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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시 42:1-2)
사람이 배고픔과 갈증을 느끼는 것처럼,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을 향한 영적 갈망을 느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어거스틴은 회심 후, 그가 살아온 방탕한 세월을 되돌아보면서 기록한 “참회록”에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하나님을 위한 존재로 창조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주님 안에서 참된 안식을 발견하기까지, 우리 마음은 평안을 누릴 수 없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피조물인 우리는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그래야, 모든 배고픔과 갈증이 해결됩니다.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육신적인 배고픔과 갈증을 해결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것처럼, 영적인 갈증을 해결하지 않고서는 참된 믿음의 길을 올바르게 걸어갈 수가 없습니다.
1-2절 말씀입니다.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의 얼굴을 뵈올까” 아멘.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하나님을 찾는다”는 말은 그가 얼마나 간절히 하나님을 갈망하는지를 보여줍니다.
이것은 뭔가 특별한 음식이 먹고 싶다는 갈망이 아닙니다.
“오늘 저녁, 특별히, 좋은 식당에 가서, 맛난 음식을 먹으면 좋고, 그렇지 않고, 집에서 간단하게 대충 먹어도 상관없다”고 하는 그런 갈망이 아닙니다.
이것은 거의 “당장 뭔가를 먹지 않으면, 죽을 것 같다.”고 하는 갈망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하나님을 갈망할 정도로 배고픔을 느낀다면, 그것은 은혜이고, 복입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을 향한 이런 갈망이 있어야 합니다.
다 죽어가는 사람이, 뭐든지 먹고 살아야 하는 것처럼, 이런 갈망을 느끼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금방 받아 들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들여야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 뭔가를 그에게 주어, 먹고 살아났을 때, 그가 그 사람에게 감사를 표하는 것처럼, 영적 갈망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에 늘 감사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서기관 중 한 사람이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모든 계명 중에 첫째가 무엇이니이까?”
예수님께서 그에게 “첫째는 이것이니,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곧 우리 하나님은 유일한 주시라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보다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막 12:29-31)고 대답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왜 우리에게 율법을 주셨습니까? 왜 구약의 말씀을 주셨을까요?
신명기 10:13절을 보면, “내가 오늘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율법을 주신 목적은 우리의 행복을 위해서입니다.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자기 자신과 같이 사랑할 때, 사람들은 행복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할 때, 가장 행복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가장 행복한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너무 똑똑해서, “하나님과 이웃이 아니라, 자기만을 사랑하고 살아야 행복하다”라고 생각합니다. “나밖에 없다”고 하는, 이런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는 한, 사람은 결코 행복할 수 없습니다. 만족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지만, 그 전에, 이미 우리를 그렇게 사랑하셨습니다.
요한복음 3:16절을 보면,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너무 사랑하셔서, 우리에게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주셨습니다.
왜 주셨습니까? “예수를 믿고, 멸망하지 말고, 영생을 얻으라.”고 하나님은 우리에게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낌없이 보내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놀라운 사랑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 놀라운 사랑을 받은 우리가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 아닐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하나님을 멀리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요일 4:8,16)
하나님은 우리에게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주시기까지 아낌없이 사랑하셨습니다.
로마서 5:8절을 보면, 바울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아무 조건없이 우리를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주시기까지 사랑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십자가에서, 확증해 주셨습니다.
우리에게 독생자를 주신 하나님의 사랑보다, 더 큰 사랑이, 이 세상에 어디 있습니까?
어리석게도, 아직도, 이보다 더 큰 사랑을 찾아 헤매고 있지는 않습니까?
절에도 가 보고, 용하다는 점집에서 점도 봐 보고, 무당에게 굿도 해 보고, 사주팔자도, 토정비결도 봐 보고, 이리 저리, 기웃거리는 이들이 있습니다.
참 어리석고 미련한 사람들입니다.
이 세상에, 독생자를 주신 하나님의 사랑보다 더 큰 사랑은 없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누구나 하나님 앞으로 나오기를 바라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하나님 앞에 나오지 않는 이들이 많습니다.
