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곤수(鄭崐壽, 1538-1602) 『백곡선생집(栢谷先生集) / 1710년 목판본 간행 』
생가 조모 증숙부인 김씨 묘표(生祖妣贈淑夫人金氏墓表) - 손자 정구(孫子 鄭逑) 찬(撰)
부인 김씨의 본관은 서흥으로, 대유(大儒)인 증 우의정 문경공(文敬公) 한훤당 선생 휘 굉필(宏弼)의 딸이며 사헌부 감찰로 승정원 좌승지에 추증된 청주 정씨 휘 응상(應祥)의 아내이다. 성화(成化: 명 헌종(明, 憲宗)의 연호) 임인년(壬寅年, 1482, 성종 13)에 태어나 가정(嘉靖) 임술년(壬戌年, 1562, 명종 17) 4월 14일에 별세하니, 향년 81세였다.
승지공(承旨公)의 묘역이 멀리 장단부(長湍府) 임진현(臨津縣) 백목곡(柏木谷)에 있었으므로 그곳까지 가서 합장할 수 없었다. 그래서 마침내 문경공의 무덤에서 아래로 30보쯤 되는 곳에 자리를 잡았는데, 이곳은 현풍현(玄風縣: 경북 달성(達城) 서쪽의 송림(松林) 보로동(甫老洞) 서북향 자리이다. 이해 12월 21일에 장사 지냈다.
부인께서는 일찌감치 집안의 가르침을 받아 심지가 굳고 단아하여 부덕을 지녔는데, 선생이 배필을 골라 19세 때 승지공에게 시집왔다. 시집온 지 21년 만에 과부가 되었으며, 그 뒤 3년이 지나 자식들을 데리고 서울에서 현풍 솔례촌(率禮村)으로 친정어머니인 정경부인(貞敬夫人) 박씨(朴氏)를 뵈러 왔다가 그대로 자리를 잡고 살았다. 칠순의 나이에 맏아들을 잃고 또 12년이 지나 부인께서 별세하였다.
아들은 셋을 두었다. 맏아들 사중(思中)은 문장과 행실이 알차고 신중하여 사우들로부터 추앙을 받았는데, 선조가 쌓은 공으로 인해 부사맹(副司猛: 오위의 從八品 군직)에 보임되고 뒤에 이조 참판에 증직되었으며, 둘째 아들 사성(思誠)은 여러 번 과거에 응시하였으나 급제하지 못하고 선조의 공으로 어모장군(禦侮將軍: 正三品 당하관의 무관 품계)에 보임되고, 막내아들 사경(思敬)도 어모장군에 보임되었다.
손자(孫子)는 여섯 명을 두었다. 괄(适)은 열심히 공부하였으나 과거에 급제하지 못하고 선조의 공으로 돈용교위(敦勇校尉)에 보임되었는데, 부인의 승중복(承重服: 장손으로 아버지가 안 계셔 조부모의 상에 아버지를 대신해 상복을 입음)을 입던 중에 너무 슬퍼한 나머지 몸을 돌보지 않다가 죽었다.
규(逵)는 이름을 곤수(崐壽)로 바꿨는데 병자년(丙子年, 1576, 선조 9)에 장원급제하였고 보국숭록대부(輔國崇祿大夫) 서천군(西川君)에 봉해졌다. 구(逑)는 조정에 천거되어 여러 벼슬을 지내다가 강원도 관찰사를 지냈는데 이로 인해 조부와 선고에게 증직이 내려졌으며, 지금은 가선대부(嘉善大夫)로 올라 충주 목사(忠州牧使)로 나가 있다. 나머지 손자는 원(遠), 진(進), 우(遇)이다.
손녀는 여섯 명을 두었는데 증(贈) 군자감 부정(軍資監副正) 노엄(盧儼), 예빈시부정 겸 초계군수(禮賓寺副正兼草溪郡守) 곽율(郭𧺝), 사인(士人) 백현(白玹), 박호(朴澔), 손섬(孫暹), 곽재흥(郭再興)에게 시집갔다. 증손으로는 남녀 약간 명이 있다.
이상은 서천부원군이 지은 것이다.
아, 우리 조비(祖妣)의 묘표는 중씨께서 임인년(壬寅年, 1602, 선조 35) 봄에 초안을 잡아 놓은 것으로, 미처 완결하지 못하고 그해 겨울에 별세하였으므로 손자 구(逑)가 삼가 받들어 빗돌에 새겨 세운 것이다. 이른바 ‘맏아들’은 곧 나의 선고(先考)로 누차 증직되어 이조 판서에 이르렀고 ‘둘째 아들’은 곧 나의 중부(仲父)로 좌승지에 증직되었으며, ‘손자 돈용공(敦勇公)’은 나의 백씨인데 부인의 승중상을 입던 중에 너무 슬퍼한 나머지 몸을 돌보지 않다가 죽었다.
나중에 호조 참판에 증직되었다. 나의 중씨는 호성 공신에 책록되어 영의정에 증직되고 서천부원군(西川府院君)에 봉해졌는데, 선고의 명에 따라 대종(大宗)으로 출계(出繼)하여 생부모를 그리는 아픔이 일반 사람들이 부모를 그리는 정보다 훨씬 더 간절하였으므로 선조를 위해 그 생전의 사적을 표창하는 일에 모든 정성을 다 들였다.
만력 무오년(戊午年, 1618, 광해군 10) 7월 1일 정해일(丁亥日)에 손자 가선대부 행 용양위 부호군 구(逑)는 삼가 기록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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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原文]
生祖妣贈淑夫人金氏墓表。
夫人金氏。瑞興人。大儒贈右議政文敬公寒暄堂先生諱宏弼之女。司憲府監察。贈承政院左承旨淸州鄭氏諱應祥之妻。生于成化壬寅。終于嘉靖壬戌。春秋八十一。四月十四日。寔爲屬纊之日。承旨公 兆次遠在長湍府臨津縣柏木谷。旣不得歸祔。則乃卜先文敬公塋下三十步許玄風縣西松林甫老洞西北向之原。以是年十二月二十一日葬焉。夫人夙承家訓。貞正有婦道。先生擇配。而十九歲歸于承旨公。歸二十有一年而寡。又三年而携諸孤。自京省母貞敬夫人朴氏于玄風率禮村。因家焉。年七袠而喪冢嗣。又十二年而夫人下世。子男三人。冢嗣思中。文行謹飭。士友推許。用勳蔭補副司猛。贈吏曹參判。仲思誠累擧不中。蔭補禦侮。季思敬亦禦侮。孫男六人。适力學未第。蔭補敦勇。承重夫人喪。以毁而歿。逵 改名崑壽。丙子壯元。輔國崇祿大夫西川君。逑以薦累授奉節關東。贈及祖禰。今以嘉善出牧忠州。遠,進,遇。女六人。適贈軍資監副正盧儼,禮賓寺副正兼草溪郡守郭𧺝,士人白玹,朴澔,孫暹,郭再興。曾孫男女若干人。
嗚呼。我祖妣墓表。仲氏起草於壬寅之歲。未及修完。而以是冬下世。孫逑謹奉刻立。所謂冢嗣。卽我先考。累贈吏曹判書。仲卽我仲父。贈左承旨。孫男敦勇公。卽我伯氏。承重夫人喪。以毁而歿。 贈戶曹參判。我仲氏錄扈聖元勳。贈領議政 西川府院君。以先人命。出繼大宗。蓼莪之痛。倍切常情。凡所以爲先表章之勤。蓋無所不用其極云爾。萬曆戊午秋七月丁亥朔。孫嘉善大夫行龍驤衛副護軍逑謹識。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