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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돌아와서 왕들의 출전할 때가 되매 다윗이 요압과 그 신복과 온 이스라엘 군대를 보내니 저희가 암몬 자손을 멸하고 랍바를 에워쌌고 다윗은 예루살렘에 그대로 있으니라 저녁때에 다윗이 그 침상에서 일어나 왕궁 지붕 위에서 거닐다가 그곳에서 보니 한 여인이 목욕을 하는데 심히 아름다와 보이는지라 다윗이 보내어 그 여인을 알아보게 하였더니 고하되 그는 엘리암의 딸이요 헷 사람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가 아니니이까 다윗이 사자를 보내어 저를 자기에게로 데려 오게 하고 저가 그 부정함을 깨끗케 하였으므로 더불어 동침하매 저가 자기 집으로 돌아 가니라>
1. 어떤 사건이든 원인과 결과가 있습니다. 결과가 그렇게 나타날 수밖에 없는 상당한 이유가 있습니다. 축복도 마찬가지 이고 아픔도 마찬가지 입니다. 원인과 결과가 있습니다. 축복받을 수밖에 없는 상당한 이유가 있습니다. 이 것을 인과응보라고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 앞에서는 절대적인 것은 아닙니다. 인과응보가 있고 원인과 결과가 있지만 하나님 안에서도 적용이 됩니다만 절대적인 것은 아닙니다. 구원의 은혜나 축복과 기적 같은 사실들은 어쩌면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 때문에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원인과 결과, 인과응보의 법칙아래 모든 것이 적용 된다면 오늘 우리는 이 자리에 설 수 없습니다. 여러분, 구원이 어디 우리의 행위로 이루어집니까? 축복이 어디 내가 잘해서 이루어집니까? 은혜로 일어집니다만 그럼에도 또한 인과응보 원인과 결과가 있습니다. 항상 원인이니 있으면 결과가 있습니다. 지금도 끝나지 않았지만 동지사대 리토 리토 센타에서 선교사 수련회가 있었습니다. 짬이 없습니다. 화장실 갈 시간외에 물 한모금 마실 시간이 없었습니다. 거기에 강사님이 4분이 오셨습니다. 그런데 강사 4분의 공통적인 강의 세미나는 한결 같이 안되는 것은 원인이 있다는 것입니다. 안 되는 것은 이유가 있다는 것입니다. 부흥이 안되는 원인이 있습니다. 해결이 안 되는 원인이 있습니다. 풀리지 않는 원인이 있습니다.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는 원인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원인이 하나님께서 간섭하시는 원인이든지, 우리 본인의 문제이든지 그 무엇이 있다는 것입니다. 항상 원인과 결과가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교회의 성장을 말씀하고 교회부흥을 이야기 합니다. 세미나도 다닙니다. 그대로 적용을 해도 안 됩니다. 안 되는 원이이 있습니다. 그런데 종종 끔찍한 결과를 가져 온 일도 그 원인은 아주 사소한데 놀라게 됩니다. 여러분, 큰일은 작은 것으로부터 시작 합니다.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다는 우리 속담이 있습니다. 세 살 버릇 여든 까지 간다는 말도 있잖습니다. 좋은 일이든지 나쁜 일이든지 일은 아주 작은 것으로부터, 미세한 것으로 부터, 하찮게 여기는 것으로부터 시작 합니다. 좋은 일도 기적도 작은 것으로부터 시작 합니다. 성경은 <너가 큰 일에 충성 하였으니...>이렇게 말씀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작은 일에 충성 하였으니...>란 말씀은 있습니다. 목사도 교인 한 생명 한 생명 작게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작게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거기에 축복이 있습니다. 작은 일을 경히 여길 때 감당할 수 없는 위험천만한 일을 겪게 됩니다. 작은 것이 작은 그 것으로만 있지 아니 합니다. 작은 것은 언제나 큰일을 만듭니다. 작은 것이 큰 것을 이끌어요. 사람도 그렇습니다. 별 볼일 없을 것 같은데 그 사람이 사람들을 이끕니다. 