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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2] 20 - 클라라를 위하여
씬1. 지하철 안
아침 등교길. 정연 단어장 외우며 서 있다.
앞자리에 웬 말쑥한 젊은 남자-민, 졸고 있다. 옆의 아가씨에게 닿을듯말듯 졸고 있는 민.
정연 : ..(닿을듯말듯한 고갯짓에 자기도 모르게 쳐다보고 있다)
민 : (고개 툭 떨어지는) .. (깨더니 아무일 없다는듯 짐짓 표정관리. 정연과 눈 마주친다)
정연 : (모른척 해주고) .. (다시 보면)
민 : .. (그러나 또 졸고)
정연 : (그 모습에 풋 웃는다)
씬2. 학교 교문 앞
아침 등교길. 정연 단어장 중얼중얼 외우며 걸어오고 있다.
애라, 쪼르르 달려와 툭 친다.
정연 : 애라구나.
애라 : 너 그러구 다니다가 언제 한번 교문이랑 헤딩하겠다, 얘.
정연 : (웃고)
애라 : (앞머리 만지며) 아휴, 속상해!
정연 : 왜?
애라 : 아침에 앞머리 드라이가 안되잖아. 정연아, 내 머리 이상하지 않니?
정연 : 아니 괜찮은데?
애라 : 아무래도 앞머리 너무 짧게 짜른거 같애. 꼭 간난이같어. (하다가 정연 머리 보고) 니 머리도 만만친 않다?
정연 : (아무렇지 않게) 공부하는데 답답하잖아. 짧게 짤라달라고 했어.
애라 : 못말려. 그래두 좀 심했다, 얘. 공부도 좋지만 웬만하면 남들 눈도 좀 생각해라, 응?
정연 : (신경 안쓰는) 뭐 어때.
애라 : 하여간.. (못말리겠다는듯 고개 젓는)
씬3. 교실
지민 들어와 교탁에 서며.
지민 : 야, 다 음악실로 가!
뒤돌아서서 칠판에 ‘음악실로’라고 휘갈겨 쓴다.
유미 : 음악시간 자습 아냐? 선생님도 안 계시잖아.
지민 : 오늘부터 수업한대. 음악실로 가.
애라 : 뒷반 할머니 선생님 들어오나부다.
유미 : 그 마귀할멈? 으..
애들 투덜거리며 일어나 갈 준비.
씬4. 음악실
수업시간 전. 용구 빅뉴스, 빅뉴스, 하며 뛰어들어온다. 또 빅뉴스래.. 애들 시큰둥.
용구 : 빅뉴스, 드디어 우리 학교에 신선한 공기가 공급된다.
흥수 : 왜, 학교 상공에 대형산소통이라도 매달아준대?
용구 : 갑작스런 와병으로 잠시 우리의 곁을 떠나신 음악선생님을 대신하여
우리를 인도할 새로운 음악선생님께서 왕림하셨습니다.
애라 : 얘가 갑자기 왜 이렇게 존경이 늘어졌어.
용구 : 올해 대학을 갓 졸업한 새내기, 아주 파릇파릇한 햇병아리래.
흥수 : (눈 반짝) 진짜?
용구 : 그래, 그리구 음미대생들이 또 한 인물 하잖냐. 얼마나 이쁘것냐.
갓 졸업했으면 스물넷, 우리하곤 다섯살 차이, 그 정도야 가뿐이 극복할 수 있지. 안그러냐?
민 : 극복? 뭘?
용구 : (돌아보면)
민 웃고 서있다. 한손에 캔커피 든 채. 캐쥬얼한 양복차림, 대학생 분위기의 임시강사 민이다.
민 : 나 말이야?
용구 : 어.. (얼굴 일그러지는)
흥수 : (용구 쿡 쥐어박으며) 성별부터 밝혔어야지.
용구 : 난 당연히 여잔 줄 알았지.
남자애들 찌그러지는 대신 여자애들 수군수군거리며 관심어린 눈빛 빛난다.
민, 칠판에 ‘민영훈’이라고 이름 쓴다.
민 : 반갑습니다. 나정희선생님 대신 당분간 여러분의 음악수업을 책임지게 된 민영훈입니다.
나정희선생님은 많이 좋아지셨다니까 크게 걱정할건 없구요. 앞으로 만나는 동안 서로 좋은 시간 됐으면 합니다.
그럼 오늘은 첫시간이니까,
흥수 : 선생님, 자기 소개 안해요?
민 : 나한테 궁금한거 있어요?
애라 : 애인 있으세요? (질문 쏟아진다)
희진 : 첫 키스는 언제 하셨어요?
용구 : 주량은요?
민 : 음- 주량은 소주 두 병, 애인은 아직 없고 그러니까 첫 키스도 아직이겠죠?
애들 : (당장 야유) 거짓말..
민 : (웃고.. 책 펴며) 음악감상을 할 차례라고 들었는데-
아영 : 첫날인데 오늘은 대화의 시간 해요 선생님.
애들 : 맞아요..
민 : (음악CD 걸며) 이 음악들은 놓치면 후회할텐데? 여러분이 애인이 생겼을때 아주 유용할 무드음악 베스트 텐.
흥수 : (몸 꼬는) 첫날밤용도 있나요?
민 : (웃고) 들어봐.
플레이시키면 음악 (*적당한 선곡 바람) 흘러나온다.
민 : 무슨 곡인지 아는 사람?
애들 : .. (멀뚱멀뚱 쳐다보는데)
정연 : (E) 000의 000입니다.
민 : (돌아본다. 빙긋 웃어보이고 다른거 튼다) 이것도 알까?
정연 : 000 같은데요.
민 : 정연이 실력이 대단한데?
정연 : ..? (어? 내 이름을?)
민 : 지하철에서 공부를 너무 열심히 하길래 어떤 학생인가 이름을 좀 봤지.
애들 : (야유) 우우..
정연 : .. (민 보는)
씬5. 교실
영화반 잡담 중.
흥수 : 안좋지, 당연히. 남자가 늘면 그만큼 나를 바라보는 여자들의 시선이 분산되는데.
지민 : 하이구, 그동안은 너한테 눈길 준 강아지새끼라도 있구?
정연 : 난 신선해서 좋던데. 우리 학교에 워낙 젊은 선생님이 드물잖아.
성제 : 그래 얘기도 통할 것 같고.
지민 : 우리도 팍팍 물갈이 해야 돼. 젊은 피 수혈해야된다구.
애라 : 유머두 좀 있는거 같구, 관심 간단 말야.
유미 : 니가 관심 안가는 남자가 있기나 하냐?
성제 : 난 실기점수나 잘 줬으면 좋겠다. 음악점순 맨날 바닥이야.
지민 : 근데, 정연이 너한테 관심있는 거 같더라?
유미 : 정연이 미워하는 선생님이 어딨냐. 우리반 보증수푠데.
정연 : (웃고 마는)
용구 : (투표용지 들고 끼어들며 남자애들한테) 니들 다 냈냐? 냈어?
흥수 : (밀치는) 그래, 임마.
지민 : 뭘?
용구 : 그런게 있어. (의미심장한 미소) 점심시간에 중대발표가 있으니까 모두들 기대해라?
지민 : 또 뭔 꿍꿍이야? 뭔데?
흥수 : 이따 들어봐라.
씬6. 교무실
명교감, 선생들에게 민 인사시키고 있다.
명 : 아침에 시간이 없어서 미처 인사를 못했습니다. 뭐, 일주일이긴 하지만, 나정희 선생 대신 2학년 음악을 담당해주실
민영훈선생입니다. 지금 대학원에서 음악교육을 전공하는 실력있는 강사선생님입니다.
교단은 처음이니까 많이들 도와주세요.
민 : (씩씩한) 잘 부탁드립니다. 많이들 도와주십시오.
민, 돌아가며 악수, 인사한다. 반가워요, 잘해봅시다.. 인사들 나누고.
일평 : 신고식 해야되는 거 아냐? 아무리 임시라지만 할 건 해야지!
민 : 시간 한번 내세요. 제가 선배님들 모시고 확실하게 한번 사겠습니다.
