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행복한 여행지 "항도부산(港都釜山)"
국권을 상실한 일제 36년과 같은 시절엔 사회가 전반적으로
어지럽고 사람들의 마음이 수심(愁心)으로 가득하여 암울했던
그 때 관부연락선이 닿던 부산항은 사랑과 이별 그리움과 아픔이
점철된 한 많은 사연들이 켜켜히 쌓이니 그토록 아픈 마음들에서
서름을 토해내듯 윤심덕의 "사의 찬미" 정세정의 "연락선은 떠난다"
남인수의 "울며헤진 부산항" 등의 우리의 가요들은 우리의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들의 심금(心琴)을 울렸고 그래서 부산항은
그 당시 삼천만 우리 민족의 사연이 쌓인 곳이고 해방 이후 이념(理念)
쌈으로 갈라진 남북이 1950년6월25일 북쪽의 느닷없는 도발로 남쪽의
전세가 불리하여 낙동강 이남까지 밀리니 정부까지 피난을 하여 임시
수도가 된 부산은 피난민으로 북적이다가 유엔군의 참전으로 9월28일
서울을 수복한뒤 환도하는 12열차로 피난민이 부산을 떠나는 정경을
노래한 남인수의 "이별의 부산정거장" 중공군의 개입으로 전세거 뒤바껴
1951년1월4일 흥남철수로 인해 미군함에 실려온 피난민으로 북적이던
때에는 현인의 "굳세어라 금순아" 라는 주옥(珠玉)같은 가요들이
일상에 지친 피난민들을 위로해 주었고 전후 복구가 한창이던
1953년 정전 이 후엔 여름피서지 해운대를 찾던 젊은 청춘들
에게도 사랑과 이별한 아픔이 컸던가봅니다. 손인호의 "해운대엘
래이지" 윤일로의 "추억의 영도다리" 고봉산의 "용두산엘레이지"
등의 노래를 음미(吟味)해보면 부산항은 우리 조,부모님들의
추억이 어린 항도(港都)임을 짐작케 합니다.
오늘은 인터넷 카페 아름다운5060 산행동호회에서 일요원정 여행지로
정한 부산을 가기 위해 새벽 네시반에 기상하여 여장을 준비하고 버스로
전철로 서울 종로3가에 도착하니 아침 여섯시 사십분 일곱시 조금 지나
사당동에서 오는 선진고속관광 7467호 버스에 승차하여. 두 곳의 휴게소
를 들러간 부산 청사포에 도착된 시간이 예정보다 두 시간 늦은 오후 한시
사십분 미리와서 기다리는 부산,경남지역 회원분들을 만나 걷기코스가
축소된 청사포 선착장 등대 아래서 시작한 트랙킹 코스는 폐선된 옛 철로
인 해운대삼포길을 걸어 미포에 도착하니 뒷풀이 시간이 임박하여 남은
해운대와 동백섬은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하고 버스로 이동 부경 회원님
들의 안내로 민락동 회센타라는 식당에 가서 양대 지역 회원들과 합석하여
푸짐한 회정식을 나누며 하나된 마음으로 서로 뜻이 맞고 정다운 기운이 넘쳐
흐르는 듯한 화기애애(和氣靄靄)한 시간을 함께 하노라니 연중 365일이
오늘만 같아라라는 참으로 즐겁고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부경지역 회원님들
5060 님들이 부산,경남에 사시기에 만날 수 있어서 즐겁고 행복했습니다.
감사합니다!!! 보내는 마음 떠나는 아쉬움을 뒤로한체 귀경의 버스에
올라 비내리는 고속도로를 달려 사당역에 도착 막차로 집에 도착하니
0시35분이었습니다. 이 게시물은 16일 퇴근후에 작성하여 올립니다..
청사포마을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중동에 있는 자연 마을.
청사포 마을은 중 2동 530번지 일대에 자리 잡은 어촌 마을
이다. 미포 로터리에서 달맞이길을 따라 가다 해송교를
지나 남쪽으로 내려가면 청사포가 자리한다. 마을 내로
동해 남부선이 통과해 윗마을과 아랫 마을로 분리되었다.
아랫 마을이 청사포이며 윗마을이 새터[신기(新基)] 마을
인데 요즘은 통합하여 청사포로 부른다. 마을에는 골든
비치 호텔이 들어서 있고 해안가를 따라 횟집 및 장어
구이, 조개구이 집 등이 밀집한 회촌을 형성하고 있다.
해안에는 청사포 선착장이 있는 지방 어항으로 50여
척의 어선이 정박해 있다. 쥐치, 도다리, 방어
등과 잡어가 어획된다.
마을 앞 바다에서는 20여 가구에서 운영, 관리하는 미역
어장이 있다. 청사포 앞바다는 물이 맑고 조류가 급물살로
이어서 미역 양식의 최적지로 11월~4월까지 채취한다.
