵니까?’ 하고 물었다.
남전선사가 ‘왕노사(본인 남전선사)는 허물이 어디에 있는고?’하고 되물으니 조주스님은 말없이 큰 절을 하고 나가셨다.
이 문답처를 그대가 일일이 점검해 보게!”
말 떨어지자마자 내가 척척 가닥을 잡아 말씀을 드리니 전강선사 말씀이
“내가 30년간 조실을 했는데 이 법문을 답한 이가 아무도 없더라. 금일에 처음으로 이 법문을 답한 이를 만났다.”
하시면서 한참을 좋아 웃으셨습니다. 그런 연후에
“다시 또 하나 묻겠네!” 하셨지요.
“제가 무얼 압니까?(여기에는 뜻이 있었다. 당신만 묻고 당신 살림을 안 드러내실 듯하여 한 말씀드린 것이다.)” 이렇게 말씀드리니 조실 전강스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젊은 납자가 아니면 제방 선지식의 안목을 누가 점검하겠는가?” 라고 말씀하셨지요. 그래서 제가 “그러시면 스님 물으십시요!”라고 했지요.
전강 선사께서는 10년 전 향곡선사와의 법담한 내용을 다시 말하시고는, 그러한 법담이 있은 지 10년이 지난 후에 향곡선사 밑에서 공부 잘하는 수좌가 왔다하니, 전강선사께서 두 번째 묻기를 ‘덕산탁발화(德山托鉢話)’의 암두스님이 덕산스님의 귀에 대고 속삭인 그 대문(大文)을 들어 말씀하시며
“10년 전에 서울 대각사 큰 방에서 ‘암두밀계의(巖頭密啓意)’에 대하여 향곡선사가 점검하라하기에 ‘일천성인도 알지 못함이어늘 내가 어찌 아리요.’하고 그 당시에 내가 그랬는데 그런 후에 향곡선사를 한 방망이 때렸던들 그대가 향곡선사 같으면 어찌 하겠는가?”이렇게 물으셨습니다.
내가 방바닥을 한번 치고 “불시갱도(不是更道)라, 아니니 다시 이르십시오.”그러자 전강선사께서도 방바닥을 한번 치셨습니다. 제가 또 한번 크게 방바닥을 치면서
“아닙니다.”하니 전강선사께서
“누가 밤에 행하는 사람이 있는 것을 아리요”하고 나오셨습니다.
그러자 내가 다시 거푸 방바닥을 치면서
“그래가지고는 덕산암두의 뜻을 꿈에도 보지 못했습니다.”하고 문을 박차고 나오는데 한 발은 문 밖에 짚고 다른 한 발은 방에 두고 있는 그 찰나에 전강선사께서
“수좌, 다시 들어오게”하고 말씀하셨어요. 하지만 나는 선방으로 돌아와 버렸습니다.
선방에 와서 대중에게 “조실스님이 ‘덕산탁발화’ 법문도 모르더라” 하니, 대중이 모여서 거량한 자초지종을 듣고자 하여 자세히 말해주었습니다. 그 당시에 수좌들이 여름내내 시간만 나면 모여서 말하기를,
“북방의 전강선사와 남방의 향곡선사의 상(上)씨름 법전(法戰:최고의 법거량)을 붙여서 밝은 선지식을 의지해서 공부하자”
하는 말이 나왔었는데, 내가 이렇게 법거량을 하고나니
“이제 시기가 도래했다”하면서
“내일 반살림에 조실스님께서 법상에 오르시거든 남방 향곡선사를 대신해서 진제스님이 대중이 보는 앞에서 한 번 법거량을 해 보시게”하고 청하기에
“대중이 원한다면 제가 그렇게 하겠습니다.”했지요. 그런데, 반살림 날 아침 공양 직후에 주지스님이 장삼을 입고 대중을 따라 선방에 건너오셔서 대중스님을 모이게 한 후 말씀하시기를
“조실스님의 간곡한 부탁이니 오늘은 사부대중이 다 모이는 반살림이라, 누구든지 조실스님과 법담은 하지 말아 달라 하십니다.”라고 청을 하고 가셨습니다.
그리고 사시(巳時)에 전강선사께서 법상에 오르셔서 말씀하시기를, “요즘 내가 배탈이 나서 기운이 없다. 선방이 잘 되려면 조실은 죽어나가야 된다. 금당선방에 옛날 운문도인과 법안도인과 같은 안목을 갖춘 이가 있다.”이렇게 칭찬만 하시고는 법상을 내려가셨습니다.
법거량을 했다는 소문이 나니 향곡선사께서 친히 나를 찾아왔었습니다.
