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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행일시 : 2005년 6월 11일(토), 맑음 그러나 시계(視界)는 불량
▶ 도상거리 : 약 20.4㎞
▶ 산행시간 : 9시간 25분(휴식, 식사시간 모두 포함)
▶ 구간별 시간
06 : 30 - 동서울버스터미널
08 : 00 - 진천버스터미널
08 : 20 - 태령산 등산로 입구(김유신 장군 탄생지), 산행시작
08 : 50 - 태령산(胎靈山, 450m)
09 : 03 - Y자 갈림길, 왼쪽으로 잘못 감
09 : 20 - 임도
09 : 40 - 능선진입
09 : 50 - 십자안부
09 : 55 - 십자안부
10 : 11 - 쥐눈이, 도로, 이정표(만뢰산 2.0㎞, 연곡저수지 2.0㎞, 백곡 34번 국도 6.7㎞)
10 : 35 - 갈미봉(560m), 이정표(만뢰산 1.4㎞)
10 : 55 - 만뢰산(萬賴山, △611.7m)
11 : 15 - Y자 갈림길, 이정표(왼쪽은 보탑사 2.1㎞, 오른쪽은 갈월리 엽돈재 7.5㎞)
11 : 45 - 십자안부, 돌목이재
12 : 18 - 478.6m봉, ┳자 갈림길, 오른쪽은 싸리재, 엽돈재, 왼쪽은 개죽산 가는 길
12 : 40 - 십자안부
12 : 51 - 송전탑(No.34), ×481m봉
13 : 15 - 십자안부, 삼성고개
13 : 35 - 개죽산(△452m)
13 : 55 - 풍산공원묘원
14 : 35 - 서운배미고개
14 : 55 - 봉암산(봉황산, △426.9m)
15 : 07 - 안부
15 : 25 - 작성산 전위봉
15 : 35 - 작성산(493m)
15 : 55 - 개목고개, 이정표(은석산 1.0㎞, 작성산 0.9㎞, 복지농도원 0.4㎞, 매봉교 1.8㎞)
16 : 30 - 은석산(銀石山, △455.3m)
16 : 50 - 십자안부
17 : 05 - ×324m봉
17 : 20 - 십자안부, 이정표(직진은 ×235m봉 넘어 병천 1.7㎞, 오른쪽은 가암 1.0㎞)
17 : 30 - 대원선원
17 : 45 - 가암마을 표지석, 21번 국도, 산행종료
18 : 36 - 천안시외버스터미널
20 : 10 - 동서울버스터미널
▶ 태령산
비 온다는 것에 관계하랴 혼자라도 간다. 저축해 놓은 산행파일을 고른다. 지난 2004년 4월 11일(수)
킬문님과 곰발톱님이 다녀오신 산이다. 스스로 개척 산행할 할 위인은 못되고, 선답자가 닦아놓은
길을 감사히 간다.
천려일실(千慮一失), 스틱을 택시에 두고 내렸다. 그것을 깨달았을 때에는 이미 택시는 떠나버렸다.
김유신 장군 탄생지 주변의 방창(方暢)한 금계국(金鷄菊)에 그만 넋을 잃은 탓이다. 6만원짜리이지만
생사고락을 함께 한 반려자(伴侶者)이기도 하다. 서운한 마음이 쉬이 가시지 않는다.
생거진천(生居鎭川)에 한 구실하였다.
‘태령산 정상 1.1㎞’ 라는 안내판이 있다. 풀숲길이다. 어제의 비인지 아침이슬인지 풀숲은 온통
물구덩이다. 이러한가. 전도(前途)가 암담하다. 그러나 우려는 잠깐, 국궁장(國弓場)을 지나 풀숲은
그치고 촉촉한 흙길이다. 등로는 산기슭을 오른쪽으로 돌고 가파른 경사가 시작되더니 통나무
계단길이다. 바람 한 점 없고 후덥지근하여 금세 땀에 흠뻑 적신다. 오르다 말고 겉옷을 벗어 넣고
홑옷 차림으로 간다.
