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놈!
머리 끝에서 발가락 끝까지
사람 같지 않은 놈!
입에 피를 흘리며
세상에 그 탄생을 고하고
약탈과 살인방화의 전쟁으로
만방에 그 힘을 과시하고
사기 도적 협잡 등으로
인간의 머리 위에 군림한
괴물 같은 놈 흡혈귀 같은 놈!
언젠가 어느 날엔가는
농부가 깎은 꼬챙이에 찔려
황소가 차는 뒷발에 채어
머리 끝에서 발가락 끝까지
구멍이라는 구멍에서 피를 토하고
사지를 쭉쭉 뻗으며 뒈져갈 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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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권 선생님
영문도 모르는 사건에 연루되어
고문도 받고 재판고 받고 징역도 한 오년 받아 겨울이면
동태처럼 언 몸을 마른수건으로 녹이면서 징역살이 하다가
만기 차서 담 밖으로 나와서 한두 해 집에 가서
아무도 모르게 불시에 찾아노는 형사들만 알게 살다가
그렇게 살면서 읽을 만한 책이 없이 마르크스를 읽다가
그게 들켜 그게 죄가 되어 그것도 역적죄가 되어
고문도 받고 재판도 받고 징역도 한 삼 년 받고 징역살다가
전향하라 전향하라 전향하라......
비녀꽂이 주리틀기 물먹이기 몽둥이 찜질하기......
밥 먹듯이 매를 맞으며 살다가 그러는 사이에
사회안전법인가 뭔가가 생겨 만기 채우고도 집에 가지 못하고
집에 가서 그동안 삼 년 동안 자란 손주 한번 안아보지 못하고
쇠고랑차고 오랏줄에 묶여 압송차에 실려 감호소에 가서 살다가
그렇게 살다가 또 밖에서 무슨 사건이 터져 거기에 연루되어
고문도 받고 재판도 받고 이번에는 징역보따리도 큼직하게 받아
15년짜리 보따리를 어깨 무겁게 짊어지고
이 감옥 저 감옥 전전하면서 살다가
이제 흰머리에 검은 머리 하나 없이 징역살이하시는 선생님
내일은 며늘아가 손주놈 데리고 면회 온다 했다며
푸른 옷도 깨끗하게 빨아 입으시고
거칠거칠한 수염도 단정하게 다듬으시고
구매 시간 기다려 과자도 서너 봉지 사서 감방 아랫목에 묻어 두고
손주 볼 생각에 잠 못 이루시는 선생님 김병권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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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얼굴
푸른 옷의 사내는
철창에 기대 담 쪽을 내다보며
이제나 올까 저제나 올까
면회 오겠다던 님을 기다리고
목이 빠지게 기다리고
면사포도 없이
양친 부모 승낙도 없이
혼자서 결혼한 여자는
면회가 되면
혹시라도 특별면회라도 되면
간수 몰래 남편 될 사람
손등이라도 한번 어루만질 수 있을까
담 곁에서 애를 태우고
그러나 어쩌랴 이것도
분단과 식민지의 밤이 빚어낸
사랑의 한 얼굴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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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그 방에 와서
제대로 팔다리를 뻗을 수 없는
0.7평짜리 이 방이
7년 전에 내가 1심에서
징역 2년을 받고 앉아 있을 때는
한 삼 년 도나 닦고 나갔으면 좋겠다 싶은
절간의 선방 같다고 생각했는데
펜도 없고 종이도 없고
책이라고는 달랑 예수쟁이들이 기증한
성경밖에 없었던 이 방이
그후 서너 달이 지나고 2심에서
집행유예를 받고 누워 있을 때는
하룻밤 느긋하게 묵고 가고 싶은
나그네의 역려 같다고 생각했는데
서른 넘은 나이로
15년 징역보다리를 들쳐메고
다시 와 이 방에 앉아 생각해보니
이제는 무덤이구나!