질문 : 그 때 스물아홉으로 젊은 시절이셨는데 대단한 용기셨네요 ?
진제스님 : 젊었으니 그런 용기가 났지요. 하하하.
열반 4일 전에도 전국을 다니며 법거량을 하신 향곡선사
질문 : 향곡선사와의 일화를 좀더 들려주십시오.
진제스님 : 선사님과는 근 10년을 같이 살았는데 참 많은 법담(法談)을 주고받았지요. 향곡 선사께서 열반 4일 전에 제방의 조실스님들을 찾아다니며 물은 일이 있어요. 어떻게 물었느냐 하면,
“임제선사가 하루는 발우를 가지고 탁발을 나갔는데, 한 집에 가서 대문을 두드리면서 탁발 왔다고 하니까, 노보살이 나오더니 대문을 열고 임제 도인을 보고는 대뜸 ‘염치없는 중이다’ 하고는 한 푼도 주지 않았어요.
그래 임제선사가 ‘탁발하러 왔는데 어째서 한 푼도 주지 않고 염치없는 중이라 하는고?’ 했더니 대문을 왈칵 닫고는 집 안으로 들어가 버렸어요.
그러니 임제 도인은 아무 말 없이 절로 돌아와 버렸지요. 이 대문(大文)을 가지고 향곡선사가 제방 조실스님들에게 물었는데 제방 조실스님들의 대답이 시원하지 못 했어요.
그래 가지고 해인사 성철 방장스님한테 갔는데, 방장스님 하시는 말씀이 “고인(古人)들이 거기에 대해서 일언반구 말한 바가 없다.”고 하셨어요.
그러자 향곡선사가 “이 무슨 소리야! 고인은 고인이고, 하라면 하는 거지.” 라고 목소리를 높였어요. 그때서야 방장스님의 한 마디가 나오더라는 거예요. 방장스님 경계니까 그 정도가 나왔지, 다른 이들은 아무도 답하질 못해요.
향곡선사가 실망하여 절로 돌아올 때 제가 해운정사 마당에서 포행을 하고 있었어요. 선사께서 나를 보자마자 ‘임제탁발화(臨濟托鉢話)’ 법문을 들어 말씀하시기를 “임제선사가 하루는 발우를 가지고 탁발을 나갔는데, 한 집에 가서 대문을 두드리면서 탁발 왔다고 하니까, 노보살이 나오더니 대문을 열고 임제 도인을 보고는 대뜸 ‘염치없는 중이다’ 하고는 한 푼도 주지 않았다.
그래서 임제선사가 ‘탁발하러 왔는데 어째서 한 푼도 주지 않고 염치없는 중이라 하는고 ?’ 했더니 대문을 왈칵 닫고는 집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러니 임제 도인은 아무 말 없이 절로 돌아와 버렸다. 그렇다면 네가 당시에 임제선사가 되었던들 뭐라 한마디 하겠느냐?” 하고 서서 마당에서 묻는 거예요.
들어가서 인사 받고 물어도 될 건데 그동안 마음이 흡족하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내가 “삼십여 년 간 당나귀를 타고 희롱해 왔더니, 금일에 당나귀에게 크게 받힘을 입었습니다.[三十年來弄馬騎러니 今日却被驢子撲입니다]” 하니까 “과연 나의 제자로다!” 하시며 파안대소를 하셨습니다.
그게 임종 4일 전의 문답이에요. 이렇게 멋지게 살다간 분이 바로 향곡선사였습니다. 이런 분이 없습니다. 오늘날 산승이 이렇게 있는 것은 향곡선사의 법 방망이 덕분이라 생각하지요.
참선법에 대하여
질문 : 참으로 훌륭한 법문이고 좋은 인연이십니다. 이제 화제를 좀 돌리겠습니다. 오늘 공부를 몰라 묻는 것이니 자상하게 일러 주시면 공부에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참선에 대해서 말할 때 상근기(上根機)자, 즉 대신심, 대분심, 대용맹심이 있는 그런 상근기에게나 참선이 해당되지 않느냐 이런 의문이 있습니다. 여기에 대해서 말씀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진제스님 : 그런 의문을 가질 수가 있는데 이 심성(心性), 즉 마음의 고향이라는 것에는 모든 진리와 모든 덕(德)과 복(福)이 다 갖추어져 있습니다. 이미 다 갖추어져 있는데 ‘참 나’를 알지 못하여 쓰지도 못하고 수용도 못하는 것입니다.
