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민국 기부王 이종환, 아흔살 생일잔치날 서울대에 쾌척
전 재산의 95%를 기부했던 관정(冠廷)이종환교육재단 이종환<사진> 명예이사장이 10일 서울대 중앙도서관 신축에 써달라며 또 600억원을 쾌척하기로 했다. 개인의 대학 기부액으로 국내 최고 액수다.
이 명예이사장은 지난 2002년 사재 3000억원을 출연해 교육재단인 관정이종환재단을 설립했다. 이후 출연금을 늘려 개인 재산의 95% 이상인 8000억원을 사회에 환원했다.
이 명예이사장은 평소 '자장면 회장'으로 불린다. 점심을 자장면으로 때우고 특식으로 삼계탕을 즐기는 검소한 생활 때문이다. 해외여행을 해도 평생 이코노미석을 탔다. 서울 종로구 명륜동 집도 기부했다. 그는 입버릇처럼 "여생을 전셋집에서 보내겠다"고 말한다. 10년간 '자장면 회장'으로부터 장학금을 받은 이가 4640여명, 액수는 838억원에 이른다. 1923년생으로 이날 구순(九旬) 생일잔치를 한 이 명예이사장은 기자가 사무실을 찾아가자 "국내 대학이 발전해야 유학에 드는 국부(國富) 유출도 막을 수 있다는 생각에 기부를 결정했다"며 웃었다.
[양모듬 기자 modyssey@chosun.com]
서울대 도서관 신축에 600억 쾌척…"글로벌 인재 키우고 싶어"
관정이종환교육재단이 서울대 도서관 신축을 위해 600억원을 쾌척하기로 했다.
서울대는 관정이종환교육재단 설립자 이종환 전 이사장(90)이 도서관 신축에 필요한 기금 600억원을 기부하기로 했다고 10일 밝혔다. 서울대 역사상 개인 기부로 600억원은 최대 액수다.
이날 구순 생일을 맞은 이 전 이사장은 매일경제신문과 인터뷰하면서 "그저 학생들이 열심히 공부해서 세계적인 인재로 성장하기를 바랄 뿐"이라며 기부 이유를 밝혔다.
나이를 믿기 힘들 만큼 정정한 이 전 이사장은 본인 기부에 대해 "도서관은 조선시대 학생들이 공부한 '명륜관'과 같고, 지금 학생들은 공부할 곳이 가장 중요한데도 (서울대 도서관이)넉넉지 못한 것으로 들었다"며 "작으나마 내 기부가 도움이 될 것 같아서 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내 나이가 90인데 세계에서 열심히 활동하는 인재들이 새 도서관에서 열심히 공부했으면 하고 바랄 뿐"이라며 "(600억원이)내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최대 기부금이어서 냈을 뿐이지 특별히 많다 적다는 생각지 않았다"고 웃으며 말했다.
이날 이 전 이사장 생일 잔치 하객 대표로 축사를 맡은 김재순 전 국회의장(89)은 "이형(이 전 이사장)이 나에게 '돈을 버는 데는 천사처럼 못했어도 쓰는 데는 천사처럼 하겠다'고 한 말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면서 "지금까지 5억달러 넘게 출연한 재단과 850억원을 지급한 장학금을 생각해봐도 참으로 보람 있는 인생을 살고 있다"고 전했다. 이종환 전 이사장은 1958년 삼영화학공업을 창업해 현재 10개 계열사를 거느린 삼영그룹으로 성장시킨 창업 1세대 기업인이다.
지난 50여 년간 국내 플라스틱 사업, 전력 절연물인 애자 국산화 등을 통해 국내 산업 발전에 기여했다
2002년 사재 3000억여 원을 출연해 관정이종환교육재단을 설립하고 장학사업을 펼치면서 주목을 받았다. 이 같은 공을 인정받아 2009년에는 국민훈장을 받기도 했다.
현재 재단에 출연한 재산은 8000억원이며 연간 장학사업 규모도 200억원으로 국내 최대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사장직은 아들이 맡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전 이사장은 평소 "나라나 기업이나 살림은 재산이 아니라 사람이 키운다"는 철학을 바탕으로 사회 환원과 인재 육성에 힘써왔다.