생사람 죽어 살아야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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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식
1
똑 똑 똑
벽을 세 번 두드려
'ㄷ'을 쓰고
찍
벽을 한 번 그어서 그 옆에
'ㅏ'를 붙이고
똑 똑
다시 벽을 두 번 두드려 그 밑에
'ㄴ'을 달면
'단'자가 된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벽을 두드리고 그어서
방에서 방으로 동지들에게 전한다
단식의 '단'자와 '식'자를 전하고
투쟁의 '투'자와 '쟁'자를 전한다
2
징역 초기에 우리는
단식을 밥 먹듯이 했다
가다밥의 크기가
3등에서 4등으로 작아졌다고 그랬고
가다밥에 박힌 콩알이
50개에서 마흔 몇 개로 줄었다고 그랬고
운동시간 5분을 늘리느라 그랬고
미역국에 시래기 대신 담배꽁초가 떴다고 그랬다
3
오늘 아침 우리는
단식에 들어갔다
일주일에 한번씩 나오는
엄지발가락만한 돼지고기가 안 나왔기 때문이다
하루 굶고 이틀 굶고
한 고비 사흘을 넘기고
감옥에 다시 밤이 왔다
"반항하는 놈은 짓이겨버려"
"버러지만도 못한 빨갱이새끼들"
"주는 밥이나 얌전히 처먹지"
이런저런 토막소리 사동 입구께서 왁자지껄하고
이내 콘크리트 복도에서 내달리고 엇갈리는 군홧발 소리
앞방에서 옆방으로 철문 따는 소리
손목에 쇠고랑 채우는 소리
끌려가며 내지르는 비명소리
단식은 계속되었다
끌려가더니 어떤 동지는
도마 위에 쪼아놓은 닭발이 되어 기어왔다
단식은 계속되었다
끌려가더니 어떤 동지는
온몸에 찬물을 뒤집어쓰고 부들부들 떨며 돌아왔다
단식은 계속되었다
끌려가더니 어떤 동지는 돌아와서
징역보따리를 챙겨메고 사동을 떠났다
여러분과 끝까지 싸우지 못해 부끄럽다며 인사하고
물 한 모금 입에 안 넣고
일주일을 넘기고 열흘을 참으면서
나는 나의 비참을 모조리 겪었다
싸다가 죽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차라리 죽고 싶었다 죽어야 했다
그런데 나는
폭력의 중압에 허리를 굽혔고
개같은 감옥의 죽음 앞에서 무릎을 꿇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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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뚱한 녀석
나를 보고 싶어 일부러
감옥에 오겠다는 녀석이 있다 한다
나의 어디를 보겠다는 것일까 그 엉뚱한 녀석은
판판이 지기만 했던 그날그날의 내 싸움들
남은 것은 이제 철장에서 타오르는
증오의 뼈대밖에는 없는데 그것으로
사랑의 무기라도 깎아보겠다는 것일까
그 무기로 내 대신 압제자의 등에 꽂혀
자유의 원수라고 갚아주겠다는 것일까
무엇을 보여줄까 오늘이라도 당장 그 엉뚱한 녀석이
부러진 날개의 새 내 앞에라도 나타난다면
없다 나에게는 자랑스럽게 보여줄 아무것도 없다
지하실의 고문 때문에 구부러진 내 엄지손가락말고는
나이 사십에 온통 하얗게 시들어버린 내 머리카락말고는
나는 나의 패배와 그 흔적을 보여주고 싶지 않다
누구에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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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인사
오늘밤 아니면 내일
내일밤 아니면 모레
넘어갈 것 같네 감옥으로
증오했기 때문이라네
재산과 권력을 독점하고 있는 자들을
사랑했기 때문이라네
노동의 대지와 피곤한 농부의 잠자리를
한마디 남기고 싶네 떠나는 마당에서
어쩌면 이 밤이 이승에서 하는
마지막 인사가 될지도 모르니
유언이라 해도 무방하겠네
역사의 변혁에서 최고의 덕목은 열정이네
그러나 그것만으로 다 된 것은 아니네 지혜가 있어야 하네
지혜와 열정의 통일 이것이 승리의 별자리를 점지해 준다네
한마디 더 하고 싶네 적을 공격하기에 앞서
반격을 예상하고 그에 대한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공격을 삼가게 패배에서 맛본 피의 교훈이네
잘 있게 친구
그대 손에 그대 가슴에
나의 칼 나의 피를 남겨두고 가네
남조선민족해방전선만세!
