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라진 지옥선 2부> 코난 도일 remove written by chungwoo_jigi |
2. 악마와 같은 사나이.
"나는 런던의 하숙집으로 돌아와 유기화학 실험으로 나날을 보내고 있었는데, 가을로 접어들어 방학이 거의 끝날 무렵의 어느 날, 빅터에게서 전보가 왔네.
'도니소프로 와주게. 자네 조언과 도움이 필요해.'
이런 내용이었지. 물론 나는 실험을 중단하고 서둘러 도니소프로 갔네. 빅터는 역에다 마차를 대기시키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 얼굴을 보니 그가 심한 고민에 빠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네. 볼은 살이 빠져 홀쭉하고 늘 쾌활하던 태도는 찾아볼 수가 없더군.
'아버지가 위독해.'
'뭐! 어떻게?'
'졸도 하셨어. 정신적인 충격으로 의식을 완전히 잃었는데, 지금 돌아가면 임종이나 지켜볼 수 있을는지...'
나는 이 뜻밖의 소식에 어안이 벙벙해졌지.
'원인이 무엇인가?'
'그게...하여간 마차를 타게. 가면서 이야기하지. 자네가 우리집을 떠나기 전날 찾아왔던 그 사람을 기억하나?'
'음.'
'그날 우리 집에 발을 들여놓은 그자가 누군지 짐작이 가나?'
'글쎄.....'
'악마라네, 홈즈.'
나는 깜짝 놀라 빅터의 얼굴을 바라보았지.
'그자는 악마가 틀림없네. 그놈이 나타난 이후, 평화스러운 때라곤 전혀 없었네. 아버지는 그날로 기운을 잃기 시작했네. 이제는 더 이상 살 의욕을 잃고 자리에 누워 버리신 거야. 모두가 그 허드슨이라는 놈 때문이야.'
'그 사람이 무엇 때문에 그러는 거지?'
'그걸 알면 나는 무슨 짓이라도 할 걸세. 자상하고 마음씨 착한 아버지가 왜 그런 악당에게 걸려 들었는지... 하지만 자네가 와 줘서 기쁘네. 나는 자네의 판단력을 믿어. 어떻게 해야 좋을지 도와주게.'
마차는 흙먼지를 피우며 달렸네. 앞쪽으로는 끝없이 펼쳐진 호수가 저녁 노을에 붉게 타오르고 왼쪽 떡갈나무 숲 위로는 이미 저택의 높은 굴뚝이 보이기 시작했지. 빅터가 말을 이었네.
'아버지는 처음에 그자에게 정원이나 돌보라고 했어. 그런데 그가 그걸로는 부족하다고 투정을 부려, 집안일을 다스리는 집사를 시켰네. 그러자 그는 제 세상을 만난 듯 거들먹거리며 집안을 휘젓고 다니기 시작했지.
하인들은 그자의 술버릇이 나쁘고 말씨가 상스러워 못 견디겠다고 불평들이 대단했어. 그래서 아버지는 급료를 올려주어 무마를 했지. 그런데도 그는 안하무인 격으로 아버지가 아끼는 가장 좋은 총을 끄집어내어, 멋대로 사냥을 나가곤 했네. 비웃는 듯한 얄미운 웃음을 입가에 띠고 설쳐대는 걸 보고, 두들겨 패버리고 싶은 생각이 굴뚝 같았네. 나는 아버지를 봐서 꾹 참고 견뎠지. 지금 생각하니, 그러지 말고 실컷 분풀이를 했어야 했나 봐. 하여간, 사정은 더욱 나빠져서 허드슨이라는 놈은 더욱 기세가 등등해졌네. 마침내 내 앞에서까지 아버지에게 무례한 짓을 하기에, 나는 그자를 번쩍 들어 밖으로 내던져 버렸네. 그는 얼굴이 파래져서 그 자리를 피해 도망갔으나, 나를 노려보는 눈에는 독기가 서려 있더군. 그리고 나서 아버지와 그 놈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모르나, 다음날 아버지는 나에게 부탁하듯 이렇게 말씀하셨네.
'허드슨에게 사과할 수 없겠니?'
나는 잘라 말했네.
'싫습니다. 어째서 그런 망나니 같은 놈이 멋대로 굴어도 내버려두시는 거죠?'