광도 : 이 친구 아주 시원시원해서 좋구만.
유란 : 첫 수업 어땠어요?
영훈 : 재밌었습니다.
민주 : (뜻밖) 재미요? 첫수업이 재밌어요? 안떨리구요?
민 : 전 재밌던데요? 애들하고 얘기도 잘 통하구요.
일평 : 호오, 신세대라 다르구만. 이젠 이재하, 나민주도 구세댄가봐.
재하 : (괜히 떨떠름)
씬7. 교실
점심시간. 지민, 유미, 정연, 애라, 음료수 들고 들어온다.
남자애들 휘익- 휘파람 불고 박수하며 환호성 올린다.
여자애들 : ? 뭐야?
용구 : (노래) 컨그레츄레이션- 컨그레츄레이션- 정애라양, 1등 당선을 축하합니다.
애라 : 1등? 뭘?
용구 : 정애라양이 우리반 여학생 인기투표 1위로 뽑혔습니다. 와--
애라 : (반색) 어머 진짜?
용구 : 그래, 그리구 우리가 분야별로도 뽑았거든. 미스 마스크, 미스 몸매, 미스 다리, 그리구 미스 가슴까지-
유미 : (궁금) 가슴은 누가 뽑혔는데?
용구 : 미스 가슴이 누구냐 하면 말이야 (하는데 말 자르듯)
정연 : (E 날카로운) 이용구! 너 그렇게 할 일이 없어?
순간 찬물 끼얹은 분위기. 애들 돌아보면.
정연 : 니들 눈엔 우리가 성적인 대상으로 보이니?
흥수 : (펄쩍) 성적인 대상이라니, 우린 그냥 장난으로-
정연 : (따지는) 친구라고 생각하면서 그런 인기투표를 해? 게다가 뭐 분야별? 아예 정육점 고기처럼 부위별이라고 하지 왜?
이것두 일종의 성상품화야.
용구 : 야, 니가 무슨 여권운동가라도 되냐? 뭘 그렇게까지 흥분하고 그래? 같은 반 친구들끼리 애교로 넘길 수도 있는거 아냐?
정연 : (교탁앞으로 쫓아나가서 용구가 들고 있던 투표용지 뺏으며) 그런 애교라면 하나도 고맙지 않으니까
다시는 이런 유치한짓 할 생각마!
용구 : (몰아붙이는 정연의 말에 은근히 부아난다) 에이 씨, 뭐야! 별것도 아닌걸 가지고 길길이 날뛰고!
나가버린다. 덩달아 기분나빠 나가는 흥수.
정연 쓰레기통에 투표용지 버리고 자리로 간다. 그런 모습 보며 빙그레 웃는 태훈과 형주.
정연, 자리에 와서 앉는다.
유미 : 야, 애들 장난가지구...
정연 : 장난? 배유미, 너도 남자애들이랑 똑같애. 뭐? 가슴은 누가 뽑혔냐구?
유미 : (찔끔) 난 그냥 궁금해서 물어봤지.
정연 : 그게 왜 궁금하니, 화가 나야지. 그렇게 아무 생각없이 구니까 남자애들이 우습게 보는거야.
애라 : 그래, 아무도 넌 우습게 안볼거야. 무섭게 보지.
정연 : (보면)
애라 : 그런거 할 수도 있는거지 뭘 그러냐. 선생님 인기투표하고 연예인 인기투표 하는데 여자애들 놓구 하면 안되냐?
(약올리는) 너 혹시 니 이름 한개도 안 나왔을까봐 그러는거 아니니?
정연 : (기막힌) 뭐어? 정말 유치하다. 넌 남자한테 잘 보이는게 그렇게 중요하니?
너 그 정도 수준가지고 제대로 된 배우 되겠어?
애라 : 여기서 배우 얘기가 왜 나와?
정연 : 조디포스터같은 배우 되겠다며? 아는지 모르겠는데 조디포스터는 예일대 출신이야. 4년제라도 가려면 공부 좀 해야되겠다.
애라 : 뭐? 야, 김정연! (씩씩대며 화난)
씬9. 도서실
신화, 성제 들어선다.
공부에 열중하고 있는 정연 보인다. 책과 참고서 등 빼곡한 책상, 몰두하고 있는 정연.
신화, 가방에서 책 꺼내다가 정연 발견.
신화 : 정연이 여기 와있었네?
성제 : 기분이나 좀 풀렸나 모르겠다.
신화 : 그런거 담아두지 않는 애니까 괜찮을거야.
성제 : 정말 정연이하고 너때문에 난 기 팍팍 죽는다.
신화 : 우리가 뭘?
성제 : 유신화의 탁월한 천재성, 김정연의 불굴의 노력, 어느쪽에도 끼지 못하는 나는 늘 헤매기 바쁘다구.
이성제의 갈 길은 어딘지말야.
신화 : (웃고) 내가 천잰지는 모르겠는데 니 말이 사실이라면 정연이의 판정승인데. 노력은 머리로 못당하잖아.
성제 : 가끔 정연이 겁나. 여자애가 어쩜 저렇게 독하고 무섭냐.
한번 자리에 앉으면 기본 세시간, 공부할땐 옆에서 누가 굿을 해도 모르잖아.
신화 : 그렇게 말했다간 여자애 운운했다고 또 정연이한테 혼날걸?
성제 : 야, 이건 비밀이다. (웃는 둘)
정연쪽. 몰두하고 있는 옆자리에 누군가 와 앉는다.
민 : 열심이네?
정연 : (보면 민이다)
민 : (옆자리 앉아 책 펴며) 잘못하면 도서실에 화재 나겠어. 무슨 공부를 그렇게 열 올려서 해?
정연 : 곧 모의고사에요. 선생님은 웬일이세요?
민 : 나도 학교 가면 학생이야. 논문 써야되거든. (들고 온 캔커피 마시려다) 하나뿐이라 어떡하지?
정연 : 드세요. 전 커피 안 마셔요.
민 : 그래?
정연 : 캔커피 좋아하시나봐요?
민 : 응. 하루에 너댓개는 마셔. (CD플레이어 켠다. 정연이 들여다보자 이어폰 한쪽 주며) 들어볼래?
정연 : (들어보더니) 000의 000네요. 전 이거 000가 연주한거 있는데.
민 : 그래? 그거 귀한 음반인데? 이거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곡이야. 하루에 한번씩 꼭 들어.
민, 음악 들으며 책 편다.
정연 그런 민의 옆모습 본다. 느낌 있는 시선..
정연 : .. (같이 음악 듣는)
씬10. 학교 외경 - 다음날
일평 : (E 책 읽는)
씬11. 교실
일평의 수업시간. 일평 나른한 목소리로 교과서 읽어내려가고 있다.
일평 : (읽다가) .. (세진 엎어져 있는거 본다) 장세진, 장세진!
세진 : (부스스 일어나면)
일평 : 너 똑바로 못앉아!
세진 : .. (무표정한)
일평 : 자식이 지금 정신이 있어, 없어. 잘 해 임마, 너 보는 눈 많아. 너 빼내느라구 담임이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아? (혀차고)
세진 : ..
혜원 : (그런 세진 본다. 작게) 왜 그래? 어제 무슨 일 있었어?
세진 : (퉁) 없어. 술 먹어서 그래. (걱정하는거 느끼고) 아무일도 없어.
혜원 : .. (한편 다행스러우면서도 한편 안타깝고)
신화 : (이편에서 그런 혜원과 세진 보는)
씬12. 교정 일각
쉬는 시간. 비디오 테입 내밀어진다.
혜원 : 잘 못하겠어. 미안한데 많이 못 찍었어. 보구 쓸만하지 않으면 버려.
신화 : 혜원아, 인내심을 가져.
혜원 : (조금 웃으며) 내 딴엔 그래도 많이 노력한거야. 그거 찍는데도 힘들었다구.
신화 : 세진이 말야. 세진이도 쉽진 않을거야. 그래도 기다려야 하지 않겠니?
혜원 : ..
신화 : 난 니가 잘 할거라고 믿어.