어제 나는 잠실 운동장에 있었다
거대한 고무보트와도 같은 경기장에서는
남과 북이 패를 갈라 공을 차고 있었고
관람석을 가득 메운 구경꾼들은
그 공의 향방을 쫓느라 넋을 잃고 있었다
나는 공의 향방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무엇에 굶주린 도둑 고양이처럼
사방팔방으로 눈알을 굴리며 주위을 둘러보았다
여기저기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고
구경꾼들 틈새에 박혀 있는 새마을 모자들
가수들의 요란한 의상과 치어걸들의 괴상한 몸짓
에이스 침대 나이키 맥스웰커피
비재바노 프로스펙스 랜드로바 코카콜라.....
이런 것들은 분명히 있었다 그러나 어디에도
내가 찾는 것은 없었다 눈을 씻고 봐도 없었다
흔해빠진 노래 우리의 소원은 어저고저쩌고 하는 것도 없었고
자주네 평화네 통일이네 하며 내 귀를 시끄럽게 했던
관념의 뺘다귀 같은 말의 성찬도 보이지 않았다
여간만 실망하지 않은 나는
발길을 돌려 출입구로 향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이었다
구경꾼들 틈에 박혀 있었던 새마을 모자들이
허겁지겁 일어나더니 한쪽으로 몰려가는 것이었다
무슨일이 일어났을까 나의 시선이 멈춘 곳에서는
대여섯명의 젊은이들이 하얀 천을 펼쳐들고 뭐라고 외치는데
모자들이 떼거리로 몰려가서 그 입을 덮치고 있었다
그리고 젊은이들과 모자들은 하얀 천을 놓고
치고 받으며 난투극을 벌이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중과부적
삽시간에 백 명 이백 명으로 수가 늘어난 모자들은
젊은이들의 멱살과 손목을 움켜잡고 어딘가로 끌고 가 버렸다
아무도 거기에 개입하거나 따지는 사람은 없었다
다만 구경하느라 엉덩이를 들고 고개를 내밀었던 사람들은
모자들이 조성한 험악한 분위기에 기가 죽었는지
슬그머리 자리에 엉덩이를 내리고 얌전하게 앉아 있었다
내가 사태의 처음과 끝을 안 것은 한참 후였다
젊은이들이 외치다 모자에 입이 막혀 질식사했던 구호와
젊은이들이 펼치다 모자들에게 빼앗겼던 하얀 천에 씌어진 글씨는
'조국은 하나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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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이 벌써
땅 위에 태어나서 나 하늘 높이에
이념의 깃대 하나 세우지 못한다
가난뱅이들이 부자들의 마을에 가서 고자질할까 봐 그런 것도 아니다
내 나이 벌써 마흔다섯이다
하늘 아래 태어나서 나 땅 위에
계급의 뿌리 하나 내리지 못하고 있다.
부자들이 가난뱅이들 마을에 와서 행패를 부릴까 봐 그런 것도 아니다
내 나이 벌써 마흔다섯이다
하늘과 땅 사이에 나 할 일이 없는가 이렇게도 없는가
까마득한 세월 10년 전 그날처럼
나는 이제 지하로 흐르는 물도 되지 못하고
지상에서 먹고 살 만한 동네에 살면서
이런 말 저런 글 팔고다닌다
그것도 허가난 집회에서나
그것도 인가난 잡지에서나
내 나이 벌써 이렇게 됐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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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총각 나는 처녀
밴밴한 얼굴의 계집은
그 처녀를
기생오라비 같은 난봉꾼에게 바치고
그것도 허영에 들떠서 바치고
순진하기 짝이 없는 사내는
그 총각을
서울역이나 청량리 근처 어디 갈보한테 바치고
그것도 무릎까지 꿇어가면서 바치고
모년 모월 모시 모처에서 그들은
나는 총각 너는 처녀 선남선녀로 만났다네
모년 모월 모시 모처에서 그들은
신랑신부가 되어 주례 앞에 섰다네
그랬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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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패배로 끝나고
서른에서 마흔몇 살까지
황금의 내 청춘은 패배와 투옥의 긴 터널이었다
이에 나는 불만이 없다
자본과의 싸움에서 내가 이겨
금방 이겨
혁명의 과일을 따먹으리라고는
꿈에도 생시에도 상상한 적 없었고
살아 남아 다시 고향에 돌아가
어머니와 함께 밥상을 대하리라고는 생각지도 않았다
나 또한 혁명의 길에서
옛 싸움터의 전사들처럼 가게 될 것이라고
그쯤 다짐했던 것이다
혁명은 패배로 끝나고 조직도 파괴되고
나는 지금 이렇게 살아 있다 부끄럽다
제대로 싸우지도 못하고 징역만 잔뜩 살았으니
이것이 나의 불만이다
그러나 아무튼 나는 싸웠다! 잘 싸웠거나 못 싸웠거나
승리 아니면 죽음!