'네가 화를 내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하지만 너는 내 입장을 모른다. 언젠가는 알게 되겠지만, 너는 이 늙은 아비가 설마 나쁜 사람이라고 생가하지는 않겠지?'
아버지는 고민에 휩싸인 얼굴을 하고 서재로 들어가시더니 하루 종일 밖에 나오지 않았어. 창 너머로 살펴보니 무엇인가 골똘히 쓰고 계시더군.
그런데 그날 밤, 허드슨이 집을 나가겠다고 말하는 것이었네. 아버지와 내가 저녁식사를 끝내고 앉아 있는데, 그놈이 식당으로 들어와 술이 얼근한 얼굴로 이런 말을 꺼낸 것일세.
'이제 여기는 신물이 난다고. 난 햄프셔에서 살고 있는 비도스를 찾아가려네. 그 사람 역시 자네만큼은 나를 환영해 줄 테니까.'
그러자 아버지는 듣기에 역겨울 정도로 비굴하게 이러시더군.
'허드슨, 뭐 기분이라도 상해서 그러는 건 아니겠지?'
허드슨이 나를 힐끔 보며 말했네.
'사과 같은 건 아직 받지 못했어.'
'빅터, 네가 이분에게 실수한 것을 솔직히 인정하겠지?'
아버지는 나에게 타이르는듯 말했지만 나는 고개를 흔들었네.
'사과는커녕, 우리는 이 사람에게 지나치게 관대했습니다.'
'그래? 좋아. 어디 두고 보자고.'
그는 으르렁거리듯 그렇게 말하고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식당을 나갔네. 그리고 30분 뒤에 집을 떠났는데, 아버지는 보기에 딱할 정도로 몸둘 바를 모르는게 아닌가. 그런 일이 있은 뒤, 아버지는 잠을 못 이루는 듯 밤중에 방안을 서성거리곤 하셨네. 하지만 며칠이 지나자 차츰 기운을 되찾으시는 것 같았네.
그런데 갑자기 무서운 타격이 가해졌던 것이라네.'
'그게 뭐지?'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어제 오후에 포딩브리지의 소인이 찍힌 편지가 왔었네. 아버지는 편지를 읽자, 두손으로 머리를 감싸쥐면서 펄쩍펄쩍 뛰다시피 하더니 쓰러지시지 뭔가. 꼭 머리가 어떻게 돌아버린 사람 같았네.
내가 간신히 소파에 옮겨 눕혔더니 눈까풀 한쪽이 경련을 일으키더군. 급히 의사를 불러 진찰했더니 다시 의식을 회복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이야기였네. 그러니 지금쯤 어떻게 되셨는지....'
'도대체 그 편지에 무슨 말이 쓰여 있기에 그런 엄청난 일이 생겼는가?'
'뭐, 겁날 이야기라고는 한 줄도 쓰여 있지 않았어. 그게 도무지 이해가 안 가네. 편지 내용은 바보스러운 낙서 같은 것이었거든. 아, 하나님! 걱정했던 일이 기어코 일어났어!'
마차가 저택이 보이는 길모퉁이를 돌았을 때, 창문마다 덧문이 모두내려져 있는 것이 보였던 것이네. 슬픔이 복받친 빅터와 내가 현관으로 달려가자, 검은 양복의 신사가 걸어 나오고 있었네. 빅터가 묻더군.
'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까, 선생님? 언제요?'
'자네가 역으로 간 직후였네.'
'의식을 회복하셨던가요?'
'숨이 끊어지기 전, 잠시 동안이었지.'
'뭔가 제게 남기신 말은 없었습니까?'
'문갑속에 서류가 있다고 말씀하시더군.'
빅터는 의사와 함께 아버지가 누워 있는 방으로 올라가고, 나는 서재에 남아 사건을 머릿속으로 몇번이고 정리해 보면서 침울한 마음에 잠겨 있었네. 이 트레버라는 노인의 과거는 과연 어떤 것이었을까? 권투 선수이고, 여행가이고, 금광에도 손을 댔다고 하는데, 어째서 그런 야비한 선원 따위에게 꼼짝도 못했던 것일까? 그리고 애써 지우려 했던 문신을 지적하자 기절할 듯 놀라고, 포딩브리지에서 온 편지를 보고는 공포에 휩싸여 졸도하여 끝내 숨을 거둔 까닭이 무엇일까?
