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의 쓰심에 합당한 사람(딤후2:20-26)
큰 집에는 금 그릇과 은 그릇뿐 아니라 나무 그릇과 질 그릇도 있어 귀하게 쓰는 것도 있고 천하게 쓰는 것도 있나니.
사회는 물론 교회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공동체를 이루어 생활합니다. 각기 재능과 능력과 전공에 따라 할 일들이 주어집니다. 또한 직위와 직책에 따라 차등을 두고 고유의 업무가 주어집니다. 그에 대하여 만족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항상 불만과 불평을 일삼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이 귀하게 여김을 받고, 어떤 사람은 천하게 여김 받는지, 성경을 통하여 살펴보고자 합니다.
첫째, 깨끗한 사람이 귀하게 쓰임 받습니다.
22,21절큰 집에는 금 그릇과 은 그릇뿐 아니라 나무 그릇과 질 그릇고 있어 귀하게 쓰는 것도 있고 천하게 쓰는 것고 있나니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여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
사도 바울은 사랑하는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주인으로부터 ‘인정 받는 일꾼’에 대하여 교훈 하면서 “말다툼을 하지 말라고 하나님 앞에서 엄히 명하라 이는 유익이 하나도 없고 도리어 듣는 자들을 망하게 함이라” 또한 “망령되고 헛된 말을 버리라 그들은 경건하지 아니함에 점점 나아가나니 그들의 말은 악성 종양이 퍼져나감과 같다”(딤후2:14-17)고 엄하게 이야기 합니다.
말다툼과 망령된 헛된 말은 다툼을 일으켜 공동체 전체에 퍼지는 악성 종양과 같다는 말씀은 이 두 가지로 인하여 분위기를 해치고, 다툼을 통하여 공멸하게 하는 요소가 됨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선한 일에 인정 받는 사람이 되려면 말다툼과 헛된 말을 삼가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는 가장 기본적인 인격으로 사회에서나 교회내에서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바울은 주인의 쓰임에 합당한 사람은 깨끗한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큰 집에는 여러 종류의 그릇이 있습니다. 금 그릇, 은 그릇, 나무 그릇, 질 그릇등 다양한 재질의 그릇이 있고, 또한 크기도 각기 다릅니다. 그래서 주인은 용도에 맞는 그릇을 골라서 사용합니다.
이 때에 어떤 그릇을 사용합니까? 깨끗하게 씻어 둔 그릇을 사용합니다. 작은 그릇 에 큰 물건을 담지 아니하고, 큰 그릇에 적은 양의 음식을 담지도 아니 합니다. 귀한 그릇에는 귀한 것을 담아 즐겁게 사용합니다.
사용후에 깨끗하게 씻어 둔 그릇을 용도에 맞게 사용합니다. 만일에 한 번 사용후에 청결하게 씻어 두지 아니하였더면 그 그릇을 사용하겠습까? 절대로 사용하지 않을 겁니다. 주인은 종들이 깨끗하게 씻어 둔 그릇을 즐겁게 사용합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집에 그릇과 같은 존재입니다. 인격과 성품은 물론 재능과 성숙도가 차이가 나지만 쓰임 받기에 가장 합당한 사람은 마음이 청결하여 거짓됨이 없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누구에게도 거리낌이 없어 당당하고, 진실하여 신뢰를 받습니다. 일을 맡겨도 정직하고 성실하게 수행하기에 안심하게 됩니다.
주어진 일에 대하여 묵묵히 수행하여 좋은 결과를 맺게 되어 공동체에 유익을 줍니다. 이런 사람은 공동체의 분위기를 화목하게 하고 즐겁게하여 주인으로부터 칭찬을 받는 사람이 됩니다.
둘째, 온유한 사람이 쓰임을 받습니다.
24절 주의 종은 마땅히 다투지 아니하며 모든 사람 사람에 대하여 온유하며
‘온유하다’는 말의 사전적 정의는 ‘온화하고 부드럽다’는 의미입니다. 온유한 사람은 성품이 온유하여 서두르지 아니하고, 차분하며 부드러운 마음의 소유자입니다. 공동체 내에서 다투거나 분쟁하지 아니하며, 편가르지 아니하고, 누구에게나 부드럽게 대하여 상대를 이해하고 배려하는 자세로 생활합니다.