지난 10여 년간 재단이 출연한 장학금은 850억원에 달한다. 국내 대학생ㆍ대학원생ㆍ중고생 등 3900명에게 187억원, 외국 유학 대학생ㆍ대학원생 740여 명에게 618억원 등 장학금을 지급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서울대 도서관 건립 기금이 부족하다는 소식을 들은 이 전 이사장은 주저 없이 기부를 결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전 이사장은 "앞으로도 꾸준히 장학사업을 이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대는 이번 기부금으로 6~7층 규모에 최첨단 설비를 갖춘 도서관 신축을 차질 없이 추진할 수 있게 됐다.
1974년 150만권 규모로 건립된 기존 중앙도서관은 현재 250만권을 보유해 과포화 상태며, 시설 역시 낙후된 것으로 전해졌다.
서울대는 지난 3월부터 도서관 신축과 리모델링에 필요한 1000억원 모금을 위해 캠페인 '서울대 도서관 친구들'을 추진하고 있다.
이 전 이사장이 기부하는 방식은 추후 서울대와 협약식을 통해 결정될 것으로 전해졌다. 박지향 서울대 도서관장은 "어렵게 자수성가한 분이 아낌없이 내놓은 재산이라 더 뜻깊다"며 "기부자 뜻에 따라 세계적 도서관을 건립하기 위해 힘쓰겠다"고 말했다.
[배미정 기자 / 윤재언 기자]
-. [기부왕 이종환]
"한국의 빌 게이츠 보고 죽는 게 소원… 의대·법대생엔 내 돈 쓰지마라"
|
관정이종환교육재단 이종환 명예이사장은 좀처럼 웃지 않는 사람이다. 스스로도 “이제는 얼굴이 굳었다”고 말한다. 그런 그는 “5년만 더 산다면, 내가 기부해 만든 재단을 1조원 규모로 키울 수 있을텐데…” 하고 말했다. /최순호 기자 choish@chosun.com |
[이종환 명예이사장 인터뷰]
-. "돈 모아놔봤자 재벌밖에 더 됐겠습니까, 허허…"
통 큰, 원칙 분명한 기부 - 서울대 총장의 도서관 얘기, 꼼꼼히 되묻고 "내가 내겠소"
한국서 빌 게이츠 같은 인물 2명만 나와도 먹고 살 수 있어
장학생 선발 기준은 단 하나, 세계 1등 인재가 될 '가능성'
왜 그렇게 기부를 많이? - 60년대말 스위스 갔다가 충격
한국보다 훨씬 작은데 잘살아… 사람에 투자 중요성 깨달았죠
9일 오전 서울 종로구 명륜동 1가에 위치한 관정이종환교육재단에 오연천 서울대 총장과 박지향 서울대 중앙도서관장이 찾아왔다. 지난 2000년 이래 꾸준히 장학사업을 펼쳐 온 이종환 명예이사장에게 감사패를 전하기 위해서였다. 관정재단은 지난 10여년간 서울대 학생들에게 400억여원에 가까운 장학금을 주고 있었다.
감사인사를 마치고 학교 전반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던 중 박 관장이 "서울대 중앙도서관 신축사업에 600억원 정도 드는데, 기부자를 구하지 못해 어려움이 있다"는 말을 꺼냈다. 이야기를 들은 이 명예이사장은 기존 도서관의 위치와 규모, 신축 도서관의 계획 등에 대해 꼼꼼하게 묻기 시작했다. 15분쯤 뒤 그가 쨍쨍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600억, 내가 내겠소."
10일 오후 관정재단 사무실에서 만난 이 명예이사장은 서울대 도서관에 기부하게 된 이유, 자신의 기부 철학 등에 대해 얘기를 들려줬다.
―. 서울대 도서관 건립에 600억원을 또 기부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우리 재단에서 지난 10년간 지급한 장학금이 838억원 정도예요. 그중 74%가 해외 유학 장학금이지요. 나는 경제인 출신입니다. 유학비용이 어떻게 보면 국부 유출이란 생각이 들어요. 어떻게 해야 우수 학생들이 국내에서 학업을 이어갈까요. 결국 국내 대학들이 발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제까지 국내에서 개인 기부 최고액인 8000억원을 재단에 출연했습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요.