포딩브리지는 햄프셔 주에 있네. 그 뱃사람은 아마도 비도스라는 사람을 찾아가 그에게 협박을 했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그 비도스가 햄프셔에 살고 있었네. 그렇다면 그 편지는 뱃사람 허드슨으로부터 트레버 노인에게, 당신이 옛날에 저지른 범행을 폭로했다고 알려온 것인지, 아니면 비도스라고 또 다른 희생자가 트레버 노인에게 언제 비밀이 탄로날지 모르는 상태라는 것을 경고한 것인지, 둘 중의 하나라고 생각되었네.
하지만 빅터는 그 편지의 내용이 별것이 아니라고 했지. 그건 빅터가 몰라서 한말이야. 나는 겉으로는 별것이 아닌것처럼 꾸민 암호 편지가 아닐까 생각되었네. 나는 그 편지를 보아야 했고, 거기에 숨겨진 의미가 있다면 그것을 풀어 낼 자신이 있었네.
한 시간 가량 어둠 속에서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눈물에 젖은 가정부가 램프를 갖다 놓아 주었고, 곧 빅터가 들어왔네. 얼굴은 창백했으나 그는 침착을 되찾고, 지금 이렇게 내 무릎위에 놓여 있는 서류를 있었지. 그는 나와 마주앉더니 급히 갈겨 쓴 짧은 편지 한 장을 건네 주었네.
'The supply of game for London is going steadily up. Head-kepper Hudson, w
e belive, has been now told to receive all order for fly-paper, and for p
reser-vation of your hen pheasants life.'
(런던을 향한 사냥감의 공급은 차차 증가하고 있다. 사냥터지기 허드슨은 이미
파리잡이 종이를 모아, 당신의 암꿩의 생명을 보존하라는 주문을 받도록 통고
된 것으로 생각한다.)
나도 처음 이 편지를 읽었을때, 조금전의 자네처럼 고개를 갸우뚱했지만, 그것을 조심스럽게 다시 읽어 보았네. 예상한 대로, 이 기묘한 말의 나열 속에는 무엇인가 특별한 의미가 숨겨져 있는 것이 틀림없었지.
'파리잡이 종이'나 '암꿩' 과 같은 말에 두 사람만이 정한 특별한 의미가 있다면 그건 도저히 해독할 수 없는 것이겠지만, 나는 그 편지가 그런 암호라고는 생각하고 싶지 않았네.
'허드슨' 이라는 말이 들어 있는 것으로 보아, 편지의 내용은 협박자 허드슨에 관계되는 것이며 따라서 편지를 보낸 사람도 허드슨이 아니라 비도스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지. 거꾸로 읽어 보았지만, ' The of for(그,의, 향하여)도, '
supply game London'(공금, 사냥감, 런던)도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없더군.
하지만 단숨에 수수께끼를 풀 수 있는 묘안이 떠올랐네. 처음부터 세 번째 단어 들을 골라 연결해 보니, 트레버 노인이 공포에 사로잡힐 만한 내용이 나타나더군.
'The game is up. Hudson told all.Fly for your life.'
(게임은 끝났다. 허드슨이 모든것을 폭로했다. 목숨을 걸고 도망쳐라.)
빅터 트레버는 내 해석에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틀림없어.! 그 편지로 아버지는 파멸이 닥쳐온것을 알았던 걸세. 그런데 이 '사냥터지기'라든가 '암꿩'같은 말은 무슨 의미일까?'
'특별한 의미는 없다고 생각하네. 이 편지는 처음에 'The...game...is...'처럼 사이를 띄우고 썼을 걸세. 그리고 나서 미리 약속한 방식에 따라 빈 자리에 2개의 단어를 적당히 채워 넣었지. 그런 경우에는 당연히 먼저 머릿속에 떠오르는 단어를 적어 넣는 것이 순리가 아닌가? 그런데 사냥에 관한 낱말이 많이 있는 것으로 보아, 편지를 쓴 사람은 사냥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지.
자네, 이 비도스라는 사람에 대해서 아는 바가 없나?'
'그러고보니, 아버지는 매년 가을이 되면 이분의 사냥터에 초대되어 사냥을 하셨네.'
'그렇다면 이 편지가 비도스에게서 왔다는 것은 틀림없네. 남은 문제는, 뱃사람 허드슨이 어떤 비밀을 쥐고 있기에 이 점잖은 두 신사를 협박할 수 있었는가 하는 것이군.'