마음의 고향, 심성의 본향에는 천 사람, 만 사람이 동일하게 갖춰져 있으니 일체 차별이 없습니다. 바른 선지식, 바른 지도자를 만나서 바른 수행을 듣고 바르게 배워서 연마하면 다 됩니다. 아무리 서울이 멀다 해도 한 걸음 한 걸음 한 달만 걸어가면 서울에 도착하는 것과 똑같은 이치입니다. 이걸 믿어야 합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될 일이 없습니다. 이제 이해가 됩니까?
질문 : 상근기, 하근기 구분할 것이 없이 이미 다 갖춰져 있는데 모르고 있을 뿐이다. 자기 성품을 알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다 똑같은 이치니까 상근기니 하근기니 구별할 것도 없다. 바른 선지식을 만나서 바른 수행을 듣고 바르게 배워서 닦아 나가면 반드시 된다는 그런 것이죠.
진제스님 : 그렇지요. 바른 지도를 받고 한 걸음 한 걸음, 하루하루 바르게 지어가다 보면 언젠가 진리의 고향, 마음의 고향에 이른다는 말입니다.
반드시 바른 선지식에게 지도를 받아라
질문 : 강조하셨듯이 출가자든 재가자든 간에 바른 선지식을 만나는 게 중요하다고 하셨는데요. 깨침에 발심(發心)이 나서 화두를 참구하려면 어떻게 하는 것이 가장 좋을까요 ?
진제스님 : 바른 선지식, 지도자를 찾아 방문해서 바른 지도를 받아야 해요. 참구하는 법, 바로 참선을 지어가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그것만 바로 받아 놓으면 어디든지 산이나 들이나 장사를 하나 기업을 하나 아무 관계가 없어요. 마음으로 지어가는 이 참선 수행법은 언제 어디서든 할 수 있습니다. 아무 것도 필요 없어요. 오직 화두를 참구하겠다는 마음 하나만 있으면 어디서든 다 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습니까!
질문 : 그러면 생업과 생활에 바쁜 일상인들이 화두를 쉽게 드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바른 지도자와 인연이 안 될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
진제스님 : 우리가 천하 갑부가 되고 아무리 높은 자리에 앉았다 해도 숨 한번 들이쉬고 내쉬지 못하면 다음 생입니다. 지금은 영원할 것 같은 이 생명도, 부귀영화도 언젠가 다 없어지고 말아요. 우리가 항시 그런 허망을 알아야 됩니다. 자기 참 모습을 발견하는 이 수행에 몰두하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마음이 편안해지면 여기에서 건강도 유지되고 자비스러운 덕도 행하게 되는 그런 멋진 인생을 보낼 수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질문 : 스님 법문 중에 활구(活句)를 참구하고 사구(死句)를 참구하지 말라고 자주 하셨는데요. 이때 사구와 활구가 어떻게 다른지 궁금합니다.
진제스님 : 활구(活句)는 일천 성인(一千聖人)의 이마 위의 일구(一句)를 투과해야 하고, 일천 성인의 이마 위의 일구를 뚫고 지나가야 활구세계라고 해요. 그러면 사구(死句)라는 것은, 항시 정해(情解)와 정식(情識)이 붙어가지고 밝은 눈을 열지 못한 경지에서 머무는 것을 사구라 하지요. 밝은 진리의 경계를 활짝 열지 못한 그 경계가 사구예요.
질문 : 스님 어렵습니다. 조금 쉽게 풀어 주시죠.
진제스님 : 활구경계는 일천 성인의 이마 위의 일구를 뚫고 지나간 자만이 활구세계를 알 수가 있고, 사구는 밝은 눈을 열어 갖추지 못하고 정해와 정식에 가려 있을 것 같으면 그것은 사구에 항시 머물러 있거든.
질문 : 그러니까 사구를 참구한다할 때 그 사구라는 것은 알음알이의 지해(知解)를 말하는 것인가요 ?
진제스님 : 알음알이가 항상 따라다니고 밝은 눈을 활짝 열지 못한 경계가 사구예요.
질문 : 결국은 알음알이로 화두를 참구하지 말라 이런 말씀을 스님께서 일러주신 게 그것인가 보지요?
진제스님 : 알음알이로 참구하는 것을 사구라고 한다기 보다는 정해, 정식이 항시 따르기 때문에 사구라고 하는 것입니다.
질문 : 정해, 정식이라는 것은 뭔가요 ?
진제스님 : 알음알이거든, 분별식(分別識)!
화두는 2미터 앞 아래에 두라.
질문 : 스님께서는 화두 참구 방법을 일러 주실 때 2미터 앞 아래에 화두를 두는 게 좋다고 하시는데 왜 그런지요?
