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6년 강화도조약에 따라 가장 먼저 개항한 부산항. 개항 뒤 우리나라는 일본뿐 아니라 청나라나 러시아 등 강대국의 권력 다툼 현장이 됐다. 부산은 일제에게 국권을 침탈당하고 해방을 맞을 때까지 많은 일본인들이 건너와 살면서 근대 문물이 가장 빨리 들어온 곳. 일본 대륙 침략의 전진기지이던 부산, 여전히 도시 곳곳에 우리 근대사의 아픈 상처를 품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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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생활사 속으로 <미즈내일>이 찾아갑니다 역사책을 아무리 많이 읽어도 그 시대 사람들의 삶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살아 있는 공부가 아닙니다. 그렇다면 그 시대 사람들의 생활사를 책으로 만난 뒤 역사 여행을 떠나보는 게 어떨까요? '<역사일기>와 함께 떠나는 스토리텔링 테마 여행'은 선사시대부터 현대까지 어린이가 직접 쓴 일기 속 현장을 찾아 우리나라 생활사를 엿보는 형식입니다. 의식주는 물론 건축 교육 문화 농업 과학에 이르기까지 선조들이 살다 간 역사 이야기를 리포터와 자녀가 대화로 생생하게 전합니다. 아이와 함께 상상하고 공감하는 역사 여행, 시작해볼까요? _편집자 |
신사참배 하던 용두산공원에 가다 |
"부산타워 전망대 엘리베이터가 1초에 3m씩 올라간다니 정말 빠르네요. 와~ 부산 시내가 발아래 있는 것처럼 크고 자세히 보여요. 일제강점기엔 이곳 용두산으로 신사참배를 다녔다니 상상이 안 돼요." |
서울의 중심 명동에 남대문시장과 남산, N서울타워가 있듯이 부산 광복동에는 국제시장과 용두산, 부산타워가 있다. 용두산공원을 빙 두른 동백나무 숲길이 아름답고, 멀리 부산항이 내려다보이는 시원한 전망도 좋다. 규모는 작지만 부산 시내를 가까이 내려다볼 수 있는 것이 장점. 부산항과 인근 시내 야경이 특히 유명하다.
Info 주소 부산 중구 용두산길 35-18 문의 051-860-7820 |
부산항 일대와 주요 시가지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용두산은 부산의 역사를 가장 잘 간직한 곳. 1876년 부산항 개항 이후 일본인들이 많이 살게 되면서 이 일대가 일본인 거리로 바뀌었고, 광복 때까지 일본 신사가 자리 잡았다. <역사일기> 36 ~37쪽 '용두산신사' 에는 소학생 영희가 학교에서 용두산 신사로 향하는 계단을 오르며 단체 참배하러 가는 장면이 나온다. 일본은 우리나라 각지에 신사를 지어 참배를 강요했다. |
Before the Travel 개항 이후 부산에는 많은 일본인들이 건너와 살았습니다. 일본은 부산에 시가지와 도로를 건설하고 항만 시설을 갖췄으며 병원이나 상수도, 신문사 같은 근대식 시설을 세웠어요. 이런 개발 덕분에 부산 시민들의 생활은 조금 편리해졌지만, 여전히 일본의 식민지 도시였을 뿐이죠. <역사일기> 9권에 등장하는 주인공 영희는 기차 여행을 좋아하는 꿈 많은 부산의 소학교 학생이에요. 2014년 5월, 일제강점기에 쓴 영희의 일기를 따라 부산 여행을 시작합니다. |
일제 강점기 교실풍경 vs 피난 시절 교실 풍경 |
"피난 시절에도 학교가 있었네요? 교실 모습은 일제강점기와 비슷해 보여요. 주인공 영희는 마루야마 선생님에게 일본어를 '국어'로 배웠잖아요. 일본어를 국어로 공부했으니 어려운 게 당연하죠. 학교에서 우리말을 국어 과목으로 배울 수 있어 행복해요." |
'40계단문화관' 은 한국전쟁 당시 역사와 애환이 담긴 40계단을 테마로 만든 복합 역사 문화 공간이다. 40계단은 한국전쟁 당시 동광동·영주동·대청동 일대 판자촌 주민들이 하루에도 수십 번씩 오가던 길목. 이곳에 기념비가 있고, '중구문화의 집' 자리한다. 5층 전시실인 '40계단기념관' 에는 당시 피난민의 궁핍한 생활상을 담은 사진과 생활용품 등을 살펴볼 수 있다.