빅터가 외쳤네.
'아, 홈즈. 그것은 죄악에 찬, 수치스러운 비밀이 틀림없을 것일세. 하지만 자네에게 숨길 것이 뭐 있겠는가? 이것은 아버지가 허드슨에 의해서 비밀이 폭로될 위기에 처한 것을 알고 써 놓은 고백서일세. 아버지가 의사에게 말한대로 문갑 속에 있었네. 자, 이것을 읽어주게. 내겐 그것을 읽을 만한 힘과 용기가 없어."
3. 지옥선의 최후.
"그때, 빅터가 건네준 고백서라는 것이 이걸세, 와트슨. 그날 밤, 서재에서 빅터 에게 읽어 주었던 것처럼 자네에게 읽어 주겠네. 보다시피 겉장에는 이렇게 쓰여 있네. '범선 글로리아 스콧 호 항해 기록. 1855년 10월 8일 팰머스 항을 출범하여, 1월 6일 북위 15도 29분, 서경 25도의 해상에서 침몰할 때까지.' 편지 형식의 기록일세."
사랑하는 아들에게---아버지는 지금 수치스러운 비밀을 폭로당하고 비참한 운명에 빠지려 하고 있다. 그러나 아버지가 죽도록 괴로워하고 있는 것은, 법의 심판을 받거나 사회적인 지위를 잃게 되리라는 두려움 때문이 아니다. 아버지를 사랑하고 존경하는 네가 아버지 때문에 세상의 뜨거운 눈총을 받게 될까 안타까운 것이다. 하지만 나를 영원히 따라다니는 죄가 마침내 폭로 되었을 경우, 내가 범한 잘못을 네가 직접 분명하게 알 수 있도록 이 편지를 써 둔다.
그 반대로, 만일 모든 일이 무사히 넘어가---전능하신 신이여, 제발 그렇게 되도록 해 주소서!---우연히 이 편지가 너의 손에 들어가는 일이 있거든. 너의 사랑하는 어머니를 생각해서, 또한 아버지에 대한 애정으로서, 네가 이것을 불태워 다시는 이것을 생각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따라서, 네가 불행하게도 이 편지를 읽는 경우에는, 아버지는 이미 옛날의 죄가 드러나 구속당해 있을 것이다. 아니 그보다도, 너도 알다시피 아버지는 심장이 나쁘니까 아마도 이 세상에 없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여기에 적은 이야기는 모두가 진실이니 그렇게 알아라.
아들아, 아버지의 성은 트레버가 아니다. 젊었을 때의 이름은 제임스 아미타지라고 했다. 이것을 밝히면 언젠가 너의 친구가 내 팔에 새겨진 J.A. 라는 문신 흔적을 보고 아버지의 비밀을 추리해 낸 것 같은 암시의 말을 했을때 내가 왜 그토록 충격을 받았는지 이해가 갈 것이다.
아버지는 아미타지라는 이름으로 런던의 은행에서 일하고, 아미타지라는 이름으로 법의 심판을 받아 유형에 처해졌던 것이다. 아들아, 아버지의 죄를 가혹하게 책망하지 말기 바란다. 나는 도박으로 빚을 졌는데, 메꾸어 넣을 수 있을 것으로 믿고 은행돈을 몰래 썼던 것이다. 그러나 믿었던 바가 틀어져, 마침내 공금 횡령이 발각되고 말았다.
30년전의 법률은 현재보다 가혹했다. 나는 23세의 젊은 나이로 멀리 오스트레일리아로 떠나는 범선, 글로리아 스콧 호에, 다른 37명의 죄수들과 쇠사슬에 묶여 떠나는 신세가 되었다.
그것은 크리미아 전쟁(1854~1856, 영.불.터키.사르디아 연합국 대 러시아의 전쟁)중인 1885년 일이었는데, 그전까지 죄수 수송선은 대개 흑해에서 항해하는 수송선을 사용했다. 그러나 당시의 죄수 수송선에는 낡고 작은 배를 써야만 했었다.
글로리아 스콧 호는 중국을 상대로 한 무역에 쓰였던 구식 범선으로, 뱃머리가 무겁고 선체가 넓어 새로운 쾌속선에 쉽게 추월당하는 고물이었다. 톤수는 500톤으로, 38명의 죄수외에 선원이 26명, 호송 군인이 18명, 선장 1명, 항해사 3명, 의사와 목사가 각 1명, 간수가 4명으로, 모두 합해 100명에 가까운 인원이 타고 있었다.