진제스님 : 왜 그러냐? 참선할 때 항시 2미터 앞 아래에다 화두를 두게 되면, 상기도 피하고 바른 자세가 유지됩니다. 항시 아래에다 두라는 것은 화두가 달아나면 나도 모르게 힘이 들어가거든요. 나도 모르게 용을 쓰게 되어요. 그렇게 힘이 들어가면 상기(上氣)가 되어 머리가 무거워서 더 이상 화두를 참구하지 못하게 됩니다. 화두 참구할 때 항시 생각을 아래에 두어 기가 위로 올라가는 것을 방지하는 뜻에서 아래에 두라는 거지요.
그리고 2미터에 두라는 것은 앉는 바른 자세를 유지하기 위해서인데, 2미터 앞에 화두를 두면 바른 자세가 유지됩니다. 허리를 곧게 세우고 앉아야 오래 앉아도 피로가 없고 위장에도 부담이 없습니다. 허리가 굽으면 쉽게 피로하고 위장에도 탈이 생길 뿐만 아니라 혼침, 망상에 끄달려서 화두를 성성하게 들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허리를 곧게 세워 바른 자세를 유지해야 합니다.
또 앞에다 두라는 것은 앉으나 서나, 가나오나, 일을 하나, 밥을 하나, 목욕을 하나, 항시 앞에다 화두를 두면 무르익어져요. 화두를 단전에다 두면 앉아서 할 때는 단전호흡과 같이 장단을 맞추지만 움직이게 되면 단전호흡이 잘 안되거든요. 그러니까 눈 앞에다 화두를 두면 가고, 앉고, 눕고, 일을 하고, 산책하는 가운데에도 항시 화두가 순일하게 무르익어지기가 쉽습니다. 그게 제일 좋습니다.
질문 : 초심자들은 항상 시선이나 화두를 어떻게 할 것인지 이런 것이 고민이 되는데 이렇게 하면 편해지겠군요. 혹시 이 방법은 스님께서 창안하신 건가요?
진제스님 : 스님들이 대개 단전에다 화두를 두고 호흡을 내리면서 장단을 맞추라고 하는데, 이 화두 일념 상태는 가고 앉고 눕고 일하고도 항상 흐르는 물과 같이 끊어지지 않고 무르익어야 되는 것이에요. 일념으로 끊어지지 않고 지속이 되어야 공부가 되는 겁니다. 이해가 돼요 ? 이것은 내 창안입니다.
간화선(看話禪)에선 화두가 핵심이지, 호흡은 신경 쓰지 말라
질문 : 그런데 어느 선지식께서는 단전호흡을 굉장히 강조하시던데요. “화두 드는 법”이란 법문에서 단전 호흡하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자상하게 일러주시더군요. 또 어떤 분은 “화두를 일심(一心)으로 하는 게 중요하지 호흡은 크게 상관없다.
화두가 자리 잡히면 호흡은 저절로 된다. 오히려 단전호흡을 하다 보면 화두가 멀어질 수가 있다” 하시는 분도 계시고요.
또 어떤 분은 “간화선이란 오로지 화두 참구 그 자체에 뜻이 있는 것이다. 간화선에서 단전호흡을 말하는 것은 불순물이 끼는 것이나 마찬가지다.”고 단전호흡을 배제해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것도 들었습니다. 스님께서도 역시 단전호흡은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말씀이네요.
진제스님 : 호흡 장단 맞추려니 화두 일념이 잘 안되겠지. 화두는 일념 삼매가 지속되는 게 중요합니다. 화두 일념이 가나, 오나, 앉으나, 서나, 누우나, 일어나나 쭉 흘러가야 되거든. 흐르는 물과 같이 끊어지지 않고 일념으로 흘러가야 됩니다.
질문 : 화두를 2미터 앞 아래에 두고 응시하면서 행주좌와나 산책하거나 공양을 하든지 일심으로 참구하라는 것이군요..
진제스님 : 화두를 2미터 아래에 두되 눈을 꼭 응시할 필요는 없고 생각만 거기에 두면 됩니다. 가령 산책을 하더라도 반드시 2미터 아래에 시선을 둘 필요는 없고, 생각을 2미터 아래에다 두되 눈은 그러지 않아도 되지요.
참, 오늘 내 살림을 다 털어놓구만, 하 하 하 …
질문 : 스님, 많은 사람들이 간화선에 대해 궁금해 하고 특히 간화선에 관심이 있거나 초심자들이 화두 참구하는 방법을 궁금해 하는데 이런 것을 자세하게 일러 준 분이 많지도 않고, 또 있다 하더라도 체계화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런 문제를 정리해 보려고 이렇게 자세히 여쭙는 것입니다.