세미나 때 고훈 목사님께서 하신 말씀이신데 고훈 목사님께서 폐결핵 이 걸려서 바짝 말라 가지고도 목회 사역에 능력을 드러 냈다고 합니다. 그래서 자신을 뼉다구 라고 그럽니다. 마른 뼉따구가 능력이 있대요. 그리고 나서 가만히 보았더니 조용기 목사님, 김삼환 목사님, 폐병 안 걸린 사람이 없답니다. 그래서 폐병이 능력이 코스인가 보다 그렇게 생각 했답니다. 어디 코스이겠어요? 그렇지만 연약한 작은데서 능력이 나옵니다. 바울도 <나의 연약함이 곧 강함이라> 그랬습니다. 여러분, 원인과 결과가 있습니다. 결과가 그렇게나올 수 밖에 없는 것이 작은 것으로부터 시작 합니다. 그리고 그런 일의 이면을 보면, 많은 경우 현장에 있어야 될 사람들이 그 곳에 있지 않아서 벌어진 것을 보게 됩니다. 그 자리에 있어야 될 사람이 그 자리에 없어서 생기는 일이 있습니다. 사람이 있어야 할 곳에 있어야 합니다.
2. 다윗의 잘못입니다.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사람이였던 다윗이 범죄하게 됩니다. 다윗은 늘 선봉에 섰고 맨 앞에서 전두지휘하는 사람이 다윗입니다. 다윗은 뒤에서 머뭇거리는 사람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의 왕이었지만 누구보다도 최전선에 있기를 좋아했던 다윗이었는데, 봄이 돼서 전쟁이 재개(再開)되었는데도, 어찌된 일인지 그가 왕궁에 머물러 있는 것을 봅니다. 물론 군사령관이 전선에서 지휘를 하고 있었지만, 개전(開戰)초기에는 늘 전선에서 병사들과 함께 했던 다윗이었습니다. 오늘 다윗은 요압과 그의 신복과 이스라엘 군대를 암몬과의 전투에 투입합니다. 중요한 전쟁 이였습니다. 그런데 요압 장군과 그의 신복들과 이스라엘 군대가 암몬을 이기고 중요 요지 랍바를 애워 쌓습니다. 다윗과 함께하는 600명의 용사는 야전에서 살아온 사람들 이였습니다. 그래서 중요한 전투에는, 거기에는 반드시 다윗이 있었고 또 다윗이 있어야 그 신하들이 용기백배 하게 되고 또 어려운 문제 앞에서 다윗에게 물어 해결했던 공동체 이였습니다. 다윗이 있으면 그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의 사람들이 있으면 항상 다윗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로 뭉쳐진 공동 운명체는 항상 문제를 다윗에게 물었습니다. 거기에 다윗은 하나님을 중심으로 문제를 풀어 주었던 것입니다. 그렇지 못하면 다윗이 친히 하나님께 묻고 직접 하나님으로부터 대답을 들었던 다윗 이였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이 다윗의 중심입니다. 그래서 전쟁터에 반드시 다윗이 함께 하여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이 번에는 왠일인지 왕궁에 남았습니다. 전쟁터가 싫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왕궁에 있었던 다윗은 한가했고, 오랫동안 낮잠에 들어 저녁때에야 일어났습니다. 국경엔 긴장이 맴돌고 있었지만 왕궁의 다윗은 긴장 없이 엉뚱한 평안을 누리고 있습니다. 그럴 때 아주 사소한 일이 생겼고, 그것은 다윗의 생애와 왕국 전체를 뒤흔드는 커다란 사건으로 비화(飛火)됐습니다. 여러분, 일이란 것이 참으로 그렇습니다. 무엇이 되려하면 이상하리 만큼 딱딱 맞아 떨어지는 것이 됩니다. 생각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이렇게 한 방향을 향하여 가는 것 같이 되어 집니까? 지금 다윗의 일이 그렇습니다. 전쟁 하는데 왕궁에 남습니다. 한가하니 잠을 잡니다. 평안 합니다. 저녁노을이 비칩니다. 거기에 궁궐 옥상을 거닙니다. 그런데 사람으로서 보암직도 하고 먹음직도 하고 탐스럽게 할 만한 일을 다윗이 만납니다. 저녁 때 왕궁의 옥상을 거닐던 다윗이 목욕하는 한 여인을 목격을 합니다. 그리고 그 여인을 왕궁으로 불러들여 동침을 합니다. 의도적 이였습니다. 노을이 질 때 봤던 여인은 아름다워 보였을 것이고, 무료했던 다윗에겐 호기심이 발동을 했습니다. 여러분, 이 일은 자주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런데 이전에는 괜찮았는데 지금이 문제입니다. 일이란 것이 이렇습니다. 