아예, 처음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으려고 합니다.
어쩌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들은 것을 부인하려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그 말씀에 따르지 않으려고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도, 애써 부인하며 살아갑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세상을 더 많이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이나 세상에 속한 것들을 더 아끼고,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지금껏 사랑했던 세상의 것을 내려놓아야 하는데, 그것을 포기할 수가 없기 때문에, 하나님의 부르심의 음성을 듣고도, 못 들은 척, 부인하고 살아갑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대로 살면, 자기에게 손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려고 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포기하지 않습니다. 버리지 않습니다. 내려 놓지 않습니다.
뭔가를 쥐고 있어야, 붙들고 있어야,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있어야, 참된 행복을 누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상의 것을 붙들면 행복해지지만, 하나님을 붙들면 손해 보는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하나님께로 나오지 않습니다.
이것저것 이해득실을 다 따져보았을 때, 하나님을 붙드는 것이 손해라고 생각하기에, 세상의 것을 놓지 못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처럼, 오래 참으시면서, 기다리시고, 선을 베풀어주시는 분은 없습니다.
그러나 언제까지, 하나님이 우리를 기다려 주실까요?
때가 있습니다. 주님이 다시 오실 날이 멀지 않았습니다.
요한계시록 3:20절을 보면,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문을 열어야 합니다.
그것이 행복을 위한 믿음의 첫 발걸음입니다.
문을 열어야, 하나님이 우리에게로 들어오실 수가 있습니다.
문을 열어야, 하나님이 우리 마음에, 우리의 삶에, 우리의 거처에, 우리 교회 가운데로 들어오실 수가 있습니다. 함께 하실 수가 있습니다.
마음의 문을 열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우리와 더불어 먹고 마실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할 때, 우리는 참된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할 때, 우리는 참된 행복을 맛볼 수 있습니다.
평안과 행복은 다른 데 있지 않습니다.
세상의 것을 붙잡으면, 잠시 행복하고, 잠시 평안할 수 있지만, 영원히 오래 가지를 않습니다. 왜냐하면, 누군가 나의 행복과 평안을 가만 두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행복과 평안을 빼앗으면, 그것이 내 것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세상은 뺏고 뺏는 일들이 많이 일어납니다.
왜 다른 사람의 것을 뺏습니까? 그것을 빼앗아야, 내 것이 채워지기 때문입니다.
내게 부족한 것을 다른 사람에게서 빼앗아야, 내 것이 채워지고, 내가 그것을 가짐으로, 행복해질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악착같이, 비열하게, 무자비하게, 뺏는 것입니다.
속고 속이는 세상, 뺏고 빼기는 세상입니다.
하나님이 없는 세상은 정말 살 수 없는 세상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부족합니다.
우리는 시편 23편을 좋아합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시 23:1)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시 23:5)
믿는 사람이건, 믿지 않는 사람이건, 누구나 “내게 부족함이 없다”와 “내 잔이 넘치나이다”라는 이 말을 너무 좋아합니다.
우리는 부족합니다. 많은 것들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행복과 평안을 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부족함을 채워야 합니다. 우리의 필요를 해결해야 합니다.
우리는 행복해야 하고, 평안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에게 부족함이 없고, 우리의 잔이 넘치기 위해서는, 예수님이 나의 목자가 되셔야 합니다.
목자가 되셔서, 나를 인도할 때에, 우리에게 부족함이 없고, 내 잔이 넘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나의 목자가 되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을 나의 목자로 삼지 않으면, 아무 이익이 없습니다.
“내게 부족함이 없다”고 하는 말과 “내 잔이 넘치나이다”라고 하는 말은 그림의 떡일 뿐입니다.
예수님을 나의 목자로 삼지 않는다면, 우리는 우리 자신이, 내 삶의 주인이 되어, 이 부족함을 채워야 하는데, 그것이 그리 쉬운 문제가 아닙니다.