등로변에 간벌하여 가지런히 쌓아놓은 나뭇가지 단에서 알맞춤한 작대기 하나 고르나 더욱 새록새록
생각나는 두고 내린 스틱이다. 오르다 만 것인데 능선에 진입한다. ┬자 갈림길이다. 오른쪽은
태령산 0.2㎞, 왼쪽은 만뢰산 5.1㎞. 태령산으로 간다. 평평한 바위길이지만 물에 젖어 아주 미끄럽다. 우습게 보다 우습게 미끄러지기도 한다.
태령산 정상은 분묘처럼 둥그스름하게 돋구었다. 김유신 장군의 태를 묻었다는 곳이다.
안내판을 들여다보고 주변 둘러보고, 나무숲 트인 곳으로 갈 길을 가늠해본다.
시계(視界)가 뿌옇게 흐려 그리 좋지 못하다.
▶ 만뢰산
만뢰산 가는 길은 좋다. 등로 주변의 잡목을 베어내 넓게 다듬어놓았다. 거저구나 하는 방자(放恣)한
생각으로 지도도 살피지 않고 간다. 악수는 악수를 낳는 법, 내리고 올라 태령산 정상 모양의 조그만
둔덕이 나오기에 △465.5m봉인 줄 알고 방향을 본다. 길은 Y자 갈림길이다. 왼쪽이 서쪽, 그쪽으로
간다. 길게 내려간다.
산기슭에 다다라 바로 아래 민가 두어 채와 너른 밭이 보인다. 잘못 내려왔다. 오른쪽으로 산기슭을
도는 묵은 임도가 나있다. 임도 따라 돈다. 젖은 풀숲에 등산화와 바지가 다 젖는다. 임도도 그치고
아무렇게나 간벌한 사면이 나온다. 울창한 덩굴나무 숲을 피하니 계곡으로 떨어지고 질퍽한 습지다.
만들어 오지(奧地)처럼 간다. 헛웃음이 나온다.
길 없는 가파른 사면을 치고 오른다. 쉽지 않다. 낙엽에 묻히고 조밀한 나뭇가지에 갇히고 별의별
쇼를 연출한다. 그러고 탄탄대로인 주능선에 진입한다. 태령산에서 무려 50분이 걸렸다.
비로소 갈증을 느끼고 얼음물로 목 추긴다. △465.5m봉은 밑으로 돌았고, 완만히 내려 십자안부가
나온다. 다시 5분 더 가니 좌우 길이 뚜렷한 십자안부, 여기를 킬문님이 쥐눈이로 착각했었다는 곳이다.
오름 길, 좌우의 너른 사면을 살피며 간다. 지난 주 정선 산행에서 더덕 몇 뿌리 찾느라
사팔뜨기까지는 아녀도 두 눈의 초점이 다소는 갈팡질팡하고 경도되었던 터, 행여 여기에도 더덕이
있을까 찾아본다. 없다. 늘씬 커 버린 참취와 둥굴레는 흔하다.
산허리 도는 넓은 비포장도로가 나온다. ‘쥐눈이’다. 거대한 송전철탑이 있고 길 양편에 생거진천의
이정표가 있다. 만뢰산 2.0㎞. 길 건너에는 통나무 의자도 있다.
통나무 의자에 앉아 김밥 한 줄로 아침밥을 먹는다. 그나마 먹고 나니 살 것 같다. 여전히 햇볕이
들지 않는 울창한 숲길이다. 제법 길게 오른다.
땀이 이마에 송골송골 맺히고 560m봉인 갈미봉(만뢰산 정상의 안내도에 갈미봉이라고 명기해 놓았음) 정상에 선다.
여기서 만뢰산 정상은 1.6㎞. 지도를 못 믿어서는 아니지만 촐싹대다 고도가 떨어질까 조심스럽게
걷는다. 평탄하다. 1.6㎞가 그러하다. 신라가 백제와 고구려의 침략을 막기 위해 쌓았다는 석성
둘레가 1,300m인 만뢰산성이 있다는데 그 흔적을 찾으려 눈으로 훑으며 가지만 1,500년이 넘는
세월이 이제는 전설이다.