혜원 : .. (가고)
신화 : (그런 혜원 보는)
씬13. 복도
태훈 형주 음악책 들고 온다.
형주 : 계속 자습이나 했으면 좋았을걸. 그럼 모의고사 준비하는데 요긴하게 썼을텐데.
태훈 : 그래도 여자애들은 꺼뻑꺼뻑 죽잖냐. 선생 멋있다고.
형주 : 여자란 족속들 한심해, 하여간.
지민 : (E) 그 족속한테서 태어난게 누구지?
형주 : (돌아보면)
지민 : (가운데로 오며) 사랑에 빠지면 한심하다고 하고 공부에 빠지면 독하다고 하고,
니네같은 아들들 낳아서 키워놓으면 이런 한심한 소리나 하고. 여자들 정말 힘들어, 알아? (둘 사이 뚫고 지나간다)
형주 : (어이없어 보면)
태훈 : (핏 웃는)
씬14. 음악실
정연 들어온다. 아무도 없다.
정연 : .. (밖 의식하며 얼른 교탁에 캔커피 올려놓는다)
그 순간, 음악실에 들어오던 유미, 그 광경 목격한다.
유미 : ..! (얼른 숨는다) ..? (다시 보며 정연이가 저런 짓을?)
지민 : (탁 치며) 뭐해?
유미 : 응? (도리도리) 아무것도 아냐.
유미, 지민 따라 들어오며 앉아있는 정연의 눈치 살핀다.
이어 왁자하니 애들 들어오고. 애라, 보온병과 예쁜 커피잔 들고 온다.
애라 : 어머 누가 이렇게 성의없이 인스턴트커필 갖다놨어? 이거 누구꺼야?
유미 : (순간 정연 보는데)
정연 : (못 나서고) ..
애라 : 누구야, 도대체. (반응 없자 캔커피 교탁 아래로 치워버리고 보온병에 담아온 커피 따른다)
정연 : ..!
유미 : (괜히 정연보다 더 긴장, 정연과 애라 번갈아본다)
애들 우우 장난섞인 야유 한다.
흥수 : 뭐냐, 가증스럽다, 치워라..
애라 : 뭐어. 니들, 손대지 마. (즐거운 표정)
정연 : ..
시작종 울리고. 민 들어온다.
민 : 좋은 아침-! (커피 보고 흐음.. 눈 지그시 감고 향기 맡는) 향기 좋은데? 누가 이렇게 좋은 선물을 준비했지?
흥수 : 정애라요.
용구 : 선생님을 엄청 사모하나봐요.
애라 : 너어! (눈 흘기면서도 민의 반응 기대한다)
민 : (마시고) 이야.. 딱 내 취향인데.
애라 : (좋아하는) 정말요?
민 : 고마워, 잘 마실게. 그럼 오늘은 애라에게 바치는 음악으로 시작해봐야겠는데?
애들 또 야유..
정연 : ..
씬15. 교실
영화반 아이들 얘기중. 애라 의기양양 자랑하고 있다.
애라 : 니들 아무도 넘보지마. 내가 찍었어.
유미 : (얼른 정연 본다)
정연 : (무표정)
흥수 : (비아냥) 우성이 오빤 어떡하구?
애라 : 우성이 오빤 스크린의 애인이지.
지민 : (얼씨구) 안재욱은 브라운관의 애인이구?
애라 : (애들 비웃는데 아랑곳 않고 민에 관해 늘어놓는다) 전공은 피아논데 악기는 이것저것조금씩 하나봐.
집이 청주라 서울에서 혼자 자취한대. 아침도 못 먹구 다니구 너무 불쌍해. 남자 혼자 자취하는게 오죽하겠니.
정연 : (언제 저렇게 친해졌지..? 소외감 느끼고)
애들 : (하이고..못말려하는 얼굴들인데)
애라 : (개의치 않는) 아들만 삼형젠대 그중 막내래. 확실히 은근히 막내티가 나는거 같지 않니? 쫌 귀여운데도 있구.
흥수 : 아주 호구조사 다 했구나. 왜, 시어머님한테 인사도 드리지?
애라 : 나 머리 자르면 어떨까? 카트머리를 좋아한다는데.
흥수 : 야야 더 이상 못들어주겠다. 가자, 가.
흥수 선동에 성제 신화 자리로 돌아앉고.
애라 : (여자애들쪽으로 다그치며) 어때, 응? 머리 자르면 이상할까?
지민 : 남산위에 달 하나 더 뜨겠지 뭐. 쟁반같이 두웅근 애라 달이 띠잉-
애라 : (째리는) 야! (거울 보며) 아무래도 볼 살을 좀 빼야 머릴 자를수 있겠지?
정연 : (한심) 정애라! 남자 하나 때문에 그렇게 호들갑을 떨어야겠니?
애라 : 야, 너 왜 사랑을 빠진다고 표현하는지 알아? 함정에 빠지듯 뻘밭에 빠지듯 자기도 모르게 무너지는거,
그게 사랑이라 그런거야.
유미 : (감탄) 애라 넌 사랑 얘기만 나오면 정연이보다 말 잘하더라.
정연 : 글쎄 과연 그런 모습이 옳은건지 잘 모르겠다. (일어나 가고)
애라 : 아유 잘났어, 정말. 누가 범생이 아니랄까봐. 쟨 왜 저렇게 꽉 막히고 답답한거니?
지민 : 틀린말은 아닌데 뭘.
애라 : 정연이 쟨 나중에 남자가 사랑한다고 고백하면 왜 날 좋아하는지 서론본론결론으로 설명하라고 할 애야.
하긴, 그럴 남자나 있을지 모르지. (다시 거울 보고)
씬16. 교사 앞
흥수 뛰어온다. 영화반들 모여있다.
지민 : 빨리와, 늦겠다.
흥수 : 알았어. 잠시 자연의 부름에 응답하느라구 그랬지.
유미 : 자연?
흥수 : 화장실.
유미 : (코 막고) 저리 가.
신화 : 빨리 가자.
그때 민 뒤에서 오며.
민 : 야 이건 무슨 지하조직이지? 분위기가 꽤 비장한데?
정연 : (반가운데)
애라 : (E 호들갑스럽게 반색하는) 어머, 선생님.
정연 : (애라 보는)
애라 : 저희 영화반이에요.
지민 : 그 이름도 유명한 채플린.
민 : 아, 애라가 자랑하던? 정연이도 영화반이네?
애라 : 우리 오늘 영화 보러 가거든요. 아, 잘됐다! 선생님도 같이 가세요.
흥수 : 어유.. (속보인다는듯 야유)
민 : 별로 날 반기지 않는거 같은데?
지민 : (짐짓) 우린 같이 안가구 싶은데요 그랬다간 애라가 울걸요 아마.
애라 : (장난스레 팔짱끼는) 같이 가세요, 선생님.
정연 : (팔짱까지?) ..
신화 : 같이 가세요. 환영입니다.
애들 : 같이 가세요.
민 : 그래? 그럼 한번 끼어볼까?
애들 좋아하며 함께 간다. 정연, 민 옆에 딱 붙어선 애라 신경 쓰인다.
씬17. 영화관
영화보는 민과 영화반. 스크린에 몰두하고 있는 신화, 지민, 성제의 모습 차례로 보이고
그 옆에 정연, 스크린이 아닌 앞좌석에 시선이 가 있다.
앞좌석 보면 흥수, 유미 옆에 애라와 민 나란히 앉아있다.
애라 : (고개 돌려 뭐라고 얘기)
민 : (끄덕이며 웃는)
정연 : .. (그런 민과 애라 본다)
정연 스크린이 눈에 들어올리 없다. 민과 애라의 다정한 모습에 속상하기만 하다.
씬18. 분식집 - 밤
둘러앉은 민과 영화반. 애라 여전히 민의 옆에 붙어앉아있다. 정연 맞은편에 자리잡고.
CG 죽이더라, 난 음악이 좋던데? 등등 *영화에 따라 적당한 대사들 하고.