스님께서 해운정사에서 법문하시는 것도 훌륭하고 좋지만, 요즘은 인터넷이 발달되어 있고 책이 많이 발전했지 않습니까? 그래서 달라이라마나 틱낫한 스님 같이 법문집을 쉽게 풀어 내놓으니 일반 대중들의 호응이 굉장히 좋습니다. 틱낫한 스님의 <화>라는 책은 수준이 낮다고 하지만, 백만 권 이상이 나갔습니다. 그만큼 대중들이 불교를 쉽게 설명해 놓은 것에 관심이 있다는 것이죠.
오늘 스님의 이렇게 좋은 말씀을 몇 사람이나 불자들만 듣기 보다 더 많은 이들이 볼 수 있도록 더 널리 전파해야 하겠습니다. 기왕이면 일반 대중들이 쉽게 찾아 볼 수 있도록 널리 배포해 놓으면 인연 있는 이들은 자연 접하고 눈이 열리게 될 것입니다. 지금은 이처럼 선지식의 좋은 말씀을 쉽게 정리하여 대중들에게 널리 알리는 일이 우리 종단에도 매우 중요합니다.
진제스님 : 절대 필요해요. 나도 공감이요. 요즘 같이 싸움과 갈등이 심한 세상에서 갈등이 없고 싸움이 없는 평화로운 세상으로 갈려면 참선이 가장 좋은 길이에요. 이 길을 조금이라도 체험해 보면 바로 알지요.
일념삼매가 지속이 되어야 한다
질문 : 간화선에서 공부를 해나갈 때 화두가 일념삼매(一念三昧)가 지속되어 동정일여(動靜一如), 몽중일여(夢中一如), 오매일여(寤寐一如) 과정을 거쳐 은산철벽(銀山鐵壁)을 투과해야 깨칠 수 있다고 하는데 이것이 일반적인 과정입니까 ?
진제스님 : 그렇지요. 일념삼매가 지속이 안 되면 화두 타파가 안 돼요. 육조혜능선사와 같이 과거 전생에서부터 공부해온 이는 들으면 척척 열리지만, 그게 쉬운 일이 아니거든요. 일념 삼매가 쭉 지속이 되는 과정이 오면 그때는 진의(眞疑)가 발동이 되어 보는 것도 잊어버리고 듣는 것도 잊어버리고 앉아서 밤이 되는가 낮이 되는가 다 모르는 그게 일념삼매예요. 그렇게 지내다가 흐르고 흐르다가 며칠이고 계속되다가. 보는 거 듣는 거 다 잊어버리고 흐르고 흐르다가 보는 찰나에 듣는 찰나에 화두가 깨지고 깨치게 되지요.
질문 : 성철스님 말씀으로 보면 화두 참구에서 동정일여, 몽중일여, 오매일여 이 과정을 굉장히 강조하시더군요.
진제스님 : 그게 일념삼매예요.
질문 : 스님 가풍에서는 일념삼매라 하는 거지요? 화두가 흩어지지 않고 항시 어묵동정(語黙動靜) 행주좌와(行住坐臥)에 일념으로 지속되는….
진제스님 : 쭉 흘러가는 거지요.
재가 생활인의 참선 방법
질문 : 재가생활인의 경우 직장생활을 하거나 가정생활을 하다보면 화두가 자주 끊어지지 않습니까? 그때 혹시 직장인들에게 화두 참구를 잘 할 수 있는 방법이 있으시면 좀 가르쳐 주십시오.
진제스님 : 항시 가나오나, 앉으나 서나, 대화를 하거나, 장사를 하거나, 사업을 하거나, 밥을 먹으나, 산책을 하거나, 잠을 자거나 쭉 화두를 간절히 챙기고 의심하고, 의심하고 챙기고 계속 반복이 되고 그렇게 하다가 진의(眞疑)가 발동이 걸리면 일상생활의 모든 것이 차단이 되고 화두에 몰두가 되거든요. 그렇게 진의가 발동이 되면 아들이고 딸이고, 남편이고 부인이고, 모든 일들을 다 모르게 되어 보고 듣는 것도 다 잊어버리고 시간가는 줄 모르는데 그렇게 흐르고 흐르다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며칠이 지나는 그런 경지가 오면 깨치게 되는 겁니다. 아무리 세상이 소중하다 해도 이 일을 해결하는 게 근본이 되어야 합니다.
질문 : 그렇게 화두가 자리 잡히면 계속 향상의 일로로 가게 되니 문제될 게 없지만, 그 이전 단계 즉, 초학자의 경우 하루에 단 5분 마음 내기가 쉽지 않고 혹 내더라도 회사 사무실에 가면 바쁘게 일처리 해야 되고 여러 인간관계 속에서 바쁜 일상을 보내게 되는데 이런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요 ?
