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가 최초로 8,000m 고봉에 오른 것은 지금으로부터 60년 전인 1950년의 일이다. 이미 히말라야의 고봉에 대한 도전은 19세기 말부터 계속되고 있었지만 프랑스 원정대가 안나푸르나 초등에 성공하기 전까지 히말라야는 인간이 범접할 수 없는‘신들의 영역’이라 불렸다.
안나푸르나 초등 이후 8,000m 거봉에 대한 도전은 한층 격화됐다. 3년 후인 1953년 영국 원정대가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에 올랐고, 이어 차례로 전인미답의 봉우리들이 인간의 발길을 허용했다. 안나푸르나 초등 14년 뒤인 1964년 중국 원정대가 시샤팡마에 오르며 14개 봉 초등정 경쟁은 막을 내린다.
단 한 사람이 14개 봉우리에 모두 오르는 행위는 1986년 라인홀트 메스너가 처음으로 성공했다. 인간 한계를 넘어선 일대 사건이었다. 이때부터 8,000m는 알피니스트에게 동경의 높이가 됐고 그 정상에 오르려는 레이스가 시작됐다.
대한민국, 여성 최초, 최다 등정자 기록 보유
라인홀트 메스너는 1970년 낭가파르밧을 시작으로 1986년 로체 등정까지 16년에 걸쳐 히말라야 8,000m 고봉 14개에 모두 오르는 위업을 이뤘다. 그 뒤 그는 전무후무했던 등반 경험을 바탕으로 20권이나 되는 저술을 남겨 독일과 이탈리아에서 산악문학상을 세 번이나 수상했다.
메스너 이후 지금까지 8,000m 14개 거봉에 모두 오른 이는 총 22명이다. 이들 등정자 가운데 10명은 산소통을 이용하지 않았다. 우리나라에서는 엄홍길이 2000년 세계 여덟 번째로 14개 봉 완등에 성공했고, 이듬해인 2001년 박영석이 세계 아홉 번째, 2003년 한왕용 대장이 세계 열한 번째로 14개 봉 완등에 성공했다. 그리고 지난 4월 27일 오은선이 안나푸르나에 오르면서 세계 21번째인 동시에 여성 최초로 14개 봉 완등자가 되는 영예를 얻었다.
14개 봉 완등자 21명을 국가별로 살펴보면 한국이 4명, 이탈리아와 폴란드, 스페인이 각 3명, 스위스·멕시코·미국·에콰도르·카자흐스탄·독일·핀란드·포르투갈·호주가 각 1명씩이다. 대한민국은 뒤늦게 히말라야 고봉 도전을 시작했지만 어떤 국가보다 훌륭한 성과를 거뒀다.
여성 산악인 가운데 오은선이 최초 14개 봉 완등에 성공했지만 그 과정의 마지막은 치열한 경쟁의 시간이었다. 특히 스페인의 에두르네 파사반(36)은 오은선보다 며칠 앞서 안나푸르나에 오르며 마지막까지 손에 땀을 쥐게 했다. 파사반은 5월 17일 시샤팡마 등정에 성공해 오은선에 이어 14개 봉 완등에 성공했다. 또 다른 여성 경쟁자인 오스트리아의 게를린데 칼렌브루너는 이번 시즌에 13번째 봉우리인 에베레스트에 오르기 위해 등반을 펼치고 있다.
김재수·김창호 등도 14봉 레이스 중
현재 우리나라 등반가 가운데 8,000m 14개 봉 등정이 가시권에 있는 인물은 4명 정도다. 먼저 지난해 14개 봉 중 11번째인 낭가파르밧에 오른 뒤 하산길에 추락사한 고 고미영씨의 등반 파트너 김재수(48·코오롱)를 선두주자로 꼽을 수 있다. 그는 2007년 5월 에베레스트를 시작으로 히말라야 10개 봉에 고미영씨와 함께 올랐다. 현재 김재수는 안나푸르나·가셔브룸1봉·가셔브룸2봉 3개의 봉우리만 남겨두고 있다. 김재수는 고 고미영씨를 히말라야로 이끈 주인공으로 ‘히말라야 체질’이라는 말을 들을 만큼 고소에서 탁월한 능력을 자랑한다.
낭가파르밧 루팔벽에 오르며 차세대 클라이머로 떠오른 김창호(41·몽벨)는 무산소와 고난도 루트 등반으로 우리나라 히말라야 등반 역사에 새로운 장을 써가고 있다. 그는 4월 29일 캉첸중가 등반에 성공해 총 10개 봉을 무산소로 올랐다. 그는 잠시 귀국했다가 안나푸르나에 도전할 계획이다.
