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청을 그 안팎에 칠하라”(창세기 6:13-17) 2012. 9.16.
전에 러시아 소유즈 우주선을 탔던 우리나라 최초의 우주인 이소연씨의 이야기를 들으니, 지구로 귀환할 때 공기와의 마찰로 우주선은 불덩어리가 된다고 합니다. 우주선 바깥 표면의 온도가 2,500도까지 올라가니 캡슐은 쇳덩이도 태울 것 같은 무시무시한 기세로 화염에 휩싸이는데, 이를 캡슐 안에 꼭 끼어 앉은채로 바로 눈앞 30cm에 있는 유리창으로 그 화염을 볼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니 우주선에 아주 작은 틈이라도 생기면 그 틈으로 뜨거운 고열의 불기가 스며들어 우주비행사에게는 치명적이 될 것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미국도 작년을 끝으로 지난 30년간 5대의 개량된 우주왕복선으로 바꿔가며 130번 이상을 운행하였는데, 운행중 두 번의 사고가 모두 우주선에 단열재 탈락 등의 이유로 틈이 생기면서 폭발한 사고였습니다. 챌린저호는 발사직후 73초만에 폭발하여 7명의 우주인들이 사망하였고(1986.1.28), 컬럼비아호는 지구로 귀환 도중에 폭발하여 역시 7명의 우주인들이 사망하였던(2003.2.1) 것입니다. 이같은 틈이라는 문제는 불 뿐아니라 물에도 역시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오늘 창세기 본문을 보시면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이르시기를, 홍수를 피할 구원선으로 방주를 만들때 고페르 나무로 만들고 그 안에 칸들을 막고 역청을 그 안팎에 칠하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분명 방주 안으로 물이 들어올 틈을 철저히 막기 위함일 것입니다. 앞으로 방주가 노아의 8식구는 물론 코끼리를 비롯한 어마어마한 동물들과 식량을 싣고서 무려 1년을 버티며 물 위에 떠 다닐 것인데, 행여 방주에 예기치 않던 작은 틈이라도 생겨 물이 스며들었다가는 큰 일이기 때문입니다.
우선 방주는 고페르 나무로 만들라고 하였습니다.‘고페르(גפר)’라는 나무는 성경에서 이곳에만 나타나기 때문에 그 나무가 어떤 나무인지는 확인할 수는 없으나, 우선 구하기 쉬운 나무일 것이며 나무 재질 또한 단단하고 나무 진이 많아 오랫동안 부패하지 않고 방수 효과가 뛰어나, 선박을 만들거나 이집트에서 미이라의 관을 만드는데 사용되었던 잣나무 삼나무의 일종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특별히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은, 방주 안팎을 역청으로 칠하라고 하신 부분입니다. 물론 방주에 물이 스며들지 않도록 하기 위함일 것입니다. 요즘은 역청하면 도로 포장시 사용하는 아스팔트를 생각합니다만, 6.25전쟁 직후 한참 어려울 당시에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하꼬방 판자집의 지붕과 벽에 칠한 시커먼‘타마구’라고 불렀던 아스팔트 종류를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것입니다. 당시 판자집은 지붕이나 벽이 나무판자나 박스종이 혹은 깡통을 펴서 이어붙인 조악한 것이어서 비바람이 들이치거나 비에 지붕이 새지 않도록 시커먼 타마구 콜탈을 두껍게 칠했던 것입니다. 이런것이 다 역청 종류입니다. 옛날에는 필요시 송진이나 나무진으로 역청 비슷한 것을 만들어 방수용으로 사용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혹시 노아방주 안팎에 칠한 것이 성경 주석가들은 나무송진을 원료로 해서 만든 역청이 아닌가 설명합니다만, 나무송진이든 역청이든 특별히 인공적으로 필요에 따라 가공하여 만든 또다른 종류의 역청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두 가지 면에서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 가지 면은, 우리말 성경에‘역청’이라는 말이 오늘 본문 외에 5번 정도 더 나타나는데, 단어의 원어만 가지고 보면 본문만 유일하게 단 한번‘코페르(כפר)’라는 말을 사용하였고, 다른 곳에서는 두 가지의 다른 말들을 여러 번에 걸쳐 사용하였기 때문입니다. 창세기11:3의“서로 말하되 자,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 굽자 하고 이에 벽돌로 돌을 대신하며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하고”의 역청과, 창세기14:10의“싯딤 골짜기에는 역청 구덩이가 많은지라 소돔 왕과 고모라 왕이 달아날 때에 그들이 거기 빠지고 그 나머지는 산으로 도망하매”의 역청과, 출애굽기2:3의“더 숨길 수 없게 되매 그를 위하여 갈대 상자를 가져다가 역청과 나무 진을 칠하고 아기를 거기 담아 나일 강가 갈대 사이에 두고”의 역청 즉 세 곳은‘헤마르(חמר)’라는 말을 썼습니다. 그리고 이사야34:9의“에돔의 시내들은 변하여 역청이 되고 그 티끌은 유황이 되고 그 땅은 불 붙는 역청이 되며”의 역청 두 곳을 비롯하여 역청은 아니지만‘나무 진(출2:3)’이라고 한 다른 한 곳을 합쳐 즉 세 곳에서는‘제페트(זפת)’라는 말을 사용하였기 때문에, 본문에만 나타나는‘코페르’는 무언가 다른 역청이 아니가 싶은 것입니다.
