券 第 二
비유품(譬喩品) 第 三
合等賜大車譬(1.如來思惟 2.正合賜大車)
87.
舍利弗아! 如彼長者가 見諸子等이 安隱得出火宅하야 到無畏處하고
사리불 여피장자 견제자등 안은득출화택 도무외처
自惟財富無量일새 等以大車로 而賜諸子하나니
자유재부무량 등이대거 이사제자
88.
如來도 亦復如是하야 爲一切衆生之父라 若見無量億千衆生이 以佛敎門으로
여래 역부여시 위일체중생지부 약견무량억천중생 이불교문
出三界苦怖畏險道하야 得涅槃樂코는
출삼계고포외험도 득열반락
89.
如來爾時에 便作是念하대 我有無量無邊智慧力無畏等諸佛法藏하고 是諸衆生은
여래이시 편작시념 아유무량무변지혜력무외등제불법장 시제중생
皆是我子라 等與大乘이요 不令有人으로 獨得滅度니 皆以如來滅度로 而滅度之호리라
개시아자 등여대승 불령유인 독득멸도 개이여래멸도 이멸도지
90.
是諸衆生의 脫三界者에 悉與諸佛禪定解脫等娛樂之具하나니 皆是一相一種이라
시제중생 탈삼계자 실여제불선정해탈등오락지구 개시일상일종
聖所稱歎이며 能生淨妙第一之樂이니라
성소칭탄 능생정묘제일지락
㈃ 合長者無虛妄譬(1.明無大乘 2.明昔說三乘)
91.
舍利弗아! 如彼長者가 初以三車로 誘引諸子然後에 但與大車의 寶物莊嚴이 安隱第一하나
사리불 여피장자 초이삼거 유인제자연후 단여대거 보물장엄 안은제일
然 彼長者는 無虛妄之咎달하야 如來도 亦復如是하야 無有虛妄이니
연피장자 무허망지구 여래 역부여시 무유허망
92.
初說三乘하야 引導衆生然後에 但以大乘으로 而度脫之시니 何以故()오 如來有無量智慧와
초설삼승 인도중생연후 단이대승 이도탈지 하이고 여래유무량지혜
力無所畏諸法之藏하야 能與一切衆生大乘之法이언만은 但不盡能受니라 舍利佛아!
역무소외제법지장 능여일체중생대승지법 단부진능수 사리불
以是因緣으로 當知諸佛의 方便力故로 於一佛乘에 分別說三이니라
이시인연 당지제불 방편력고 어일불승 분별설삼
㈏ 偈頌
93.
佛이 欲重宣此義하사 而說偈言하니라
불 욕중선차의 이설게언
頌開譬
ㄱ. 頌總譬
{1.頌長者 2.頌舍宅 3.頌五百人 4.頌火起[1.明地上事譬欲界火起<1.明所燒之類
(1.明禽獸類 2.明鬼神類)2.明火起之由 3.明火起之勢 4.明被燒之相>
2.明穴中事譬色界火起 3.明空中事譬無色界火起 4,總結衆難非一]}
94.
譬如長者가 有一大宅커던 其宅久故하고 而復頓弊하며
비여장자 유일대택 기택구고 이부돈폐
95.
堂舍高危하고 柱根摧朽하며 梁棟傾斜하고 基陛隤毁하여
당사고위 주근최후 양동경사 기폐퇴훼
牆壁圮坼하고 泥塗阤落하며 覆笘亂墜하고 椽梠差脫하며
장벽비탁 이도타락 복점난추 연려차탈
周障屈曲하고 雜穢充徧하며 有五百人이 止住其中커던
주장굴곡 잡예충변 유오백인 지주기중
96.
鵄梟鵰鷲와 烏鵲鳩鴿과 蚖蛇蝮蠍과 蜈蚣蚰蜒과
치효조취 오작구합 원사복헐 오공유연
守宮百足과 鼬狸鼷鼠와 諸惡蟲輩가 交橫馳走하며
수궁백족 유리혜서 제악충배 교횡치주
97.
屎尿臭處에 不淨流溢하고 蜣蜋諸蟲이 而集其上하며
시뇨취처 부정유일 강랑제충 이집기상
狐狼野干이 咀嚼踐踏하고 嚌齧死屍하야 骨肉狼藉커던
호랑야간 저작천답 제설사시 골육낭자
98.
由是羣狗가 競來搏撮하고 飢羸慞惶하야 處處求食하며
유시군구 경래박촬 기리장황 처처구식
鬪諍摣掣하고 啀喍嘷吠어든
투쟁자철 애재호폐
99.
其舍恐怖하야 變狀如是라 處處皆有 魑魅魍魎()하며
기사공포 변상여시 처처개유 이매망량
100.
夜叉惡鬼가 食噉人肉하며 毒蟲之屬과 諸惡禽獸는
야차악귀 식담인육 독충지속 제악금수
孚乳産生하야 各自藏護어든
부유산생 각자장호
101.
夜叉競來하야 爭取食之하며 食之旣飽하야는 惡心轉熾하야
야차경래 쟁취식지 식지기포 악심전치
鬪諍之聲이 甚可怖畏하며
투쟁지성 심가포외
102.
鳩槃茶鬼가 蹲踞土埵호대 或時離地를 一尺二尺하며
구반다귀 준거토타 혹시이지 일척이척
往返遊行하야 縱逸嬉戱호대
왕반유행 종일희희
# 강 의 내 용
법화경 87번 부터 할 차례지요.
지난 시간에도 말씀드린 바가 있습니다마는 이 경전을 우리가 이해하는데는
그 안에 담긴 뜻을 아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마는 어떤 그 신앙심, 다시 말해서
어떤 종교적인 성품이 아니며는 도저히 우리가 가질 수 없는 그런 믿음의 마음,
이것이 참 중요합니다.
그냥 글이나 읽고 그 안에 있는 줄거리를 이해하는 것은 누구나 보면 알 수가 있어요,
글만 알며는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거기에 어떤 믿음의 마음을 우리가 거기서 가질 수
있는 것은 이건 아무나 할 수가 있는 게 아닙니다.