이 뺏고 빼앗기는 세상에서, 어떻게 우리의 부족함을 채울 수 있겠습니까?
열심히 일을 하면 될까요? 남들보다 더 잠을 자지 않고, 수고하고 애쓰면, 될까요?
열심히 일을 하다, 쓰러집니다. 열심히 일을 하다, 사고를 당합니다. 열심히 일을 하다, 쫓겨납니다. 열심히 일해도, 제때에, 수고의 열매를 얻을 수가 없습니다.
뭔가가 채워질 듯 하면서, 채워지지 않고, 뭔가가 채워진 것 같은데, 누군가가 그것을 빼앗아 가버리는 세상입니다.
세상에서는 우리의 부족함과 필요를 채울 수가 없습니다. 채울 방법이 없습니다. 늘 부족합니다. 만족이 없습니다. 원망과 불평과 불만족뿐입니다. 그래서, 늘 머리에 띠를 띠고, 우리의 부족함을 채워달라고 소리 지르는 것입니다. 채워줘도, 또 채워달라고 소리 지를 뿐입니다.
세상은 우리의 부족함과 필요를 채워줄 수 없지만, 그러나 여러분! 예수님이 나의 목자가 되실 때, 우리의 부족함을 채울 수 있습니다.
우리의 갈급함을 해결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배고픔을 만족하게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갈증, 우리의 목마름이 해결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사 55:1)고 말씀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이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게 하지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 앞으로 나아와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사람만이, 하나님 앞에 나올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늘 깨어 있어야 합니다.
깨어 있을 때,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들을 수 있습니다.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같이 그런 갈급함이 있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양식이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고, 배부르게 하지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는 삶을 살아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헛되고 헛된 삶을 살아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유익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육적인 삶보다는 영적인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내게 듣고 들을지어다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자신들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로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의 영혼이 살리라”(사 44:2-3)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사는 길은 하나님 앞에 나와,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을 불러야 합니다.
지금껏, 우리가 걸어왔던 악한 길을 과감하게 벗어나야 합니다.
지금껏, 우리가 가지고 있었던 불의한 생각을 모두 다 버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사 55:6-7)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 안에 있을 때, 우리는 행복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 때문에 나는 행복합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습니다.
주님이 우리의 목자가 되실 때, 우리에게 부족함이 없고, 우리의 잔이 차고 넘칩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이 우리의 목자가 되실 때, 우리의 영적인 갈급함 뿐만 아니라, 육체적이고, 물질적인 부족함과 필요가 채워집니다.
지난 삶을 돌아보면, 하나님은 따뜻한 손길로 내 인생을 돌보아주셨습니다.
지금도, 변함없는 사랑으로,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시고, 돌보아 주십니다.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아도, 모든 이들이 내 곁을 떠나도, 하나님은 한결 같은 사랑으로, “너는 내 것이라. 내가 너를 사랑하노라.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고 말씀하여 주십니다.
앞으로도, 하나님은 우리를 버리거나 떠나지 않습니다. 늘 함께 하여 주십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다양한 방법으로, 하나님은 우리를 지키시고, 돌보시고, 우리의 나아갈 길을 친히 앞서 인도하여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 이 위험한 세상으로부터 나를 지키고, 보호하여 주실 분은 누구시겠습니까?
누가 나의 안전과 평안을 염려합니까?
내가 행복하기를 원하는 분은 누구십니까?
우리에게는 남은 인생의 미래를 향한 두려움과 염려가 있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앞으로 어떻게 살지?
내 자녀들은 이 험한 세상에서, 어떻게 잘 먹고, 잘 살아갈 수 있을까?
회사는 잘 다닐까? 회사생활은 잘 할까? 사업은 번성할까? 어려운 문제는 없을까? 몸은 건강할까? 학교는 잘 다닐까? 나쁜 친구는 없을까?