죄수들이 갇힌 독방과 독방 사이의 칸막이는 죄수 전용 수송선처럼 단단한 박달나무가 아니고 아주 얇고 약한 판자였다. 그런데 이웃한 독방의 죄수는 일행이 항구로 호송되었을때 유난히 나의 주의를 끌던 사람이 있었다.
밝은 얼굴에 수염이 없는 청년으로 머리를 쳐들고 가슴을 활짝 펴고 꼿꼿한 자세로 걸었다. 남달리 큰 키가 눈길을 모았는데, 키가 2m는 족히 되었을 것이다.
어느 얼굴이나 슬픔과 피로에 찌들어 있었지만, 그 청년만은 싱싱하고 기운이 넘치는 것이 신기했던 것이다. 나는 그의 얼굴을 보면서 눈보라 속에서 모닥불을 찾은 것 같은 느낌을 받았고, 그가 내 옆방에 수용된 것을 기쁘게 생각했다.
한밤중에 귓전에서 속삭이는 소리가 들리기에 벌떡 일어나 보니, 그 청년이 칸막이 구멍을 뚫고 말을 걸어 오는 것이었다.
'여보게, 친구! 자네 이름은 뭔가? 왜 이 신세가 됐지?'
아버지도 그 청년이 옆방에 수용된 것을 기쁘게 생각하고 있던 터라,
'난 제임스 아미타지라고 하네.'라고 소개한 뒤, 배를 타게 된 이유를 사실대로 얘기하고 그 청년에게 똑 같은 질문을 했지.
'난 잭 프렌더개스트. 나와 사귀어서 손해 볼 일은 없을 걸세.'
나는 그 이름을 듣고 그가 관련된 사건을 생각해 낼 수 있었다. 그것은 내가 체포되기 얼마 전에, 전국적으로 떠들썩 했던 사건이었기 때문이었다. 프렌더개스트는 가문도 좋고 재능도 풍부했으나, 어찌 된 일인지 무엇을 훔치는 버릇이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여러 차례에 걸쳐, 런던의 일류 보석상점에서 많은 보석을 훔쳤고, 마침내는 체포당하기에 이른 것이었다. 내가 그 이야기를 하자, 그는 장난스럽게 말했다.
'내 사건을 잘 아는군.'
'그야 떠들썩 했으니까.'
'한데 자네는 그 사건에서 묘한 점을 발견하지 못했나?'
'묘한 점이라니?'
'내가 슬쩍한 귀금속의 금액은 모두 25만 파운드는 될 거야.'
'소문에 의하면 큰 돈이라고 하더군.'
'하지만 경찰은 그 돈을 나에게서 도로 찾을 수가 없었지.'
'그래서?'
'그 돈이 어떻게 되었다고 생각하나?'
'그걸 내가 어떻게....'
'모두가 내 수중에 있지. 난 부자라고, 자네의 머리카락 숫자보다도 더 많은 돈을 갖고 있거든. 그만한 돈이 있고, 그 돈을 잘만 쓰면 무슨 짓이라도 할 수 있지! 그 무엇이라도 할 수 있는 사람이 빈대와 쥐가 들끊는 죄수 호송선속에서 썩는다면 말이 안되지. 그만한 사람이라면, 제 몸 정도는 보호할 수 있거니와 다른 사람들의 일까지 걱정해 줄 수도 있다고. 그 사람이 자네를 도와줄 것이라는 것은 성경에 손을 얹고 장담할 수 있지.'
아버지는 그의 이야기를 허풍으로 들어 넘기려 했으나, 프렌더개스트는 나에게 맹세를 시킨 다음 죄수선을 점령할 계획을 귀뜀해 주는 것이었다. 12명의 죄수들이 배에 타기전에 은밀히 계획한 것으로 주모자는 프렌더개스트이고, 원동력이 되는 것은 그의 돈이었다.