진제스님 : 일 처리할 때는 착오 없이 하고, 차타고, 돌아다니고, 들어오고 나가고, 목욕하고 쉬고, 그러는 가운데 하면 좋거든요. 집에 들어 와서 텔레비전 앞에 앉기보다 뉴스가 궁금하면 잠깐 보고는 딱 앉아서 화두 들고 삼매에 들면 옆에 아이들 떠드는 소리도 다 끊어지고 온갖 번뇌 망상을 쉬게 되거든요. 그렇게 매일매일 하게 되면 마음에 평화가 오고 지혜와 복덕이 날로 증장됩니다. 이 참선이 얼마나 좋은지는 해 본 사람만이 알 수 있고,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거예요.
염불, 주력, 위빠사나에 대하여
질문 : 불자들이 참선도 많이 하지만, 대체로 염불, 주력, 간경, 위빠사나 수행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참선이 가장 빨리 가는 최상승(最上乘)이란 것은 이해가 되는데 다른 수행으로는 깨칠 수 없는 것인가요?
진제스님 : 아 ~ 염불, 주력, 간경 등으로는 견성하는 게 불가능하지요. 관법(觀法:위빠사나)은 가능하겠지만,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최상승의 경지에는 관법 가지고도 안 됩니다.
견성(見性), 깨침에 대하여
질문 : 선에서 깨침인 돈오(頓悟) 즉, 견성(見性)에서 돈수(頓修)와 점수(漸修) 논쟁이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스님 법문에서는 일관되게 돈수가 옳지, 점수라는 것은 돈법(頓法)에 없다고 하시는데 다시 한 번 일러 주시죠.
진제스님 : 그대로입니다. 선의 돈법에 점수라는 게 없습니다. 오직 돈오돈수이지요. 돈오돈수는 일념삼매가 지속이 되어서 향상의 일구를 투과해야만 되는 거지요.
질문 : 이 질문은 좀 외람됩니다만, 평소 궁금해서 여쭙습니다. 스님께서 전법 인가를 받으신 향곡선사께서는 다시 법사이신 운봉선사에게 인가를 받으셨잖아요. 그런데 인가를 받은 향곡선사께서는 이후에 봉암사에서 도반들과 결사 정진하다가 대오견성하셨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이전에 운봉선사로부터 인가를 받았다는 것은 무얼 말하며, 우리가 이 깨침을 어떻게 이해해야 되는지요 ?
진제스님 : 그것은 우리나라 선법이 전해 내려온 후로 그러한 과정만을 거치면서 내려 왔어요. 가령, 여래선(如來禪), 법신변사(法身邊事)를 견성이라 해가지고 그 과정만 전수를 쭉 해왔다고 봐야지요. 법신의 진리, 여래선의 진리 위에 향상의 일구를 투과하는 것이 있다는 것을 모르고 그 밑의 한 단계를 가지고 견성법을 세워가지고 인증을 하고 내려왔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 선법이 들어온 후로 ‘덕산탁발화(德山托鉢話)’라는 이 고준한 법문을 검증하고 대중에게 설법한 선사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렇듯이 한 단계 낮은 견성을 가지고 지금까지 내려왔었는데, ‘덕산탁발화’라는 법문을 성철선사, 향곡선사 대에 와서야 알게 되었지요. 그 이전에는 그만큼 대중들에게 내놓을 수 있고, 인가를 검증할 선사가 아무도 없었어요. 좀 낮은 공부를 가지고 견성을 했다, 인가를 한다 그렇게 해서 내려왔다고 봐야지요. 예전에는 안목이 한 단계 낮았다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질문 : 스님, 그러면 그것을 같은 견성(見性)으로 봐야 되는 건지요?
진제스님 : 그걸 같은 견성으로 못 보지요. 부처님과 모든 도인이 비밀히 전해 내려오는 그 과정은 향상(向上)의 일구(一句) 세계를 깨쳐야 되는 것이지 여래선이나 법신을 경험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질문 : 스님께서 말씀하시는 ‘향상의 일구’ 세계라는 것이 뭔지요?
진제스님 : 그게 견성이에요.
질문 : 향상의 일구라는 것이 바로 무상정등각(無上正等覺)이고 견성이고 정각(正覺)이란 말이잖아요. 그럼 그 밑에 단계의 전법이 내려왔다면 부처님의 경지에 미치지 못하는 아라한의 경지를 말씀하시는 것인가요 ?