모세는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온유한 사람이라고 하나님으로부터 칭찬받은 사람입니다. 광야에서 불평불만이 가득한 사람들로부터 거친 항의와 원망을 들었지만, 모세는 오히려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그들을 설득하는 자세를 취했습니다.
단체의 지도자가되면 그의 뜻에 따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사사건건 시비하며 반대하는 사람도 있기 마련입니다. 이때에 탁월한 지도자는 반대하는 사람들을 징계하거나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항변이유를 파악하고 설득하여 공감하도록 하는 지혜로운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온유한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덕(德)을 베풀 줄 알고, 상대의 상황과 조건등을 배려하여 기다려줍니다. 그리하여 그 온유한 사람 주변에는 그를 추앙하고 존경하는 사람들이 모여들게 됩니다. 지도력이란 권력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인격으로부터 나오는 것으로 오랜 동안 인고의 수련과정을 통하여 연마됩니다.
하나님은 사람들로부터 존경받는 인물을 사용하십니다. 주변 사람들로부터 인정받지 못하고 배척당하는 인물을 사용하지 않으십니다. 왜냐하면 사람들로부터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이 하나님으로부터는 인정받는 경우가 없기 때문입니다. 온유함은 천성이기도 하지만 후천적으로 교양과 수련, 자기성찰과 극기를 통하여 연마되는 성품입니다.
모세는 천성적으로 온유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왕궁에서 왕자로서 존경받고, 최상의 고급 교육을 받았지만, 자기 민족이 불의하게 핍박당하는 모습을 보고 살인을 저질렀습니다. 그 사건으로 왕궁을 탈출하고 도망자 신세가 되어 광야 한 폭판의 이두매족속 틈에 끼어 살았습니다. 외로운 광야 40년 동안 그의 성품에 변화가 생겼습니다. 그의 온유함은 개인 신분의 변화와 민족적 수난과 백성들의 저항을 통해 단련된 결과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종으로 사용하시기 위해서는 수련과 연단을 통하여 인격과 성품을 다듬어서 사용하십니다. 그러므로 그의 연단의 과정에서 온유하게 순종하는 이들을 귀하게 사용하십니다.
셋째, 주인의 뜻에 순종하는 자가 쓰임받습니다.
28절 그들로 깨어 마귀의 올무에서 벗어나 하나님께 사로잡힌 바 되어 그 뜻을 따르게 하실까 함이라
지혜로운 종은 주인의 뜻을 기쁜 마음으로 따릅니다. 주인을 존경하기에 주인의 말에 절대순종합니다. 종이 자신의 생각이나 경험을 바탕으로 건의하기도 하겠지만 지혜로운 종은 자신의 뜻대로, 자기 마음대로 하지 않습니다. 낮은 곳에서 보는 것과 높은 곳에서 전체를 보는 것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셔서 자신의 일에 대하여 자율적으로 처리하도록 허용하신 부분이 있습니다. 이것은 그 결과에 대하여 전적으로 자신이 책임을 져야 합니다. 하나님이 허용하신 부분에 대하여는 하나님께서도 존중해 주십니다. 그러나 지나친 자유와 방임은 결코 용납하시지 않으십니다.
종에 대한 개념은 구약시대와 현재와는 차이점이 존재 합니다. 현재는 인간의 지나친 자유의 주장은 윤리 도덕을 타락시켰고, 창조질서를 어지럽협었으며, 순리리대로 사용하는 것보다 역리로 사용하는 것에 대하여 호기심과 개성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인간의 무한의 자유주장은 인류의 재앙이될 것입니다.
타락한 시대의 멸망에 대한 역사의 교훈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인류는 전쟁과 기근과 질병으로 수많은 희생과 고통을 당합니다. 그 원인은 ‘지나친 욕심’에 기인합니다. 이 욕심은 자신은 물론 인류 전체에게 큰 재앙이 될 것입니다.
욕심의 발로는 주인의 뜻을 무시하고 자신의 경험을 우선하는 교만한 마음에서 나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뜻에 절대순종하는 종들을 통하여 인류역사에 기념될만한 인물로 만들어 사용하십니다. 위인들의 한결같은 공통점은 ‘신의 뜻’ 따른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하는 사람, 온유한 성품의 사람, 하나님의 뜻에 기쁜 마음으로 절대 순종하는 사람을 종으로 세워서 사용하십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이 쓰시기에 합당한 그릇에 되길 소망합니다.
예수사랑선교회 임 웅 빈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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