"나는 돈 버는 재주가 있는 사람입니다. 돈은 벌면 벌수록 더 모으고 싶어요. 한창 돈 벌 때는 나도 그랬습니다. 1960년대 말 스위스에 갔다가 충격 받았습니다. 나라 크기는 우리나라 3분의 1, 국민 수는 6분의 1인데, 1인당 국민소득은 40~50배였어요. 부존자원도 없는 나라인데. 결국 사람에게 투자해야 된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재단을 만들 당시 내 재산이 8000억원이었어요. 그때 더 벌어봤자 재벌밖에 더 됐겠습니까."
―왜 장학사업인가요?
"지금 생각해보면 젊은 시절에도 장학 쪽에 관심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1960년대 초 맨주먹으로 사업을 시작했어요. 모교(마산고) 선생님이던 동창이 찾아왔어요. "월사금 때문에 학교 그만두는 학생이 많아 마음 아프다"더군요. 그 말을 듣고 2~3년 동안 모교에서 1~5등 하는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줬어요. 사실 직원들 월급을 제때 못줘 은행을 왔다 갔다 하던 때라 오래 (장학금을) 주지는 못했지요."
―장학생 선발 기준이 독특하다고 들었습니다.
"나는 우리 장학생 중 빌 게이츠 같은 인물 2명만 나와도 한국이 먹고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인재가 내가 살아 있을 때 나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고요. 그래서 법대나 의대 같은 실용학문보다 기초과학 분야에 많은 지원을 하고 있지요. 학생을 평가하는 기준은 단 하나입니다. 가능성입니다. 가정형편은 그 다음으로 고려합니다. 우수한 학생을 골라 세계 1등 인재를 키우고 싶어요. 재단으로 나를 찾아오는 장학생들에게 언제나 '자네가 노벨상 수상자로 결정됐다는 말을 듣고 싶다'고 이야기하지요."(이 명예이사장은 지난 2008년 출간한 자서전 '정도'에서 "지인들이 '사정이 딱한 학생이니 잘 챙겨달라'고 부탁해도 합격 기준에 미달하면 절대 뽑지 않는다"고 했다. 관정장학금은 연간 최고 5만5000달러(약 6300만원)로 국내 최고 수준이다. "생계 고민하지 않고 오로지 학업에 전념할 수 있는 액수를 지급하자"는 원칙 때문이다.)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내가 올해 90입니다. 내가 5년만 더 살면 지금 8000억원쯤 되는 재단 규모를 1조원대로 늘릴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래야 더 많은 사람한테 장학금을 줄 수 있겠지요. 나는 소문난 고집불통입니다. 한번 들어선 이 길을 끝까지 갈 겁니다."(이 명예이사장은 지난해 500억원을 추가로 출연한 데 이어 올해도 500억원을 재단에 낼 예정이다.)
[이종환 명예이사장]
20대 정미소 사업 출발, 삼영화학 창업해 큰 돈… 지금도 週 1권씩 독서
이종환 명예이사장은 1923년 경남 의령에서 태어나 마산중학교(5년제)를 졸업했다. 1944년 일본 메이지대 경상학과 2년을 마치고 학도병으로 징집돼 만주·오키나와 등에서 병영생활을 했다.
20대에 작은 정미소 사업을 시작했고, 6·25 전쟁 뒤 동대문 시장에서 오퍼상을 하며 종잣돈을 모았다. 1958년 서울 영등포구에서 플라스틱 제품을 생산하는 삼영화학공업을 창업했다. 이후 전자제품의 핵심소재인 극초박용 필름 등을 개발해 큰돈을 벌었고, 현재 삼영그룹은 10여개의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다. 이 명예이사장은 여든이 되던 2002년 사재 3000억원을 털어 장학재단을 만들었다.
구순을 맞은 현재도 그룹 경영에서 손 떼지 않고 있다. 일주일에 책 한 권씩을 읽고, 직원들 전화번호 50여개를 외운다. 지난해에는 지인들과 골프 라운딩 중 7번홀에서 '국내 최고령 홀인원'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양모듬 기자 modyssey@chosun.com]
- 스무통 넘는 학생들 편지에 목멘 구순잔치
'滿手有했으니 空手去하리라' 이 명예이사장의 경구에 숙연
10일 오후 6시 30분 서울 웨스틴조선 호텔에서 열린 이종환 명예이사장의 구순연(九旬宴·생일은 오는 30일인데 잔치를 앞당김). 이 명예이사장의 오랜 지인인 김재순 전 국회의장의 축사가 이어졌다.