만뢰산 정상에 오른다. 아니 오른다기보다는 그냥 가 닿는다. 넓은 헬기장이다. 큼지막한 안내도가
설치되어있고 정상 표지석이 얌전히 있다. 이 산은 진천군내에서 가장 높고 태고 적에 이 산에서
소리를 지르면 아주 먼 거리에서도 잘 들렸다하여 만뢰산이라고 한다지만 지리적으로 명산이다.
고래로 여러 이름 -보련산(寶蓮山), 만노산(萬弩山), 금물노산(金勿奴山), 이흘산(伊訖山)-으로
불린 데에서도 짐작할 수 있고, 지금은 1등 삼각점(진천 11, 1984 재설)으로 대접하고 있다.
사방 조망이 좋다. 시계가 흐린 것이 흠이다. 가야할 능선이 아득히 용틀임으로 뻗어있다. 장쾌하다.
정상에는 화가 최양호가 제작한 장승이 세워져 있다고 하던데 지금은 없다. 헬기장 가장자리에는
신라시대 우물의 흔적이 있어 가운데가 우묵하고 안쪽은 돌로 쌓았다. 그 안에 쌓인 쓰레기가 어지럽다.
▶ 개죽산
만뢰산 정상의 우물터 옆 백엽상 있는 곳으로 Y자 갈림길이 나 있다. 왼쪽으로 내려간다.
400m 내려와 다시 Y자 갈림길로 이정표가 있다. 오른쪽이 ‘갈월리 엽돈재 7.5㎞’ 주능선이다.
오르락내리락 봉봉을 타고 넘는다. 그러다가 길게 뚝 떨어져 ‘돌목이재’다. 거대한 고사목이 밑동만
남았고 그 옆에 잔돌이 쌓여있다. 옛날 이 고개에 차돌이 많다하여 돌목이고개라고 한다는데
아무리 눈비비고 찾아도 차돌은 보이지 않는다.
고개지나면 으레 그렇듯 가파르게 오른다. 어둡게 느껴지는 숲속 길이다. 뻐꾸기도 쉬는 한낮이다.
산마루에 올라서니 낡은 철조망이 앞 사면 넘나드는 것을 훼방하고 있다. 비슷한 표고로 10분 정도를
가니 지도상의 △478.6m봉이다. 삼각점은 없다. 가운데 정점은 넓고 우묵하게 패어있다.
이장한 것인지.
킬문님이 보셨던 ‘삼성에스원’이라고 쓰인 판자는 없고 쓰레기도 또한 없다. 킬문님의 산행기를 읽고
느낀 바가 있었나보다. ┳자 갈림길, 왼쪽(남쪽)으로 간다. △478.6m봉을 벗어나자마자 주능선은
길이 희미하고 밧줄로 막아놓았다. 뚜렷한 길은 거의 북쪽인 오른쪽으로 휘어진다. 무심코 따라간다. 문득 내가 지금 대관절 무엇을 하고 있는가 하는 자문과 함께 정신이 퍼뜩 든다. 되돈다. 막아놓은
밧줄을 넘어 잡목 숲으로 들어간다. 여기가 내 길이다.
묘 1기를 지나 십자안부가 나온다. 사방은 교교하고 소리라고는 규칙적인 나의 낙엽 밟는 소리.
리듬 살려 걷는다. 송전탑이 나온다. 송전탑 세우는데 자재 운반하느라 능선을 헐었는지 그 자국에
잣나무를 심었고 볏짚을 깔았다. 그 볏짚을 밟으며 가다가 나무에 매놓은 자일잡고 살짝 언덕을
올라 481m봉이다.
정상 옆의 공터에는 ‘POST’ 팻말이 있고 정점에는 무덤이 있다. 길이 잘 나 있다. 서쪽으로 조금
가니 ┤자 갈림길이 나온다. 왼쪽 길은 통나무를 쌓아 막아놓았다. 주변에는 에스원 표지기가 즐비하다. 왜 똑 같은 것을 줄줄이 달아놓았는지 그 깊은 뜻을 모르겠다. 왼쪽의 막아놓은 통나무를 넘어간다.