더군다나 이 여인이 자기의 충성스런 장수의 아내이고, 더욱이 그 장수가 전쟁터에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다윗은 어떻게든 그 부하의 가정을 돌보아 주고 지켜주었어야 할 책임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반대로 그 모든 것을 알고도 자기의 지위를 이용해서 부하의 아내를 내 것으로 만들고 한 가정을 파괴한 것은 용서받지 못할 일이었습니다. 다윗의 생애에 회오리가 치고 왕국엔 암운이 짙게 드려질 징조였습니다. 여러분, 일이 잘못 되려면 아주 작은 것에서 발생이 되고 그 것을 하찮게 여기면 더욱 큰 일로 발전을 합니다. 일은 일을 물어 옵니다. 병도 마찬가지 입니다. 작을 때 도려 내어야 합니다. 키우면 어려워집니다. 병이 병을 물어 옵니다. 특별히 여러분, 나쁜 것은 작은 것이 반드시 큰 사단을 불러 옵니다. 다윗이 그렇습니다.
3. 자기 자리가 왕도입니다. 왕도는 따로 없습니다. 사람은 언제나 자기가 있어야 할 자리에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 일을 한다는 것은 무슨 큰일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이 세상에 우리에게 맡겨주신 일을 현장에서 충실히 감당하는 것입니다. 문제와 사건은 언제나 현장을 비울때 일어납니다. 현장을 비운다는 것은 단지 그곳에 있지 않아서 공백이 되는 상태로 끝나지 않습니다. 자기 자리를 비우고 다른 자리에서 엉뚱한 일을 한다는 게 심각한 문제이고, 그 일이란 대체로 죄악을 저지르는 것이기 쉽상 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이 주신 일터를 굳건히 지키고 그곳에 충실하십시오. 성실은 어떤 환경에서도 현장에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알고 보면 하나님의 일은 자기가 꼭 필요한 시간에 현장에 있는 것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작아 보이지만 바로 그것이 큰일의 첫 걸음입니다. 오늘도 삶의현장에서 맡겨진 일을 잘 감당해야 합니다. 이것이 왕도입니다. 양을 지키는 목자가 떠나 있으면 사자와 곰의 발톱 아래 양이 놓입니다. 지도자가 지도자의 자리에 있지 아니하면 따른 사람은 우왕좌왕 합니다. 제자리에 있지 아니함으로 문제가 생기고 사건이 발생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부모의 자리를 떠나면 아니 됩니다. 학생이 학업의 자리를 떠나면 학생이 아닙니다. 배울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교회를 떠나면 아니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떠나면 길이 없습니다. 모든 잘못과 문제는 제 자리에 있지 아니함으로 발생이 됩니다. 그래서 성경은 성실로 식물을 삼으라고 하는 것입니다. 왜요? 그 자리를 떠나 있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있어야 할 자리가 있습니다. 거두려면 심는 자리에 있어야 합니다. 복을 받으려면 은혜와 복된 자리에 있어야 합니다 제가 현암 개발 주식회사 대표이사로서 있을 때의 일입니다. 서울 대학교 입구에 지금은 아니지만 당시에 조그만 병원 앞에 사람들이 벌 떼같이 모여 들었습니다. 왠 일인가 생각 했는데 사고가 나서....간증...(중략)
4. 왕도가 있습니다. 자기 자리가 왕도입니다. 자기 자리를 지키지 않아서 위험한 일을 겪게 되지만 반대로 힘들고 어려워도 자기 자리를 지켜서 기적과 놀라운 일을 경험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러분, 한가할 때 일이 되는 것이 아니라 바쁠 때 오히려 일이 됩니다. 사람들은 상황이 좋아야만 좋은 결과가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오히려 열악한 상황에서 더 많은 열매를 거두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고난은 장애라고 생각합니다. 고난 때문에 위축되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반면에 어떤 사람은 고난 때문에 더 불이 붙는 사람이 있습니다. 