하고자 하는 꿈은 이룰 수 있을까? 시험에 합격할 수 있을까? 남들에게 뒤처지지 않고, 승진할 수 있을까? 돈은 많이 벌 수 있을까? 남부럽지 않는 삶을 살 수 있을까?
좋은 사람 만날 수 있을까? 행복한 가정을 이룰 수 있을까? 자녀를 낳을 수 있을까? 아들 딸 잘 낳고,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애들의 애는 어떻게 잘 살까?
아프지는 않을까? 다치지는 않을까?
누구나, 크든 작든, 염려와 두려움 속에 살아갑니다. 별의별 염려를 다 합니다.
세상은 우리의 염려를 없애주지 못합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만족을 주지 못합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참된 행복과 평안을 보장해 주지 못합니다.
세상은 우리의 배고픔과 갈증을 해결해 주지 못합니다.
그런데, 우리 마음을 가장 흡족하게, 가장 따뜻하게, 가장 만족스럽게, 채워주시는 분이계십니다. 그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찬송가 405장 가사입니다.
1절 : 주의 친절한 팔에 안기세 우리 맘이 평안하리니
항상 기쁘고 복이 되겠네 영원하신 팔에 안기세
2절 : 날이 갈수록 주의 사랑이 두루 광명하게 비치고
천성 가는 길 편히 가리니 영원하신 팔에 안기세
3절 : 주의 보좌로 나아 갈 때에 기뻐 찬미 소리 외치고
겁과 두려움 없어지리니 영원하신 팔에 안기세
후렴: 주의 팔에, 그 크신 팔에 안기세 주의 팔에, 영원하신 팔에 안기세
하나님은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배고픔과 갈증을 해결하여 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부족함을 채워주시고, 우리의 잔을 넘치게 하여 주시는 분이십니다.
예레미야 32:40-41절을 보면,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기 위하여 그들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는 영원한 언약을 그들에게 세우고 나를 경외함을 그들의 마음에 두어 나를 떠나지 않게 하고 내가 기쁨으로 그들에게 복을 주되 분명히 나의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그들을 이 땅에 심으리라(렘 32:40-41)”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축복을 약속하실 뿐만 아니라, 반드시 그것을 이루어주십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빈 약속이 아닙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수많은 약속을 하지만, 그 약속을 지켜주지 않습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믿으라고 하지만, 믿음을 주지 못합니다. 오히려 그 믿음을 깨버립니다. 세상은 우리를 실망시킵니다. 세상을 붙들면 붙들수록, 우리는 실망합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행복을 약속하지만, 오히려, 우리에게 있는 행복을 빼앗아갑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우리의 부족함을 채워줄 것처럼 약속하지만, 오히려 우리의 가진 것을 빼앗아 가버립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우리의 행복을 책임져 줄 것처럼 약속하지만, 때로는 우리의 작은 행복마저도, 산산조각 깨뜨려 버립니다.
그러나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의 부족함과 필요를 채워주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행복을 책임져 주십니다. 우리에게 평안을 주십니다.
하나님은 하신 말씀을 반드시 실행하여 주십니다.
민수기 23:19절을 보면,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고 인생이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하지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하지 않으시랴”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여호와”(렘 33:2)이십니다.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의 얼굴을 뵈올까”
하나님, 사슴이 시냇물 바닥에서 물을 찾아 헐떡이듯이, 내 영혼이 주님을 찾아 헐떡입니다.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살아계신 하나님을 갈망하니, 내가 언제 하나님께로 나아가 그 얼굴을 뵈올 수 있을까?
지금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왔습니다.
이 밤, 기도할 때에,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한 밤이 되어지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영혼이 살아계신 하나님을 갈망하면서, 하나님께로 더 가까이 나아감으로, 하나님의 얼굴을 뵈올 수 있는 은혜의 밤이 되어지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배고픔과 갈급함이 해결되어지고, 우리의 부족함이 채워지고, 주님이 주시는 참된 행복과 평안을 누릴 수 있는 복된 삶이 되어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말씀을 생각하면서, 함께 기도하기를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