민 : (수저 놓으려하면)
애라 : (얼른 가로채며) 어머 선생님 이런건 여자가 해야죠. 제가 해드릴게요. (냅킨 놓고 수저 얌전히 놓는)
정연 : (그런 애라 행동 보기 싫고)
민 : (굳은 표정으로 앉아있는 정연 보고) 정연인 뭐 기분 안좋은 일 있니? 표정이 왜 그렇게 굳었어?
정연 : 아니에요.
애라 : 정연인 원래 잘 안웃어요. 특히 남자 앞에서는요.
민 : 그래?
흥수 : 정연인 영화반의 이성이에요. 언제나 흔들리지 않는 냉철한 이성. 나는? 영화반의 먹성. (하며 유미 앞의 음식 뺏어먹는)
유미 : 야아!
애들 웃고.
정연 : ..
씬19. 지하철역 티켓팅 - 밤
자판기에서 티켓이 나오고.
정연 : 혼자가도 돼요, 선생님.
민 : 마지막 주자한텐 특별히 바래다주는 혜택을 줘야지.
시간도 늦었구, 어차피 나두 같은 방향이니까, 부담 안가져도 돼. 알았지? (앞장서고)
정연 : ..
씬19-1. 지하철 - 밤
같이 음악들으며 CD케이스 보며 얘기 나누는 민과 정연. 가끔 웃음이 터져나오고...
씬20. 정연의 집 근처 - 밤
정연과 민 산책하듯 얘기하며 걸어온다.
민 : 그럼 아버지 덕분에 클래식을 많이 아는구나. 아버님이 외국에 자주 나가시나 보지?
정연 : 가끔요. 그때마다 음반을 많이 사오세요.
민 : 그랬구나.
정연 쌀쌀한 듯 팔을 감싸쥔다.
민 : 추운가 보구나?
정연 : 아니에요.
민 : (겉옷 벗어 걸쳐주며)
정연 : (당황) 괜찮아요 선생님. 다 왔는데.
민 : (씨익 웃는) 그래두. 요즘 아침저녁으론 쌀쌀해. 동복입을 때 안됐나?
정연 : (어색하게) 10월부터 입어요.
민 : 그렇구나. (심호흡) 밤공기 좋다. 이젠 완전히 가을이야, 그렇지?
정연 : (어렵게) 저번에 그 음반 들어보시겠어요? 000가 연주한거요.
민 : 빌려줄래?
정연 : 내일 갖다드릴게요. 다 왔어요.
민 : 그래? 조심해서 들어가라.
정연 : 네. 고맙습니다.
민 : 고맙긴. 잘 자라! (가고)
정연 민의 뒷모습 보고 섰다. 마치 첫 데이트를 한 소녀처럼 뿌듯한 기분이다.
미소 머금은채 돌아서는 정연. 발걸음 가볍다.
씬21. 교무실 - 다음날
정연 들어와 민 찾는다. 뒤이어 들어오는 재하.
재하 : 어, 정연이가 웬일이야? 나보러 왔니?
정연 : 아뇨.
재하 : (정연 시선 가는거 보고) 민선생님? 음악실에 가셨는데.
정연 : 예. (인사하고 나간다)
일평 : 김정연은 이선생 팬인줄 알았더니만, 이제 아주 다 뺏겼네?
재하 : 에이 또 왜 그러세요?
일평 : (웃고)
씬22. 음악실
정연 CD 들고 온다. 민에게 좋은 음악 들려줄 생각으로 기분이 좋다.
정연 : 선생님,
민 : 정연이 왔니?
정연 : (CD내밀며) 이거요.
민 : CD가져왔구나. 들어볼까?
민 CD 건다. 그때 애라 온다.
애라 : (빠꼼히 들여다보며) 선생님-
민 : 애라 웬일이냐?
애라 : 선생님, 점심 안드셨죠?
애라 쪼르르 들어와 테이블 위에 김밥 펴놓는다. 정성스레 싸고 한껏 모양 낸 김밥도시락.
정연 : ..
민 : 이야.. 이거 완전 예술인데?
애라 : 맛도 보세요. 맛은 더 좋아요.
민 : 너 이거 엄마가 싸주신거 아냐?
애라 : 아니에요. 제 솜씨에요. 새벽부터 이거 싸느라구 얼마나 힘들었다구요.
민 : 진짜야? 음, 맛있는데? 정연아, 너도 와서 먹어봐.
애라 : 그래, 정연아 너두 먹어.
정연 : 아니에요. 저 점심 먹구 왔어요. 저 그만 가볼게요.
민 : 그래?
인사하고 나오는 정연. 그 뒤로 들리는 민과 애라의 웃음소리가 정연을 밀어 내는듯 들린다.
씬23. 교실
재하 종례중.
재하 : 요즘 바람도 선선하고 뭐든 하기 좋은 계절이다. 곧 추석연휴도 기다리고 있고 주어진 시간이 많은 때니까
각자 할 일들 놓치지 말고 해두도록. 알겠나?
애들 : 예.
재하 : 이상!
인사하고. 애들 일어선다.
지민 : 오늘 애라 차례던가?
애라 : 뭐가?
지민 : 영화평말이야.
애라 : 아, 그거...
지민 : 왜? 준비안했어?
애라 : (둘러대는) 했어.
성제 : (동일에게) 가자.
동일 : 정말 스터디 내가 같이 해도 괜찮은거야?
흥수 : 당근이지. 편집 스탭이 빠진다는게 말이 되나.
동일 : 고맙다. 열심히 할게.
흥수 : (어깨 걸며) 이번 가을도 같이 한번 불태워보자구.
애들 어울려 나간다.
씬24. 영화반
영화반과 동일 둘러앉았다.
신화 : 오늘 공부하기로 한 영화는 델마와 루이스야. 우선 감상평 써오기로 한 사람. (하며 애라 보면)
애라 : .. (안해왔다) ..
지민 : 너 안해왔구나?
애라 : 얘기할게. 뭐 꼭 써와야되니? 말로 하면 되지. 내가 이 영화에서 제일 기억에 남는건 브래드피트야.
(영상 떠올리며) 모자를 쓱 치켜올리면서 씨익 웃을때랑 그윽하게 지나데이비스를 쳐다볼때의 그 눈빛..
어쩜 그렇게 상큼하게 섹시할 수가 있을까. 조연인데두 화면에 꽉 차잖아. 브래드피트는 이미 그때 나의 연인이 되었어.
어이구 하여간.. 애들 웃고 마는데 정연 정색하고.
정연 : 그게 영화평이야?
애라 : 그럼 아냐? 왜, 꼭 어려운 말 써야만 평이 되는거니?
정연 : (김밥 빗대어) 다른 시간 조금만 투자하면 그거보단 나을텐데.
애라 : 뭐?
정연 : (애들 앞이니까 말 안하고) 적어도 그런 평을 원한건 아니었어.
애라 : (비죽이는) 그래 너야 복잡하고 어렵게 얘기하겠지. 근데 그것두 일종의 허위의식인거 같다?
그냥 느낀대로 솔직하게 편안하게 얘기하면 되지.
정연 : 그렇다고 해서 남자배우 멋있다 죽인다, 그런 말이 영화평은 아냐. 남자배우 하나 보려구 영화보는건 아니니까.
애라 : 아니, 맞어. 남자배우 하나 보려고 보기도 해. 넌 못 그러지? 너 혹시 무슨 결벽증 있는거 아니니?
남자니 사랑이니 연애니 그런말만 나오면 왜 그렇게 싫어해?
흥수 : (말리는) 니들 왜 그래. 손님까지 있는데 쌈질이야?
정연 : 난 저급하고 유치한 방식의 관심이 없을 뿐이야.
애라 : 남자 사랑 연애, 그런건 다 저급한거니? 내가 대배우되기 어려울지 모르지만 너두 좋은 시나리오 작가가 되기 힘들겠다.
그렇게 꽉 막히고 답답하고 결벽스러워서 어떻게 인생을 이해하고 작품을 쓰겠어.
정연 : 뭐?
애라 : (완전 악담하는) 너 평생 연애두 못할거다. 너같은 여자앨 어떤 남자가 좋아하겠냐.
