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번째 말씀
peJe $is <Je> ou@nsnau na$mton $mmau HiouGloG pouanamou pouanawnH
peJesalwmh <Je> @ntak nim prwme Hws ebol H@noua aktelo eJ$mpaGloG auw akouwm ebol H@ntatrapeza
peJe$is nas Je anok pe petSoop ebol H$mpetShS auTnaei ebol H@nnapaeiwt
anok tekmaqhths
etbepaei TJw $mmos Je Hotan eFSaSwpe eFShF FnamouH ouoein Hotan de eFSanSwpe eFphS FnamouH @nkake
peJe $is <Je> ou@n-snau na-$mton $mmau Hi-ou-GloG p-oua-na-mou p-oua-na-wnH
peJe-salwmh <Je> @ntak(=@ntok) nim p-rwme Hws ebol H@n-oua a#k-telo eJ$m-pa-GloG auw a#k-ouwm ebol H@n-ta-trapeza
peJe-$is na#s Je anok pe pet-Soop ebol H$m-pet-ShS a#u-T-naei(=nai) ebol H@n-na-pa-eiwt
anok te#k-maqhths
etbe-paei(=pai) T-Jw $mmo#s Je Hotan e#F-Sa<n>-Swpe e#F-ShF Fna-mouH ouoein Hotan de e#F-San-Swpe e#F-phS Fna-mouH @n-kake
(번역)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두 사람이 침상에 있을 것이요. 하나는 죽을 것이고 하나는 살 것이다.”
살로메가 말했다. “사람이여, 당신은 누구십니까? ‘하나’에서 오신 분으로서(wJ~) 나의 침상에 올라왔으며 내 식탁(travpeza)에서 먹습니까?”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동일한 분으로 말미암아 있게 되었다. 나의 아버지로부터 나에게 주어졌다.”
“저는 당신의 제자(maqhthv~)입니다”
이 때문에 나는 말한다. “황폐화된 상태가 된다면(o{tan) 빛이 채워질 것이지만(dev) 나뉘어진 상태가 된다면 어두움으로 채워질 것이다.”
(묵상)
같은 상태에 있는 두 사람이 정반대의 일을 당하게 된다는 것. 죽음과 삶이 갈리는 일의 이유는 설명되지 않는다. 여제자라고 할 수 있을 살로메가 묻는다. 인간의 운명은 그와 같이 죽음과 삶으로 갈리는데, ‘하나’에서 오신 분으로서의 예수, 즉 신이신 당신은 그러한 인간의 운명을 갖지 않아도 되는데 어째서 인간이 당할 일들을 당할 그러한 자리에 계시는가,고. 예수님은 자기를 비우는 길만이 그러한 생사의 기로에 서는 인간의 운명을 넘어설 수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닐까. 황폐한 상태가 된다는 것은 자기를 비움의 극단적 표현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광야에 있는 것과 같은 상태가 되는 것. 그렇게 될 때에 빛으로 채워져서 생사를 넘어선 영원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 그런데 나뉘어진 상태가 된다면 어두움으로 채워져서 죽음에 이르게 된다는 것. 나뉘어진 상태란 무엇일까? 하나님으로부터의 분리. 광야에 있는 것과 같이 자기를 완전히 비울 때 하나님과 하나가 되지만 자기를 비우지 못하면 하나님 따로 자기 따로가 되는 것.
첫댓글 목사님, 이 말씀도 퍽 흥미롭습니다. 특히 본문의 '황폐화된 상태'를 '자신을 비우는 극단의 경지'로 해석한 것은 참으로 탁월한 해석이 아닌가 합니다. 이는 '마음이 가난한'과 유사한 겸허한 상태가 되어 '비어있음'이 축복이 되는 경지가 아닌가 합니다. 그렇다면 단지 외적으로 황폐화된 것이 아니라 '긍정적인 비워짐'으로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다만 위의 본문이 사본학적인 문제를 지닌 대목의 하나로 남은 것은 여전히 아쉬운 점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여하간 이 말씀 역시 다양한 해석의 한 예로도 좋은 사례가 될 것 같습니다. 입력과 번역 작업에도 감사드립니다.
본문을 틀렸다고 보고 고치지 않고 지금 있는 그대로 놓고 어쨌든 하나의 해석을 해보려고 합니다. 그렇게 하나의 해석이 있으면 다른 해석들도 가능해질 것이라 생각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