미역 양식은 다릿돌[해상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1998년
에 인공위성처럼 두둥실 바다 위에 우뚝 서 뱃길을 열어
주는 교석추 등표를 세워 항로를 알려 주고 있다]을 중심
으로 이루어져 다릿돌 미역밭으로 부른다. 다릿돌 미역밭
에서 생산된 미역 수입으로 매년 3차례의 당산제와 4년마다
개최하는 풍어제를 400년 동안 지내 왔다. 마을 남쪽 해안
도로 북쪽에는 청사포 당산이 있어 매년 1월 3일과
6월 3일, 10월 3일 3회 제를 올린다.
해운대삼포길
미포, 청사포를 만났으니 이제 삼포 중의 하나인 구덕포가 있는
송정 해수욕장으로 향한다. 그 중간에 해마루라는 정자에 오르면
청사포 포구의 빨간 등대와 하얀 등대가 시야에 들어와
잃어버렸던 시심을 자극한다.
드디어 발길은 송정 해수욕장에 닿는다. 송정 해수욕장은 해변의 길이가
1.2킬로미터 정도 된다. 특히 경사도가 급하지 않아서 아이들을 동반한
가족 단위 피서객들이 즐겨 찾는다. 최근 들어 숙박시설과 맛집들이 많이
들어서서 피서철이 되면 한밤에도 불야성을 이룬다. 패러세일링 같은
레포츠를 즐기는 모습도 보인다. 걷기 여행객들조차도 돛을 달고
바다 위를 날아다니는 환상적인 낭만에 젖어든다.
해변의 동쪽 끝 지점에는 죽도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검고 반들반들한
자갈돌로 이어진 산책길은 둘이 나란히 걸어가기에 알맞은 폭이다. 바위
틈에 자리한 송일정이라는 단아한 정자에서는 일출과 일몰을 감상할
수 있다. 바닷가에 대나무가 서식해서 죽도란 이름이 붙었다고 하나
지금은 대나무는 몇 그루 보이지 않고 푸른 소나무와 가지가 넓게
퍼진 동백나무가 우거진 숲을 이루었다.
죽도공원에서 북쪽의 기장 방면으로 방향을 잡아 조금만 걸으면
송정포구이다. 송정등대는 송정어촌계 소속의 어선들을 위한 항로
표지 시설물이다. 어촌계 건물 앞에 널찍한 주차장이 있고 왼편으로는
숙박 단지와 식당 시설이 즐비하다.
구덕포는 송정 해수욕장 남쪽 끝에 있는 작은 포구로 송정해변의
화려함에 치여 찾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
정겨운 포구 "미포'
구성과 현황
미포에서 동쪽 송정(松亭)으로 향하는 동해 남부선
철로가 작은 터널을 통과하는 지점인 해안선이
불쑥 튀어나온 곳에 고두백이[고두말]가 있다.
바다와 절벽을 가르면서 솔숲을 이어 가는 변화
무쌍하게 펼쳐진 미포에서 청사포로 가는 해안 산책
로에 장군 바위, 대밭끝, 문둥이 골짝 등이 있다.
미포에는 소규모 어항과 미포 마을이 자리하고
있다. 해운대 해수욕장의 끝단에 자리하고 있어
현재는 호텔과 여관, 그리고 크고 작은 횟집들이
들어서 있으며, 예부터 앙장구, 성게, 고둥이
많이 잡히기로 유명하였고 망상어, 감성돔 등의
낚시터로 이름난 곳이기도 하다. 미포 횟집은
미포항에서 출어한 어선이 잡은 자연산 어종
으로 국내에서 가장 먼저 생겨난 곳이다.
해운대 에레지
[대사]
임호씨...저 등대불을 보세요
꺼졌다...켜졌다...마치 숨박꼭질이라도 하는 것 같네요
정숙이...저 등대불은 우리들의 사랑이
영원토록 변치말라는 축복해주는 신호야
임호씨 행복해요...정숙이 사랑해
한산도 작사
백영호 작곡
손인호 노래
1. 언제까지나 언제까지나 헤어지지 말자고
맹세를 하고 다짐을 하던 너와 내가 아니냐
세월이 가고 너도 또 가고 나만 혼자 외로히
그때 그시절 그리운 시절 못잊어 내가운다
2. 백사장에서 동백섬에서 속삭이던 그 말이
오고 또 가는 바닷물타고 들려오네 지금도
이제는 다시 두번 또 다시 만날 길이 없다면
못난 미련을 던져버리자 저 바다 멀리멀리
3. 울던 물새도 어데로 가고 조각달도 기울고
바다마저도 잠이 들었나 밤이 깊은 해운대
나도 가련다 떠나가련다 아픈 마음 안고서
정든 백사장 정든 동백섬 안녕히 잘있거라
2016-05-16 작성자 명사십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