아마 짝사랑이나 하다가 노처녀로 늙어죽을걸?
지민 : 정애라!
정연 : (파르르..) 너같은 애하고 정말 스터디 같이 못하겠다. (나가버린다)
성제 : 애라야, 너무 심하잖아.
애라 : 내가 뭘, 나도 당했는데.
흥수 : 그렇다구 그렇게 유치찬란하게 나와야겠냐? 정연이 얼굴 질리는거 못봤어?
애라 : (억울한) 왜 나만 갖고 그래?
씬25. 교정
지민 유미, 정연 찾으러 나왔다.
지민 : 어디 갔지?
유미 : 정연이 화 많이 났나봐.
지민 : 나지 안나냐. 그나저나 얜 도대체 어디 간거야!
씬26. 영화반
여자애들 없고 신화 성제 흥수 동일만 있다. 스터디 중단되고 애들 허탈하다.
신화 : 스터디 첫날부터 이런 모습 보여서 미안하다.
동일 : 괜찮아.
흥수 : 에이 기집애들 때문에 스터디도 못하고 영화반 망신살만 뻗치고.
동일 : 논쟁 치열하던데? 솔직히 좀 재밌기도 했어.
흥수 : 재밌긴 야, 난 무섭다. 난 사실 정연이 무서워. 무슨 말만 하면 따따따 따지고 정색하고 덤비고 어휴!
성제 : 그게 정연이 매력이기도 하잖아.
흥수 : 그럼 너 정연이 같은 애랑 사귀라고 하면 사귈래?
성제 : (순간 머뭇)
흥수 : 거봐, 남자 맘 다 똑같다구. 정연이 같은 애 솔직히 피곤하지. 무슨 말만 하며 따지고 남자 이기려 들고,
야들야들 부드러운 구석이라곤 눈꼽만큼도 없구, 게다가 잘 웃지도 않구, 걔랑 살다간 아마 제 명에 못 죽을걸.
신화 : 그런 스타일 좋아하는 사람도 있지 왜.
흥수 : 그건 특이취향이지. 모름지기 여자친구란, 친구들 모이는 자리에 나가서 얘가 내 여자친구야, 그렇게 말할 때
부끄럽지 않은 애였음 싶잖아. 그런 기준으로 봤을 때 정연인 아니지. 애라 말이 다 틀린건 아니라구.
씬27. 영화반 앞
정연, 안의 얘기 듣고 있다.
흥수 : (E) 정연인 공부 계속 열심히 하는게 좋을거야. 그래야 나중에 혼자 살아도 폼나게 돈벌고 살지.
솔직히 정연이 누가 데려가겠냐.
정연 : .. (흥수마저 저런 소릴.. 남자애들이 날 이렇게 생각하는구나.. 충격 받았는데)
지민 : (유미와 오면서) 정연아,
정연 : (대꾸않고 간다)
씬28. 영화반
지민 : (E) 김정연!
소리에 흥수 웁- 입 막는다. 지민 유미 들어온다.
지민 : 애라도 가버리고 정연이도 가버리고 오늘 스터디 꽝이다, 야.
흥수 : (쫄아서) 정연이 밖에 있었냐?
유미 : 응.
흥수 : (울상) 나 이제 어떡하냐.
그때 재하 퇴근차림으로 들어온다.
재하 : 스터디 잘 되 가나? (분위기 느끼고) 우리 영화반 분위기가 왜 이래?
좀전에 보니까 정연인 어디 가는거 같던데? 무슨 일 있었어?
신화 : 토론하다가 정연이하고 애라가 언쟁이 좀 붙었어요.
재하 : 자식들, 무지하게 열심히 토론했구만. 좋아, 그런 발전적인 언쟁은 얼마든지 좋은거야. (동일 보고) 근데 뉴페이스네?
동일 : 저도 스터디 같이 하려구요.
재하 : 으흠, 좋아 좋아. 영화반이 발전하는 소리가 들리는데?
하다가 막히면 나 부르고 배고파도 부르고. 알지? 그럼 난 간다. (나가면)
유미 : (잠깐 생각.. 안되겠다, 좇아나간다)
흥수 : 야 배유미, 넌 또 어디 가?
씬29. 교정
유미 재하에게 의논하고 있다.
재하 : 뭐? 삼각관계?
유미 : (힘주어 끄덕이는) 네. 그래서 둘이 불꽃 튀기게 싸운 거에요.
재하 : (웃는) 애라는 몰라도 정연이가 그럴 애냐?
유미 : 진짜에요, 선생님. 여자들이 질투하면 얼마나 무서운데요.
재하 : (웃다가) .. (혹시..?)
씬30. 거리 몽타쥬
화장품 가게의 광고포스터. 모델들 얼굴 툭 툭 인서트 느낌으로 보이고.
교복차림의 정연, 한껏 여자다움을 뽐낸 모델들 보고 섰다. 그러고보니 유리 창에 비친 자신이 초라해보인다.
최신유행으로 멋을 낸 멋쟁이여자들이 보무도 당당하게 자신있는 걸음걸이로 지난다.
정연, 촌닭처럼 그런 여자들 쳐다본다.
정연 : ..
민주 : (E) 정연이가요?
씬30-1. 교직원휴게실
재하와 민주 얘기중이다.
민주 : (재밌다는 듯) 야, 정연이한테두 그런 면이 있었나?
재하 : 그래서 더 걱정이에요. 왜 늦바람이란 거 있잖아요.
민주 : 늦바람이요?
재하 : 네. 그래서말인데... 제가 정연이랑 얘길해보면 어떨까 싶어서요.
민주 : 무슨 얘길요?
재하 : 그걸 알면 제가 나선생님한테 자문을 구하겠습니까?
민주 : 그건 선배님답지 않은 모습인데요?
재하 : ?
민주 : 아무리 선생님이라고 해도, 제자의 감정까지 터치하는건 무리 아닌가요?
재하 : 정연인...
민주 : 정연이니까 더 걱정된다. 이거 편견이고 차별이에요. 기다려 보세요.
그런 문젠 그 누구도 아닌, 본인 스스로 겪고 해결해야 된다구요. 정연이한테도 좋은 경험이 될거에요.
재하 : ... (과연 그럴까?)
씬31. 교무실
들어서는 재하.
민 : (퇴근준비하다가) 퇴근 안하세요?
재하 : 해야죠. 아, 민선생,
민 : 네?
씬32. 교정
재하, 민에게 커피 뽑아준다.
민 : 잘 마시겠습니다.
재하 : 특별히 힘든건 없죠?
민 : 네. 아직까지는요.
재하 : 저기... 뭐 다른 뜻에서 하는 말은 아니니까, 오해는 하지 마세요.
민 : ?
재하 : 내가 처음 부임했을때 제일 힘들었던게 여학생들 대하는 거였어요. 꼭 고무공 같애서 어디로 튈지도 모르고
이쪽에서 얘기 하는걸 오버해서 받아들이기도 하고 알 수가 없거든요.
민 : 무슨 말씀이신지...?
재하 : 여학생들 대할땐 좀 조심하는게 좋을거에요. 쓸데없는 오해 피하려면요.
민 : (동의 않는) 글쎄요. 전 순수한 마음으로 애들을 대하면 아무 문제 없다고 생각되는데요.
애들 어린애 아니잖아요. 사리판단 다 할만큼 컸고, 제 의도가 순수하면 애들도 그렇게 받아들이겠죠.
재하 : 내 말은, 생각지 않은 결과라는 것도 있단 얘깁니다.
민 : 전 애들을 믿습니다. 애들을 미성숙하게 보는건 어른들의 시각 아닐까요? (웃으며) 이선생님 노파심이 크신거 같애요.
재하 : .. 글쎄요.
씬33. 지민의 집 앞 - 밤
지민(사복차림) 나온다. 정연(교복차림) 기다리고 있다.
지민 : 정연아, 너 아직두 집에 안갔어?
씬34. 집 근처 벤치 - 밤
지민 정연 나란히 앉아 얘기중.
