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죽은 조상을 섬기기 위해 민족적인 대이동이 있을 전망이다. 죽은 자들 때문에 고속도로에서 정체현상이 일어나는 민족은 이 나라밖에 없다. 이 얼마나 한심스럽고 하나님께는 가증스러운 일이며, 주님의 진노를 사고 있는 일인가! 삶과 죽음에 대해 해답을 갖고 있지 않은 자들은 장관, 국회의원, 대학교수, 의사, 변호사 할 것 없이 모두 다 같은 어리석음에 빠져 전 세계적인 뉴스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추석과 같은 명절에는 죽은 조상에게 제사하는 것이 과연 성경적으로 옳은 일인가라는 논란이 일게 마련이다. 사실 논란이 될 것도 없는 이것은 간혹 신문지상에 잘못된 견해를 올리는 이들로 인해 한 번 더 고심하게 되는 주제가 된다. 어떤 이들은 제사상 앞에서 자신의 신앙을 정확히 밝히고 제사상에 절하는 대신 기도를 하라고 권유한다. 절하는 것이야 우리가 엎드려 절하며 경배할 분은 하나님 한 분밖에 계시지 않기 때문에 당연히 하면 안 되는 일이지만, 절 대신 기도를 하라고 하니 이에 속을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라 예상된다. 우리는 성경적이지 않은 자신의 견해를 올려서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마귀의 일에 참여하게 해서는 안 되는데, 기독 언론들이 제 역할을 하고 있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는 것이 오늘날의 현실이다.
성경은 제사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씀한다. 『그러나 내가 말하노니 이방인들이 제사하는 것은 마귀들에게 하는 것이지 하나님께 하는 것이 아니니라. 나는 너희가 마귀들과 교제하는 자들이 되는 것을 바라지 아니하노라』(고전 10:20).
우리의 친지들이 제사하는 것은 마귀들에게 하는 것이지 하나님께 하는 것이 아니라고 성경은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다. 제사상에 절하는 것뿐만 아니라 제사의 모든 과정에 함께 하는 것이 마귀들과 교제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제사상 앞에서 하는 기도는 어떠한가? 정확히 말하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제사하는 그 자리에 함께 있어서는 안 된다. 죄인들이 마귀에게 제사하기 위해 상을 차려놓은 그 자리에 그리스도인이 함께 있어야 할 이유는 단 한 가지도 없는 것이다. 그들과 함께 있다는 것은 그들이 나누는 마귀들과의 교제를 인정한다는 얘기이고, 그들의 경배를 받는 마귀를 경배받기에 합당한 존재로 받아들이는 꼴이 되어, 결국 나 또한 그 마귀의 일에 동참하게 되기 때문이다. 마귀가 와서 경배받고 있는 자리에서, 그 마귀 앞에서 무슨 기도를 한다는 것인가? 이것은 도무지 상식도 통하지 않는 비성경적인 크리스천 제사 문화이다. 제사상 앞에서 기도하라고 하는 것은 마귀와의 교제에 참여하라는 말밖에 되지 않는다. 이것은 혼들을 그릇된 길로 인도하는 비성경적인 언사가 아닐 수 없다.
그리스도인에게는 마귀가 인정받고 높임을 받는 제사상 앞에서 해야 할 일이 아무것도 없다. 그런 자리에는 들어가지도 말고, 기도는 꿈도 꾸지 말아야 한다. 남아 있는 친지들을 위해 기도하려면, 집에서 은밀하게 하나님께 하라. 그들의 혼이 불쌍하다면, 따로 시간을 내어 복음을 전하면 된다. 사람을 두려워하는 자들은 죽을 사람을 의식하여 성경에도 없는 ‘제사상 기도’를 실행할 것이나, 이것은 마귀가 기뻐할 일이지 하나님께는 결코 기쁨이 되지 않는다. 자신을 그리스도인으로 여기고 있다면, 사람을 두려워하여 마귀에게 제사하는 그 자리에 어떤 형태로든지 참여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또 너희는 몸은 죽일 수 있으나 혼은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차라리 혼과 몸을 모두 지옥에서 멸하실 수 있는 그분을 두려워하라』(마 10:28).
--- 한승용 편집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