우리가 불교를 믿고, 또 부처님에 대하여 어떤 신앙심이 있고, 또 그 나름의 마음의 준비가
뭐 선천적이든, 아니면 후천적이든, 또는 뭐 과거 한량없는 세월 전에 익혀 놓은
어떤 마음의 씨앗이 되었든간에, 어떤 이유로든지 우리들 마음에 믿음의 씨앗이 있어야만,
말하자면 경전의 말씀, 다시 말해서 부처님의 말씀을 우리 가슴에 어떤 감동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그런 기회가 생기는 것입니다.
불교 말씀은, 부처님의 말씀은 신심이 없으며는 어떤 감동적으로 받아들여지지가 않습니다.
우리가 이런 시간을 갖는 것도 이것은 벌써 어떤 신심이 밑바침이 돼 있다고 하는 그런
증거인데 그런 신심을 가지고 우리가 이렇게 볼 때 한 글자 한 글자가 그렇게 소중하게
생각될 수가 없어요.
지나치면서 이렇게 보더라도 그냥 어떤 ??도 그냥 사리불 하며는, 사리불이라고 하는 낱말이
무슨 사람 이름이지 별겁니까. 그런데 그냥 사리불이라는 낱말이 가슴에 와 닿는 거예요.
이상한 느낌을 우리가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게 뭔고 하며는 그게 신심이예요.
신심이 아니면 그런 느낌을 못 받거든요.
그래서 우리는 부처님에 대해서 불교에 대해서 어떤 믿는 마음, 그런 신심이 생겨져 있는
까닭에 사리불이라고 하는 낱말 하나든지, 여래라고 하는 말이든지, 또 뭐 거기에 어떤
낱말이든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라든지, 그 어떤 흔한 말도 늘 새롭고, 늘 고맙게 생각되고,
늘 신기하게 가슴에 와 닿을 수 있는 거, 이거 참 소중한 것이고 이것은 또 우리가 불자가
아니며는 경험할 수 없는 것입니다. 뭐 아무리 지식이 많고 학식이 높아가지고 경전을
이렇게 이해하고 저렇게 이해하더라도, 그런 마음은 못 가져요.
비록 경전에 어떤 줄거리나 그 속에 담긴 뜻을 좀 덜 이해하는 한이 있어도 그런 아까 말한
그런 신심이라든지 고귀한 마음, 그 마음을 우리가 가질 수 있다는 거, 이게 중요합니다.
잘 알아 가지고 신심 낼 수 있는 불경이야, 불교 경전 아무리 많이 읽어도 별로 감동이 없고
득이 없어요.
그런데 그냥 한구절, 무슨 사리불이면 사리불, 수보리면 수보리, 무슨 보살, 하더라도
그냥 그 낱말 하나만이더라도 그 한 마디만 해도 마음이 슬며시 다가서고 내 마음을
이렇게 흔들어 놓는 어떤 그런 감동은 신심 있는 불자, 우리 불교를 믿는 불자만이
가질 수 있는 그런 마음이라고요. 그게 참 고귀한 마음이고 그게 소중한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법화경을 여러 번 이렇게 보고 강의도 수 차 하지마는 볼 때마다 뻔히 아는
내용이고 오늘 공부하는 것은 화택 비유인데 이거 뭐 모르는 사람이 없죠.
그런데도 또 그것이 새삼스럽게 가슴에 다가오는 거, 이것이 우리 종교인들만이 불자만이
가질수 있는, 그런 마음이 아닐까 하는 그런 생각을 합니다 .
그래서 뭐 어떤 신기한 이야기가 있느냐, 하는 그런 어떤 기대감보다는 어떤 한 낱말,
글자 하나, 뭐 이름 하나에 어떤 신심을, 어떤 무미한 어떤 마음을
거기서 우리가 불러 일으킬수 있다는 거, 이게 우리가 불교공부를 하는 소득이 아닐까,
하는 그런 생각을 해 봅니다.
또 지난 시간까지는 본문에 성문, 벽지불, 보살, 이런 이야기를 했고, 그 다음에 오늘은
불성에 대해서, 87권 거(기) 보면 부처의 ??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 그런 대목이죠.
87.
舍利弗아! 如彼長者가 見諸子等이 安隱得出火宅하야 到無畏處하고
사리불 여피장자 견제자등 안은득출화택 도무외처
自惟財富無量일새等以大車로 而賜諸子하나니
자유재부무량 등이대거 이사제자
舍利弗아! 如彼長者가 見諸子等이
사리불 여피장자 견제자등
사리불아 저 장자, 저기 저 어떤 장자가 있었는데 그 장자의 집에는 불이 났었고, 그 집
안에 불난 집 안에는 많은 아이들이 있었다. 그래서 그 아이들을 안전을 도모하기 위해서,
아이들을 안전한 곳으로 끌어내기 위해서 여러가지 방편을 베풀었고, 그 방편은 3거車라고
하는, 3가지 수레라고 하는, 그런 이야기를 했었지요.
그래서 그것은 결국은 우리가 살아가는데 우리의 근기에 맞는 우리의 성격과 우리 수준에
맞는 어떤 방편을 일단 베풀고, 그리고나서 그 다음에 최고의 경지, 다시 말해서 성불의
경지를 이야기할 수 밖에 없는 그런 단계로 불교는 짜여져 있다, 하는 그런 이야기를
쭉 해 나가는 과정의 한 부분입니다. 그래서 여기 저 장자라고 하는 것은 부처님을
가르킨 것이고, 또 불난 집에서는 그 집 주인, 아버지를 말하는 것이죠.
장자가 여러 아들들이
安隱得出火宅이라
안은득출화택
화택火宅에서부터, 불난 집에서부터 편안하게 안은安隱하게 득출得出했다,
벗어나는 것을, 벗어나서
到無畏處하고
도무외처
도무외처到無畏處라, 아무 두려움이 없는 곳에 이른 것을 보고, 그러니까 어쨋거나
불난 집에서는 벗어났다, 하는 것입니다. 아이들에게 비록 있지도 아니하는 3승乘가지를
3가지 수레 이야기를 하기는 했지만 그러나 불난집에서 나왔으니까
自惟財富無量일새
자유재부무량
그래서 스스로 재부무량財富無量이다, 그런 것을 보기는 봐서 그러나 아이들에게
작은 수레를 줄려고 했는데, 작은 장난감을 줄려고 했는데,
사실은 자기 자신에게는 그런 시시한 거는 주고싶지가 않다, 이겁니다.
