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차시(茶詩) 이야기
봄빛 머금은 차생활의 멋
박숙희 / 한문교육학 박사, 우리 협회 충북지부장
그럴싸 그러한지 솔빛 벌써 더 푸르다.
산골에 남은 눈이 다산 듯이 보이고녀.
토담집 고치는 소리 볕발 아래 들려라.
정인보(鄭寅普)선생의 「조춘(早春)」처럼 봄은 소리 없이 숨어서 찾아든다. 어느 새 푸석하던 솔잎은 물이 오르고 곳곳마다 나무의 빛깔이 달라져 있다. 농부는 봄맞이 일손을 시작하고 만물의 활기가 느껴지는 날, 문득 온 세상에 닿은 신비로운 봄의 손길에 놀라 탄성을 지르게 한다.
봄빛에 설레지 않는 사람이 있으랴. 남녘 지인에게서 햇차 소식이라도 전해오면 차인들은 생각만으로도 차향을 맡으며 설레인다. 임춘(林椿, 1109~1146)의 <지겸상인에게 차를 보내면서>는 귀한 차를 얻은 기쁨과 정성으로 차를 선물하는 모습이 보인다.
近得蒙山一掬春 근래 한 줌 봄빛 가득한 몽산차를 얻었는데
白泥赤印色香新 백토 위에 붉은 도장으로 봉인되어 색과 향이 처음대로이네
澄心堂老知名品 징심당 지겸상인은 차 품평으로 이름난 분이시니
寄與尤奇紫筍珍 자순차보다 더 귀한 진품을 보내옵나니
임춘은 고려 인종 때의 문인이다. 정중부의 난에 간신히 목숨을 건진 후 죽림고회(竹林高會)의 한 사람으로 시와 술로 세월을 보냈다. 차를 좋아하는 그는 봄기운 가득 머금은 약효 좋다는 몽산차를 얻었다. 백토로 쓴 글 위에 붉은 봉인까지 한눈에 보기에도 귀해 보이는 한 줌 차. 푸른빛에 차향이 신선하다. 좋은 차를 한눈에 알아보고 기뻐할 차품평에 뛰어난 상인(上人)께 드리고 싶은 생각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임춘에게 차자리는 세상사를 잠시나마 잊고 선경으로 빠져들게 하는 또다른 이상향이다. 찻물을 끓이고 차봉지를 뜯어 차를 달인다. 한 모금 머금으면 그 자체가 신선세계이다. 선경은 달리 있는 게 아니라 차인에게는 그곳이 선경이다.
극상품의 차 선물은 차인에게는 최고의 찬사요 최고의 고마움이다. ‘징심당(澄心堂)’은 지겸상인이 거처하는 집의 당호(堂號)이다. 이름이 말해 주듯이 마음을 청정하게 씻어주는 속세와 구별되는 피안처이다. 상인을 모시고 잠시나마 신선이 되어 지인들과 즐거운 차자리를 펼치며 신선세계를 맛보고 싶다. 차는 혼자 마시면 신비롭고 함께하면 아름답다. 그러기에 차자리는 이상향의 세계를 연출시키는 또다른 주체자인 것이다.
고려의 찬란한 차문화는 생활 속에도 밀착되어 민가에는 오늘날의 ‘찻집’과 유사한 ‘다점(茶店)’이 있었다. 임춘의 <다점에서 낮잠 자며>는 고려의 또 다른 음다풍속을 알려준다.
頹然臥榻便忘形 정신없이 평상에 누워 깜빡 이 몸 잊었더니
午枕風來睡自醒 베개 위 봄바람에 낮잠이 절로 깨네
夢裡此身無處着 꿈속의 이 몸은 머물 곳이 없었어라
乾坤都是一長亭 이 세상은 다만 잠시 머물다 가는 것을
虛樓罷夢正高舂 텅 빈 다점에 꿈을 깨니 해는 중천에 떠 있고
兩眼空濛看遠峰 흐릿한 두 눈은 먼 산만 바라보네
誰識幽人閑氣味 누가 알리 은둔한 사람의 한가한 멋을
一軒春睡敵千鍾 한자리 봄잠이 천종에 맞먹느니
한 잔 차 속에는 차인의 삶과 정신적 갈망과 흥취가 가득 담긴다. 다점에서 차를 즐기며 한가한 멋을 노래하면서도 인생의 덧없음은 떨쳐낼 수가 없다. 이상향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늘 마음속에 있다. 꿈속에서도 항상 끝없는 자유를 누린다. 그러나 현실세계로 돌아오면 중천에 떠 있는 해처럼 아직도 무자비한 무인세상은 그대로이고 자유로움은 먼 이야기이다.
마음을 바꿔 은둔한 사람의 한가로운 멋을 바라본다. 짐짓 자유로움으로 마냥 즐거워진다. 마치 장자(莊子)의 호접몽(胡蝶夢)인 양 자유자재의 세계를 노닐어 본다. 한 마리 나비가 되어 이 꽃 저 꽃 날아다니며 봄을 즐기다가 지쳐 잠이 든 나비는 인간이 된 꿈을 꾼다. 잠에서 깬 장자는 자기가 나비의 꿈을 꾸었는지 나비가 자기의 꿈을 꾸고 있는 것인지 알기 어렵다고 하였다. 결국 모든 것은 하나이다. 겉과 속, 몸과 정신, 현실과 이상으로 나누며 구분 짓지만 모두 하나인 것이다.
이상향에 대한 갈구는 현실을 비참하게도 하고 때론 오히려 힘을 북돋아주기도 한다. 그에게 이상향은 삶을 풍요롭게 가꾸는 정신적 지주로, 꿈속에는 이상향이요 깨어서는 한 잔의 차이다. 이것이야말로 세상의 부귀영화를 나타내는 천종과 바꾸지 않을 은둔자의 한가로운 멋이요 자랑이다.
고려 때의 다점은 오늘날의 찻집과는 다른 객관(客官)의 기능까지 함께 했었던 듯하다. 춘곤증을 낮잠으로 푼 후 따뜻한 차 한 잔으로 정신을 맑게 한다. 한가함을 즐기다가 문득 친구를 만나면 정겨운 담소에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인생을 논하기도 한다.
세상은 일장춘몽이니 긴 꿈에 불과한 삶을 여유 없이 바삐 살며 눈앞의 이익에 급급한 모습이 문득 덧없이 보인다. 흐릿한 두 눈으로도 자연의 아름다움은 무한히 보이지만 맑은 정신으로도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속인의 어리석음이 답답하기만 하다.
이상향의 추구를 위해 은둔한 죽림고회의 삶. 결국 바르게 사는 삶의 터전이야말로 임춘이 바라던 이상향이리라. 봄날의 신비로운 아름다움 속에서 차 한 잔 즐기며 이상세계를 잠시나마 꿈꾸는 행복이야 마음껏 누린들 탓하는 이가 있겠는가. 마음 맞는 벗과 함께 햇차를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