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교회로부터 계승되는 가장 이상적인 교회상은 사실상 어느 특정 교단이 독점할 수 없다. 모든 교회는 어느 정도 “타협”(compromise)의 과정을 거치면서 그 순수성을 잃어갔던 것이 역사상의 교회였다. 따라서 초대교회의 원리는 모든 교단이 돌아가야 할 하나의 모델이며 이상이다.
기독교의 역사는 16세기 종교개혁으로 인해 큰 전환점을 맞이했다. 초대교회로 돌아가자는 구호 아래 로마 가톨릭으로부터 결별한 개신교는 신약교회의 정신과 복음을 재천명하며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 그런데 그 개혁운동은 여러 갈래의 교단과 분파를 낳고 말았다. 침례교의 기원을 논할 때 피해갈 수 없는 질문은 바로 침례교와 종교개혁의 관계다. 과연 침례교는 종교개혁의 산물인가? 아니면 종교개혁과 다른 어떤 뿌리를 가지고 있는가?
침례교의 기원은 역사적으로 볼 때, 영국 분리주의자들로부터 출발한다고 말하는 것은 문제 삼을 수 없다. 다만 여기서 16세기 아나뱁티스트들과의 관계를 어떻게 이해하는가 하는 것이 중요하다. 분명 16세기 아나뱁티스트들은 그들 나름의 역사적 계보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그들은 지금의 침례교와 다른 전통을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문제는 역사적인 침례교가 16세기 아나뱁티스트로부터 받은 영향과 공유하고 있는 신앙의 정신을 간과할 수 없다는 데 있다. 그러므로 현재 침례교의 직접적인 역사적 뿌리는 영국 분리주의 혈통으로, 신앙과 정신의 특징적 영향은 16세기 아나뱁티스트들로부터 이어받았다고 보는 것이 어떨까?
그런 점에서 이스텝(William R. Estep)의 이중조상설(Dual parentage theory)은 설득력이 있다. 이중조상설이란 침례교의 조상으로 영국 분리주의는 아버지로, 대륙의 16세기 아나뱁티스트 운동을 어머니로 삼는 것을 말한다. 물론 이 이론이 미국에서 첫 침례교회를 설립한 로저 윌리엄스에게도 일률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은 좀 더 신중하게 연구해야 할 문제다. 하지만 윌리엄스가 분리주의자에서 침례교인으로 정체성을 형성하는 과정에서 아나뱁티스트의 영향을 받았다고 하는 것은 개연성이 충분히 있다.
[침례교신학], 53-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