그리고 자기는 너무 부자야. 그래서 재부무량財富無量이라고 하는 말이,
재산과 부는 한량이 없을 새, 그것을 생각을 했다. 또는 알았다, 그랬어요
等以大車로
등이대거
평등한 큰 수레로써, 아주 잘 꾸며진 큰 수레로써
而賜諸子하나니
이사제자
여러 아들들, 여러 아들들에게 평등하게 다 준다, 줄 사賜자, 준다 이 말이야.
왜냐, 아니 나는 큰 부자고, 그리고 어마어마한 그런 재산이 있고, 그리고 아이들에게
큰 수레, 제일 좋은 수레, 화려한 수레를 다 낱낱이 줘도 하나도 뭐 재산이
축(손해)이 나거나 그럴 까닭이 없기 때문에 그래서 하는 이야기입니다.
여기서 큰 수레라고 하는 것은 우리 마음의 어떤 보배, 우리 마음 속의 어떤 그 진여와
자비와 어떤 무한한 능력과 또 이 생명도 한 순간이 아니고 뭐 70이나 80이 아니고 영원히
살 수 있는 그런 생명력, 이런 것이 우리 마음 속에 내재돼 있는데
그것을 여기서 큰 수레다, 라고 이렇게 비유를 하고 큰 수레에 대한
화려한 이야기를 하지요.
뒤에 또 게송으로 또 한 번 나옵니다마는
88.
如來도 亦復如是하야 爲一切衆生之父라 若見無量億千衆生이 以佛敎門으로
여래 역부여시 위일체중생지부 약견무량억천중생 이불교문
出三界苦怖畏險道하야 得涅槃樂코는
출삼계고포외험도 득열반락
如來도 亦復如是하야
여래 역부여시
여래도 또한 다시 이와 같아서, 그 장자와 같다, 이말이야
爲一切衆生之父라
위일체중생지부
일체 중생의 아버지라, 그 장자처럼
若見無量億千衆生이
약견무량억천 중생
만약에 무량 억천 중생無量 億千 衆生이
以佛敎門으로
이불교문
불교의 문으로써, 부처님의 가르침의 문으로써
出三界苦怖畏險道 하야
출삼계고포외험도
삼계고에서 삼계고三界苦, 포외험도怖畏險道, 포외怖畏, 두려웁고 겁나는
그런 험한 그 길에서 벗어나서
得涅槃樂하고
득열반락
득열반락得涅槃樂, 열반涅槃이라고 하는 그런 즐거움을 얻는 것을 보고는,
견見자, 견무량見無量할 때, 견자 그대로 쓰이죠.
그런 것을 보고는 중생들이 말하자면 3승이라고 하는 가르침을 통했지마는
그래도 삼계에서 벗어났죠, 생사의 어떤 고통에서 벗어났죠, 그래서 열반을 얻었죠.
이런 것을 보며는
89.
如來爾時에 便作是念하대 我有無量無邊智慧力無畏等諸佛法藏하고 是諸衆生은
여래이시 변작시념 아유무량무변지혜력무외등제불법장 시제중생
皆是我子라 等與大乘이요 不令有人으로 獨得滅度니 皆以如來滅度로 而滅度之호리라
개시아자 등여대승 불령유인 독득멸도 개이여래멸도 이멸도지
如來爾時에 便作是念하대
여래이시 변작시념
여래가 그 때 이런 생각을 했다
我有無量無邊智慧力無畏等諸佛法藏
아유무량무변지혜력무외등제불법장
아유我有, 나에게는 있다, 이말이야. 아유, 나에게는 이러한 것이 있다, 뭐가 있는고 하면
한량없고 가이 없는 지혜, 또 힘, 십력十力이죠. 무외無畏, 4무외죠.인등?
제불諸佛의 법장法藏, 모든 부처님이 가지고 있는 진리의 창고, 법장法藏. 법의 창고,
이런 것을 다 가지고 있어, 부처님은, 그리고는
是諸衆生은皆是我子라
시제중생 개시아자
이 모든 중생은 나의 아들이다, 개시아자皆是我子라,
시제중생是諸衆生은 개시아자皆是我子라
그렇게 많은 법의 재산을 가지고 있고 또 어느 누구보다도 가장 가까운 내 자식,
어차피 다 물려줘야 할 그런 재산을 물려줘야 할 그 자식,
그것이 모두 중생이다 이거야. 그럴 경우
等與大乘이요
등여대승
평등하여 대승大乘으로써 줄 것이지
不令有人으로 獨得滅度니
불령유인 독득멸도
어떤 사람으로 하여금 홀로 멸도滅度를 얻게 할 것이 아니니,
멸도滅度라 하는 거는 여기서는 열반입니다.
皆以如來滅度로 而滅度之호리라
개이여래멸도 이멸도지
여래가 멸도滅度한 것으로써, 여래가 성취한 그 어떤 경지를 가지고서 중생들에게
성취하게 해 주겠다, 여래가 제도 받은 것을 가지고 중생들을 제도하겠다, 이런 말입니다.
어떤 특별한 한 가지 다른 거 가지고 하는 게 아니다, 이말이야.
이건 무슨 말인고 하며는 부처님은, 사실은 우리는 어떻게 보며는 너무 공짜예요.
부처님은 내가 늘 말씀드리지마는 우리는 부처님의 위대성을 깊이 알며는 더욱 좋지마는
우선 표면적인 이해만 가지고 이야기하더라도 태자의 지위를 헌신짝처럼 버렸지요,
그 태자 자리가 얼마나 좋습니까? 정말 좋은 자리거든요.
부단히? 그저 조금만 기다리면 왕이 될 것이고, 그 당시 또 국왕은 지금같이
골치 썩히는 것도 아니야. 마음대로니까, 전제 시대니까,
군주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그런 시대니까,
그런 지위를 버렸죠. 그리고 6년 고행을 했죠, 그리고 큰 깨달음을 얻었지요.
