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회의 교육을 보면 그 사회의 총체적 모습을 짐작할 수 있다. 사회가 가진 역량과 안고 있는 문제가 교육에 고스란히 묻어난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교육 현실은 어떤가. 아이들에게 행복해질 수 있는 지혜를 가르치고 있는가, 이웃과 함께 살아갈 민주시민으로서의 품성은 제대로 키워주고 있는가. 유감스럽게도 우리의 교육은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 과정보다 성과에 매달리는 사회풍토 속에서 교육은 스스로의 존재가치를 외면하고 경쟁에서 이기는 수단만 아이들에게 강요한다. 모든 가치가 개발과 성장, 자본과 경쟁의 논리로 귀결되는 시대에 교육이 왜곡되는 것은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부모마저 자식들을 약육강식의 격전장으로 등 떠밀고 있는 판에…. 무엇보다도 자유로워야 할 어린아이들까지 무차별 경쟁에 내몰리고 있는 현실은 신자유주의 물질만능의 가치에 매몰된 우리 사회의 단면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지난 10여 년간 생명과 생태적 가치관에 입각해 새로운 패러다임으로서 생태유아교육의 길을 개척하고 실천해 온 부산대학교 유아교육과 임재택 교수를 만났다.
-자식을 가진 부모로서 우리 교육에 대해 늘 회의해 왔습니다. 아이들을 인간으로 기르는 것이 아니라 경쟁의 도구로 만드는 성과 위주의 교육현실을 바라보면서 가슴이 답답했습니다. 교수님께서는 우리의 유아교육을 '양계장닭' 키우듯 한다고 하셨는데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우리의 교육에 대해 할 말이 많습니다. 하지만 제가 공부해 온 유아교육에 한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한마디로 위태위태하기 그지없습니다. 아이들의 천성을 잘 살리는 교육은 고사하고 아이들을 병들게 하고 있습니다. 아이들 먹이고 가르치는 것을 보면 마치 양계장닭을 키우듯 합니다. 닭에게 성장제 주고 항생제 먹이는 것과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기성세대의 도에 넘친 욕심이 아이들을 망치고 있는 겁니다.
-이런 상황에서 생태유아교육의 필요성이 더욱 절실하겠습니다. 생태유아교육의 이론적 배경을 생명사상과 생태주의 등에서 찾고 있는데요.
▶생태유아교육은 잘못된 교육현실에 대한 반성에서 출발합니다. 생태유아교육의 목적은 산업문명의 최대 피해자인 우리 아이들의 병든 몸과 마음, 영혼을 살리자는 데 있습니다. 생명사상과 생태론적 세계관에 바탕을 두고, 자연 친화적인 교육을 통해 아이들을 자연의 순리대로 잘 자라도록 돌보고 기르자는 것입니다.
-아이들을 모신다고 했는데, 이 또한 생태유아교육의 특성을 반영하는 것 같습니다. 아이를 한울님처럼 받드는 것은 생명의 존귀함을 의미하는 것인가요.
▶사람과 자연, 사람과 사람이 공생하고 아이들이 행복한 세상을 지향하는 이화(理化)세계를 생태교육을 통해 실현하려고 합니다. 천지인(天地人) 3재를 바탕으로 한 천인합일 사상은 단군의 사상입니다. 근대 들어 수운 선생께서 동학사상으로 '사람이 곧 하늘이다'라고 발전시켰습니다. 모든 생명체는 하나이고 지극한 생명의 기운을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중에 사람, 어린아이의 경우 부드러운 생명의 기운이 통하고 있습니다. 어린아이는 모심과 살림의 대상입니다. 어린이를 한울처럼 받들라는 것은 생명의 귀중함을 말하는 것입니다. 나아가 인간중심의 이데올로기를 벗고 천지만물이 하나라고 가르쳐야 합니다. 공존하고 공생하는 길을 어릴 적부터 깨우쳐 주자는 겁니다.
-슈타이너 교육이념에 의해 운영되는 서구의 발도로프학교 등에서도 생태적 유아교육을 중시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유럽과 일본의 경우 유아교육에 많이 신경 쓰고 있습니다. 일본의 경우 유아교육 기관 90%가 아이들을 양계장닭이 아니라 토종닭처럼 키우는 자유보육을 합니다. 아이들은 실내에서는 거의 생활하지 않고 바깥에서 놉니다. 유럽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이들은 바깥에서 놀면서 자연과 교감하는 게 중요합니다.
-언제부터 생태유아교육에 관심을 갖게 되셨는지요.
▶1987년 6?29, 88년 올림픽을 기점으로 아이들이 병들고 있다는 경고음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맥도날드 코카콜라가 본격 상륙하고 식문화가 서구화되면서 적신호가 나타난 겁니다. 아이들의 정신과 몸, 마음에 병이 오고 있다고 판단했고, 아이들을 이런 환경 속 방치하면 우리의 미래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가 서구사회에 본격적으로 문을 열면서 그런 현상들이 물밀 듯 몰려온 것이지요. 아이들에게 구체적으로 어떤 일들이 생긴 겁니까.