'나에게는 내통자가 있네. 보기 드문 의리의 사나이로, 총신과 개머리판의 관계처럼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그가 현금을 보관하고 있는데 지금 그가 어디
있다고 생각하나? 흐흐.... 이 배의 목사라는 탈을 쓰고 점잖게 있지. 검은 법복을 입고 가짜 신분증을 지닌 그는, 이 배의 돛대에서 배 밑바닥까지 몽땅 살 수 있을 만한 돈을 상자에 넣고 올라타 있다, 이거지. 승무원들이야 그의 손발 이나 다름없어. 이미 매수해 놓았으니까. 그것도 그들이 배에 승선하기 전에 말이야. 두 명의 간수와 2등 항해사인 어서도 매수해 두었고, 선장도 매수할 만한 가치가 있으면 언제든지 그럴 수가 있다고.'
'그래, 언제 행동할 계획인가?'
'어떤 계획일 것으로 생각하나? 간단하지. 군인들을 공격해서 없애는 거야.'
'하지만 그들은 무장을 하고 있잖나?'
'우리도 무장을 할거야. 각자에게 권총이 두 자루씩 돌아가게 되어 있거든. 승무원들까지 매수해 놓고도 배를 점령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모두 여학교 기숙사에나 보내져야 마땅해. 오늘밤 왼쪽 독방의 동지에게 이야기해서, 믿을 수 있는 사람인지 시험해 봐 줘.'
나는 그의 지시대로 왼쪽 방의 죄수에게 이야기를 걸었다. 그도 내 나이 또래의 젊은이로 문서위조라는 죄명으로 들어와 있었다. 이름은 에반스라고 했는데, 나중에 아버지처럼 이름을 바꾸고 지금은 남부 잉글랜드에서 평온하게 살고 있다.
에반스 역시 살아날 가능성은 그 길밖에 없다고 판단하고 음모에 가담했다. 이리하여 배가 비스케이 만(프랑스 서부 해안과 스페인 북부 해안에 둘러싸인 만)을 벗어날 무렵에는 단 두 사람만이 음모에 가담하지 않았다. 한 사람은 의지가 약해 믿을 수 없었고, 다른 한 사람은 병에 걸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제 우리가 배를 점령하는 데 방해가 될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승무원의 대부분도 매수가 끝나 우리 편이 되었다. 가짜 목사는 그리스도 교회의 선교용 팜플렛이 가득 들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 가방을 들고 선교를 구실삼아 자주 독방을 순례했다. 그리하여 3일째에는 독방마다 사슬을 끊을 줄 하나, 권총 두 자루, 화약, 그리고 총알 20발씩을 감춰 두기에 이르렀다.
간수 2명은 프렌개스트의 앞잡이였고, 2등항해사는 그의 오른팔과 같은 존재였다. 따라서, 우리의 적은 선장, 항해사 2명, 마틴 중위와 18명의 군인, 그리고 의사뿐이었다. 물론 만사가 우리에게 유리했지만, 우리는 경계를 게을리하지 않고 밤중에 기습을 하기로 작전을 굳혔다. 그러나 기회는 갑자기 찾아왔고 무서운 결과를 초래했다.
출범하지 3주 가량 지난 어느 날 밤, 의사가 갑작스럽게 병에 걸린 죄수를 진찰하러 왔다가 죄수의 담요 밑에 권총이 숨겨져 있는 것을 발견했던 것이다. 의사가 만일 못본체하고 그 자리를 떠나 군인들에게 알렸으면, 우리의 음모는 실패로 끝났을 것이다.
그러나 그 의사는 겁에 질려 비명을 질렀고, 병에 걸린 죄수는 의사가 눈치챈 것을 알고 덤벼들어 그의 입에 재갈을 물리고 나무침대에 묶었다. 다행히 의사가 갑판으로 통하는 문을 열어 놓은 채 들어왔기에, 우리는 일제히 갑판으로 달려나갔다.
순식간에 두명의 보초가 사살되고, 급히 달려온 하사관도 쓰러졌다. 뱃머리쪽에도 두 명의 군인이 더 있었지만, 그들도 곧 사살되었지. 우리는 그 길로 선장실로 쳐들어갔는데, 문을 연 순간 안에서 폭음이 들리고 연기 속에서 선장이 쓰러지는 광경이 보였다. 그 옆에는 연기가 나는 권총을 손에 든 가짜 목사가 있었고, 그 자리에 있었던 두 명의 항해사는 승무원에 의해 묶였다.