이런 어마어마한 그런 어떤 희생을 치루고 얻어낸 그런 불성이라고 하는 거, 부처의 지견知見,
여기는 이제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 또는 뭐 깨달음의 경지, 이런 이야기를 하는데,
그런 희생을 치루고 엄청난 가치를 치루고 얻어낸 그 깨달음, 아니 이왕이며는 부처님이
중생들을 위해서 베푼다면은 자기의 최고의 재산을 베풀어야지,
그걸 전혀 아껴가지고 말이지, 시시한 거 줄려고 부처님이 그렇게 하는 게 아니다,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는.
그리고 당신이 가지고 있는 그런 경지를 중생들에게도 가르쳐 주고싶다는 거지요.
그거는 당연한거지요. 당연히 그렇게 돼야 됩니다.
어쩌면 자기가 가진 거 보다도 더 훌륭한 것을 주고싶은 게 아마 아버지의 마음이고
어쩌면 부처님의 마음일 것입니다.
그렇다며는 우리가 사실 우리는 부처님에게 아주 작은 거만 바랍니다. 사실은 솔직하게
모든 우리 불자들은요 아주 작은 거만 바라요, 그러나 부처님은 왜 이왕이면 이 집안에
내 집안에 들어와서 그렇게 작은 거, 시시한 것만 그렇게 바라느냐, 나는 큰 것을 주고싶다,
더 큰 것을 주고싶은데 너희들도 큰 것에 좀 눈을 뜨도록 하라,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사실은.
우리는 작은 것을 바라죠. 아주 시시하고 작은 거, 정말 부처님이 주고싶어 하는 것의
백분의 일 아니 천분의 일도 안되는 작은 거, 그거 하나 바라고 있습니다.
그런데 부처님은 우리가 바라는 것의 천 배 만 배 더 큰 것을 필요로 하는 거예요.
그게 여기서 이야기가 그겁니다.
아이들은 작은 수레를 가지고 만족할려고 했으나 아버지 마음은 그게 아니야,
아주 금은보화로 화려하게 잘 꾸민 그런 수레를 주고싶은 것이 말하자면 아버지의
마음이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 관계를 우리가 알기는 알아야 돼요. 아무리 우리가 작은 어떤 욕심을 가지고
불교 안에서 만족을 얻으려고 하는 것은 지더라도 그래도 불교에서 우리에게
주려고 하는 것, 부처님은 우리에게 주려고 하는 것은 너무너무 큰 것이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걸 알아야 돼.
큰 거 난 소용 없다 하더라도 어쩔수 없어. 소용없어서 안 받는 거는 우리 사정이고,
그러나 부처님이 주고싶어하는 그 마음이 큰 것이었다. 그것이 부처님의 마음이라는 거,
제발 우리가 알아야 돼요.
받고 안 받는 거는 우리 마음입니다마는 그러나 불교는, 불교의 본심은,
그게 아니라고 하는 사실은 우리가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불교의 본심은요.
그래 뭐 인생이란 것도 그렇습니다. 인생이라는 것도 나는 뭐 그냥 인간으로 이 세상에
와 가지고 크게 뭐 큰 욕심 없다, 뭐 이런 생각을 많이 하지요.
그냥 이 한 몸 건강하고 대과大過없이 그냥 살다가 그저 천명天命이나 누리다가 가면은
그걸로써 만족하다. 이런 생각을 합니다.
어떻게 보면은 욕심이 적어서 참 소박하고 좋은 거 같으면서도 그러나 인간이 가지고 있는
원래 의무와 인간이 본래 지니고 있는 어떤 보람, 그걸 우리는 알고 가야 돼요.
그걸 찾고 가야 됩니다. 원래 자기 가슴 속에 지니고 있는 그런 의무와 보람이 있어요.
인간으로써, 그걸 놔 두고는 우리는 그저 욕심이 없어서 그런지, 몰라서 그런지 몰라도
아주 조금만 얻을려고 하는 조그맣게만 살려고 하는 그런 입장이라는 거죠.
그래서 이런 것을 우리가 참 법화경 좋다고 하는 이유가 바로 인간의 아주 왜소한
우리의 마음을 아주 크게 확대시켜주고, 어떤 유한한 어떤 한계 속에 있는 것을
무한한 어떤 한계가 없는 그런 것으로, 크게, 말하자면 이어주는 그런 큰 삶을
살도록 하는, 그렇다고 해서 뭐 큰 벼슬을 해서 큰 삶이 아니라
마음이 또 우리가 본래 그런 어떤 마음 자세를 지니고 있는만치
그런 것을 이해하고 살라고 하는 거, 그것이 부처님의 마음이고 불교의 본심이다.
하는 그런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요 끝을 또 한 번 보며는
等與大乘이요
등여대승
평등하게 대승大乘으로써 주고
不令有人으로 獨得滅度니
불령유인 독득멸도
어떤 사람이 홀로, 어떤 홀로 멸도滅度하는 거, 자기 혼자만 제도하는 것,
독득멸도獨得滅度라고 하는 거, 혼자만 제도 하는 것으로써는 하지 않는다.
하는 그런 이야기야. 그래서
皆以如來滅度로 而滅度之호리라
개이여래멸도 이멸도지
다 여래가 멸도滅度 하는 것으로써, 다시 말해서, 여래의 성공으로써,
우리의 인생도 성공적으로 살도록 하는 것이다, 이런 말이예요.
부처님이 증득한 경지, 부처님이 오른 그 경지로써 우리도 모두가 다 그 경지에서
살도록 하려고 하는 게 이게 부처님의 본심이고 불교의 본심이다, 하는 그런 얘기입니다.