▶1990년대 초반부터는 아토피 피부염이 집단적으로 발생했습니다. 유아 비만 문제도 그때부터 시작됐습니다. 지금은 10명 중 3명이 비만으로, 유전형질의 변형이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염려가 들 정도입니다. 또 정서 행동 성격장애도 급증하고 아이들이 정신이 흐려지고 난폭해지는 경우가 많이 생겼습니다.
-잘못된 식문화 주거문화 등으로, 아이들이 자연으로부터 단절되면서 많은 문제점을 노출시키고 있다고 하셨는데요.
▶엉터리 같은 식문화 주거문화로 어린아이들은 순수 자연 천진난만 개구쟁이 등 자연의 본성을 잃어버렸습니다. 아이들이 자연과 차단돼 생명의 결대로 살지 못하면서 일어난 일입니다. 먹는 문제를 살펴봅시다. 원래 우리 민족은 농경민족이었습니다. 전통적으로 채식을 해왔고요. 채식으로 장이 길기 때문에 체형도 상체가 길고 하체가 짧습니다. 육식문화의 서양인들은 장이 짧아서 상체가 짧고 하체가 깁니다. 그런데 요즈음 우리 아이들은 서구적 체형으로 바뀌고 있지요. 올림픽을 기점으로 우리의 식문화도 육식으로 바뀐 것입니다.
-음식을 중시하는 이유를 알겠군요. 생태유아교육은 유기농 농산물을 쓰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아이들에게는 먹을거리가 매우 중요합니다. 제 욕심이지만 채식으로 순화되면 좋겠습니다. 무엇보다도 농약과 비료, 성장제와 항생제에 오염된 음식을 어린이들에 먹일 수 없다고 생각한 것이 친환경 유기농산물이 먹이게 된 배경입니다. 친환경 음식물을 먹을 때 아이들의 몸과 마음이 살아나고 농촌도 살아납니다. 아이와 농촌과 생명을 살리자는 것이 생태유아교육의 궁극적 목표입니다. 우리는 하루 이틀 살고 말 민족이 아닙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남쪽은 물질문명의 왜곡으로 사람이 황폐화되고, 북쪽은 영양실조로 인해 유전형질이 바뀌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유기농 식단은 경제적 부담이 클 텐데요.
▶유기농 식품을 사용할 경우 한 달에 한 아이당 1만 원 정도 더 듭니다. 전남의 경우 친환경농산물을 전 학교에서 먹이도록 하고 더 들어가는 차액은 도에서 지원해 줍니다. 원주와 서울 일부 지자체에서도 급식조례를 제정해서 아이들에게 안전한 먹을거리를 지원합니다. 부산은 학부모를 중심으로 추진하고 있지만 당국에선 아직 관심을 보이지 않습니다.
-음식문제는 비단 유치원뿐만 아니라 가정에서부터 문제입니다. 우리 30, 40대들의 음식관이 황폐하게 된 연유는 앞에서 살펴봤습니다. 아이를 통해 가정의 식생활을 개선한 사례는 없습니까.
▶현재 유아를 가진 부모들은 아토피가 등장할 당시 어린이들로 경제개발 혜택(?)을 온몸으로 받았습니다. 햄 소시지 빵 우유를 본격적으로 먹기 시작했고 햄버거 피자 등 패스트푸드에도 익숙합니다. 이제 부모가 된 그들은 자신들의 식습관대로 애들을 키웁니다. 형편없는 음식들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아이들에게 줍니다. 물론 생태유아교육을 통해 철저하게 친환경 식단으로 바꾼 부모들도 있습니다.
-생태유아교육 프로그램을 공유하고 유기농 급식을 보급하기 위해 생태유아교육공동체를 운영하고 있지요.
▶효율적 생태유아교육 전파를 위해 공동체를 만들었습니다. 생태유아공동체는 유치원 어린이집에 생태유아교육 프로그램을 보급하고 친환경 먹을거리를 제공합니다. 현재 부산에 100여 곳, 울산에 40여 곳이 연대하고 있습니다. 수도권 대구 경북 광주 제주 등에도 생태유아공동체가 조직되어 있고 대전과 전북도 추진 중입니다. 날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지만 여전히 대다수는 일반 유아원입니다. 자본의 논리에 매몰돼 생태유아교육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현재 우리는 칼로리영양학을 채택하고 있는데, 하루 빨리 생태영양학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칼로리영양학은 칼로리만 채우면 그것이 어떤 음식인지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이것을 개선하면 많이 바뀌리라고 생각합니다.