이 밖에도 현재까지 5개의 봉우리에 오른 김홍빈(46·광주산악연맹)과 그의 파트너 김미곤(38·한국도로공사)도 있다. 특히 김홍빈은 등반 사고로 열 손가락 모두를 잃는 장애를 극복하고 14개 봉에 도전한 의지의 인물이다. 이들은 아직 목표로 하는 14개 봉에는 많이 못 미친 것이 사실이다. 안타깝게도 이 두 사람은 4월 24일 마나슬루(8,163m) 등반 중 동상에 걸려 국내로 돌아와 치료를 받고 있다. 하지만 주변의 지원에 힘입어 불굴의 의지로 남은 모든 봉우리에 오르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다.
한편 이번에 오은선 대장과 안나푸르나를 등정한 나관주(43·오지로투어 대표)씨도 8개의 봉우리를 오르며 유력한 완등자 후보가 됐다.
14좌와 16좌, 어떻게 다른가
산악인들은 몇 개의 등반 대상지를 별도로 묶어 그것을 제2, 제3의 목표로 삼기도 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알프스 3대 북벽, 그리고 히말라야 8,000m 14좌입니다. 어떤 이는 이를 두고 등반을 지나치게 계량화했다는 비판도 하지만 긴 시간을 두고 꾸준히 추구할 새로운 과제를 설정할 수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진 대상지들을 하나로 묶기’는 널리 용인돼왔습니다.
아이거·마터호른·그랑드조라스의 알프스 3대 북벽은 같은 유럽알프스 지역에 있고 그늘이 들지 않는 추운 북벽이며 등반이 어려운 수직 벽인 점 등 몇 가지 공통점이 있기에 하나의 의미망으로 엮은 것입니다. 8,000m 14좌는 해발 8,000m가 넘는 봉이 모두 14개라 하여 ‘14좌(giant peak)’로 개념을 설정한 것이죠.
여기에는 무슨 엄격한 잣대가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애초에 다른 대상지 하나를 더 포함시켜 4대 북벽이라거나 15좌로 할 수도 있었을 것이며, 지나치게 유다른 대상지만 아니라면 다들 또한 그렇게 받아들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1986년 라인홀트 메스너가 인류 사상 최초로 14좌 완등을 선언하면서‘8,000m 14좌’는 하나의 독립된 의미망으로 굳어졌습니다. 때문에 14좌 완등자들은 14좌를 마친 이후에는 다른 방식의 등반으로 방향을 바꾸었지요. 그러나 엄홍길은 여기에 2개 봉을 더 보태어 올라 16좌를 완등했다고 말한 것입니다.
8,000m 14거봉은 저마다 위성봉들이 있으며, 그 중 8,000m를 넘는 것이 9개 있습니다. 그 9개 중에도 칸첸중가의 서봉 얄룽캉(8,505m)과 로체봉의 동봉 로체샤르(8,400m)는 독립성이 강하여 여러 산악인들이 별도로 등반을 하기도 했습니다. 엄홍길은 이 두 개를 보태어 16좌라 한 것이죠.
16좌 세계 최초 등정이라는 말도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가능성이 극히 희박하긴 하지만 그것이 새로운 의미망으로 정착될 수도 있을지 모릅니다. 14거봉에 이어 그가 한 2개 봉 등반도 물론 몹시 어렵고 힘들다고 합니다.
아직도 16좌를 하겠다는 산악인은 엄홍길 이외에는 없습니다. 다만 스페인의 14좌 완등자 후아니토 오이아르자발이 14좌×2를 하겠다고, 즉 14좌를 두 번 하겠다고 선언한 모양인데, 그렇게 그 나름으로 의미망을 확장해보려는 것이겠지요. 오은선은 16좌 등정이나 14×2 등정은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다고 대답했습니다.
아무튼 그간 여러 언론매체는 마치 세계적으로 난다 긴다 하는 산악인들이 경쟁적으로 16좌를 하려 했으나 엄홍길이 가장 먼저 한 것인 양 뉘앙스를 풍겼습니다. 이는 진실을 잘못 전달한 것이죠. 엄홍길이 간혹 공개석상에서 ‘16좌’가 아니라 ‘14+2좌’라고 언급했던 것은 이런 사실을 의식해서였겠지요. ‘히말라야 16좌 완등으로 세계 등반사를 다시 썼다’거나 하는 표현은 외려 엄홍길을 곤란하게 한 것이었다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