정연 : 내가 그렇게 꽉 막히고 답답하고 결벽스럽니?
지민 : 아깐 애라가 막말한거지, 워낙 화가 났었잖아. 그리고 흥수도 농담이었대. 미안하다고 나한테 그러더라.
정연 : 솔직히 말해줘. 니가 보기에 나 어때?
지민 : (망설이다) 뭐 좀 깔끔하고 논리적이지. 가끔은 좀 지나친것 같기도 하고.. 하지만 그게 니 매력이야.
너야말로 우리 영화반의 이성이요 지성 아니냐. 너까지 우리처럼 헤벌레하면 영화반 잘 굴러가겠냐.
정연 : 그러니까 친구로서의 편안함이나 여자다운 매력은 없다는거네?
지민 : (갑자기 이상하다) 여자다운 매력?
정연 : (끄덕이는) 그래, 내가 생각해도 그런건 없어.
지민 : 야 그런게 뭐 필요하냐. 그런거 없어도 난 잘만 살잖아.
정연 : 넌 성격이 좋잖아. 다들 널 편하게 생각하구 좋아하구. 생각해보니까 아무도 난 편하게 대하질 않는거 같애. 내 탓이겠지?
지민 : 정연아, 너 갑자기 이상하다? 갑자기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됐어?
정연 : .. (민 때문이지만 차마 말할순 없고) 글쎄.
지민 : .. (살피듯 본다)
정연 : 갈게.
지민 : (아무래도 이상하고)
씬35. 교실 - 다음날
흥수, 정연 앞에서 쭈빗거리며 사과한다.
흥수 : 정연아, 어제 내가 한 말은 말야..
정연 : 됐어. 너때문에 그런거 아냐. (가고)
흥수 : (울상) 거봐, 내가 사과 안받을거라구 했지? 난 정연이 무섭단말야. 괜히 사과하라구 그래가지고..
신화 : 이상하다. 정연이답지 않은데? 전 같으면 그런말쯤 신경도 안썼을텐데.
유미 : 어떻게 그런말에 신경을 안써. 평생 연애도 못할거라는데.
지민 : 이게 다 애라 때문이야.
성제 : 애란 뭐래?
지민 : 걘 또 걔대로 화났지 뭐. 절대 먼저 사과 안한대.
흥수 : 하여간 여자애들 때문에 시끄러워요, 시끄러워.
지민 : 거기서 여자가 왜 나오냐? 남자가 싸우면 괜찮고 여자가 싸우면 시끄러운거야?
흥수 : 너까지 왜 그러냐. 제2의 김정연같다, 야.
씬36. 복도
정연 지나가는데 복만과 일평 지나간다. 안녕하세요, 덤덤하게 인사하는 정연.
지나는데 뒤에서 애라 인사하는 소리 들린다.
애라 : 안녕하세요?
생글생글 웃으며 애교 넘치는 인사하는 애라. 선생님도 마주 웃으며 받아준다.
복만 : 저 녀석은 볼때마다 생글생글, 아주 애교덩어리에요.
일평 : 보기 좋잖아.
정연 : ..
애라 정연과 마주친다. 뾰로통 못본체하고 지나는 애라.
씬37. 화장실
정연 거울앞에서 좀전의 애라처럼 활짝 웃으며 인사해본다.
정연 : 안녕하세요? (억지로 웃는 자신의 얼굴이 어색하기만하다) .. (이건 아냐, 고개 젓는)
씬38. 화장품 가게 앞
어제의 그 화장품 가게 앞.
정연, 여자들의 얼굴 포스터 다시 보고 섰다. 문 밀고 들어간다.
씬39. 화장품 가게
정연 거울 보고 립스틱 발라본다. 쑥스러워 거울 치운다. 그랬다가 다시 돌려지는 거울.
생각보다 괜찮은것도 같은데..? 다시 보니 조금 자신감이 생기는 정연.
씬40. 몽타쥬
- 액세서리점
정연 머리핀과 헤어밴드 구경한다. 새 옷 입고 있다. 하나쯤 해보기도 하고.
-서점.
새로 산 머리핀 한 정연, 잡지책의 ‘패션센스’ 따위 코너 열심히 보고 있다.
씬40-1. 정연의 방
언니 옷쯤으로 보이는 검정원피스를 들고 후다닥 들어오는 정연. 조심스럽게 문을 걸어잠그고, 거울앞에 가서 서본다.
그리고는 낮에 화장실에 해본 것처럼 애라 흉내내며 ‘안녕하세요’ 인사해본다.
아까보다는 덜 어색한 듯. 기분이 묘한 정연.
씬41. 교실
지민 열심히 숙제하고 있다. 유미 들어와 앉으며.
유미 : 야, 숙제 빨리 걷어오래.
지민 : 알았어. 어휴, 그놈의 잠이 웬수다, 웬수.
유미 : 아직 다 안했어?
지민 : 엉.
유미 : 그럼 정연이꺼라도 베껴.
지민 : 그럴까?
지민, 정연의 책상속에서 노트 꺼내다가 포장지에 싼 선물을 발견한다.
유미 : 그게 뭐야?
지민 : 몰라. (아무생각없이 도로 넣어놓고 숙제 베끼기에 바쁜)
씬41-1. 음악실
들어서는 민. 교탁위에 놓인 선물을 발견한다. 카드를 열어보는...
정연 : (E) 그날 에스코트 해주신 보답이에요. 선생님한테 잘 어울릴것 같아서 하나 골랐어요.
씬42. 교무실
민, 선물을 만지작거리며 통화하고 있다.
민 : 그래, 선배들 연주횐데 꼭 가야지. 같이 갈 사람 없으면 혼자라도 갈게. 알았어.
전화끊고는 선물을 보다가 재하를 돌아본다. 아무래도 재하가 마음에 걸리는 듯...
나가는데 교무실로 들어오는 지민과 유미. 노트를 한무더기 들고 온다.
지민 : 선생님, 숙제요.
민주 : 응, 수고했어.
유미 : (나가다가 민 책상위에 놓인 선물-정연의 것과 같다) 어머..? (지민 툭 친다)
지민 : 왜? (가리키는거 보고) 어..? (유미와 시선 교환)
씬43. 교무실 앞 복도
지민 유미 특종 잡은(?) 얼굴로 나온다.
지민 : 맞지? 맞지?
유미 : 맞어. 아까 분명히 그 포장지였어. 크기두 똑같구, 그거야.
지민 : 근데 정연이가 선생님한테 선물을 다 해?
유미 : (단호하게) 정연이 민선생님 좋아하는게 맞구나.
지민 : 뭐?
유미 : 이게 처음이 아니라니까. 전에 음악수업 때 캔커피 갖다놓은 거, 그거, 정연이가 그런거야.
지민 : (눈 동그래진다) 진짜?
씬44. 음악실
음악수업 중. 애들 노래 부른다.
지민, 유미 노래는 건성이고 정연을 관찰하느라 바쁘다. 정연의 시선이 민을 향할 때마다 열심히 좇아가고.
씬45. 음악실 - 시간경과
수업 끝나고 아이들 나간다. 애라 특히 더 발랄하게 인사하고 나가고.
정연 뒤에 처진다.
민 : 정연아, 선물 고맙다.
정연 : (웃고) 네.
민 : 저기 말이야.
정연 : 네?
민 : 아, 아니다. (문득) 참, 혹시, 정연이, 연주회같은 거 관심 있니?
정연 : 네?
씬46. 영화반
영화반 모였다. 애라, 정연 없고.
흥수 : (놀란) 진짜야?
모두 놀란 얼굴..
신화 : (곧 끄덕이는) 그럴수도 있지 왜. 정연이라고 사람 아니냐.
성제 : 그래도 이건 뜻밖인데. 신선하기도 하고. 이거야말로 정말 빅뉴스다.
흥수 : 그럼 뭐냐, 애라하고 정연이가 사랑의 연적인가? 그래서 요즘 둘이 은근히 불꽃 튀겼구나.
히야, 이러다 둘이 머리끄뎅이잡고 싸우면 어떡하냐.