가파른 내림 길에 자일이 매어져 있다. 바로 십자안부가 나오고 오른쪽은 ‘에스원’의 방향표지판이 있다.
사면이 조금이라도 가파르려고 하면 자일이 있다. 자일 잡고 올라 ┬자 갈림길, 오른쪽은 등로가
뚜렷한데 왼쪽은 거친 잡목과 희미한 등로. 왼쪽이 내 길이다. 곧 개죽산 정상에 이른다. 잡목 숲이다.
삼각점(318 복구, 610 건설부)이 개죽산 정상임을 일러주고 있다. 옛날 이 산에 대나무가 많았다하여
개죽산이라 하였다고 한다. 지금은 대나무는 물론 산죽도 없다. 사방 전망이 가려 볼 것이 없다.
내쳐 간다.
▶ 봉암산
개죽산 정상을 내리면서 주능선에 드는 데 잠시 헤맨다. 다른 길은 보이지 않고 정남쪽으로 길이
희미하여 따라 갔는데 이내 길이 끊기고 계곡으로 떨어진다. 서둘러 되돌고 삼각점 위에서 정확히
방향재고 남남동쪽을 뚫으니 주능선으로 이어진다. 길 찾는 재미로라도 간다. 이따금 산행 표지기가
눈에 띈다.
완만하게 진행하여 잡목 숲 헤치고 머리 내미니 앞 사면은 넓은 공원묘지, 풍산공원묘원이다.
모처럼 시야가 트인다. 봉암산, 작성산이 가깝고 오른쪽으로 비켜 은석산이 흐릿하게 보인다.
암산에 이르는 길을 자세히 관찰한다. 공원묘지를 가로 지른다. 공원묘지 구내로 내려가는 절개지가
너무 가팔라 주춤하고 다른 길이 있는가 찾아보았으나 뚫고 나아가기에는 엄두가 나지 않는
빽빽한 잡목뿐, 다른 길은 없다.
묘지 맨 위까지 오토바이가 올라왔다 내려간다. 승용차도 두 대 있다.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묘마다 조화(造花)가 있다. 이처럼 쨍쨍한 햇볕에도 시든 기색이 전혀 없다. 수직으로 깎아내린
사면 위를 걷는다. 자꾸 왼쪽으로 눈길이 가서 내려다보면 현기증이 난다. 공원묘지 구내를 막
벗어나 봉암산에 들기 전에 점심밥을 먹는다. 묘지 바라보며 먹는다. 고수레는 했다.
잡목의 성가심은 수그러들었지만 길은 희미하다. 뱀이 나보다 먼저 놀라 도망간다. 독사가 아닌
모양이다. 십자안부인 서운배미고개를 지난다. 등로는 고갯마루 왼쪽으로 약간 비켜 나 있다.
가파르게 오른다. 산마루에 다다르고 저기가 정점인가 하고 자꾸 가다보니 그만 내려간다.
봉암산 정상에는 삼각점과 깃대가 있다는데 놓쳤다.
산마루에 다다르고 마루금 조금 비켜 왼쪽의 도드라진 부분이 미심쩍었는데 혹시 그 곳이 정상인지.
오동촌 뒤에 있는 산으로 매우 수려하고 모양이 봉황새와 같다 하여 봉황산(鳳凰山)이라 하였고
고시지명은 봉함산, 표기지명은 봉암산이다. 봉(鳳)은 아무래도 과한 느낌이다.
▶ 작성산
봉암산 삼각점을 못 보니 봉암산 정상에 오른 것 같지 않다. 되돌아가서 찾아야지 하는 의욕은 있지만 마음뿐이고 걸음은 멈추지 않고 계속 간다. 느슨한 안부를 지난다. 낙엽이 깊다. 완만히 길게 오른다.
오른쪽으로 우회로 흔적이 있지만 직등하여 작성산 전위봉에 선다. 좁은 공터는 이장하였는지
움푹하니 패어있다. 잔솔 숲을 헤치고 나가 비교적 뚜렷한 등로에 든다.