90,
是諸衆生의 脫三界者에 悉與諸佛禪定解脫等娛樂之具하나니 皆是一相一種이라
시제중생 탈삼계자 실여제불선정해탈등오락지구 개시일상일종
聖所稱歎이며 能生淨妙第一之樂이니라
성소칭탄 능생정묘제일지락
是諸衆生의 脫三界者에
시제중생 탈삼계자
이 모든 중생의 삼계三界를 벗어난 자에게
悉與諸佛
실여제불
모두 다, 다 같이 준다, 여與자는 준다 하는 뜻이예요, 여기서는
등여等與할 때도 같이 준다, 이 말이고,
悉與禪定解脫等娛樂之具
실여제불선정해탈등오락지구,
모든 부처님의 선정禪定과 해탈解脫등 그런 오락의 도구를, 여긴 이제 선정해탈禪定解脫,
이게 이제 인생으로써 최고의 어떤 즐거움, 최고의 즐거움을 선정禪定과 해탈解脫이라고
그랬습니다. 선정해탈禪定解脫등 오락娛樂의 도구를 실여悉與, 다 주나니
皆是一相一種이라
개시일상일종
다 한 가지 모양이고, 한 가지다, 이거야. 늘 이사람 다르고 저 사람 다른 게 아니다,
이거야. 누구나 다 같은 거, 부처님하고 나하고도 역시 같은 거,
모양도 같고 도구도 같다, 이말이야. 일상일종一相一種이라 그것은 또
聖所稱歎이며
성소칭탄
성인들이 칭탄稱歎한다, 칭찬하고 찬탄하는 바야
能生淨妙第一之樂이니라
능생정묘제일지락
그리고 능생정묘제일지락能生淨妙第一之樂이다,
정묘淨妙, 아주 청정하고 아름답고 그리고 제일 가는 그런 즐거움을
능생能生, 능히 탄생시키는, 능히 출생시키는 그러한 것이다.
이게 바로 부처님이 우리에게 주고싶은 것이고, 또 부처님들이 모든 깨달은 사람들이
다 성취해서 누리고 있는 것이다, 하는 이야기입니다.
91.
舍利弗아! 如彼長者가 初以三車로 誘引諸子然後에 但與大車의 寶物莊嚴이
사리불 여피장자 초이삼거 유인제자연후 단여대거 보물장엄
安隱第一하나 然 彼長者는 無虛妄之咎달하야 如來도 亦復如是하야 無有虛妄이니
안은제일 연 피장자 무허망지구 여래 역부여시 무유허망
舍利弗아!
사리불
사리불아
如彼長者가 初以三車로
여피장자 초이삼거
저 장자는 초이삼거初以三車로써, 맨 처음에 삼거三車, 세가지 수레,
양거羊車, 우거牛車, 녹거鹿車, 그것으로써
誘引諸子然後에
유인제자연후
유인제자연후誘引諸子然後에
제자諸子들을 여러 아들들을 유인誘引해서, 진짜 그랬어요.
처음부터 아주 좋은 수레가 있다고 하며는 그거 안 믿거든요, 안 믿잖아요.
그러니까 그사람의 분分에 맞는 것을 가지고 꼬여야 유인을 해야 그 사람이 꼬이거든요.
그렇지 않으면 꼬이지가 않습니다.
그러니까 사람을 꼬일 때도 유인할 때도 그 사람 수준에 맞게 해야 돼.
너무 수준에 안 맞는 거 가지고 꼬이며는 이해도 안 되고 꼬이지도 안해요.
아유 저 사람은 가난하니까 수 십억 가지고 유인해야 되겠다. 아주 가난한 사람은
수 십억 가지고 유인하며는 절대 믿지를 않습니다.
가난한 사람은 그저 돈 한 2-3십만이면 잘 꼬여요, 아주 딱 알맞다고요,
근데 2-3십만원 가지고 될 사람이 있고, 2-3백만 원 가지고도 안 될 사람이 있어,
수 십억이라야 될 사람이 있고, 그런 거예요.
그러니 그 사람들의 수준에 따라서 유인하는 거지 아무렇게나
뭐 다 같은 어떤 꺼리를 가지고 유인해 봐야 그건 통하는 게 아닙니다.
적성을 알고 이해를 알고 욕망이 뭔지 알고 그 사람이 좋아하는 게
뭔지를 알아야 되고 성격이 어떤지를 알아야 되고 부처님은 경전에서
항상 그런 이야기를 해요,
중생들의 욕망과 ?? 이해와 어떤 성격과 업과 또 그 사람의 지식수준과 이런 것들을
전부 알아 가지고 거기에 맞게 유인했다, 유인제자誘引諸子라고 했잖습니까 .
뭘로 유인했느냐, 삼거로써 유인한 거예요. 세가지 수레로써 여러 아들들을 유인한 연후에,
요즘은 그게 차원이 더 밑으로 더 내려오고 또 종류가 다양해 가지고 벼래 별걸로 다 유인해요.
벼래 별걸로
내가 대구에 어느 법회에 이렇게 나가 보니까 어디든지 요즘 다 그런데
요즘 삼사순례三寺巡禮를 많이 하잖아요, 삼사순례를 하며는 미어터진다는구만.
평소에 안 보던 신도들도 다 오고 그래 온다고 해, 그래서 그 절에는 삼사순례만
오는 사람은 안 받는대,
아 그런 고집 부리는 스님도 있더라고요, 평소에 나오지 아니하는 신도는
삼사순례에 온다고 안 받아주는 거야, 아예, 아 그거 괜찮대. 그거 (ㅎㅎㅎㅎ)
그런 사람들 잘 없잖아요.
그런데 법화경 정서에는 안 맞아, 그 스님이. 법화경 정서는 그게 아니야.
평생에 한 번만 나와도 받아줘야 돼. 감싸줘야 돼, 그 인연이 어딘데,
기독교인이라도 삼사순례 간다고 따라 나서면 받아줘야 돼. 다 받아줘야 된다고.
그게 인연이 되는 거라. 그것만 하더라도 성불이다 이거야.
법화경에서는 그렇게 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 법화경 정서에는 안 맞는데 근데 좀 고집이 세서, 그런대로 괜찮더라고요 또
그런 절도 있어, 그게 다 사람 유인하기 위한 거거든요. 그런 중생들도 있다고요
그러니까 어줍잖게 한다 어쩐다 그런 소리, 함부로 우리가 할 게 아니야.