지민 : 어떡하긴, 그럼 안되지. 둘은 물론 우리 영화반을 위해서도 그건 안되지. 영화반 풍비박산 날 일 있니.
유미 : 신화야, 뭐 좋은 방법이 없을까. 니가 우리반 해결사잖아.
신화 : 이건 나두 전공이 아니라 모르겠는데?
흥수 : 이런일에 전공자는 정애라 밖에 없는데 본인이 사건에 연루됐으니 자문을 구할수도 없고 참..
유미 : 둘이 잘 화해하라고 하면 안될까.
지민 : 너같으면 그런 말 듣겠냐.
성제 : 이런 문제는 옆에서 뭐라고 한다고 될것도 아니고 시간이 해결하도록 놔두는 수밖에 없어. 안그래?
신화 : 성제 말이 맞는거 같다. 우리가 나서서 될게 아닌거 같애.
지민 : 니들 이거 절대 아는체 하면 안돼! 남들한테도 얘기하면 안되고.
흥수 : 당근이지. 말이라구.
그때 문 벌컥 열리며 들어서는 애라. 다들 갑자기 벙어리가 된다.
애라, 애들이 왜이러나 싶은...
유미 : (벌써 입이 근질거린다)
씬47. 도서실
한, 유미의 숙제 베끼고 있다. 유미 말하고 싶어 입이 근질거려 죽겠다.
한 : 할 얘기 있어?
유미 : 응? 아니. 근데 너 왜 갑자기 공부하고 그래?
한 : 숙제 베끼는게 무슨 공부야.
유미 : 전엔 베끼는것두 안했잖아.
한 : 가을바람이 부니까 괜히 공부도 하고 싶고 그래.
유미 : 진짜? 남들은 바람 난대는데. (못참겠다. 비밀이라는듯) 정연이, 누구 좋아한다.
한 : 그래?
유미 : 안놀래?
한 : 걔라고 뭐 특별나냐. 사람 좋아하는건 어쩔수 없는거지.
유미 : (살피는) 너두 좋아해봤어?
한 : 당연하지.
유미 : (질투) 누구?
한 : 고맙다, 숙제 보여줘서. (공책 내주고 일어서면)
유미 : 누구우!
한 : (그냥 웃고 가는)
유미 : (약오르고)
씬48. 정연의 방 - 그날 저녁
정연, 거울앞에서 옷 대보고 있다.
민 : (E) 우리 과 선배 발표횐데 같이 갈래?
정연 : (이게 웬 행운일까.. 너무나 기쁘다)
씬49. 음악회장 앞 - 다음날
독창회 정도 열릴만한 조촐한 음악회장.
민, 친구들과 만나서 얘기하고 서 있다. 정연 온다.
민 : (처음엔 몰라보고) ..! (알아보곤 놀란다)
정연 정장하고 높은굽 구두에 얼굴엔 엷은 화장까지 했다.
정연 : 안녕하세요, 선생님? (쑥스러운듯 미소 짓는)
민 : (당황스럽지만 내색 않고) .. (미소) 그래 어서와. 인사들 해. 이쪽은 내 친구들이고 이쪽은 우리 학교 학생이야.
친구1 : 이야 무슨 제자가 이렇게 멋있어? 짜식, 학교에서도 미인만 밝히는구나?
친구2 : 반가워요. 음악 전공하나?
민 : (친구들의 시선에 불편하고) 아니. 근데 음악에 아주 관심이 많은 친구야. 정연이도 뭐 한 잔 마실래?
정연 민의 친구들과 나란히 서 있으면서 민의 파트너로 인정받은 듯한 느낌. 기분이 좋다.
민은 당혹스럽기만하다..
씬50. 음악회장
음악회 중. 민과 나란히 앉은 정연. 영화관에서의 아쉬움에 대조되는 순간이다.
정연 : .. (민의 옆모습 본다. 기분 좋다)
민 : .. (마음 불편하다)
씬51. 까페 화장실
정연, 입술 새로 그린다. 거울 보고 흡족.. 매무새 만진다.
옆에 와 거울앞에 서는 다른 여자 곁눈질해본다. 자기가 결코 그에 뒤지지 않는 모습이란 생각 들어 흐뭇.
오늘 하루의 데이트가 만족스럽다.
씬52. 까페
정연 와서 앉는다.
민 : 오늘 재미있었니?
정연 : 네, 아주 좋았아요.
민 : 다행이네. .. (사이) 정연아, 내가 정연이 참 좋아하는거 알지?
정연 : 네? (어쩔줄 모르는)
민 : 정연아.
정연 : 네...
민 : 이런 말 하면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는데 말이야...
정연 : (한껏 기대된다)
민 : 오늘, 솔직히 정연이한테 좀 실망했어.
정연 : !
민 : 정연이가 어떤 생각에서 그렇게 꾸미고 나왔는진 모르겠지만, 혹시 다른 생각에서 그러고 나왔다면, 좀 서운하고 그러네...
정연 : !
민 : 정연아, 어찌됐든 난 열심히 공부하고 음악에 관심있는, 그런 학생으로서의 정연일 좋아했던거구,
그러니까 내가 제일 예쁘다고 생각하는 정연이 모습은 교복을 입은 모습이라는거지. 지금같은 어른스러운 정장보다는 말야.
정연 : .. (뭔가 어긋나는 느낌)
민 : 정연인 요즘 보기 드물게 똑똑하고 야무지거든. 근데 오늘은 보통때 그 똑 부러지는 모습은 없고 너무 낯설어.
딴사람 흉내낸거 같고.
정연 : ..
민 : 난 내가 자랑스럽게 기억할 첫 제자로 정연일 꼽고 있었는데. 내 기대에 어긋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정연인 현명하니까 내말 무슨 뜻인지 알지?
정연 : .. (마지못한) 네.
씬53. 까페 앞 거리
민 정연 나온다.
민 : 늦었다. 데려다줄께.
정연 : 오늘은 저 혼자 갈께요 선생님. 안녕히 가세요.
민 : 정연아,
정연 뒤도 안돌아보고 빠르게 혼자 걸어간다. 가다가 높은 구두 때문에 삐긋- 구두 벗어 다리 주물러 본다.
씬54. 지하철역
출구계단으로 나가려는데 비맞으며 들어오는 사람들. 소나기라도 내리는 듯...
난감한 정연. 별 도리없이 사람들이 버리고 간 젖은 신문지를 머리에 이고 뛰어나간다.
씬55. 지민의 집 근처
정연, 비에 젖어 뛰어들어온다. 빗물 닦다가 유리창에 비친 자신 본다.
정연 : ..
머리와 옷은 폭싹 젖고 얼굴 화장은 번지고 부은 다리는 아프기만 하고.. 초라한 자신 보자 한심하다.
그때 뒤에서 나오는 지민. 정연의 모습 보고 놀란다.
지민 : 정연아, 너 옷이 왜 이래? 머리는 또?
정연 : ...
지민 : 정연아...
정연 : 지민아, 나 오늘 내 생애 첫 데이트 했다.
지민 : ..?
정연 : 아니, 첫 데이튼줄 알았어. 그런줄 알고 나갔는데.. 아니더라구.
지민 : ..
정연 : 난 내가 이렇게 하면 이쁜 줄 알았어. 근데 아니라구 그러더라구. 애라한테 뭐라고 할 자격 나 없어.
남자한테 이쁘게 보이겠다구 옷 사입구 머리하구 높은 구두 신고 나 정말 우습지?
남자 앞에서 잘 보이려다가 망신당한 셈이야.
지민 : 정연아,
정연 : 나 일부러 너한테 왔어. 내 한심한 꼴 좀 보라구. 내가 얼마나 한심한지 딱 한사람한테만 보여주려구.
그래야 다신 한심한 짓 안할 거 아냐.
지민 : ..
씬55-1. 등교길
민 출근하는데 낯익은 모습으로 등교하는 정연의 뒷모습. 왠지 어깨가 쳐져있다.
민, 마음이 불편한...
씬56. 교정일각
민 앉아있고 재하 다가온다.