진제스님 : 아라한의 경지보다는 조금 낫지….
질문 : 말씀하시는 향상의 일구라는 것은 무상정등각이고 견성의 세계다 이렇게 이해하면 되는 건가요?
진제스님 : 그렇지 향상의 일구를 모르면 견성이라 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문답에 착오가 생기는 거지요. 원인이 거기에 있어요.
선법에선 깨침 후 보림이란 없다
질문 : 흔히 오도(悟道) 후에 보림(保任)한다는 말이 있는데 돈오 즉, 견성 후에 보림이란 있을 수 없지요?
진제스님 : 없어요. 진금(眞金)이 한 번 되면 어디가나 진금 덩어리입니다. 어디 바다 속에 있다고, 거름 속에 있다고 진금이 아닌 것이 아닙니다. 절대 변함이 없는 것이 진금입니다.
질문 : 근대 선지식들이 ‘보림(保任)’ 얘기를 워낙 많이 하시어 거기에 대한 혼돈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 돈오, 견성에 대한 확실한 표준을 세울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진제스님 : “향상의 일구를 투과하여 알지 못하면 견성이 아니다.” 못을 박아야지요. 모든 부처님과 도인, 조사스님들이 비밀히 전해 내려온 것은 여래선도 아니고 법신도 아니고 ‘향상의 일구’다 그것을 딱 정해 놓아야 해요.
질문 : 부처님께서 열반 직전에 “여래는 한 법도 설한 바가 없다”고 말씀하신 바가 있는데 이게 무슨 뜻인지요?
진제스님 : 부처님께서 성불하시어 삼칠일 동안 생각에 잠기어 “내가 법을 설하는 것은 법을 설하지 않고 열반에 드는 것보다 못하다”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그게 첫 말씀인데, 49년 동안 팔만사천 법문을 설하시고도 마지막 열반 직전에 “내가 중생을 위해 팔만사천 법문을 했지만 실로 한 글자도 설한 바가 없다.”라고 말씀하셨는데 이게 바로 진리를 모르면 절대 이 말을 못하는 거예요. 이 두 마디에 부처님 살림살이가 다 들어 있어요.
질문 : 이 말씀이 향상의 일구하고 일맥이 상통하는 말씀인가요 ?
진제스님 : 관련이 있어요. 삼칠일 동안 깊이 생각하신 것과 마지막에 하신 말씀이 바로 부처님의 위대한 살림살이를 드러내어 보이신 것이죠.
질문 : 이것도 외람되게 여쭙는데요. 소위 견성했다 하면서 막행막식하는 경우가 더러 있었지 않습니까? 이 때문에 선이나 선사들이 비난 받기도 하는데 이 문제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지요?
진제스님 : 그것은 모순이 좀 있어요. 후대 중생들에게 업을 짓게 하는 것이니까. 깨친 자기 분상에서는 관계가 없는데 중생들이 업을 짓게 하는 것은 문제입니다.
선과 방편의 관계
질문 : 그런데 지금은 많이 좋아졌다고 합니다만, 얼마 전까지도 수좌계에서는 한 소식했다고 하면서 막행막식하고 폭행도 하고 그런 경우가 있어 잘 모르는 이들이 상당히 혼돈스러워하거든요.
진제스님 : 그것은 아주 잘못된 거예요. 바른 눈이 열렸으면 그렇게 안 하지요.
질문 : 선의 입장에서 천도재나 구병시식(救病施食) 같은 중생들의 문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봐야 되는지요?
진제스님 : 그것도 중생의 업으로 애착이고 집착이지요. 그것도 법력으로 다 가능한 것이지요.
질문 : 중생 구제의 방편으로 천도재나 구병시식도 할 수 있다는 말씀이군요. 그런데 교계 일각에서는 이것을 기복으로 보고 비판하는 흐름도 있습니다.
진제스님 : 본시 불교는 기복을 쫓아서 대승불교로 들어오게 되는 겁니다. 그런 방편으로 신심과 발심의 문으로 들어오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복을 짓고 법문도 듣고 하면서 대승의 법문으로 들어오는 여건을 만드는 겁니다.
선사가 이 시대의 리더들에게
질문 : 이 시대는 그 어느 때보다도 지도자들의 역할이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국가나 기업이든 어떤 조직이든 지도자의 역할이 중요한데 선의 입장에서 지도자들에게 한 말씀해주신다면?
진제스님 : 기업가나 정치인들이나 모든 높은 자리에 있는 이들은 지혜를 가져야 돼요. 지혜가 밝지 못하면 사업도 번창할 수 없고, 향상이 없어 그 자리를 유지하지 못해요. 모든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은 밑에 사람을 지도하고 거느릴 혜안이 부족하면 그 자리를 지키지 못합니다.