그거 다 수구 방편이야, 다 좋은 방편이고, 그러니까 여기는 여러 아들들을
유인해 냈는데 불난 집에서 유인해 냈는데 세가지 수레로 가지고 유인했다,
양이 끄는 수레, 양이 끌면, 참 양만 해도 이쁜데, 고 자그마한 수레로 모아 놓으면
아주 볼 만 할거야, 그러니까 얘들이 좋아할 수 밖에 없지.
참 우리 부처님, 아주 방편이 묘합니다. 그래서 여러 아들들을 유인한 연후에,
但與大車의寶物莊嚴이 安隱第一하나니
단여대거 보물장엄 안은제일
다만 그래 놓고는, 정작 3가지 수레는 안 주고 큰 수레를 준 거예요.
큰 수레에 보물이 잔뜩 실려 있고 또 뭐 여러가지 바퀴라든지 쌀이라든지,
뭐 옆에 수레, 뭐 사람 앉는 자리라든지, 옆으로 가로놓인 뭐 나무라든지,
이런 것이 엄청난 보물로 장엄이 됐다. 이 말이야.
보물장엄 寶物莊嚴안은제일安隱第一이라
그리고 편안하니까 제일이야, 보물로 장엄이 됐을 뿐만 아니라 ,
편안하니까 제일, 왜냐하면 큰 수레니까, 그걸로써 다만 그것만으로 주었다.
然 彼長者는
연 피장자
그러나 저 장자는
無虛妄之咎달하야
무허망지구
무허망지구無虛妄之咎해서
그러나 허망의 허물은, 허망의 허물은 없는 것과 같아서, 이건 무슨 말인가 하면
거짓말, 거짓말하는 허물은 아니다 하는 것입니다.
왜냐, 아니 천원 주겠다고 해놓고 만원 줬으니까, 거짓말은 아니죠.
그런데 천원은 안 줬다, '아이 만원 달라고 했나, 천원 달라고 했지',
그걸 가지고 굳이 따지기로 한다며는, 그거 뭐 거짓말이라고 할 수 있을는지는
모르지마는 그런 경우 거짓말이라고 하지는 않는 거예요,
그래서 여기는 허망이라고 하는 허물,거짓말이라고 하는 허물이, 무, 없다, 이말이야
그 장자는 그런 허물은 없다,
아니 천원 얻을려고 하는 사람에게 만원, 십만원을 줬으니까,
그건 뭐 그런 말이 아예 해당이 되지도 않죠.
如來도 亦復如是하야 無有虛妄이니
여래 역부여시 무유허망
여래도 또한 다시 이와 같아서 허망함이 없다, 거짓이 없다, 그러니까
불교에 예를 들어서 뭐 삼사순례 간다고 절에 나오라고 해 놓고 정작 삼사순례는
잘 다녀왔지마는 아니 절에서 삼사순례만 가는 게 아니더라, 이거예요.
부처님 ??하는 것도 있더라 이거지 참선하고 기도하는 것도 있고 별거 다 있는거야.
그러니까 처음에 아이고 삼사순례 가자고 친구를 불교로 유인은 했지마는
왜 삼사순례만 가지, 매일매일 삼사순례만 가지, 왜 법화경 공부도 있고 말이지,
기도도 있고 그러냐, 그걸 불만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이거야.
그걸 가지고 거짓말이라고 할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좀 기다리면 삼사순례 또 가.
빨리 가고싶으면 딴 절에서 가는 거 또 붙어 가면 돼.
얼마든지 기회는 있다 이거야. 얼마든지
그러니까 다른 어떤 좋은 수행법이 있다고 해서 자기 마음을 깨닫는 거라든지,
수행하는 문제라든지, 온갖 여러가지 다양한 그런 방법이 많으니까 그것뿐이라고 해서,
그것뿐이 아니라고 해서, 참 그것을 허망한 말이다, 또는 거짓말이다,
이렇게 할 거는 아니다는 거지.
그런 생각 하지도 않아요. 부처님이 워낙 생각이 많은 분이 돼 놔서 염려도 안하는
이런 말을 해 놓은거지 사실은. 중생들은 이런 생각도 안해요. 둔해가지고.
그리고 이건 필요없는 말이라.
그래도 혹 생각 많은 중생, 망상妄想이 많은 중생, 아주 생각이 복잡한 중생들이
그런 생각을 할까 싶어서 이런 이야기를 해 놓은 것입니다.
92.
初說三乘하야 引導衆生然後에 但以大乘으로 而度脫之시니 何以故()오 如來有無量智慧와
초설삼승 인도중생연후 단이대승 이도탈지 하이고 여래유무량지혜
力無所畏諸法之藏하야 能與一切衆生大乘之法이언만은 但不盡能受니라 舍利佛아!
역무소외제법지장 능여일체중생대승지법 단부진능수 사리불
以是因緣으로 當知諸佛의 方便力故로 於一佛乘에 分別說三이니라
이시인연 당지제불 방편력고 어일불승 분별설삼
初說三乘하야
초설삼승
처음에는 삼승三乘을 설해서
引導衆生然後에
인도중생연후
중생들을 인도引導한 연후에
但以大乘
단이대승으로
남에게 나중에 다만 대승大乘으로써
而度脫之하시니
이도탈지
그들을 도탈度脫, 제도하고 해탈한다, 이말이야
그런데 처음에 여러분들이 성불 성불 성불한다는 이야기, 아 부처다, 본래 부처다, 성품이 부처다,
마음이 부처다, 부처로 사는 것이 말하자면 불교의 목적이다, 라고 하는 이런 소리,
처음엔 안 듣잖아요.
저는 그런 소리 못 들었거든요, 못 듣다가 절에 살살 다녀보니까
성불을 한다느니, 해탈을 한다느니, 마음을 깨닫는 게 목적이라느니,
아 이런 소리, 그런 소리, 듣도보도 못한 그런 소리가 슬슬 이제 들리더라
하는 이야기입니다. 처음에는 그런 소리가 없죠. 처음에는
마찬가지로 여기도 삼승으로써 중생을 인도한 연후에 대승으로써 부처가,
부처가 된다고 하는 거, 본래 우리는 불성을 가졌다고 하는 그것으로써 중생들을 제도했다,
그런 이야기입니다.