재하 : 무슨 일이길래 아침부터 면담신청입니까?
민 : 선배님 말씀이 옳았습니다.
재하 : ? 뭐가요?
민 : 제 생각이 짧았어요. 생각지 못한 결과라는 게 이런 건가 싶더라구요.
재하 : 정연이랑 얘기 좀 해봤어요?
민 : ?
재하 : 교단경력 2년에 애들 눈치보는 건 9단입니다.
민 : (어색하게 웃으며) 학생들 대하는거 제가 너무 쉽게 생각했던 거 같아요. 덕분에 수습하느라 진땀 좀 뺐어요.
앞으로 많이 도와주십시오.
재하 : (빙긋 웃고) 이제 됐어요.
민 : 네?
재하 : 힘든 거 알았으면 반은 된겁니다. (빙긋 웃으며 툭 친다)
민 : ..
씬57. 교실
쉬는 시간. 애들 잡담중. 혼자 등돌린채 공부하고 있는 정연.
지민 그런 정연 본다. 정연, 아이들의 시선이 느껴지는 듯, 불편한지 자리를 뜬다.
지민 : (정연 보며) 정연이 우울증이 오래 가네.
흥수 : 원래 사랑의 아픔이란 게 그렇게 쓰디쓴 거란다.
유미 : 선생님도 너무해. 그냥 이쁘다고 하지 왜 쓸데없는 말을 해서 애를 기죽이냐구.
신화 : 내 생각엔 정연이 요즘 생각 많은게 꼭 선생님 때문만은 아닌 거 같애.
유미 : 그럼?
신화 : 글쎄, 잘은 모르겠지만 정체성의 문제 그런거 아닐까.
유미 : (찡그리는) 또 머리 아파진다.
신화 : (웃고) 원래 자기 모습이 뭔지 찾아가는 과정인거 같애.
애라 뒤늦게 잡지책 들고와 호들갑.
애라 : 야야 이 남자애 너무 멋있지 않니? 새로 나온 모델인가봐. 키두 대빵 크다.
유미 : 또 새남자 찾냐? 민선생님은 어떡하구?
애라 : 별로 매력이 없는거 같애. 요즘 보니까 똥배도 나온거 같구. 난 배 나온 건 1미리도 용서할 수 없어.
지민 : 하여간 변덕은.. 너 국어숙제할 책 다 찾았어?
애라 : 찾으면 되잖아!
씬59. 음악시간
민, 수업중. 슈만의 음악 들려주며.
민 : 슈만과 클라라는 9살이라는 나이차와 주변의 반대를 극복하고 뜨거운 사랑을 했어.
많은 예술가들이 그렇듯 슈만의 음악 또한 클라라로부터 영감을 얻은바 많았지.
애들 : .. (흥미롭게 듣는)
민 : 클라라, 이름이 참 낭만적이야. 그 이름이 더욱 아름답게 생각되는 건 아마도 슈만의 음악 때문이 아닐까.
나로 인해서 한 남자가 세기에 남는 음악을 만들고 그래서 나의 이름이 언제나 그 음악과 함께 한다, 멋지지 않아?
클라라는 그것만으로도 이 세상을 살다간 의미가 있을거야.
정연 : (E) 아뇨, 그건 아닌거 같애요.
민 : (보면)
정연 : 그건 슈만의 입장일 뿐이죠. 클라라도 천재적인 피아노 연주 소질을 갖고 있었어요.
클라라는 어쩌면 자기 이름으로 더 유명한 음악가가 되고 싶었을 지도 몰라요.
슈만의 연인으로서가 아니라 음악가 클라라로 기억되도록 말이죠.
민 : (흥미롭게 보는)
애라 : 정연이 또 따지기 시작이다.
유미 : 가만 있어봐.
정연 : 물론 클라라는 슈만과의 사랑속에 충분히 행복했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음악에 대한 욕심이 있었다면 슈만의 그늘속에 누구보다 불행했을지도 모르죠.
선생님이라면 저희들한테 클라라의 입장에서 보는 법을 가르치셔야한다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저희들 중 절반은 클라라이기 때문이죠.
민 : (정연이답군.. 빙긋 웃는)
씬60. 도서실
정연 책 앞에 놓고 생각에 잠겨있다. 지민 온다.
지민 : 뭐 생각해?
정연 : 난 언제나 역사 속의 인물들을 보면서 불만이었어. 니체를 얘기할 땐 루살로메, 로댕을 얘기할 땐 까미유끌로델,
슈만을 얘기할 땐 클라라, 그런 식이잖아. 왜 살로메에 니체, 클라라에 슈만, 이렇게 여자가 주인공이 되는 경운 없는 거지?
난 클라라가 아니라 슈만이 되고 싶었어. 근데 잠시 클라라가 될 뻔했어. 그것두 슈만한테 잘 보이려구 목매다는 클라라.
지민 : (웃고)
정연 : 그날 있잖아, 지민아, 내가 왜 그렇게 비참했는지 생각해 봤어. 정말 비참한 건 그게 내가 선택한 내 모습이 아니었단 거야.
내가 이쁘다고 생각해서 화장하고 정장하고 구둘 신었던 게 아니라
그렇게 하면 이쁘다고 할 줄 알고 그렇게 했거든. 그러니까 더 비참했던 거지.
지민 : 그럼 이젠 니가 예쁘다고 생각하는 모습 찾았어?
정연 : 아직 잘은 모르겠는데 여기 앉아있는 게 그중 제일 예쁘지 않을까 싶어. 나답구.
지민 : (정연이답군, 빙긋 웃으며) 야, 내가 멋진 충고라도 해주려고 찾아왔는데
니가 그렇게 스스로 정리를 다 해버리면 난 어떡하냐?
정연 : 정리 잘하는 거 그것두 나다운 거잖아.
지민 : 어유 잘난체..
웃는 둘.
씬61. 교무실
민, 선생들과 작별인사하고 있다.
광도 : 만나자 이별이라더니 섭섭하구만.
일평 : 나중에 부임하게 되면 또 볼지 알아? 혹 또 보게 되면 잘 지내자구.
유란 : 논문 잘 쓰세요.
민주 : 그동안 수고하셨어요.
민 : 고맙습니다. (재하에게) 선배님, 감사했습니다.
재하 : (악수하는) 민선생 좋은 교사 될겁니다. 나만큼요. (웃고)
복만 : 오늘 찐하게 한 잔 안하나?
민 : 아마 애들이 기다리고 있을 거 같은데요.
복만 : 끝까지 인기가 식지 않는구만.
명 : 교장선생님한테 인사하고 가시죠.
민 : 네.
민 인사나누고 명과 나간다.
씬62. 음악실
민 기대에 찬 얼굴로 들어서는데 썰렁- 아무도 없다.
민 : .. (애들이 기다릴줄 알았는데.. 무안실망)
뒷머리 긁적이며 돌아서려는데.
애들 : (와락) 선생님!
영화반 애들 숨었다가 튀어나온다. 깜짝 놀라는 민.
유미 : 선생님 우리 없는줄 알고 삐지셨죠?
지민 : 울라고 그러시더라. (웃고)
애라 : (울먹일듯) 선생님 섭섭해요.
흥수 : 어유.. (못말리겠다는 듯 쥐어박는 시늉)
정연 : (선물 내밀며) 저희가 다 같이 준비한 선물이에요.
민 : 고맙다. (정연 바라보며 의미있는 시선)
정연 : (어색하게 웃고)
민 : 가자, 선생님이 마지막으로 한턱 낼게.
흥수 : 바로 그겁니다!
애들 왁자하게 어울려 나간다.
씬62. 교정일각
몰려나가는 영화반. 뒤로 쳐져 걸어오는 정연. 그 위로.
정연 : (E) 민선생님이 떠나신다.
여전히 민에게 팔짱끼는 애라.
정연 : (E 그런 애라 귀여운듯 보며) 애라는 아마 또다른 사랑을 시작할 것이다.
웃으며 뒤따라가는 정연의 얼굴 위로.
정연 : (E) 나? 난 아마도 나 자신을 좀 더 사랑하게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