또 다른 한 가지 면은, 앞에서 말씀드린 본문 외에 달리 나오는 여러번의 역청에 대한 두 종류의 원어(헤마르,제페트)의 설명은 별 차이 없이 비슷하였으나, 유일하게 한 번 나오는 본문의 역청‘코페르’는 단순히 역청이라는 의미 외에도 수준 높은 많은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수준 높은 다른 의미란, 본문에 역청으로 나오는‘코페르’라는 말의 의미에‘덮개, 속전, 속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 본문의“역청으로 그 안팎에 칠하라”의‘칠하라(카파르,כפר)’라는 말도, 단순히‘칠하다’는 의미 외에‘덮다, 속죄하다, 용서하다, 정결케 하다’는 의미가 있었습니다.
그러므로‘코페르’는 단순한 역청이 아니라 제사나 다른 용도를 위해 가공된 물품은 아닐까 생각도 해보는 것입니다. 아마 노아 홍수 이전에도 오늘날과 같은 문명의 수준은 아니더라도 여러 분야에서 다양한 용도를 위하여 생산되던 물품들이 얼마든지 있었겠다고 충분히 미루어 짐작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여하튼 본문은 단지 물이 스며들지 않도록 틈을 막기 위하여 어떤 특수한 역청으로 방주 안팎을 칠하였나는 점도 중요할 수 있지만, 그보다도 역청으로 쓰인‘코페르’에‘속전,속죄’의 의미가 있다는 점을 생각할 때, 여기서 더 중요한 영적인 의미를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죄와 죽음의 물결이 넘실되는 노아홍수와 같은 이 세상 속에서, 노아방주와 같은 영적 방주인 교회 안에 머물러 있는 우리의 영혼을 철저하고 안전하게 보호하시기 위해, 다시 말씀드려 죄와 죽음의 세력이 감히 틈새 공략을 하지 못하도록 영적 방주의 안팎이 우리의 속죄 제물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빈틈 없이 칠해졌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곧‘십자가의 도’가 아닐까요? 방주가 그렇고, 방주에 칠해진 역청이 그렇고 모두‘십자가의 도’를 예표적으로 보여주시는 사건인 줄 믿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출애굽 사건에서도 여러 면에서‘십자가의 도’가 예표적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 중 특별한 사건은‘유월절’사건일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여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이끄실 때에, 완강히 거역하는 애굽왕 바로와 애굽 전국에 열 가지의 재앙을 내리십니다. 그 중 제일 마지막 재앙이 바로 장자를 멸하는 무서운 재앙이었지 않습니까? 출애굽기11:4-9절에 나옵니다.“모세가 바로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밤중에 내가 애굽 가운데로 들어가리니, 애굽 땅에 있는 모든 처음 난 것은 왕위에 앉아 있는 바로의 장자로부터 맷돌 뒤에 있는 몸종의 장자와 모든 가축의 처음 난 것까지 죽으리니 애굽 온 땅에 전무후무한 큰 부르짖음이 있으리라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에게는 사람에게나 짐승에게나 개 한 마리도 그 혀를 움직이지 아니하리니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과 이스라엘 사이를 구별하는 줄을 너희가 알리라 하셨나니”라고요. 바로 그날 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유월절 어린 양을 잡아 그 피를 양을 먹을 집 좌우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애굽을 심판하실 때에 어린 양의 피가 칠해 있는 집은 재앙이 유월 즉 피하여 넘어가게 하시므로 이스라엘과 애굽 백성을 구별하셨던 것입니다.