전위봉과 비슷한 표고로 10분 정도 진행하여 작성산 정상이다. 헬기장이고 그 옆에
무인산불감시시설이 있다. 정상 표지석이나 표지판은 없다. 지나온 산중 만뢰산 말고는 다 그랬다.
옛날에 대홍수가 나자 이 산으로 피난을 왔는데 까치가 먹을 것을 물어다 사람들에게 주었다 하여
작성산이라 한다. 국토지리정보원의 알뜰살뜰한 소개다. 그런 줄 알 일이다.
▶ 은석산
물을 아껴 먹는다. 참외를 물 삼아 깎아 먹는다. 혼자 산에 오면 괜히 쉬는 일은 없다. 과일을 깎으려고 또는 물을 마시려고 걸음을 잠시 멈출 뿐이다. 작성산 내리는 길은 넓은 흙길이다. 대로다.
가파르게 내려간다. 등로 변에는 빈 플라스틱 물병이 여기저기 버려져있다. 자루에 가득 담아
버리기도 했는데 자루가 터져 곳곳이 쓰레기장이다. 이 동네 문화를 보는 것 같다.
십자안부인 개목고개로 내려와 전열을 가다듬는다. 등산화 끈 조이고, 머릿수건에 모인 땀을 짜내고
질끈 동여맨다. 은석산까지 1.0㎞다. 개목고개를 지나 바로 큰까치수영의 군락지인데 아직 꽃을
피우지 않았다. 가파른 흙길이다. 숨이 턱턱 차오른다. 더 흘릴 땀이 없는 줄 알았는데 또 흘린다.
마지막 산이어서 더 힘든가보다.
기다시피 전위봉에 오르고 오른쪽 사면의 낙엽송 숲 구경하며 정상을 향한다. 한걸음 한걸음.
그리고 은석산 정상, 돌부리 삐쭉삐쭉 솟은 공터다. 예쁜 정상 표지석이 있다. 뒷면에 산 이름의
유래를 각자했다. 산이 대순같이 수려하고 수석이 아름답기에 그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그런데 은석산 내리는 동안 몇 개 반석을 제외하고는 수석의 아름다움을 도무지 보지 못했다.
삼각점은 있되 지명과 등급은 마멸되어 판독불능이다. 전망이 좋다. 작성산의 품이 듬직하고 멀리
단연 우뚝한 만뢰산까지 보인다. 일단 욕심은 △252.8m봉으로 하산이다.
▶ 하산
은석산 정상을 벗어나 Y자 갈림길에서 왼쪽을 택한다. 길이 좋다. 길게 줄기차게 내려와 십자안부를
지나고 직진이다. 옛날에 산불이 난 모양이다. 소나무가 시커멓게 타 죽었다.
그래서인지 병천면 의용소방대의 불조심 표지기가 자주 보인다. 갈림길이 빈번히 나오고 그때마다
다 내주고 주능선을 붙는다고 했는데 길 없는 능선이고 급기야는 잡목 숲으로 빠진다.
야산 비슷하여 가시넝쿨이 사납다. 골짜기에서 한바탕 씨름하다 주능선에 드니 생각이 바뀐다.
그냥 내려가자고. ×324m봉에서 △252.8m봉을 놓아버린다. 지쳤다. 길 따라 간다. 여태 흔한
옻나무를 피해 갔지만 이젠 나 몰라라 스쳐 지난다.
×235m봉이 하 높아 보이는 십자안부. 이정표가 있다. ×235m봉도 놓아준다. 가암마을로 간다.
넓은 수레길을 가로 지른다고 논두렁을 가다가 갈대 무성한 늪지에 빠진다. 어렵게 간다. 가까스로
갈대숲을 헤치고 나오니 대원선원 대웅전이 나온다. 포장길이 시작된다. 길가에는 개망초가
화초 노릇을 하고 있다.
가게에 들려 잇몸이 동상에 걸려도 좋으니 그런 맥주 주문하여 짜릿하도록 시원함을 맛보려 했는데
천안 가는 버스가 마악 달려와 텁텁한 맨입으로 타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