이 법화경을 공부를 하면요, 그 동안 막연하게 알고 있던 불교가 참 정리가 됩니다. 많이
전부 완전히, 어떤 이야기도 '아 여기에 해당 되고 이런 것이구나', 하는 것이
정리가 돼서 그래서 참 법화경이 좋다는 거예요.
何以故오
하이고
까닭이 무엇인고 하며는
如來有無量智慧와
여래유무량지혜
여래는 무량지혜無量智慧와 한량없는 지혜智慧와
力無所畏諸法之藏하야
역무소외제법지장
역力, 십력十力과, 무소외無所畏같은 , 이런 여러가지 법의 창고,
법장法藏, 법의 창고가 있어서, 부처님께는 그런 것이 있어요.
부처님에게 그런 마음이 있다는 말은 다른 말로 바꾸면,
우리들의 마음 속에는 역시 그런 것이 있다,
한량없는 지혜가 있고, 몇가지 힘이 우리 마음 속에 있고, 4가지 무소외無所畏가 있고,
또 여러가지 진리의 창고가 말하자면 우리 마음속에 있다,
이렇게 이해하면 틀림이 없습니다. 그래서
能與一切衆生大乘之法이언만은
능여일체중생대승지법
능히 일체 중생에게 대승의 법을 주건만은
但不盡能受니라
단부진능수
다만 다 능히 받아들이지 못한다, 이거 참 우리보고 하는 소리예요.
참말 안간으로써 가장 격이 높은 부처님격으로써 살 수 있는, 사는, 이런,
불교에서는 제시하고 있지마는 중생들은 그게 별로 마음에 들지 않고
그릇이 작은 까닭에 그것을 다 능히 받아들이지 못한다 ,
단부진능수但不盡能受,
다만 다 능히 받아들이지 못한다,
참 애석하게도 우리 마음이 너무 좁아서 그래요. 그리고 작은 것만 좋아해서.
아주 조그마한 것만 좋아해 가지고 그저 '아이 나는 아무 소용도 없다',
그래 내가 저기 광교 뒤에 아는 신도가 이번 김대통령이 대통령 되고 나서
그때 벌써 IMF 문제가 터졌을 때 아닙니까.
그래 가지고 전화, 전화를 가끔 하더라고요.
'하 어떻게 되겠느냐고, 그 쪽 공기가 어떠냐'고,
'염려마라'고 '염려마라'고 내가 큰소리 땅 땅 쳤지. 그래 가지고 정작 되고 나니까
'아이고, 스님, 어떻게 그거를 알았느냐'고, '어떻게 알았느냐'고
'아니 내가 누구냐'고, '내가 도사 아니냐'고, (ㅎㅎㅎㅎㅎ)
'도 닦는 사람이 그것도 모르느냐'고.
'염려마라'고 내가 큰소리 땅 땅 쳤거든요. 그랬더니 정작 큰 소리 친대로 됐어.
그래 놓으니까 되고 나서 전화를 하면서
'하 우리 이제 아무 할 일이 없습니다. 할 일이 없습니다.'
그 말 한 마디 속에 모든 의미가 다 담겨 있더라고요.
아무 할 일이 없습니다, IMF아니라 무슨 F라도 좋다 이거야, 아무 염려가 없다.
그렇게 마음이 편안하고 모든 만족이 됐다, 그런 표현을 합디다.
그 아주 송광사에 다니는 아주 신심있는 신도예요. 아주 대단한 그런 ,
어떤 절에 뭐 큰 일을 하는 그런 신도인데 이제 그런 말을 하더라고요.
여기 이런 이야기 하고도 상당히 연관이 있는 거라.
단부진능수但不盡能受라
우리가 인간이 믿을 수 있는 그런 능력의 한계는 사실은 부처의 어떤 경지 입니다.
그것이 우리 마음에 갖추고 있는 모두 것을 한껏 다 누릴 수 있는 그런 경지예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내가 바라는 거 보며는, 그만 불자는 안 받아들입니다,
부진능수不盡能受라, 그만 아 받아들이지도 안해.
그런데 사람들의 마음은 조그마한 거 너무 작은 것에 기대를 하고 있는거야.
뭐 아무 소용 없다, 이거야, 아무 할 일도 없고, 할 일도 없다,
뭐 어떻게 돌아가도 상관 없다. 이거야. 아무 전혀 걱정이 안 된다.
사람들의 마음은 그렇게 작아 놓으니까
그렇다고 그 사람하고 사돈에 팔촌이 되는 것도 아니야.
전혀 뭐 사실은 자기에게 상관도 없는데, 또 그런 생각을 이제 하며는,
할 수 있는게 중생이야.
또 불교를 우리가 믿으면 사람마다 다 마음 속에 바라는 바가 다르죠.
아이고 나는 맨날 절에 가서 물만 떠 오면 불교하고 인연이 그걸로 끝이다,
그걸로 만족이다, 그런 사람도 있어요, 아 그것도 좋은, 좋은 소득이죠. 사실은
그래 가지고 그것이 차츰차츰 커지며는 내가 이야기 했듯이, 여기서 누차 말씀드렸듯이,
법당에 이렇게 가 보며는 고색창연古色蒼然한 법당을 이렇게 보며는 볼 거리가 있거든요.
그리고 이렇게 걸려있는 그림이 뭔지 모르지만 그림이 상당히 오래 된 거 같고.
또 뜻은 몰라도 꽤 괜찮아 보이고, 그래 기웃기웃 또 하게 된다고요.
그러다가 멀리서 보면 잘 안 보이니까 법당 안에 자기도 모르게 쓰윽 한 발 들여놓고
들어가게 되는거야. 들어가니 기운이 다르니까 저절로 합장이 되고 고개는 숙여지고,
이런 식으로 사람들이 마음이 차츰차츰 발전을 하게 되는거야.
그러니까 우리는 비록 작은 그런 어떤 꿈을 가지고 있어도 그 꿈이 부처를 이루겠다고 하는
어떤 내 인격으로써 내 인격이 부처님의 인격처럼 되고자 하는
본래 바탕이 갖추고 있으니까 그래요, 갖추고 있으니까 그런 것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불교는 항상 그래요. 그래서 그런 경지까지도 우리가 넘 볼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래야 참 부처님 마음에 들텐데, 그렇지도 못하고 사람들이 받아들이지 못한다.