Info 주소 부산 중구 중구로 120 문의 051-600-4000 |
40계단기념관에 전시된 피난 시절 교실 모형. 1930년대 일제강점기의 교실 풍경과 피난 시절 교실 모습을 비교해봤다. <역사일기> 20~21쪽 '국어 공부는 어려워'. 나라의 주권을 빼앗긴 뒤 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내선일체(內鮮一體 : 조선과 일본은 하나)를 가르쳤다. |
일본의 상륙항 부산포에서 부산항으로 |
"일제강점기에는 저기 보이는 부산항으로 우리의 쌀과 물자들이 일본으로 건너갔다면서요? 영희 친구 딸막이 아빠도 부두 미곡 처리장의 일꾼이었잖아요. 배에 쌀을 싣다 곤돌라에 깔려 다친 장면이 기억나요." |
부산항은 1876년(고종 13)에 부산포라는 이름으로 개항한 우리나라 최초의 무역항이다. 1910년 최초로 일본이 1부두를 축조한 뒤 1945년까지 2·3·4부두를 비롯해 소형 선박의 접안 부두인 물양장과 방파제를 축조했다. 일본은 쌀을 비롯한 군수물자를 이곳에서 일본으로 옮겼다. 항구 노동자 중에는 농사지을 땅을 잃고 고향을 떠난 사람들이 많았다.
Info 주소 부산 중구 충장로대 9번길 46 |
현재의 부산항은 우리나라 최대의 항만으로 내외 무역은 물론, 해외 여객 수송의 관문 역할을 한다. 해양을 이용한 주변국 간의 협력 사업이 늘면서 동아시아의 허브 항으로 도약 중이다. <역사일기> 45쪽 일본 배에 실리는 조선 쌀. 당시 중국이나 미국 등과 큰 전쟁을 벌인 일본은 많은 군사와 물자가 필요 했다. 우리나라의 젊은 남녀를 모아 전쟁터나 탄광, 군수공장으로 보냈고, 쌀을 강제로 거둬 군인들의 식량으로 썼다. |
외세 지배의 상징적 의미 담은 부산근대역사관 |
"일제강점기에 동양척식주식회사 부산지점이었다는 것도 속상한데, 아름다운 건물을 미군의 숙소와 미국 문화원으로 썼다니 마음이 아프네요. 아픈 역사도 우리가 알아야 할 역사니까 많이 보고 배워야겠어요." |
부산근대역사관은 일제의 대표적인 경제적 수탈 기관이던 동양척식주식회사 부산지점으로, 일제강점기인 1920년대 지어진 건물. 해방 이후 미군의 숙소로 사용했으며, 1949 ~1999년 부산 미국문화원으로 쓰던 것을 부산시에서 받아 2003년 7월 부산 근현대사 전시·교육 공간으로 개관했다.
Info 주소 부산 중구 대청로 104 문의 051-253-3845 |
동양척식주식회사는 조선에서 빼앗은 농토를 관리하고, 거 기에서 수확한 쌀을 일본으로 공급하는 역할을 했다. <역사일기> 42~44쪽 '딸막이의 일기'. 일본은 조선의 국권을 빼앗은 뒤 토지조사사업으로 농민 소유인 땅을 빼앗아 일본정부나 기업, 조선으로 이주한 일본인이 차지했다. |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근대 전차 |
"일본이 우리나라에 놓은 철도가 부산에서 시작해 경성을 거쳐 만주까지 연결됐다면서요? 철도가 놓이면서 기차를 타고 여행하는 문화가 생겼지만, 철도를 이용해 일본이 우리나라를 착취하고 수탈한 사실에 화가 나요." |
동아대학교 부민캠퍼스에 있는 이 전차는 1952년 6월 미국 대외 원조 기관인 ICA의 원조 자금으로 미국산 전차 40대를 도입, 부산에 배정한 열차 20대 중 하나다. 전차는 일제강점기인 1910년 10월, 한국와사전기주식회사 창립과 함께 등장했다.