노아방주에 역청을 칠한 사건이‘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도’에 관한 희미한 예표라고 한다면, 유월절 이스라엘 백성들의 집 대문에 어린 양의 피를 칠한 사건은‘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도’에 관한 더 확실한 예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신약 고린도전서5:7절에는,“...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느니라”고 예표됨을 확실히 밝히셨으며, 마태복음26:28에는 예수님께서 직접적으로 말씀하시기를,“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 믿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을“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받은 자(벧전1:2)”라고 말해 지기도 하는 것입니다. 피 뿌림을 얻는 자라 함은, 마치 유월절 양과 같이 십자가에서 피 흘려 희생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를 말합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은 자들 곧 예수 믿는 사람들은, 마치 구약시대 노아홍수를 피하여 역청을 칠한 방주에 들어간 사람들과 같으며, 출애굽 시대에 장자를 멸하는 재앙을 피하여 양의 피를 칠한 집 안에 들어가 있었던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으며, 오늘날 죄와 죽음과 심판을 피하여 십자가의 도를 믿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과 같다고 하겠습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은 자 곧 그리스도를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요한복음 5:24절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영생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그런데 우리가 예수님을 믿어 생명을 얻은 자라고 하여, 우리가 천국에 이미 들어간 것으로 착각해서는 안됩니다. 아직 우리가 육신을 지니고 사는 동안에는 시험에 빠지지 않기 위하여 늘 깨어 기도하며 살아야 합니다. 노아방주가 마른 땅에 안착하기 전까지의 물 위에 있는 동안과,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까지의 광야생활을 하는 동안과,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영혼이 구원받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천국에 들어가기 전까지의 세상에서 사는 동안은 그렇습니다.
요즘 전세계적으로‘강남 스타일’의 해학적인 말춤이 선풍을 일으키는 줄 압니다만, 미국의 어느 교인이 목사님에게 말 한 필을 선물하면서,‘이 말은 신앙으로 특별히 훈련시킨 말이니 박차와 고삐를 사용할 필요 없습니다. 그냥 타고 할렐루야 하고 외치면 달리고 아멘-하면 즉시 멈춥니다’라고 일러 주었답니다. 그말은 정말이었습니다. 할렐루야- 외치기가 무섭게 질풍처럼 달리다가도 아멘- 하니까 잘도 멈추곤 합니다. 어느날 목사님이 말을 몰고 모처럼 드넓은 벌판을 정신없이 달리다가 천야만야한 낭떠러지를 발견하고 놀라고 급한 마음에 스톱 스톱 하면서 아우성을 치다가 벼랑 끝에 다다라서야 겨우 생각나서 아멘-하였더니 아슬아슬하게 급정거를 하였답니다. 까딱 잘못했으면 죽을뻔 했다면서 두 손을 높이 들고‘하나님 감사합니다 할렐루야’외쳤답니다. 그다음은 어찌 되었을지 상상이 안됩니다.
그러므로 고린도전서10:12절에“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셨으며, 예수님께서도 최후의 만찬 후에 제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시면서(요17:15),“내가 비옵는 것은 그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다만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고 하신 줄 압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힘써서,“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엡6:11),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롬13:14),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엡4:27),”는 여러 적극적인 권면의 말씀에 귀 기울이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신앙생활에서 나타나는‘틈’이란, 믿음없이 즉 우리 마음대로 우리의 이익을 앞세워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순간일 것입니다. 바라기는 우리 모두가 매사에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는 믿음 안에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므로써, 주님께서 주시는 큰 평안을 누리며 동시에 우리 주님을 기쁘시게 하며 사는 자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권면드립니다. 할렐루야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