고난과 시험이 올 때 더 강력해 지고, 더욱 마음이 불 붙는 사람, 이런 사람이 마귀를 당황케 하는 사람입니다. 고난과 장애물 앞에서 담대하고 쓰러지지 아니하면 마귀는 더 이상 전진하 수 없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므로 마귀의 허세에 놀라서는 아니 됩니다. 큰소리치는 사람, 위협하는 사람은 진짜 공격할 의도가 없다는 뜻입니다. 진짜 공격하려는 사람은 경고없이 기습 공격을 합니다. 위협이 많을수록 진짜 공격할 확률은 적어집니다. 살다보면 환경의 방해와 어려움 때문에 안 되는 일은 거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시험과 박해는 진짜 신앙을 더 불붙게 만듭니다. 작은 믿음은 시험과 박해로 인해 꺼지지만 그러나 큰 믿음은 바람이 불면 더 잘 타오르게 됩니다. 이것이 복된 신앙입니다. 일본 선교의 원동력이 어디에 있습니까? 박해에 있습니다. 진짜 신앙으로 무장하니까 박해 속에서도 타오르는 신앙이 되는 것 입니다. 제대로 믿음만 붙어 있으면 어려움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한국교회 이야기입니다. 교회 근처에 사는 사람들은 오히려 새벽기도에 잘 못 나온다. 왜 그럴까요? 저항이 작기 때문이랍니다. 반면에 멀리 사는 사람은 결석 없이 일찍 나와서 참석한답니다. 여러분, 장애가 클수록 저항도 커지는 것 입니다. 어려움이, 장애가 큰 믿음의 신앙을 일으키는 원동력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시간이 많아야만 많은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일의 열매를 거두는 것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이 아닙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에서 3주 동안 말씀을 증거 했는데 큰 부흥이 일어났습니다. 위대한 영감의 일들은 어려움의 자리에서 더 많이 이루어집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을 더 크게 의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시간이 많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헨델이 ‘메시아’를 작곡한 것이 의사로부터 죽음을 선고받고 난 다음부터입니다. 그 전에는 메시아 같은 대곡을 작곡 하겠다고 용기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사형선고 받고 나서 단 몇 주만에 대곡을 완성했습니다. 세계 3대 서사시인 호메로스, 밀턴, 단테는 다 맹인이었습니다. 장애가 영감의 글을 쓰는 것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유명한 한니발 장군과 넬슨 제독, 그리고 궁예는 한쪽 눈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존 번연의 ‘천로역정’ 이 감옥에서 쓰였습니다. 루터의 독일어 성경 번역이 발트부르크성으로 도망쳤을 때 쓰인 것입니다. 마거릿 미첼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는 신문사에서 풀타임으로 일하다 틈틈이 쓴 것 입니다. 풀타임으로 뛰는 교역자보다 자기 직업을 가지고 있는 평신도들이 더 많은 사역의 열매를 맺는 경우가 많습니다.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고 일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구하십시요, 궁할 때 통하는 기적을 맛볼 것 입니다. 모자랄 때 채워지는 은혜를 맛 보게 될 것입니다, 어려울 때 열매가 쏟아지는 은혜를 체험하게 될 것 입니다. 그러므로 낙심할 시간에 일어나서 망치를 들어야 합니다. 이것이 지혜이고, 인간이 할 도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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