-부산대 부설어린이집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가죠. 생태유아교육 실천의 장이 바로 부설어린이집 아닙니까. 이곳에서는 우리의 전통에서 많은 것을 배우는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조상들의 삶을 통해 배우는 것은 참으로 많습니다. 우리도 어릴 때 그렇게 커오지 않았습니까. 부설어린이집은 '자연의 순리대로 조상의 지혜대로 아이 키우기'란 캐치 프레이즈를 내걸고 있습니다. 자연과 함께 아이를 키웠던 것이 조상들의 지혜였습니다. 그런데 현대인들은 자연을 떼내고 인위적으로 아이를 키웁니다. 그러면서 많은 문제가 생겨났습니다. 우리의 세시기는 자연의 이치와 조상의 지혜가 잘 조화돼 있습니다. 세시기를 아이들에게 재현해 가르치고 있습니다. 설-정월대보름-삼월삼짓날-한식-단오-추석-동지 행사 등을 연중 실시하면서 아이들이 체험할 수 있게 합니다. 보름행사를 예로 들어보죠. 아이들이 산에서 산책하면서 나뭇가지를 가져와 달집을 만듭니다. 반별로 재래시장에 가서 부럼을 직접 삽니다. 부모들이 함께 참여해 오곡밥을 짓고 소지를 쓰고 덕담을 나눕니다. 유아교육부터 전통적 세시풍속을 가르쳐야 아이들에게 온전한 한국사람 DNA가 쌓입니다.
-그 밖에도 생명, 생태적 관점에서 많은 프로그램을 개발했다고 알고 있는데요.
▶지난 십여 년간 열댓 종류의 프로그램을 개발했습니다. 산책, 바깥놀이, 텃밭 가꾸기, 명상, 몸짓놀이, 손끝놀이, 절제 절약(마음절제 몸절약), 생태적 식생활, 생태미술, 자연건강, 생명밥상 프로그램 등을 개발해 매뉴얼로 만들었습니다. 가령 텃밭 가꾸기는 아이들에게 아주 귀한 경험이 됩니다. 밭을 한 고랑씩 반별로 나눠서 고추나 상추를 심을 때는 부모나 할머니 할아버지도 함께 합니다. 아이들 스스로 물 주고 거름 주면서 자연스럽게 생명과 교감을 나눕니다. 수확 때는 한바탕 잔치마당이 벌어집니다. 이런 교육을 통해 아이들은 기가 살아납니다. 감성도 풍부해지고요. 그림을 그리게 해보면 놀라울 정도로 생태적 그림을 그립니다.
-자연 속에서 놀이 중심으로 교육을 하면 감성뿐만 아니라 신체적 발달도 도모할 수 있겠지요.
▶이곳 부설어린이집 출신 70%가 장전초등학교로 진학하는데, 운동회 때 선수들 거의가 이곳 출신 아이들입니다. 또 창의력, 독창적 아이디어 예술적 감각 등이 표준보육을 받은 아이들보다 훨씬 뛰어납니다.
-제도적 차원에서 우리 유아교육의 문제점들을 짚어보지요. 우리 유아교육의 이론적 토대는 미국에서 받아들였다고 하는데요.
▶한국 유아교육은 한마디로 국적 없는 변종입니다. 제도는 일제를 답습하고 내용은 미제입니다. 교육계 원로들 거의가 미국에서 공부했습니다. 그들이 귀국해 우리 유아교육의 틀을 짰습니다. 한국 유아교육은 처음부터 우리 고유의 토양을 무시한 채 출발했습니다. 아이들만 국산인 셈입니다.
-현재 유아교육 기관 대부분이 표준보육을 채택하고 있습니다. 표준보육은 현장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대부분 유아교육 기관이 교실 안에 아이들을 가둬 키웁니다. 선행학습, 영어교육 등에 몰두합니다. 자연과 차단 당한 아이들은 놀이와 아이다움을 잃어버렸습니다. 애어른이 되고 영악해지고 난폭해졌습니다. 좁은 교실 안에서 활동을 제약당한 아이들은 하루 종일 고자질만 한다고 합니다. 쟤가 어쨌어요, 쟤는 또 어쨌고요…. 교사는 끝없이 조용해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아이들은 자연 속에서 자기 팔 자기가 흔들고 놀아야 합니다. 그래야 스스로 행동하고 스스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유아교육은 아이들의 5감각을 스스로 운용하도록 가르쳐야 하는데, 우리의 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합니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지식교육이 아니라 지혜교육입니다.
-양산캠퍼스에 생태유아교육 시설과 관련한 계획을 갖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아이를 살리는 교육은 부모 공기 자연 모든 게 살아나야 가능합니다. 부산대 부설어린이집은 지난 1993년 종합보육연구센터로 세워져 교사양성 연구 실습기관까지 겸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유아생태교육의 싹을 키웠습니다만 공간 자체는 반생태적입니다. 시멘트 소재에 모양도 직선만으로 이뤄져 삭막합니다. 현재 BK21의 지원을 받아 지속가능사회를 위한 생태유아교육센터를 양산 제2캠퍼스에 건립합니다. 물론 생태적으로 지을 겁니다.
-앞으로 생태유아교육을 전망해 본다면….
▶생태유아교육은 학회에서 학문적 연구를 하고, 부설어린이집을 통해 실험하고 실천하고, 공동체를 통해 사회 속으로 확산합니다. 무엇보다 다행인 것은 전국 대학의 유아교육과에서 생태유아 관련 강좌수가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는 점입니다. 또 교육 현장에서도 생태유아교육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부모들도 그렇고요. 이런 분위기가 어린아이를 제대로 키울 수 있는 토대가 되리라 믿습니다.[2008. 6.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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