"언젠가 이 명예이사장께서 내게 편지를 썼다. '돈 버는 것은 천사같이 못했어도 돈을 쓰는 데는 천사처럼 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실제로 장학재단을 만들어 이 말을 실행했다." 김 의장의 말에 테이블에 앉은 하객 250명은 누구 할 것 없이 박수를 쳤다.
이 명예이사장의 일생을 담은 동영상에서 평소 자주 쓰는 말인 "이 세상에 태어나 만수유(滿手有)하였으니 공수거(空手去)하리라(손에 가득 쥐어봤으니 비우고 떠나리라)"는 경구가 나오자 장내는 숙연해지기도 했다.
구순잔치 끝 무렵 국내외에서 공부하는 관정이종환교육재단 장학생 3명이 직접 참석해 꽃다발을 전달했다. 이 명예이사장의 장학금으로 영국에서 무용을 전공하다 암에 걸린 어머니 병간호를 위해 휴학하고 한국에 온 여학생도 있었다. 그는 구순 축하 편지에서 "제 인생의 꿈과 목표를 믿고 응원해주신 덕분에 저는 새로운 삶을 살게 됐다"며 "장학생 중에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길 기대하는 명예이사장님 바람대로 문화계의 노벨상을 받아 보답하겠다"고 했다.
이 명예이사장의 구순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미국과 영국 등 각지에서 학생들이 손으로 써서 부쳐온 축하편지만 스무 통이 넘었다.
[감혜림 기자 kam@chosun.com]
|
10일 오후 서울 명륜동 관정이종환교육재단에서 이종환 명예이사장이 장학생들이 “생신 축하드린다”며 보낸 편지를 읽으며 웃고 있다. 이 명예이사장은 “아이들이 글도 참 잘 쓴다”며 “무뚝뚝한 나도 편지를 읽으며 눈물을 흘릴 때가 많다”고 했다. /오종찬 기자 ojc1979@chosun.com |
-. 이종환 장학금 받은 사람들, 국내외 대학·국제기구서 두각
"장학금 덕에 생계 걱정없이 새 연구에 전념할 수 있었다"
이정익(40) 건국대 의생명과학과 교수는 2001년 신문에서 '관정재단 장학생 모집' 광고를 본 게 인생을 바꾸었다고 말한다. "대학 졸업 직후였던 당시, 나이도 서른이고 결혼도 앞두고 있어 도저히 부모님께 손을 벌릴 수 없었지요." 관정장학생 1기로 선발된 이 교수는 2002년부터 4년간 일본 도쿄대에서 줄기세포와 면역세포 등을 공부했다. 한때 환율이 크게 올라 다른 재단의 장학금이 삭감될 때에도 이 교수는 처음 약속처럼 매년 2만달러를 지원받았다. 2006년엔 일본 조직배양학회에서 주는 '젊은과학자상'과 최고 영예로 꼽히는 '학회상'을 잇달아 수상하기도 했다. 이 교수는 "'남들과 다른 공부를 하라'는 명예이사장님의 말씀을 항상 기억했다"고 말했다.
이종환(89) 명예이사장이 사재 8000억원을 기부해 세운 관정이종환교육재단은 지난 2002년부터 4640여명의 학생에게 장학금 838억을 지급했다. 그 결과 10년 만에 해외 대학 박사학위자만 171명, 해외대학 석사 소지자는 150명을 배출했다. 지금도 142명이 해외 대학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국내 대학 학위 소지자의 숫자는 정확히 파악되지 않을 정도다. 재단 관계자는 "장학금 수혜자들이 국내외 주요 대학은 물론 WTO(세계무역기구) 같은 국제기구 등 여러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며 "이 명예이사장의 '관정장학생 중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는 걸 보고싶다'는 소망은 반드시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박정욱(39·장학생 1기) 연세대 전기전자공학과 교수는 미국 조지아텍 석·박사 시절과 위스콘신 박사 후 과정 당시 2번에 걸쳐 5만여달러를 지원받았다. 10년이 지난 2012년 박 교수는 전기공학분야 최고 저널인 국제전기전자학회(IEEE) 저널에 논문을 45편 가까이 실을 정도로 뛰어난 연구자가 됐다. 2003년과 2008년에는 최고권위를 자랑하는 미국전기전자공학회 산업응용부문회(IEEE IAS)에서 우수논문상을 받았다. 박 교수는 "장학금 덕에 객지에서 생활에 걱정 없이 학업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며 "앞으로 최고 영예인 'IEEE 펠로우'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역시 1기 장학생인 고려대 뇌공학과 곽지현(31) 교수는 "2009년 옥스퍼드에서 박사학위를 받으며 쓴 논문에 '이종환 장학재단에 사사한다'는 내용을 넣었다"며 "유럽의 경우 장학금이 많지 않아 관정재단의 후원 없이는 공부하기가 힘들었을 것"이라고 했다.