Info 주소 부산 서구 구덕로 225 동아대학교 부민캠퍼스 내 문의 051-200-7000 |
부산 시민의 대중교통이 다양해지면서 전차 산업은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 재정난이 악화됐다. 1968년 당시 운영 주체인 한국전력(주) 이사회 결의에 따라 53년간 부산 시민과 함께한 전차는 1968년 5월 19일 마지막 운행을 끝으로 사라졌다. <역사일기> 54 ~55쪽 '드디어 기차를 타다.' 독립운동을 하는 오빠를 만나러 부모님과 함께 경성행 기차에 탄 영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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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re Info 또 다른 부산 여행, 여기도 좋아요! Course 1 부산에서 찾은 조선의 역사 임진왜란, 조선통신사 역사와 관련해 동래성이나 충렬사, 조선통신사역사관 등을 돌아보는 테마 여행도 추천할 만하다. 조선에서 일본으로 파견된 사절을 조선통신사라 불렀는데, 여기서 통신(通信)이란 신의를 나눈다는 뜻. 조선통신사는 1607년부터 1811년까지 200여 년간 일본을 12번 방문했다. Course 2 부산의 해양 문화 엿보기 항구도시 부산에는 역사 속의 우리 해양 문화를 확인하고, 해양의 가치와 비전을 경험할 수 있는 명소가 많다. 2012년 7월에 개장한 국내 최대 해양 문화 공간인 국립해양박물관과 탁 트인 기장군 바다 앞에 있는 해동용궁사를 비롯해 부산어촌민속관이나 감천문화마을 등을 돌아보는 코스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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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fter the Travel |
이번 부산 여행에서는 우리나라 근현대사 문화를 엿볼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세계로 뻗어나가는 21세기 국제도시 부산의 모습도 확인할 수 있었는데요. 가장 대표적인 곳이 부산 해운대구 중동 동백섬에 자리한 누리마루 APEC 하우스입니다. '세계의 정상들이 모여 회의를 하는 집' 이라는 뜻이 담긴 누리마루 APEC 하우스. 2005년 11월 18~19일에 열린 13차 APEC 정상회담 회의장으로 쓰기 위해 지은 건축물이에요. 정상회담 참가자들과 국내외 언론들이 역대 APEC 정상회담 장소 가운데 풍광이 가장 뛰어난 곳으로 평가한 곳이죠. 부산에는 세계 유일의 유엔군 묘지인 '유엔기념공원' 도 있어요. 세계 평화와 자유를 위해 생명을 바친 유엔군 전몰장병들이 잠든 곳이죠. 외국에 온 듯 이국적인 묘지와 잘 가꾼 조경이 인상적인 곳입니다. 한국전쟁이라는 국난의 시기, 1950~1953년 대통령 관저로 사용한 '임시수도기념관'과 독립운동가 백산 안희제 선생을 기념하는 '백산기념관' 도 부산의 근현대문화유산으로 추천합니다. 여행을 떠나기 전 <부산 소학생 영희, 경성행 기타를 타다>(역사일기 9권)를 읽으며 사전 지식을 쌓았다면 다녀온 뒤에는 어떤 활동을 하면 좋을까요? 부산근대역사관에서 살펴본 내용을 떠올리면서 재미있는 근현대사 관련 퀴즈를 풀어보면 유익할 거예요. |
Q&A 부산 근현대사 되새겨보기 |
Q1 강화도 조약과 함께 부산항이 열리면서 많은 일본인들이 부산으로 옮겨와 살았습니다. 이때 일본인이 살던 곳을 무엇이라 부를까요? |
정답 전관거류지. 외국 영토에서 어느 한 나라의 행정권과 경찰권 등을 행사하는 지역을 뜻한다. 부산은 조선 시대 용두산 주변의 일본인 마을 초량왜관이 전관거류지로 개방됐다. |
Q2 일제는 조선에 자신들이 만든 공산품을 팔고 조선의 질 좋은 이 곡식을 낮은 가격으로 대량 수입했습니다. 부산항에는 이 곡물의 껍질을 제거하기 위한 정미소가 많았는데요. 이 곡물은 무엇일까요? |
정답 쌀. 일제는 조선 시대 거둬들인 쌀을 부산항 등 큰 항구를 이용해 일본으로 가져갔다. 덕분에 일본의 가난한 노동자들은 조선의 질 좋은 쌀을 싼값에 살 수 있었다. |
Q3 일제강점기 부산에는 항만과 철도와 같은 근대 시설들이 갖춰지기 시작했습니다. 이처럼 일제가 항만과 철도를 서둘러 갖추고자 한 진짜 의도는 무엇일까요? |
정답 우리나라의 인력과 물자를 신속하게 운송하고 수탈하기 위해서. 당시 철도는 부산에서 출발해 경성을 거쳐 만주까지 연결되었다. |
Q4 일본이 조선의 경제를 지배할 목적으로 1908년 설립한 이 회사는 조선에서 쌀을 안정적으로 공급받고 몰락한 일본 농민을 구제하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우리나라의 토지를 수탈하기 위해 설립한 회사로, 서울 부산 대구 등에 지점을 세우고 조선의 토지 수탈에 앞장선 곳은 어디일까요? |
정답 동양척식주식회사. 일본은 쌀 수확량이 많고 교통이 발달한 지역을 골라 경성(서울), 부산, 대구, 목포, 대전, 원산, 평양, 사리원 등에 동양척식주식회사 지점을 세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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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개항, 6.25 전쟁 때의 임시수도 등 근현대사의 아픔을 지닌 곳이기도 하지만 수천만년 전 화산 폭발의 증거를 비롯한 빼어난 자연경관을 가진 아름다운 도시입니다.
부산을 여행하시려는 분께는
부산의 지질공원( http://mgeopark.busan.go.kr/)을 한 번 검색해보시고, 이기대나 몰운대 등 수천만년의 세월의 흔적이 남아있는 멋진 자연환경도 한 번 둘러보시길 강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