舍利弗아!
사리불
사리불아
以是因緣으로 當知諸佛의 方便力故로
이시인연 당지제불 방편력고
이시인연以是因緣으로 마땅히 알아라. 그래서 부처님이 어떻게 하느냐,
제불諸佛의 방편력方便力을, 방편력으로
於一佛乘에 分別說三이니라
어일불승 분별설삼
그래서 부처님이 중생들의 근기를 너무너무 잘 알아. 그런데 방편을 가지고
'아 난 성문만 하면 돼' 그런 방편을 써 가지고
일불승一佛乘, 모두가 부처의 인격으로써 살 수 있는 그런 입장에서, 안다.
나아가지고 삼승三乘, 성문聲聞, 연각緣覺, 보살菩薩로써 사는 것이 최고의 삶이다, 라고
이렇게 삼승을 분별해서 삼승을 설하게 됐다. 쪼개가지고 삼승을 설하게 됐다.
처음부터 큰 수레, 좋은 수레를 줄 수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그 이야기는 아예 싹 빼 버리고
羊車, 鹿車, 牛車, 양이 끄는 수레, 사슴이 끄는 수레, 작은 소가 끄는 수레,
그런 것이 있으니까 그거 가지고 가서 우리가 놀자라고 아이들에게 그렇게 유인을 한 거죠.
그렇게 했던 것입니다. 정작 소견은 큰 수레, 아주 호화찬란하게 값진 보물로 꾸며진
그런 수레로써 주고 싶었는데,
이런 내용들이 말하자면 부처님의 그 마음 속에 있는 또 부처님이 우리에게 주고자 하는
그런 큰 그런 뜻이죠.
뭐 돈 많은 아버지가 아들에게 말하자면 큰 재산, 그 뭐 수 천만원이나 되는 재산을
다 물려 주려고 하는 것이 아버지의 마음이죠.
그런데 아들은 생각이 작아 가지고, 생각이 작아 가지고 그 재산을 욕심내지를 않고
그저 우선 자기 주머니에서 이걸 가지고 나가서 쓸 것, 그것만 욕심내는 거예요. 그것만
그거 잠깐 참으며는 전 재산을 다 받을 수 있는데, 그냥 수 천배 수 만배 되는
재산을 가질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눈 앞에 있는 조그마한 이득,
거기에 욕심을 내 가지고, 나중에 그러다가 큰 재산을 이제 잃어버리는
그런 경우가 이제 된다고 하는 그런 비유로써 볼 수가 있습니다.
93.
佛이 欲重宣此義하사 而說偈言하니라
불 욕중선차의 이설게언
그 다음에 이제 부처님이 이 뜻을 거듭 펴고 게송으로써 설했다.
요건 이제 그 안에 보며는 여러가지 어려운 글자들이 많아요.
법화경 경전이 대개 어려운 글자들이 없는데 이 대목에 어려운 글자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일일이 옥편 찾아 가지고 공부를 열심히 하신 분은 상관 없겠지마는
그래 이거 번역을 한 것으로써 대체를 할까 합니다.
요건 내가 살살 읽을테니까, 그 원문을 요렇게 한 구절 한 구절 보면, 보고 있으며는
그대로 딱딱 맞아떨어져요.
한 줄이 번역 한 줄이 여기에 네 구절입니다. 네 구절이 번역 한 줄이예요.
그렇게 알면 틀림없습니다.
지난 번에 산문散文에도 있었습니다마는 여(기) 운문韻文에 시 형식으로
게송으로 들리는 거가 훨씬 더 자세합니다.
훨씬 더 자세하고 또 가장 사실적으로 묘사를 하고 있어요.
정말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현실이 어떻다라고 하는 것을
아주 사실적으로 묘사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번역을 우리가 사는 현실을, 불난 집의 참사에다가 비유하였다,
말하자면 큰 집, 그 집은 헐고 썩었는데, 그리고 불이 났다. 불이 활활 타오르고,
그 안에 어린 아이들이 철없이 이리 뛰고 저리 뛰고 그저 놀고 있다,
그랬을 때 그 광경이 어떠하겠는가,
그것은 우리가 사는 이 현실이 부처님 눈에 마치 그와 같이 보였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 대목을 쉽게 이해하도록 이렇게 번역으로 대체하겠습니다.
94.
譬如長者가 有一大宅커던 其宅久故하고 而復頓弊하며
비여장자 유일대택 기택구고 이부돈폐
譬如長者가 有一大宅커던
비여장자 유일대택
비유하면, 어떤 장자가 큰 저택을 가졌는데,
其宅久故하고 而復頓弊하며
기택구고 이부돈폐
그 집이 오래 되어 낡고 또 퇴락하며,
95.
堂舍高危하고 柱根摧朽하며 梁棟傾斜하고 基陛隤毁하여
당사고위 주근최후 양동경사 기폐퇴훼
牆壁圮坼하고 泥塗阤落하며覆笘亂墜하고 椽梠差脫하며
장벽비탁 이도타락 복점난추 연려차탈
周障屈曲하고 雜穢充徧하며 有五百人이 止住其中커던
주장굴곡 잡예충변 유오백인 지주기중
堂舍高危하고 柱根摧朽하며
당사고위 주근최후
집채는 높고 위태롭고, 기둥뿌리 점점 썩고,
梁棟傾斜하고 基陛隤毁하여
양동경사 기폐퇴훼
대들보는 기울어져 축대들이 무너지며,
牆壁圮坼하고 泥塗阤落하며
장벽비탁 이도타락
벽과 담은 헐어지고, 발랐던 흙 떨어지고,
覆笘亂墜하고 椽梠差脫하며
복점난추 연려차탈
이엉 썩어 흩어지고, 서까래가 드러나며,
周障屈曲하고 雜穢充徧하며
주장굴곡 잡예충변
담장은 가는 곳마다, 더러운 것 가득한데,
有五百人이 止住其中커던
유오백인 지주기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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