학업을 마친 뒤 해외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장학생도 많다. 예일대 석사 시절 관정장학금을 받았던 최모(5기)씨는 미국 뉴욕에 위치한 WTO(국제무역기구)에서 일한다. 영화를 전공한 손모(1기)씨는 롱아일랜드 대학에서 교수로 재직 중이다. 손씨와 함께 장학금을 받았던 이모(1기)씨는 스탠퍼드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뒤, 현재는 메릴랜드 주립대 교수가 됐다.
[양모듬 기자 modyssey@chosun.com][감혜림 기자 kam@chosun.com]
-. 금탁산업훈장 받은이종환 삼영그룹 회장
이종환 삼영그룹 회장(관정이종환교육재단 이사장·80)은 ‘인재와 기술’이 우리가 살길이라고 잘라 말한다. 기술 없이 경쟁력도 없다는 게 이 회장의 평 소 지론이다.
이 회장은 50년 가까이 국내 석유합성수지 가공제품산업을 선도하면서 알짜 기 업을 일궈낸 기업인. 지난해 3000억원의 사재를 출연, 국내 최대 규모의 장학 재단인 관정 이종환 교육재단을 설립했다. 당시 국내 단일 기부 규모로는 최대 규모로 세간의 화제를 모았다. “10년 전부터 장학사업을 하려고 마음먹었습니 다. 자식들에게 다 물려주면 뭐합니까. 사회에 환원하는 게 먼저죠.”
■장학재단에 사재 3000억원 출연■
현재 관정 이종환 교육재단은 매년 150억원을 장학사업에 투입하고 있다. 국내 장학생 1000여명과 국외 유학장학생 100명에게 장학금을 지급한다. 특히 장학 생 중 70% 이상을 이공계 학생들에게 집중하고 있다. 국내에선 최대 규모이고, 세계적으로 손에 꼽힌다는 게 재단 관계자의 설명이다. 장학생 선발에서도 객 관적이기로 유명하다.
“저명한 교수진으로 구성된 심사위원회에서 엄격하게 영재급 인재들만 선발합 니다. 저 자신조차도 학생선발에는 일체 관여하지 않아요.” 이 회장은 장학금 과 관련된 청탁이 들어오면, 재단이 아닌 개인비용으로 처리하고 있다.
“일단 장학재단을 세계적인 규모로 발전시키기 위해 재단을 보강할 생각입니 다. 1∼2년 내에 개인자산을 좀 더 정리해서 기금 규모를 5억달러 안팎으로 늘 릴 생각입니다. 그 정도는 돼야 오래 지속하는 제대로 된 장학재단으로 자리잡 을 수 있어요.”
이 회장은 국내에 장학금을 비롯한 기부 사업이 좀더 자리잡아야 한다고 강조 한다.
“우리도 이제 어느 정도 먹고 살만한데, 기부가 좀더 활성화 돼야죠. 기부 문 화는 사회안정에도 도움이 됩니다. 아쉬운 건 행정적 지원입니다. 규제가 너무 많아요. 기부에 대한 세제혜택도 늘릴 필요가 있어요. 미국의 유명 사립대학들 이 오늘날 크게 발전한 까닭도 기부 문화 활성화와 정부의 행정적 지원이 있어 서입니다.”
이 회장은 여든에 이른 나이에도 최근 삼영화학의 중국 진출을 진두지휘하는 등 현역에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국내에서 기업하기 힘든 여건에 대해서 도 꼬집었다.
“중국 진출을 추진하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민간은 물론이고, 관 쪽에서도 기 업을 적극적으로 도와주려는 분위기가 일반화돼 있어요. 솔직히 국내에서 사업 을 하면서 공무원들에게 한번도 먼저 ‘무엇을 도와드릴까요’라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없었는 데, 중국의 저력이 무섭더군요.”
이 회장은 기업경영과 장학사업의 공로를 인정받아 대한민국기술대전에서 금탑 산업훈장을 수여 받았다.
<김병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