우리는 선장실 옆에 홀에 모였다. 이제 자유의 몸이 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겁에 질려 뱃머리쪽으로 달아난 14명의 군인들의 항복만 받아내면 되는 거였어. 홀에는 술 창고가 딸려 있었는데, 가짜 목사 윌슨이 그 문을 부수고 갈색의 셰리주를 수십 병 꺼냈다.
술병을 들고 너도 나도 술을 입에 대려는 순간 이었다. 아무런 예고도 없이 바로 위에서 총성이 울리고 홀안은 연기로 가득했다. 연기가 사라진 다음에 살펴보니, 윌슨과 8명의 죄수가 바닥에 포개지듯 쓰러져 있었다. 그 광경은 지금 생각해도 처참하기 짝이 없다.
그 순간 우리는 겁이 덜컥 났었기에, 프렌더개스트가 없었다면 반란은 진압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프렌더개스트는 성난 황소처럼 살아 남은 죄수들을 이끌고 갑판으로 뛰어나갔다. 뱃머리쪽에 중위와 그의 부하들이 몰려 있었다.
홀 천장에는 작은 회전식 환기창이 있었는데 그 사이로 군인들이 총구를 대고 무차별 발포를 했던 것이다.
우리는 적에게 다시 준비할 시간을 주지 않고 덮쳤다. 적도 필사적으로 응했으나, 우리 쪽이 우세해서 5분정도 지나자 승부가 났다. 프렌더개스트는 마치 미친 사람처럼 날뛰며 군인들을 마구 바다로 내던졌다.
싸움이 끝났을때, 살아 남은 상대편은 간수와 항해사와 의사뿐이었다.
그런데, 살아남은 적의 처리문제로 동지들이 두패로 갈려버렸다. 우리들 중에는 자유를 되찾은 것은 기뻐했으나, 살인을 꺼리는 무리가 있었다. 무기를 든 군인을 쓰러뜨릴 수는 있어도, 포로가 살해되는 것을 모르는 체 바라보는 것은 괴로운 일이 아닐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나를 포함한 죄수 5명과 승무원 3명은 포로들이 살해되는 것을 차마 볼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프렌더개스트와 그의 한패는 우리의 주장에 조금도 찬성하지 않았다. 신변의 안전을 위해서는 일을 철저히 마무리지을 필요가 있으며, 나중에 증언대에 설 위험이 있는 놈들을 살려 둘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자칫하면 그 포로들과 운명을 같이 할 뻔 했으나, 프렌더개스트의 결정으로 우리가 원한다면 마음대로 떠나도 좋다는 해결을 보았다.
우리는 더 이상 사람을 죽이는 일에 관여하고 싶지 않았기에 기꺼이 배를 떠나기로 했다. 그래서 우리 8명은 물 한통과 소금에 절인 고기 몇 덩어리, 그리고 나침반을 하나 분배받고는 작은 보트로 옮겨 탔다. 마지막으로 프렌더개스트는 그 부근의 해도를 한장 던져 주었다.
아들아, 아버지는 이제부터 이 이야기의 가장 처참한 부분을 쓰려고 한다. 글로리아 스콧 호는 북동쪽에서 불어오는 미풍을 받으며 조용히 보트에서 멀어지기 시작했다. 우리의 보트는 한동안 파도에 흔들리고 있었다.
에반스와 나는 보트 뒤쪽에 앉아 현재의 위치를 측정하고 어디로 진로를 잡을 것인가 의논했다.
그때 이미 글로리아 스콧호는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었다. 내가 문득 뒤돌아보았을 때, 갑자기 눈부신 섬광이 번쩍하더니 삽시간에 불길이 치솟고 수평선 위에 선체가 말뚝처럼 기묘하게 곤두서는 것이었다. 그리고 몇 초 뒤에는 우레 같은 폭음이 들려 왔다.
글로리아 스콧 호가 미끄러지듯 바닷속으로 빨려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우리는 급히 보트를 저어 연기가 감도는 현장으로 가 보았다.
보트가 현장에 도착하기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다. 나무 조각이 떠 다닐뿐, 살아 남은 사람은 없은 것 같았다.
우리가 단념을 하고 막 뱃머리를 돌리려 했을 때, 가냘프나마 구조를 요청하는 사람의 목소리가 들렸다. 살펴보니 갑판 조각에 매달린 사람의 머리가 보였다.
서둘러 보트에 끌어올렸더니 그는 허드슨이라는 젊은 승무원이었다. 그는 온 몸에 화상을 입고 몹시 지쳐서, 이튿날 아침에야 비로서 정신을 차렸다.