그래서 모든 지도자들에게 지혜를 밝히는 선 수행, ‘참 나’를 찾는 선 수행을 꾸준히 연마하기를 권합니다. 선을 하는 여기에 마음의 번뇌와 불행이 제거가 되는 동시에 지혜가 밝아집니다. 옛 도인도 말씀하시기를 사람들이 빈한하게 사는 것은 지혜가 짧아서 그렇다. 지혜가 있으면 밝은 지혜로서 출세와 복이 다 온다 그랬지요.
지혜가 없는 사람은 선악을 가리지 못하고 죄를 짓게 됩니다. 그러면 업을 짓게 되지요. 높은 지위에서 지혜가 밝으면 천 사람, 만 사람 앞에서도 밝은 눈으로 척척 문제를 찾고 해결책을 제시하고 지도하면 착오가 없어져요. 모든 사람에게 선도자가 되고자 할진대 ‘참 나’를 밝히는 선 수행을 연마하여 밝은 지혜의 눈을 갖춰야 합니다. 이것이 출세와 행복의 근본이라는 것을 알려 주고 싶습니다.
질문 : 스님 그렇다면 이렇게 좋고 훌륭한 가르침을 전하고 있는 우리 종단이 먼저 부처님과 조사스님들의 참된 세계를 실천해 나아가 세상 사람들에게 이렇게 좋은 가르침이 있다, 이 가르침대로 하니 이렇게 잘 살고 있다. 이런 것을 보여 주며 가르침을 펴야 하는데 그동안 계속해서 혼란스러운 모습을 보여주어 망신을 사고 하니 일반인들이 불교와 선을 우습게 보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종단의 소임자나 사찰의 주지스님들께 도움이 될 한 말씀해 주십시오.
진제스님 : 우리 조계종은 수행을 근본으로 하는 종단인고로 자기의 수양을 위주로 일생을 정진에 성과 열을 다하는 그러한 풍토를 조성해야 됩니다. 요즘은 세태도 많이 변하고 절집에서도 학교에서 배운 지식들이 만연하다보니, 세속적인 학벌이나, 승가의 지식과 학벌을 중놀이의 축으로 삼아 자기 것인 양 살아가니 그릇된 모습들이 자주 드러납니다.
이러한 것들은 출가본분사와는 거리가 멀고 바른 수행에는 큰 힘이 되지 못합니다. 실제로 몸소 뼈에 사무치는 수행을 통하여 정력(定力)을 기르고 모든 업을 다 녹여 지혜의 안목과 덕을 갖추는 게 우리의 참 모습입니다.
우리 불교와 종단이 온 국민과 나아가 세계에서 추앙받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가 일생을 수행정진에 임하여 지혜의 안목과 덕을 갖춰야 하며, 그러한 선지식들을 종단의 윗어른으로 모신다면 바른 지도를 통해서 세상 사람들의 보는 시각도 달라지게 됩니다. 또한 후학들도 조계종단의 이러한 수행풍토를 바로 인식하고 참선정진을 통해 용심(用心)과 수행력을 갖춘다면, 종단의 화합과 발전에 큰 원동력이 될 것입니다.
질문 : 어느 신문 인터뷰를 보니 스님께서 지음자(知音者)를 기다리고 있다 하셨는데 그 지음자가 나타났는지요?
진제스님 : 예, 있습니다. 한 두어 사람이 정진을 잘 하고 있어요.
질문 : 그런 분이 보이십니까?
진제스님 : 예, 그래요.
질문 : 스님 이제 마지막으로 불자들에게 한 마디 일러 주십시오.
진제스님 : 모든 분들에게 이 기회에 한 말씀 전합니다.
인생은, 생명은 찰나지간(刹那之間)이니,
호흡지간에 인생이 있으니,
공연히 밖에 일에 참견하지 말고,
‘참 나’를 바로 알면 세세생생에 행복을 누리고 행복과 출세를 누리노니,
모든 고뇌와 갈등을 여의고 행복해지고자 할진대,
고뇌와 갈등을 여의고 대안락을 누리고자 할진대,
일상생활 중에 일상생활 가운데 어떤 것이 부모에게 나기 전 ‘참 나’인고?
부모에게 나기 전에 어떤 것이 ‘참 나’인고?
이것을 모르면 백년을 살고 천하 갑부고 명예를 떨쳐도 소용없는 것이다.
‘참 나’가 무엇인고?
일상생활 속에 오매불망 참선 정진에 몰두하기를 기원합니다.
출처 - 달마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