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09. 12. 24.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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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차라리 통일부 문을 닫아라 / 이재정
이재정 전 통일부 장관 | 최근에 통일부가 2007년 12월에 수립하여 법에 정한 절차에 따라 발표한 ‘남북관계 발전 기본계획’을 사실상 이행불능이라고 규정하고 폐기하였다는 보도가 있었다. 한마디로 어처구니도 없고 분노와 우려를 금할 수가 없다.
불과 2년 전에 비록 참여정부이지만 통일부가 오랜 연구와 부처간 토론 끝에 남북관계발전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확정하고 이를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국회에 보고하고 관보에 게재함으로써 처음으로 남북관계 발전을 위한 5개년 계획이 발효되었다.
관련법에 의하면 정부의 기본계획은 통일부 장관이 관계 중앙 행정기관의 장과 협의하여 연도별 시행계획을 수립하도록 되어 있고 이를 국회에 보고하여 이행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지난 2년 동안 아무런 조처도 토론도 없다가 통일부가 고시한 이 계획을 통일부 스스로 폐기한다니 정말 정부가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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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부는 ‘선 비핵화, 후 남북관계 개선’이라는 전제 아래 기본계획을 전면 폐기한다니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을 이행할 책임이 있는 통일부가 스스로 남북관계를 포기하는 정말 한심한 조처를 취한 것이다.
일부가 제시한 폐기 사유를 들어보면 남북간 대화가 중단되어 있고, 남북 교류가 위축되어 있으며, 북한이 2차 핵실험을 하였고, 유엔 대북제재가 진행중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정말 이해할 수가 없다.
김대중 대통령 서거 때 북한의 특사가 와서 조문도 하고 청와대를 방문한 것은 대화가 아니고 무엇인가. 정상회담을 논의하기 위하여 싱가포르에서 남북 고위급 대화를 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것은 유령이 한 것인가. 남북 교류의 위축이라니? 금강산에서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한 것은 교류가 아니고 무엇인가. 최근에 우리 정부의 결정으로 타미플루 50만명분을 보낸 것은 협력사업이 아닌가.
북한 핵실험 운운하는데, 이미 그 이후에 우리의 접촉은 물론 미국은 보즈워스 특사까지 북에 다녀오면서 북-미 관계 정상화를 논의하고 있는데 우리가 이렇게 물고늘어지는 이유는 무엇인가. 더 나아가 유엔의 대북제재를 말하지만 이미 중국은 북-중 정상회담에서 엄청난 경제적 지원과 교류사업에 합의하고 이를 진행하고 있지 않은가.
북핵문제와 비핵화의 과제를 위하여 북-미 그리고 북-중 사이에 6자회담 재개 필요성이 언급되었고 양자 또는 다자간 필요한 대화가 현재 진행중인데, 통일부는 어느 정도의 해결을 바라보는 것인가. 미국과 북한 사이에는 2000년 10월 워싱턴에서 발표했던 공동코뮈니케의 합의사항에 따라 북-미 사이에 연락사무소설치를 추진한다는 말도 나오는데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하자는 것인가.
여기서 소리소리 지르고 북에 요청한다고 정부가 말하는 ‘비핵-개방-3000’이 저절로 이루어진다고 믿는다면 이것은 정말 북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무지의 소치이거나 독선과 만용으로 일관하는 것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통일부는 기본계획을 폐기하면서 한반도의 평화기반을 구축하고 평화-경제-행복공동체를 구현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는데, 이제 이런 입에 발린 허구로 국민을 우롱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도대체 한편으로는 남북대화를 진행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비핵화의 진전이 없으면 남북관계의 진전도 없다는 양면적 기만을 언제까지 어디까지 믿으라는 것인가.
스스로 관련법을 무시하고 어기는 통일부는 지금이라도 ‘남북관계발전 기본계획’의 시행계획을 내든지, 아니면 차라리 문을 닫는 것이 옳다.
이재정 전통일부장관