허드슨의 이야기에 의하면 우리가 보트로 떠나자 프렌더개스트 일당은 살아남은 포로들을 처형하기 시작했던 모양이다. 두 명의 간수는 사살되어 바다에 던져졌고, 3등 항해사도 같은 운명이 되었다. 다음엔 프렌더개스트가 직접 의사를 칼로 찔렀다.
1등 항해사 한명이 남았는데 그는 용감한 사나이였다. 프렌더개스트가 칼을 들이대며 가까이 오자, 미리 느슨하게 풀어 놓았던 밧줄을 내던지고는 갑판을 달려가 배 뒤쪽의 창고로 뛰어든 것이다.
10여명의 죄수들이 권총을 들고 쫓아갔더니 1등 항해사는 수북히 쌓인 화약통의 뚜껑을 열고 성냥을 손에 든채 '가까이 오면 화약에 불을 질러 모두 날려 버리겠다.' 고 위협했다는 것이다.
잠시 뒤에 대 폭발이 일어났는데, 허드슨의 생각으로는 항해사가 불을 붙인것이 아니라, 죄수 중의 누군가가 쏜 총알이 화약통에 맞은 것 같다는 것이었다.
어쨌거나 그것이 글로리아 스콧 호의 최후이자 배를 점령한 죄수들의 마지막이기도 했다.
사랑하는 아들아, 아버지가 휘말린 그 무서운 사건의 대략적인 내용은 위와 같다. 다음날 우리는 오스트레일리아로 가는 범선 하트스퍼호에 구조되었다. 그 배의 선장은 우리들이 침몰한 여객선의 생존자라고 믿었다. 해군 본부에서도 죄수선 글로리아 스콧 호는 항해 도중 조난한 것으로 보고 더 이상 조사하지도 않았다.
그리하여 하트스퍼 호는 순조로운 항해를 하여 우리를 시드니 항에 내려 주었다.
나와 에반스는 이름을 바꾸고, 여러 나라에서 몰려온 광부들 틈에 쉽게 섞일 수가 있었다.
그 밖의 일은 더 이상 이야기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우리는 운좋게 노다지를 발견해서 큰 돈을 모았다. 그리고 식민지 개척자로서 본국에 돌아와 이곳에 땅을 사서 20년 동안 평온하게 살면서, 어두운 과거가 영원히 매장되기를 바랐다.
그러니 얼마전에 그 사람, 바다에서 건져 준 선원 허드슨이 나를 찾아왔을 때, 내 심정이 어떻했겠느냐.
그는 우리의 행방을 찾아 협박하고 돈을 뜯어내기에 혈안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내가 왜 그의 비위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 비굴하게 굴었는지 너는 이제 이해할 수 있을 게다. 그자는 너의 거센 행동에 눌려 여기를 떠나, 또 한 사람을 협박하러 찾아갔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나의 죄가 드러날 것을 알고 있으므로 미리 이 글을 쓴다.
그 아래에는 읽기 어려울 정도로 떨리는 필적으로 이렇게 쓰여 있었네.
'비도스는 암호로 허드슨이 모든 것을 폭로했다고 알려 왔다. 신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그날 밤 내가 트레버 노인의 아들 빅터에게 읽어준 이야기가 이걸세. 빅터는 불쌍한 아버지의 일로 크게 마음을 상하여 모든 것을 정리하고 인도로 건너가서, 그 뒤 사업에 성공했다는 소식을 들었네. 거머리 같은 허드슨과 비도스로 이름을 바꾼 에반스 그 뒤 어떻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네. 둘다 자취를 감춘 거야.
허드슨이 그 부근에 나타난 것을 보았다는 사람들의 말에 의해 경찰에서는 허드슨이 비도스를 살해하고 멀리 도망간 것으로 믿고 있네.
하지만 나는 진상은 그 반대라고 생각하네. 비도스는 꼼짝도 할 수 없는 궁지에 몰려 달아나라는 편지를 띄우고, 허드슨을 죽여 복수한 것이 아닌가 생각되네.
그리고 가능한 한 많은 돈을 챙겨 멀리 다른 나라도 도주했을 걸세. 이상이 이사건의 전부라네. 자네의 기록에 도움이 된다면 언제라도 사용하게나"
-THE EN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