양자택일만이 허용되는 해방투쟁의 최전선에서
자유의 적과 싸웠다 압제와
노동의 적과 싸웠다 자본과
펜을 들고 싸웠다 칼을 들고 싸웠다
무기가 될 수 있는 모든 것을 들고 나는 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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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길 / 김남주
나를 보더니 보자마자 고선생이
남주야 남주야 다급하게 부르더니
다짜고짜 나를 데리고 근처 다방으로 갔다
거기 어디 구석지고 으슥한 데에 나를 앉혀놓고
은밀하게 타일렀다
너 말이야 앞으로 조심 좀 있어야겠더라
어제 말이야 우연히 저쪽 사람 하나를 만났는데 말이야
그 사람 말을 그대로 옮겨볼 것 같으면 말이야
감옥에서 나와서까지 남주가
그런 식으로 말을 하고 다니고
그런 식으로 글을 쓰고 하면
우리들이 곤란하다고 그러더라
출옥하고 나서 그동안 2년 동안
나는 이런 소리를 여러 차례 들어왔다
기원이를 만나러 검찰청에 갔다 온 시영이한테도 들었고
무슨 일로 남영동에 갔다 왔다는 수택이한테도 들었고
달포 전에는 남산 어딘가에서 들었다면서
형식이가 밤중에 전화까지 해줬다.
고선생과 헤어지고 나는 곧장
집으로 가지 않고 밤길을 걸었다
광화문 지하도를 뚫고
헌병이 어깨총을 하고 있는 미대사관 철문을 지나
울산에서 올라온 노동자들이 땅바닥에 천막을 쳐놓고
앉아버티기 싸움을 하고 있는 어느 재벌회사의 건물 앞마당에서 잠시 발을 멈췄다
건물의 문이란 문은 죄다 입을 다물고 있었다
노동자들은 그 잎에 대고 뭐라고 뭐라고 외쳐대고 있었다
우리도 사람이다 식수 좀 쓰자
우리도 사람이다 화장실 좀 쓰자
우리도 사람이다 눈비 좀 피해 자자
눈 오는 날 비까지 와서 미끄러운 길바닥
오늘은 어디 싸구려 여인숙에나 가서 자고 갈까
이런 계산을 하면서 나는 나에게 물어보았다
어떤 식으로 내가 그을 쓰고 말을 하고 다녔길래 그들을 곤란하게 했을까
어떤 식으로 내가 말을 하고 글을 써야 그들을 곤란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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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감옥이 열리고
길도 따라 내 앞에 열려 있다
세 갈래 네 갈래로
어느 길로 들어설 것인가
불혹의 나이에
나는 어느 길로도 선뜻
첫발을 내딛지 못한다
농사나 지을까
나로 인해 화병으로 돌아가신
아버지의 들녘으로 가서
시나 쓸까
이 세상 끝에라도 가서
쉬었다나 갈까
어디 절간 같은 데라도 가서
별생각이 다 떠오른다
그러나 세상은
내 좋을 대로 하라고 내 버려두지 않는다
자꾸만 자꾸만 내 등을 밀어 사람들 속으로 집어넣는다
오늘도 나는 어느 집회에 가야 한다
가서 헤상이 한번 뒤집히기를 요구하는 사람들 앞에 서서
목소리를 높여 시를 읽고 말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쓰디쓴 입맛을 다셔야 할 것이다
사물의 핵심을 찌르지 않고 비껴가는
내 시와 말이 비겁하지 않느냐는 생각을 하면서
나도 한때 핵심을 비껴가는 시를 쓰고 말을 하고 다니는 사람을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본 적이 있었음을 떠올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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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나 합시다
바깥세상이 시끄러운지라
수학문제를 풀던 선생님이
잠시 분필을 놓으시고
사람 사는 이야기를 하려는데
학생 하나 벌떡 일어나 소리지른다
---- 선생님 공부나 합시다 ----
때는 말고 푸른 가을 하늘인지라
영어문제를 풀던 선생님이
잠시 분필을 놓으시고
우리 말 고운 시 하나 읊으려 하자
학생 하나 벌떡 일어나 소리지른다
---- 선생님 공부나 합시다 ----
이런 학생 나중에 무엇이 될까
세상 모르고 공부만 하여
남보다 수학 문제 하나 더 빨리 풀어
일등하여 일류대학 들어간들
무엇이 될까 이런 학생 나중에
시집 한 권 아니 읽고 공부만 하여
남보다 영어 단어 하나 더 많이 외어
우등으로 일류대학 들어간들
그런 학생 졸업하고 세상에 나오면
시끄러운 세상에 나와 높은자리에 앉게 되면
말끝마다 입으로 학생은 공부나 하라고 그럴지도 모르지
데모나 하는 학생들을
참교육 운운하는 선생님들을
잡아조지고
때려조지고
가둬조지는
그런 사람이 될지도 모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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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산품
영덕에 가면 영덕게 없다
영광에 가면 영광굴비 없다
제주에 가면 제주돔 없다
무심한 바다
짠물에 두 눈 씻고 보면
선창가 어물전이나 어부집 처마밑에
영덕게 같은 것
영광굴비 같은 것
제주돔 같은 것
하나둘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십중팔구
어디서 굴러온지 모르는 가짜이거나
팔려가지 못한 병신이기 십상이다
그러면 어디에 있는가 진짜는
서울에 있다 매끈하고 잘생긴 것은 모두
고급요정이나 상류호텔에 있다
사람도 매한가지다
시골에 가면 산에 들에
달덩이 같은 처녀 없다
서울에 다 있다 술집에 호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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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익 쿠테타
쿠데타는 언제 일어나는가 겨우내
움츠러들었던 풀들이 바람에 일어 고개를 쳐들고
회복기의 자유가 하늘을 향해 두 팔 벌리고 하품과 함께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을 때 일어난다
창문을 열면 거리마다 무거운 군화발 대신에
오가는 시민들의 가벼운 발자욱 소리가 신선하고
이제 아무도 제 이웃의 거동을 의식하지 않고
사라져 없어진 총칼의 그림자도 의식하지 않고 때마침
머리 위를 날으는 새의 자유를 노래하고 그 높이와
한계까지 이야기하기 시작했을 때
그때 쿠데타는 일어난다
그렇다 쿠데타는 자유를 적으로 삼고 일어난다
가진 자들이 강요한 생활의 질서 그 가위눌림으로부터
긴긴 밤의 악몽으로 깨어나 가난뱅이들이
끼리끼리 모여 이마를 맞대고 새로운 삶의 질서를 꿈꾸기 시작했을 때
그 꿈의 번성을 위하여 공장에서 노동자들이
조합의 결성과 동지의 단결을 호소하고 농촌에서는
농부들이 숫돌에 낫을 갈며 갑오년의 그날을 떠올리고
당돌하게도 부자들의 독점물이었던 통일문제까지 가난뱅이들 좋을 대로
이러쿵 저러쿵 입방아를 찧기 시작했을 때
그때 소위 쿠데타라는 것은 일어난다
이를테면 이럴 때 쿠데타는 일어난다
노동과 가난의 거리에 그날그날의 자유가 넘치고
그 넘침의 자유가 착취의 거리까지 흘러들어
부자들의 발등을 적시고 무릎까지 배꼽까지 차올라
목에까지 차올라
부자들의 재산과 생명이 위험수위에 찼을 때
바로 그때 우익 쿠데타는 일어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